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제일교회 담임기독교예술총연합회 회장 말씀의 변질화와 영성의 상업화는 결국 신학의 변질을 가져오게 되고 또한 신학의 변질이 말씀의 변질과 영성의 상업화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철저한 말씀신앙과 보수적 신학의 뿌리가 튼튼한 신학교 교수들, 성령충만한 교수들, 기도 많이 하고 온유 겸손한 신학교 교수들에 의해 양성되고 양육되는 신학교가 되어야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점점 대중화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신학교의 대중화 그리고 무책임한 신학교의 난립과 영업의 수단으로서의 신학교 운영자들 때문에, 준비되지 못하고 훈련되지 못한 지도자를 양심의 가책 없이 배출하는 양상때문에, 심지어 8개월 10개월 그것도 한 주간에 한 두 시간 교육시키고 안수 주는 바겐세일 신학교 또는 사이비 신학교 때문에 목사의 자질은 추락되고 신학은 혼란, 혼선, 무속적인 기독교로 전락시키는 경향까지도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자들이 성경을 얼마나 읽었는지 의심이 왜 일어나는지 기도신학을 가르치는 자들이 얼마나 실제 기도하며 기도체험이 있는지도 의심이 일어나서는 안되는데 의심이 일어나고 하나님을 말하면서 실제로 하나님을 믿는지 마저도 의심스러우니 이 심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고민스러운 날들이 하루가 아니고 이틀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베드로를 통해 3천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역사를 일으키시고 물고기 배속에서 철저하게 회개한 요나를 통해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시키는 역사를 일으켰습니다.  뿐만아니라 성령충만한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안수할 때 성령충만히 받는 역사도 일어났던 것입니다. 무신학, 반신학, 변질신학 난립 오늘날 무신학, 반신학, 변질신학이 사방팔방에서 고개를 들고 설치는 것은 정말 걱정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신학은 창조, 성육신, 구속에 대한 큰 교리가 바탕이요, 뿌리이기 때문에 신학이 흔들리면 기독교 뿌리가 흔들리고, 바탕이 흔들리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이 문화를 활용할 수는 있어도 문화의 노예가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신학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드러내고 전달하는 하나의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는 한때 민중신학, 해방신학, 세속신학이 들어와 신학을 인간 사상과 욕구의 도구로 삼으려는 바람(운동)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자연신학, 자유주의 신학, 비판적 신학, 상황신학 정말 복잡하게 마음대로 혼합된 신학이 교회와 성도들을 어지럽게 하고 있습니다. 말씀의 변질이 신학의 변질 다시 강조합니다만 말씀의 변질이 신학의 변질이요, 신학의 변질이 바로 말씀의 변질인 것입니다. 신학은 하나님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학은 진리 수호를 위해 이단과 대항하기 위해 요청되고, 보다 높은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해 필요하지만, 생활과 실천이 없는 신학은 인간지성의 조직적 본능과 인격의 통일성에 의해 요청되는 것을 충족시켜주는 기능 외에는 아무 역할도 할 수 없는 무능한 학문이 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린다면 신학의 기능이 없는 신학으로 전락해 버리는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서기관처럼 입술의 신학은 신앙에 근본을 둔 신학이 아니며 사랑의 동기와 사랑에 의해 지배되는 신학의 정신이 아닌 것입니다. 그 결과 양심을 속이고, 위선의 프로가 되며 변질된 신학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감동을 일으키는 신학교육과 영력이 있는 신학자가 그리워지는 것이 오늘 우리가 당면한 현실이 아닌가 생각되어지면서 이것도 저의 오판이거나 무지한 독선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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