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교회시대의 준비


      이스라엘 요단강 옆 벳산 고적 발굴터(2004년 방문시 촬영)

'기독교 역사'를 탐구하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전사(前史)에 대한 기초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 출발점인 아브라함의 메소포타미아 탈출(Exodus)에 이은 모세의 이집트 탈출,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 탈출, 예수 그리스도의 유대교 탈출로 이어지는 발전적 청산절차를 밟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성령강림  배경

바벨론 포로기 이스라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포로기 이후 500여년 미신, 우상, 주변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메시아의 이름으로 예수를 보내신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과정은 기독교의 자기발견을 위한 기본적 학구자세가 있어야 그 의미를 알게 된다.


1. 성령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


이는 성경의 말씀을 따르는 법칙을 깨달아야 한다. 성경의 중심이 메시아 예수시니 그분의 말씀이 우선이다. 주님은 부활하신 후 승천 직전에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고 하셨다.

세상의 중심이 예루살렘이라는 뜻이겠고, 예루살렘에는 새 인류사의 기초인 십자가 희생의 터전인 골고다가 있음을 기억하게 하심이며, 또 다른 표현으로 '예루살렘'은 새 이름인 '십자가 예수의 골고다'의 동의어가 됨을 암시하였다.

믿는 자의 생각은 일단 예루살렘을 예수의 십자가로 받아들여야 오해와 혼돈이 없게 된다. 십자가를 놓쳐버린 기독교 신자들이 예수 이후에 얼마나 많은가. 역사 연구를 하다보면 기독교가 예수의 십자가를 잃어버리고 많은 날 동안 방황했음을 발견하게 된다.


1) 성령님 맞이하기 전에 할 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지식, 곧 예수의 생애에 대한 지식기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복음서 안에 예수의 생애 30여 년 동안의 기록부분이 거의 없다. 마태의 족보 이야기와 함께 족보 확인, 그 다음으로 열두 살 때의 이야기(눅 2장) 한 대목을 기록한 이후 십 팔년 정도의 공백기를 두고서야 갑자기 요단강에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나서 활동기 3년 정도 뿐이다. 3년이라고 하는 복음서 자료를 중심해도 대략 몇 십일 정도의 활동기록 뿐이다.

예수께서 메시아로서의 활동 상황의 기록이 복음서이기는 하지만 그 기록 또한 예수께서 세상을 떠나신 이후 30여년, 요한복음의 경우는 60여년이 지난 후에야 제자들에게 겨우 빈약한 기록으로 남겨주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의 자료에서 성경의 내용들을 통해 힌트나 암시를 얻어내야 한다. 예수께서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요 5:39) 하였으니 성경 말씀들 속에서 예수를 만나는 것이다.

그럼 우리는 공부의 속도를 내기 위하여 신약성경 부분에서 복음서를 통한 구세주 예수와의 만남을 대강 정리해보자.


2) 첫 번째 강림을 통한 성령

첫 번째 강림은 사도행전 2장의 기록에 대강 나타나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예루살렘 감람동산의 한 다락방에 모였다.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는 말씀이 증거하는 대로 우리는 최초의 성령강림 직전의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참고로 설명할 것은 '최초의 성령강림' 부분이다. 하나님의 성령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구약시대 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그분의 필요에 따라서 이 세상 어느 곳에서든지 활동해오셨다.

그러나 '최초의 성령 강림'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별도의 지식 때문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보좌로 되돌아가신 후 성령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셨다. 창세 초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활동하셨고, 메시아의 이름으로 성령께서 오실 그 때는 교회가 하나님의 지상나라를 대신하게 하시려고 오시는 성령이시기에 '최초의 성령'이라는 표현을 하게 되었다.

말씀에 따라 성령 대망의 시간(행 1:14)에 최소의 성령강림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행 2장 참고). 그러나 예수님의 보호를 떠나,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게 되는 교회시대가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되었고, 그때의 시간은 AD 33년경이다.


3) 오신 그날의 광경

감람원 다락방, 120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서 전념 몰두하여 기도했다. 그들의 '전념 몰두'에는 경우에 따라서는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주로 열두 제자들이 해당이 되겠으나 당시 성전파 제사장들이나 예수에게 적개심을 가졌던 바리새인, 로마 총독부 군사들까지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서 감쪽같이 없어진 일로 살기등등하여 예수에게 열심이 많았던 이들을 감시하고 추궁도 하였을 것이다. 그때 자칫, 잘못 걸려들었으면 잡혀가서 크게 혼쭐이 날 수 있었다.

그런 예루살렘 분위기인데 성령대망의 모임이 쉬웠겠는가? 그래서 처음 모인 숫자는 5백여 명이었으나 성령 강림의 시간에는 120여 명이라 했음을 참고(고전 15:6)하면 쉽지 않은 모임의 가치를 알게 될 것이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행 2:1) 성령이 강림하셨다. 이는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어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 4:4)의 말씀과 연계해보면 하나님의 치밀하고 오묘하신 섭리를 알게 된다. 그 분의 시간, 곧 하나님의 시간 계산에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교회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나심을 보게 된다.

성령과 예수, 성령과 교회의 관계를 깊이 이해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바로 그 사람들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했다.

사도행전 기록자의 표현이다.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이라고 했으니 이는 당시 제자들의 절박한 환경을 암시해주는 것을 겸하여 느낄 수 있겠다. 그리고 그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4)고 했다.

성령의 충만과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별도의 언어로 말하기를 시작했다. 이는 신분과 소속의 변화를 말한다.


2. 성령과 함께하는 제자들


성령과 함께하는 제자들은 곧바로 복음을 전했는데 말씀하신 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행 1:8) 복음 곧 예수의 증인으로 살았다.

그리고 복음서를 기록했다. 이에 더하여 일명 '예루살렘 공동체'라 말할 수 있는 최초의 교회 모델을 만들었다(행 4:32∼). 이 내용들을 각각 설명해 보겠다.


1)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

오순절 성령강림과 함께 이 은혜에 참여한 사도와 성도들은 '권능'을 받게 되었다. 권능이 무엇일까? 이는 예루살렘, 온 유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가야하는 복음의 무대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다.
아직 우리는 기독교 역사시대 본격 진입 전이니 한마디 한다면, 하나님의 성령에 붙잡힌 사람이 갖는 권능은 더 중요한 말로 표현한다면 성부·성자·성령, 곧 삼위일체의 완성에 참여하는 권능을 말한다.


2) 성경을 기록할 수 있는 권능

지금 우리는 사도행전 2장 사건(AD 33년) 부분을 살피고 있다. 그러나 사도행전의 기록 시기는 AD 60년대 후반이겠고, 나머지 신약성경도 마찬가지다. 제자들이 성령의 권능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시기와 그들의 손에 의해서 성경이 기록된 시기가 왜 수십 년씩 차이가 날까? 바로 이 부분에서 성령과 교회 또는 '말'과 '글'의 관계를 깊이 생각하게 한다. 역시 '말'은 '글'로써 완성되는 것일까? 또 달리 말하면 '말'은 관념이고 '글'은 화육(化肉)일까?

제자들은 예수님의 공생애에 동참한 후 성령의 권능을 받고도 성경 기록의 능력까지의 시간이 무려 30년 또는 40년, 그 이상이 되기도 했다. 그들이 예수님의 직접교육, 성령님의 권능까지 동원했어도 예수께 배운 말씀을 성령의 도움까지 받으면서 기록할 수 있기까지의 수십 년, 또는 수백·수천 년의 시간이 추가로 필요할 수도 있다. 현실을 깊이 헤아리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제자들의 개별적 능력으로 성경을 기록한다면 예수와 함께 활동할 때부터 메모하고, 또 예수님의 도움을 받고, 또 주님의 확인까지 받아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또 얼마나 정확한 성경 내용이 되었을까.

그러나 그게 아니다. 직접 예수께서 가르치고 또 손에 쥐어주고자 하여도 될 일이 아니다(요 16:12).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13) 성령의 인도를 받은 사람이 성숙해가는 어느 경지에 이르렀을 때 성경책을 쓰는 제자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3) 성령께서 만드시는 공동체 교회

사도행전 4장 32절에서 시작하여 지도자 스데반이 사울(후에 바울)이라는 이름의 바리새인에게 붙잡혀 죽게 되면서 예루살렘 교회(공동체)는 먼 훗날을 약속하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사실, 하나님께서 만들고자 하는 교회는 예루살렘 공동체가 그 모형의 실체였다. 예수의 제자(신자) 중에도 짐승 잡아서 희생제를 드리는 옛 시대의 공동체 교회형이 있고, 유대인의 회당 공동체형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데반을 앞세워서 시작하신 예루살렘 공동체형 교회를 분별하는 지혜를 발견해야만 하는데 기독교는 역사의 터 위에 예루살렘 공동체 교회를 아직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21세기 현장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성도)들은 예수께서 하라시는 교회 구조와 그 형식이 결코 오늘의 기독교 신교가 채택한 형식과는 다름을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이 세우시는 삼위일체형 교회의 구성조건을 늘 생각하면서 다음시간부터는 역사 무대에서 펼치는 기독교 역사를 공부해 보겠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