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시골을 살리자고 주장하는 것은 솜뭉치로 바위를 치는 것 같이 반응이 전혀 없는 것이 될 수도 있다. 자연환경이나 사람들의 정서를 높이는 것으로는 시골이 좋은 곳이지만, 편하게 살고 안락하게 살기 위한 곳으로 시골은 아니라고 느끼기 때문이다. 가끔 영화나 그림으로 보거나 행사가 있거나 명절 때 찾아가서 잠시 숨을 돌리는 곳으로는 괜찮은 곳이요 적절한 마당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곳에서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농사를 짓거나 다른 밥벌이를 하면서 살기는 너무 힘겨운 곳이 시골이다. 그래서 일찍이 사람들은 시골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들었다. 도시에 가야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적절히 이루어 질 때는 시골에도 사람들이 살만큼 사람 숫자가 적지가 않았다. 그러나 삼투압현상처럼 빨아들이는 힘이 강한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의 물결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시골은 젊은이가 없고, 노인만 사는 곳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지극히 드물게 되었다. 어린아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시골은 삭막하게 죽어 가는 사람의 사막과 같이 되고 말았다.  노인만 있는 시골이라고 한탄하더니, 대를 이어 노인이 될 중년이나 젊은이가 없는 시골은 이제 사람이 없는 곳이 되고 말 징조다. 지금과 같은 추세로 흐름이 흘러간다면 앞으로 몇 년 지나지 않아 시골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되고 말 것이 뻔하다. 어린이들이 없어서 시골학교들이 사라지더니, 이제는 그나마 남아 있던 노인까지 줄어들어 시골교회를 채우던 자리가 텅 비게 되었다.  아직은 시골고향에 남아서 구부러진 허리와 부실한 다리로 농사를 지어 도시에 사는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이 쌀 말이나 과일상자를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그분들이 언제까지 그렇게 계실 것인가? 나무껍질처럼 억센 두 손을 모아 자식들을 위하여 빌어주던 그 노인들이 사라지는 시골교회는 매우 많은 것을 일러주는 계시가 될 것이다.  머지 않아서 학교도, 교회도, 행정관청도, 심지어는 마을마저도 없어져 도시 사람들의 근거와 뿌리가 사라지는 때가 올 듯도 하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것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종합대책이 나와야 하겠지만, 교회들은 그것 나름대로 시골을 살리는 데 힘을 쏟을 때다. 한동안 우리 교회는 한 마을 한 교회 운동을 벌였다. 그래서 시골에 있는 좀 큰 마을에는 어김없이 교회가 서게 되었다. 그것이 70년대까지는 잘 되었다. 물론 그 때도 시골에서 목회하려는 성직자들은 매우 적었지만, 어른들만이라도 남아 있는 시골은 보기 흉하지 않게 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 전도를 할 마음도 시들지 않았다.  그러나 농사철이 되면 주일 저녁예배에는 하나나 둘이 참여하는 경우가 흔해졌다. 참다 못하여 주일 저녁예배를 없애는 곳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아이들이 없어서 교회가 담당하던 유아원도 되지가 않아 몇 교회들이 합하여 하나의 유아원을 운영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러더니 이제는 어른들을 모시는 주일 대예배까지도 몇 교회가 합하여 하게 되었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 노인들은 자기 집 옆의 교회에 가는 것도 힘겨운데, 다른 동네까지 걸어가서 예배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인이 없는 교회에 성직자를 머물러 있게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하여 몇 되지 않는 노인 신자들을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이렇게 하여 시골은 이제 모든 것이 같은 시간에 사라지거나 삭막하게 될 위기에 놓여있다. 이러한 때 특별히 교회들은 시골의 교회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도시에 있는 많은 큰 교회들은 시골교회에 많은 보조금을 보낸다. 이제 그것을 좀 더 체계 있게 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개교회나 교파별로가 아니라, 교회가 연합하여 합동으로 시골을 살리는 일을 할 필요가 있다. 시골의 마을교회들이나 작은 교회들은 같은 지역에 있는 서로 교파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몇 개의 교회를 합하여 하나의 통합된 예배체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하여 교회가 연합하여 유아원, 노인정, 예배당에 적절히 참여할 수 있는 교통수단을 제공하여야 한다. 물론 그것을 운영하려면 차량운영비와 봉사하는 사람에 대한 급료가 주어져야 한다.  이것을 교회 단독으로 하려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낭비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시골교회는 시골의 학교들과 연합하여 그 일을 잘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제 시골교회들은 교인들만을 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믿거나 안 믿거나 상관없이 모든 시골주민들을 자기 교인으로 인정하고 무차별 교회프로그램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하면 도시의 교회들 역시 교파를 초월한 시골교회 살리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그것은 시골을 한 교구로 생각하고 지역사회 전체를 살리는 방향으로 모든 교파를 통합하는 틀로 일머리를 잡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려면 도시에 있는 교회들, 시골교회를 돕는 교회들이 역시 교파를 뛰어넘는 연합운동을 벌이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시골교회를 살리는 운동은 교회의 연합운동이요, 교회와 지역을 통합하는 운동으로 방향이 잡힐 가능성이 몹시 크다. 그렇게만 된다면 좀 행복할 것이다. 한남대 사회과학대학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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