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9)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아시아 선교의 시작이다. 예수께서 역사 무대에 섰을때 부터 아시아가 복음에 먼저 눈을 떴다는 말을 하는 이들이 있다. 이는 바벨론 포로기 이후 페르시아에서 유대교 신진 세력들이 활동하면서 그 출발점을 알리고 있다.

느부갓네살이 신(新) 바벨론의 군왕 자격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파멸시킨 후 예루살렘의 상층부 사회는 바벨론 그발 강 언덕바지에 터를 잡고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바벨론의 주인이 바뀌었다. 느부갓네살이 역사의 뒤란으로 쫓겨가고 페르시아제국 고레스가 포로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만난다. 이때, '성전 복고주의자'들은 고레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 남은 자들은 '회당식 종교'의 출현에 공헌하기로 하고, '성경 필사'를 통해서 메시아 시대의 준비를 진행했다. 그들을 통해서 이사야가 제시한 '고난의 종'의 모습으로 나타날 메시아의 시간을 기다리게 되었다.

여기서는 새 역사, 곧 메시아 예수 시대의 아시아를 말하면서 그 배경을 잠시 살펴보는 것이다. 예수가 메시아로 오실 때 동방박사의 출현지가 페르시아권이다. 지역으로는 현 이란의 타브리즈에 동방박사 기념교회가 있으며, 동방박사의 주력은 빅토리아 출신들이라 했으니 이또한 페르시아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예수 탄생 후, 그의 죽음과 부활의 날과 성령 강림의 시간에도 사도행전의 기록으로 볼 때 대략 80% 이상이 아시아 출신들이 성령 강림기에 예루살렘 방문을 하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다시 말하면 로마제국 보다 먼저 아르메니아의 오르혼 공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해가 AD 280년이고, 로마는 AD 392년이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사도들 중에서 아시아 선교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이 있었다. 먼저는 도마이다. 도마는 사도들 중에 차지한 영적인 지분은 모르겠으나 그가 예수의 직계 제자임에는 틀림이 없다.

도마는 요한복음을 통하여 그의 성격이 드러난다. 특히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문제로 시비가 되어, 그의 불신앙을 바로 잡아 주시려고 예수께서 제자들이 머무는 다락에 다시 오셨다. 그리고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 하셨다.


1. 도마의 등장

이어서 도마의 고백이 있었으나 예수의 말씀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로 기록되엇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시원하지가 않다. 도마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일까? 도마는 헬레니즘의 전성기에 역할이 있었던 '디투모' 지역 출신이다. 철학적 이해에 빠른 두뇌구조가 그를 늘 의심하고, 또 뒤집어 보려는 습성이 있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보는 고로 믿는가?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되도다”라고 예수는 말씀하신다.

아무튼 도마는 성령 강림 현장 경험을 했을 것이며, 사마리아는 무론 에뎃사(현재 터키의 산 우르파), 그리고 다데오가 선교했던 타브리즈(현 이란 영토) 지역을 거쳐서 당시는 고대 페르시아의 사신조 페르시아의 중간기인 파르티아 제국시절의 통칭 페르시아 영토를 경유하여 아프카니스탄, 그리고 인도까지 도마의 발길을 바쁘게 옮겨진다. 심지어 한반도 가야시대에 기독교 흔적은 도마나 도마의 제자들이 펼친 선교 영역들이 될 것으로 믿는 이들이 많다.


2. 바울과 도마의 비교

여기서 잠시, 복음의 열매를 생각해 보자. 우선 바울과 도마를 맞비교해 봄이 어떨까? 바울과 도마를 비교해 보면 우선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 유사하다. 둘다 헬레니즘의 사상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마와 바울이 다른 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비슷한 상황에서 만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부활 예수와 '만남 이후'의 처지가 서로 다르다.

도마의 경우는 예수 부활의 증거인 십자가 상처를 통한 증거에 만족했으나, 바울은 부활예수의 만남 이후 홀로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다시 말하면 예수 부활을 경험한 바울은 자기 자신의 부활을 예수께 보여드릴 수 있기까지 10년의 추가 절차를 가졌었다.


3. 내 복음을 획득한 바울

바로 여기서 완성도가 다른 작품이 각기 자기 가치를 가지게 되는 법이다. 바울의 경우, 수많은 자유주의자, 이성주의자, 머리만 가진 자, 휴머니스트, 다신 종교가, 기독교 표현으로는 영지주의자, 단성론자들에게는 크게 욕을 먹고 있으나 바울이 마치 기독교의 창업자가 되는 듯이 평가되는 것은 바울은 부활예수를 신학적으로도 완성시킨 인물이기 때문이다.

4. 바울의 아시아 도전

바울이 2차 전도를 여행 중에 아시아로 가고자 열망했던 일이 있었는데 성령께서 그 길을 막으셨다(행 16:6∼). 아마도, 당시 아시아에는 신앙적 분위기가 바울 사상을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아시아 행의 좌절을 가슴에 담고 바울을 유럽으로 향했으리라.

바울은 유럽으로 도마는 페르시아를 경유하여 인도로 갔다. 바울과 도마가 유럽과 아시아로 방향을 잡을 그 시간 로마제국의 영토 안에서 활동하는 제자들은 제국의 핍박을 받기 시작한다. 네로의 핍박(AD 64∼), 이후 베스파시안, 디투스, 도미시안으로 이어지는 로마제국의 핍박은 사도시대를 이어 속사도시대(사도후시대)로 이어진다.

그러나, 당시 하나님의 교회는 내면적으로 정통성을 확보한다. 성령강림과 함께 '삼위일체 신앙의 틀'이 마련되었다. 그 증거는 성령 하나님의 본격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5. 삼위일체의 구도를 위하여

예수께서 요한복음 16장 12절에서의 아쉬움을 표현하실 때, 인간(인류)은 가슴이 덜컹했었다. '보라!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 하는 말씀의 시간에 제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안타까우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하니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요 16:13∼) 하시더니, 바로 그 성령께서 지상강림을 하셨다(행 2장).

여기서 말한 지상(地上)은 우선 제자들의 몸이다. 성령을 모신 제자들이 그날 이후(행 2:1∼) 30년, 또 40년, 그리고 70년 동안 신앙의 성숙을 이루어 마가복음, 마태·누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을 세상에 내시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권능을 유감없이 드러내셨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