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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 11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자 백시종 소설가
정찬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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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8호] 승인 2011.04.20  12: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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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열한 글쓰기, 더 이상 타협 않는다”

현대사회 속 기계 부속품처럼 되어버린 인간의 본성 살리는 데 천착
말살된 느굼바이어 찾는 과정, 주인공의 상처 극복과 대비…구원 여정


▲제11회 들소리문학상 대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이미 43년간 소설가로서 작품 활동을 왕성하게 해 오셨고 유력한 상도 많이 수상하셨는데, 이번 당선 소식을 무척 반가워하시는 모습이셔서 의외였습니다.

-기독교계 신문이 문학상을 제정해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진즉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기독교인이자 소설가로 살아오면서 한편으론 신앙과 문학의 거리를 멀게 느꼈고 문학이 신앙에, 또는 신앙이 문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기독교적인 정신을 작품에 담는 노력은 계속해오던 차에 들소리문학상을 알게 됐고 궁금하기도 하고 특별하게 여겨졌습니다. 신앙생활을 모태부터 해왔지만 그건 부모님의 선택에 의해서였지 저는 그렇지 못했어요.

그런 사람들 특징이 열정적으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지요.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자세입니다. 나이 들면서 바른 신앙생활을 해 봐야겠다 하는 각오가 생길 즈음인데 들소리문학상 대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더욱 매진해 기독교문학 지평을 넓히는 데 기여하라는 독려로 여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수상하신 창작집 〈굿바이 수라바야〉에 실린 중편소설 `사하라 크리스마스'는 어떤 작품인지요? 선교지를 배경으로 한 점이 독특한데요.


-그 작품은 이슬람 선교지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선교사인 주인공 `홍은혜'가 이슬람국가인 알제리에서 소수민족 느굼바이 사람들의 말로 신약성경을 번역함으로써 그들의 잃어버린 언어와 글자를 찾아주는 과정을 그린 것입니다. 이슬람의 탄압 아래 살아가는 느굼바이 사람들, 그들이 자기들의 말과 글을 찾아가는 것은 주인공이 과거 연인으로부터 버림받은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것과 대비됩니다.


▲〈굿바이 수라바야〉에 수록된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포착되는 부분은 주인공들이 자본주의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이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여겨지는 현상을 극복하고 인간 본성의 회복을 향해 지난하면서도 처절한 몸짓을 드러내는 부분이더군요.


-그렇습니다. 인간 본성이 근원적으로 말살되어가는 현대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의 제 본성을 되살려낼 수 있을까에 천착했습니다. 그것을 구원의 여정으로 평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사하라의 크리스마스'에서도 소수민족이 죽은 문자를 살려내는 것에 선교사가 동참하는 내용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엿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까지 써온 많은 작품 중에서 `사하라 크리스마스'는 상당히 애정이 가는 작품입니다.

모티브는 아프리카 여행에서 얻었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북서부, 지중해에 면한 아랍계 나라인 알제리에서는 우리 선교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소수민족의 언어로 성경 번역하는 작업을 위해 애쓰고 있었습니다. 또 작품에서 주인공이 자기만의 고치(상처)에서 빠져나오는 데 자극이 되는 인물인 이슬람 소년 `모이살라'도 현지에서 한국말 등 각 나랏말을 배우는 이슬람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착안했고요. 자칫 종교소설로 빠질 수 있다는 생각에 쓰는 내내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주인공 `홍은혜'가 그의 사역을 돕는 `모이살라'에게 겁탈 당해 임신하고 그 후 소년의 죽음에 대한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이 뼈대를 이룹니다. 여기서 자신이 선교라는 테두리 안에 숨어 있지만 실상은 깊은 상처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몸부림이었음을 주인공이 인식하고 방어막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통해 인간 본질의 나약함을 추적해 들어갔습니다.


▲서라벌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셨는데, 글을 쓰신 것은 언제부터였는지요?


-본래 화가가 되기 위해 고등학교 때부터 준비를 많이 했고 열심히 그 길을 갔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는 모두 어려웠지요. 7남매 중 장남으로 가난한 살림에 먹고살기도 버거운 형편이었어요. 물감은 친구들에게 얻어서 쓰고, 캔버스를 짜서 그림을 그리고는 다시 지워서 또 그려야 했지요. 친구들에게 자꾸 신세 지는 것이 미안해 실기실 대신 도서실을 더 자주 갔고, 그러다보니 남들처럼 국전에 도전하는 것도 녹록치 않았죠.

그렇게 그림에 대한 아쉬움이 컸는데 도서실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했어요. 당시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신춘문예 도전을 위해 준비하는 거예요. 돈 드는 것 아니니 시험 삼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글을 써서 냈는데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 가작에 입선했어요. 쉽게 문단에 데뷔했지요. 그 후로 용기를 가지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 어느덧 43년이 되었습니다.

이후에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도전했다가 당시 심사를 보셨던 김동리 선생님과 인연이 닿았고 배움이 없어 거친 내 글쓰기를 신선하게 보시고 조언도 많이 주셨지요. 본명인 `수남'을 일본식이라며 `시종'으로 바꿔주시기도 했는데, 그것이 한자는 다르지만 동리 선생님의 본명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저에 대해 많이 기대하셨는데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송구합니다.


▲처음부터 여러 상을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끄셨던 것으로 압니다. 화가의 꿈을 접고 작가로 전향해 산 43년의 삶은 어떠셨는지요?


-생활을 위해 화가의 꿈을 접고 택한 글쓰기였지만 그 문제는 오래도록 내 발목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현대문학」에 두 번째 추천 시기를 미루고 다시 신춘문예에 도전한 것도 `상금'이 가난한 살림에 도움을 줄 것을 기대했기 때문이었지요. 상금이 꽤 컸거든요. 세 곳에 작품을 내 모두 당선됐고 한 곳에서는 동일인물인 것이 알려져 취소되기도 했습니다. 그때가 22살이었어요. 학교에서 배우거나 누구로부터 사사 받지 않고 쓰다 보니 개성 있게 읽혀졌던 모양입니다.

43년 간 소설을 썼고 줄곧 작품을 발표했지만 먹고 사는 문제로 작품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늘 안타까운 것이 치열한 글쓰기 작업이 되지 못했던 거예요.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일찍 손을 놓으셨고, 동생들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글쓰기보다는 당장 직업을 갖는 게 급했죠.

보통 작가들이 글 쓰는 것과 연계된 직업을 갖는 것과 달리 첫 직장으로 전혀 무관한 보건 계통에서 일을 시작해 10여년 일하다 대기업 회장 직계 홍보부서에 몸 담아 '90년까지 월급쟁이 직장인으로 전력투구했어요.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작품을 쓰고 발표했지만 글과는 자꾸 담을 쌓게 되고 한동안은 명맥만 유지했을 뿐입니다.


▲신문에 오랫동안 소설을 연재하시기도 하셨지요.


-그것은 나에게 슬픈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사실 신문 연재도 원고료 때문에 시작했어요. 신문사는 비교적 원고료 지불이 정확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부수입으로 여겼죠. 하지만 그것도 직장생활과 병행하다보니 늘 쫓김의 연속이었어요. 업무가 많고 기업 홍보일이라 술자리도 잦았죠. 가장 비참한건 자꾸만 타협해버리는 겁니다.

일단 지면을 메우자는 생각으로 고뇌 없는 글쓰기를 남발했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스스로 괴멸해가는 듯한 통탄한 기분이 엄습할 때면 극단적인 생각이 찾아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날림으로 쓴 글이 실린 신문을 아침에 받아들 때면 `이게 글인가' 하는 후회가 더 아프게 나를 괴롭혔습니다.
제대로 진수를 캐내야 하는데 변방에 곡괭이질을 하면서 몸도 상하고 평판만 나빠졌어요. 나의 부끄러움을 너무 많이 내보인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책에 보니 지난 3년간이 작가로서 가장 왕성하게 작품에 매달린 시간이었다고 하셨는데요.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던 당시는 상당한 아픔이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약이 되어 나 자신을 정돈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필요 없는 것들을 들어내고 깎아내는 과정을 거치면서 그런 실패를 더는 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있었지요. 그동안 술 문제로 도망 다녔는데 시골의 작은 교회로 옮기면서 신앙을 회복했고 자연히 술을 끊고 장로 임직된 지 3년 쯤 되었습니다.

하루를 새벽예배로 시작하고 교회 생활에 참여하는 등 생활 패턴이 바뀌면서 작품에 몰두하게 된 것도 그 어간이었습니다. 아픔을 거둬내고 늦되어 작품에 집중하려 애쓰는 중에 특히 기독교계에서 상을 주시니 자성의 기회와 함께 많은 격려와 용기가 됩니다.

43년 간 원고지와 씨름했지만 늘 2% 부족을 느낍니다. 노력도 중요하지만 작가로서의 좋은 유전자를 갖고 있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나 같은 저능아가 써보겠다고 허우적거리는 것이 스스로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래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2%를 채울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도전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요?


-지금까지는 내 정체성을 찾는 일,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말하자면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에 가야할 방향을 추적하고 형상화하는 작품을 써왔습니다. 현재는 나의 성장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보통 작가들이 자기 이야기부터 시작하는데 나는 늘 남 얘기를 했어요. 그동안 연마했으니 이제 최초로 내 얘기를 쓰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 세대는 성장 과정에서 가난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경험했기에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어요. 여러 갈래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또 이번에 상을 받은 `사하라의 크리스마스'를 장편으로 재구성 해보고픈 바람도 있습니다.

요즘 젊은 작가들을 보면 의식의 흐름이나 분위기, 문체에 무게를 많이 두는 것 같습니다. 나의 경우는 처음부터 줄곧 소설은 이야기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서사에 중심을 두었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업들이었지요. 앞으로도 그 부분은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나이가 많아 젊은 시절의 투기와 열정이 약해지고 문장도 드라이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경륜으로 그런 것들을 뛰어넘고 싶습니다.


■ 소설가 백시종

·1944년 경남 남해 출생
·전남일보 신춘문예 동·장편소설 당선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 가작 1석
·현대문학 1회 추천(김동리 선)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 당선
·대한일보 신춘문예 단편 당선
·현대문학 추천 완료
·제1회 한국소설문학상, 제38회 한국문학상, 제10회 오영수 문학상
·제2회 채만식문학상, 제3회 류주현문학상, 제1회 한국문학 백년상 수상
·「계간 문예」 편집인, 「계간 문학바다」 주간, 「계간 동리목월」 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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