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계를 놀라게 했던 미국 9·11 테러 사건이 일어난 지도 벌써 한 해를 넘겼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던 현장의 악몽도 어느덧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그런데 그 곳 현장인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부지에는 이미 튼튼한 철 십자가를 세움으로 그들의 아픔과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구촌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테러 사건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일년 전 9·11 사건 직후에는 많은 사람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고 테러전의 명분도 뚜렷했기 때문에 미국은 아프가니스탄과 손쉽게 전쟁을 벌일 수 있었다. 하지만 2단계 테러 전쟁이 임박한 지금 세계 다른 나라들은 물론 상당수의 미국 국민도 선뜻 전쟁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한 태풍이 이라크를 휩쓴 다음에 불어닥칠 가능성이 가장 큰 곳은 한반도이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9·11 테러 1주년을 맞아 뉴욕타임스에 “자유의 승리를 수호한다”는 제목의 컬럼을 기고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우리는 테러리스트와 불법을 자행하는 정권들이 저지르는 폭력을 반대하고 예방함으로써 평화를 지킬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런데 넬슨 만델라 전 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이슬람권 외교에서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며 세계 평화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비난을 하였다. 우리는 두 지도자 사이에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상반된 의견을 접하게 된다. 한편에서는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전쟁을 하겠다는 선전포고이다. 다른 편에서는 전쟁은 오히려 평화를 위협하는 것이 된다는 경고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전쟁을 반대하여도 단독으로 다른 나라들의 주권을 침해하는 공격을 할 수 있다는 미국의 태도는 강력하게 도전을 받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태도에서 보듯이 `전쟁과 평화'는 항상 대립·모순의 관계에서 인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쳐왔다고 할 수 있다. 전 인류의 소망이요 희망인 평화는 그 이름으로 충돌과 분열 그리고 전쟁이라는 악순환에 의해 짓밟히는 역사로 점철되어 있다.  우리는 전쟁의 비극과 악몽을 되새기면서 평화를 부르짖고 염원하고 있다. 핵전쟁이 지구의 종말을 위협하는 우리 시대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독교 교회에게 있어서도 이 문제는 복음의 함축적 의미와 연결시켜 다시 연구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오늘날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전쟁에 대하여 서로 다르고 상충되게 응답해 오고 있다. 이는 우리가 성서에서 유출해 낼 수 있는 세 가지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었는지에 따라 상이점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전쟁을 악을 대항하는 선의 십자가로, 어떤 사람들은 정당방위로서 하는 의로운 전쟁으로,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전쟁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자체를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로 각기 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부시 대통령의 입장은 악의 세력을 응징하는 전쟁을 일으키려는 움직임이다. 상대방의 세력을 악의 힘으로 보고 자기의 세력을 선의 힘으로 보려는 편견에서 빚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해 상대방의 `씨를 말리려 드는' 것이다. 너무나 잔인하고 비참한 전쟁을 하게 된다. 인간이 이성을 잃고 적개심으로 전쟁을 한다면 어찌되겠는가? 전쟁이란 승리를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는 견해는 오늘날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비도덕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함으로써 엄청난 범죄행위를 해결할 수 있다. 전시에도 무고한 사람의 고의적인 살해는 매우 악한 일이다. 전쟁을 하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어떤 행동도 도덕적인 근거에서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세의 법에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그리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들었다. 그런데 예수의 복음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였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이와 같은 사랑의 이해로부터 평화론자들은 그 어떤 살인도 거부하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떤 종류의 폭력도 반대하거나 혹은 어떤 전쟁도 반대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전쟁이 항상 옳지 못하다고 믿는 것에 주목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수의 복음이 평화의 복음이고, 기독교가 평화의 종교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평화운동이란 평화를 있게 만드는 운동이다. 우선 전쟁과 폭력을 없애는 운동이라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잠재적인 전쟁과 폭력의 원인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갈등과 적대관계가 생기지 않도록 사회구조를 만드는 운동이라야 할 것이다.강남대 신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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