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어 성경.

야고보 노인은 말 없이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사르르 사르르 떨고 있었다. 어떤 전율일까? 혐오일까, 아니면 감격일까? 한동안 그렇게 하늘바라기를 하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무함마드군. 아깝네. 자네는 너무 많은 것을 너무나 빨리 알려고 애쓰는군. 진리를 배워가는 데는 단계가 있다네. 조금씩 배움을 더해가는 속도를 지켜야 하는 것일세.”

무함마드나 알로펜 이들 둘은 야고보 노인의 말을 다 알아듣지 못하는 듯 했다. 무함마드는 무엇인가를 잘못하여 선생 앞에서 체벌을 기다리는 학생처럼 얼마간의 두려움을 안고 있는 것 같았다. 알로펜이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무함마드의 말에는 상당한 이유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저도 성부·성자·성령의 관계는 물론 왜 복잡한 표현으로 신앙을 혼란스럽게 하는지를 모르겠어요.”

“너도 그러냐?”

“네. 할아버지. 그리고 내 친구 무함마드의 용기가 부러워요. 저는 아직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셋이기도 하다는 말을 해본 일이 없어요. 그러나 기독교가 스스로를 유일신 종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저버리지는 못하고 있어요.”

“어. 그럼 너도 우리 기독교를 다신교 집단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냐? 그런 것이야?”

할아버지는 놀랍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시고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셨다.

“그렇기는 하지만 저의 스승 되시는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통해서 저의 갈등은 정리될 것으로 알고 있어요. 다만 이 친구 무함마드처럼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다가 삼위일체 같은 난해한 교리에 발이 묶여 신앙에 방해를 받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오냐. 그건 네 말이 옳다. 너희 둘 모두 삼위일체 교리가 신앙의 걸림돌이 된다는 말을 듣고 보니 여러 생각이 드는구나.

우선 나와 내 손주 알로펜이 지지하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큰 희생자가 되어 있지. 그런데 말이다. 이 문제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토론하기에는 상당한 전문성이 있단다. 나 역시도 학자도 아니고, 너희 또한 학문을 말하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이기도 하고 말이다.”

“네. 할아버지. 제가 경솔했어요. 어찌 감히 제가 단정하거나 교집할 수 있겠어요. 다만 저의 신앙이 단정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쑥 드린 말씀이었어요. 또 할아버지께 말씀 드리면 해답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있었어요.”

“역시 착하구나. 그래, 그런데 이 늙은이가 너희들의 소원을 시원하게 해결할 만큼이 실력이 없으니 어찌한다…?”

알로펜이 조심스럽게 야고보 노인에게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 무함마드는 아라비아에서 살잖아요?”

“그렇지.”

“아라비아에서는 여기 다마스커스나 크데시폰 만큼 기독교의 전통이 세워지지 않아서 신앙의 모범을 찾기가 힘들다고 무함마드가 말했어요.”

“그러니 어쨌다는 것이냐?”

알로펜은 다음 말을 하기 위하여서인지 무함마드를 한 번 살피고는 입을 열었다.

“무함마드를 저와 함께 있게 해주세요. 크데시폰에는 훌륭한 신학자들과 박사님들이 있잖아요.”

“아냐. 그건 안돼!”

무함마드가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왜 그러냐. 페르시아가 싫어?”

“아니야. 내게 친절을 베풀고 내 신앙의 장래까지 걱정해 주어서 고맙지만 나는 아라비아를 위해서 일해야해. 아라비아가 얼마나 현재 비참한지를 알로펜 너는 모를거야.”
무함마드는 금새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비참하다니? 설사 그렇다해도 네가 무슨 힘이 있어서….”

“그래. 힘이 없어. 그러나 나는 아라비아를 위해서 태어났음을 알고 있어. 나는 반드시 아라비아 전토에 유일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섬기는 무대로 만들거야. 반드시.”

“오호, 무함마드. 너는 복받은 청년이구나. 하나님께서 너를 반드시 아라비아의 구원자로 만드시기를 원한다. 또 너를 위해서 나도 기도하겠다.”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격려가 큰 힘이 되는군요.”

“그래. 나도 너를 위해서 기도할께. 그리고 너는 아라비아를 구원하라. 나 알로펜은 페르시아를 하나님 나라로 만들고 싶어.”

“뭐 하나님 나라?”

“그럼. 하나님 나라지. 하나님 나라가 이 세상에 임하게 되어 있어요.”

“어떻게, 이 세상은 죄악의 천지야. 아라비아는 지금 짐승의 단계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사막을 떠돌며 살고 있어요. 알로펜! 지힐리야(Jahiliyah)라는 말을 알고 있니. 로마 제국이나 페르시아가 거들떠 보지도 않은 땅이야. 우리는 저 옛날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조상 할머니 하갈과 또 한분의 조상인 이스마엘을 브엘세바 광야에 버릴때 부터 더 이상 인간의 힘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온거야. 그리고 이제는 막바지야. 더 이상은 비참할 수 없는 날들을 나의 아라비아 형제들은 살고 있어요. 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는 아라비아를 지켜야 된다.”

야고보 노인은 무함마드의 총명과 그의 관상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히 이 아이가 장차 큰 일을 해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무함마드가 한 말을 곱씹어 보고 있었다.

“그렇게 비참하다는 것이냐? 그런데 조상 아브라함이 너희 하갈 할머니와 이스마엘을 버릴때 부터라고 하는 말에는 원망이 서려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그럼 원망 뿐이겠냐. 우리들 메카의 유일신 신앙을 지닌 사람들이 뭐라는줄 아나? 기독교의 예수님은 아라비아의 구세주는 아니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구세주는 온 세상을 구원하는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아라비아에 예수의 기독교는 아라비아를 구원하자는 열의가 없다고 한단다. 좀 더 깊은 성경 지식을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는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인 이삭과 또 이삭의 둘째 아들인 야곱의 계열에서 나왔으니 아브라함의 첫아들 이스마엘이나 이삭의 첫 아들인 에서의 자손이 살고 있는 아라비아는 기독교의 구원계획에서 제외되었다고 말하고 있지.”

무함마드가 펴는 이론은 이미 계획된 논리였다. 기독교를 거부하는 아라비아의 정서를 말하고 있었다. 기독교가 아라비아를 구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라비아가 기독교의 아라비아 접근을 거부하는 논리의 기반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한 야고보 노인이 무함마드에게 물었다.

“무함마드여. 지금 자네의 말이 누구의 말인가? 아라비아 사람들 모둔가? 그리고 거기에는 자네의 생각도 포함되어 있는가?”

“아닙니다. 저는 아직 아라비아 유일신 신앙자들과 생각을 같이 하고 있지 않아요. 저는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 모두의 구세주이심을 지금까지는 믿고 있어요.”

“지금까지라고 했는가?”

“네. 할아버지.”

“그럼, 그 신앙이 바뀔 수도 있겠군.”

“그렇습니다. 저는 앞서 말했듯이 예수님이 어떻게 내 죄를 대신하셨다는 것인지와 왜 하나님은 한 분이 아니고 성부·성자·성령으로 나뉘는가에 대해서 속시원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이 문제를 저에게 가르쳐주지 못하면 저는 기독교가 아닌 하나님께 직접 배우는 길을 택할 수도 있습니다.”

“허어. 낭패로군.”

야고보 노인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안타까워 하고 있었다. 그때, 알로펜이 큰 소리로 외쳤다.

“무함마드, 자네는 지금 꿈을 꾸고 있어. 자네는 예수를 믿으려고 예수를 찾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아니할 명분을 찾고 있는거야. 이 사람아,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임마누엘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람이 되시고, 사람과 함께 하신거야. 이것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또 이것이 나와 자네의 죄를 대신하셨다는 뜻을 담고 있지. 이 하나를 믿으면 만가지 의문이 다 풀릴 것이네. 내가 바라기는 자네는 자네 스스로를 억압하지 말고 자네 자신에게서 자네를 해방시켜야만 될거야.”

“아냐! 자네는 내 맘을 몰라. 나는 답답해. 진심이라구.”

내뱉듯이 고함을 지르더니 할아버지에게 인사도 없이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알로펜이 곧바로 뒤따라 나갔으나 무함마드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알로펜은 할아버지 앞으로 와서 자기가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죄송합니다'를 거듭하며 얼굴을 푹 숙였다.

“아니야. 아니야. 내 손자 알로펜 이리온. 내 무릎에 한 번 앉아보련….”

야고보 노인은 만족할 만큼의 기분이 되어 손주를 자기 무릎께로 이끌고 알로펜은 할아버지의 무릎 위에 엉덩이를 붙이는 시늉만 하고, 할아버지를 포옹했다. 할아버지 또한 알로펜의 어깨를 꼬옥 껴안으며 곧이어서 그의 등을 두들겼다.

“그래. 내 손주. 잘했다. 내가 볼때도 무함마드는 너무 앞서 가고 있더구나. 그는 무서운 욕망이 큰 무덤 속을 헤매는거야. 그가 그 스스로에게 해방을 받지 못하면 큰 일을 저지를 사람이 될수도 있겠더라.”

“저는 할아버지 생각과 같은데, 그의 말에서 깨름직한 느낌 하나가 내 목에 가시처럼 걸리는군요. 기독교는 아라비아를 구원할 생각이 없는것 아니냐는 그의 말입니다.”

“그래. 나도 같은 생각이다.”

알로펜은 오늘 무함마드와 나눈 대화의 의미를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1424호 부터는 소설 〈알로펜〉과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역사강의〉를 한 페이지로 연재하여 독자들에게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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