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8)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1. 바울의 부르심과 제1차 선교여행


스데반의 순교는 초기 기독교 역사 위에 큰 충격의 파장을 몰고 왔다. 스데반이 실질적인 예루살렘 교회 리더의 신분이었으니 교회에 큰 혼란이 일어날 줄 알았으나 그게 아니었다.

예루살렘 교회는 당황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께서 이미 말씀하신 수순을 따라 성령이 임하셨으니,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드디어 땅끝을 향하여 '다마스커스 충격'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스데반의 당당하고 너그러운 아량, 생과 사를 뛰어넘는 장부다움, 더구나 숨지기 직전 스데반은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를 지금 그가 보고 있다는 고백을 했다.

이스라엘 역사는 물론, 메시아의 강림문제나 영의 세계에 대한 우월감에 차있던 사울이 절반쯤 미치고 있었다. 그는 제자들의 뒤를 쫓아 다마스커스로 향하던 중 '사울아!, 사울아!'를 부르시는 예수 앞에서 '주여, 뉘신지요?'(행 9:5)라는 절박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천둥 같은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으니 혼비백산을 하지 않고, '주여, 뉘십니까?' 하는 끈질긴 사울의 집념을 여기서 보게 된다.

물론 사울에게만 절박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를 부르시는 음성 또한 어떤 간절함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 고약한 놈을 뒤늦게 부르실 예수가 아니다. 3년 동안 지상 활동하실 때, 늘 주 예수 가깝고 또 먼 거리에서 예수가 무슨 말을 했을까, 하면서 조바심 속에 머리를 굴렸을 사울이다. 그의 용의주도한 성격이 이미 말해주고 있다.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실 때 당신이 누구냐?고 덤벼드는 사울에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하시는 예수를 보라. 그가 짐작을 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수라는 한마디에 그는 고꾸라지고 엎친데 덮친다고 눈까지 멀어버리는 벼락을 맞았다.

강 대 강인가? 예수의 강권 앞에 사울은 무릎 꿇었다. 항복의 뜻까지 포함하여 '바울'이 된 그는 기독교 역사상 찬란한 별로 떠 올랐다. 세상 떠들석하도록 하면서 유대교 율법사가 기독교에서 두번째 하라면 서러운 바울이 되었다.

주 예수의 절차에 의해 그는 다시 눈을 뜨고, 곧바로 다마스커스 거리에 나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외치다가 여의치 않자(행 9:20∼25) 다마스커스 성을 야반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서 전도했으나 그를 죽이겠다는 유대인들에게 쫓기자 사도들이 그를 그의 고향 길리기아 다소로 보냈다(행 9:26∼30).


2. 바울의 피나는 훈련 10여 년


부활하신 예수의 직접 부르심, 이방인의 사도로 지명을 받은 바울은 그의 출발에 있어서 만큼은 화려했다. 기독교 역사상 바울처럼 화려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없다. 그도 이 점을 알았는지 새로운 눈을 뜬 즉시(행 9:18) 다마스커스와 예루살렘 전도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그리고 그는 고향집 '다소'에 머물다가 바나바의 소개로 수리아 안디옥교회 교사로, 이어서 파송 선교사로 커프러스(구브로)로 떠난 해가 AD 47년도이다. 그럼, 그가 예루살렘 사도들의 평가를 받은 후 그의 고향집 '다소'로 보내졌던 해가 몇년도일까?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강림 후 탄생하고, 스데반 등의 지도자들에 의해 성장하다가 바울(사울) 등에 의해 스데반이 순교하고 예루살렘과 그 주변 지역이 핍박에 휘말리고, 바로 가해 주범인 사울(바울)이 다마스커스 회심까지이니 짧으면 1년, 길어야 2년으로 교회 역사는 평가한다.

그렇다면 바울의 회심이 AD 34년 혹은 AD 35년으로 보면 된다. 그러면 바울이 다마스커스나 예루살렘 전도 실패 후 마치 고향집 '다소'에 연금되다시피 한 후 10여 년 만에 제1차 아시아 선교여행에 나섰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10여년 동안 바울에게 있어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바로 이 부분을 알아야 바울을 알고, 기독교를 알게 될 뿐 아니라, 나 자신의 신앙을 바로 알게 된다.

바울은 학자다. 30여 년 가말리엘 문하 등에서 유대교를 정통으로 배운 당대의 율법학자였다. 그가 뒤늦게 예수를 만나 새로운 길을 가는 데, 얼마나 바쁘겠는가. 예수 만나서 사명을 받은 다음날 다마스커스 시내에 나가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부르짖었던 그는 정말 바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1년도 아니고 10여 년을 고향집 다소에 엎드려 무엇을 했을까? 그것은 '예수 배우기'의 시간이었다. 예수께서 바울을 불렀으니 바울, 곧 그가 예수를 부르는 절차가 필요했다. 다시 말하면 '재소명'이고 '제2차 소명'이다. 이 은혜를 받기까지가 신자의 과제이다. 다시 말하면 재소명이라든지, 제2차 소병이라는 말은 '지도자 훈련'이라 할 수도 있다.


3. 바울의 아시아 선교


바울은 키프러스(구브로)를 거쳐서(행 13:4∼) 비시디아 안디옥 전도를 한다(행 13:13∼).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드디어 '이방선교선언'(행 13:46)을 한다.

다시 바울 일행은 이고니온(꼰야) 선교현장에 선다(행 14:1∼). 다시 루스드라로 간다(행 14:8∼). 루스다가 행은 비시디아 안디옥 부터  쫓기는 바울 일행이 이고니온을 거쳐서 루스드라까지 떠밀려간 것이다.
험악한 선교역사 초기 이야기다.

바울은 돌맹이 세례를 받고 죽었다(행 14:19∼). 유대인 훼방자들이 죽였다. 그때 바울 일행이나 유대인들도 바울이 죽은줄 알고 성 밖으로 내다버렸으나 바울은 죽지 않고 살아났다. 생명의 위기 현장에서 잠시 더베로 가서, 그곳에서도 복음을 전했다(행 14:20∼).

바울은 더베에서 지름길을 따라서 수리아 안디옥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으나, 더 어려운 길을 선택했다. 그들을 핍박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작정한 유대인 폭력배들이 지켜보지도 모르는 루스드라로 되돌아갔다. 가서, 그를 돌로 때려 죽이려 결심했던 곳, 실제로 그들의 폭력에 죽음 직전까지 갔던 바울은 아마 그가 순교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던 그 자리에 다시 갔을 것이다.

그곳에서, 내가 왜 죽지 못했을까? 스데반처럼 장렬한 죽음을 준비하지 못해서 였을까? 스데반 몫까지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남겨주었을까? 바울은 루스드라에 다시 와서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루스드라에서 이고니온을 거쳐서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가서 제자들의 믿음을 굳세게 해주고, 밤빌리아 경유, 앗달리아에서 배를 타고 수리아 안디옥까지 그의 제1차 전도여행의 성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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