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10)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1. 세계 선교의 틀

예루살렘교회와 로마교회가 그 모습을 드러낸 후, 수리아 안디옥교회가 이방인들을 주축으로 일어나서 바울을 선교사로 파송했다(AD 47).

바울 사도는 1차 선교여행(AD 47∼48) 동안 구브로(키프러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 베 등을 거쳐서 수리아 안디옥에 귀환하였다. 그 후 2차 선교여행(AD 50∼)중 1차 선교여행 과정에서 태어난 교회들을 돌보고, 생각한 바가 있어서 아시아 선교를 원했으나 성령께서 아시아행을 거절하시자(행 16:6) 그는 하는 수 없이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 무렵 아시아의 인도까지 선교의 포부를 연 도마 등의 선교 또한 복음의 기반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었다. 초기 과정인데다 인도는 페르시아 선교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아시아의 연장 선상에서 필연적인 코스가 될 것이다. 다만 중국대륙은 파미르고원 또는 히말라야라는 산맥이 가로 막혀 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구원의 포부는 성령강림과 함께 바람처럼 불처럼 주변과 세계로 뻗어가고 있으니 하나님의 나머지 시간을 기다리는 것이다.


2. 복음서 탄생

1세기 기독교의 가장 큰 위업은 복음서의 출현이다. 마가복음이 AD 60년대 초에 등장하고, 이어서 10여년 이내에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등장한다. 제4 복음서로 표현하기도 하는 요한복음은 1세기 막바지에 등장한다.

이에 대해서 특별한 감동이 없는 사람들이 있고, 당연한 것을 가지고 흥분하느냐고 할 수도 있으나 이는 흥분의 차원이 아니라 경이로운 일이요, 또 한번의 창조적 사건이라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당시 예수님과 제자들간의 대화나 일어난 사건들이란 사람의 경험이나 기억력에 의존하는 것이 전부였을 터인데 어찌하여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서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헤어진지 30년 또는 60여년 이상의 시간 저 너머에서야 성취되느냐는 것이다. 이는 기억력이 세월과 더불어 거의 쇠퇴했을 만큼의 시간이고, 또 증인들이 있다해도 그들 또한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할 시간의 간격을 내고 있을 시간이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오직 하나의 증거가 요한복음 16장 13절에 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이 말씀 직전인 12절 말씀을 여기에 기록해 보자.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는 말씀이다.

십자가 죽음 이전의 예수 제자와 십자가 이후 그것을 근거로 성령 하나님이 오셔서 제자들을 어떻게 가르치셨는가를 극명하게 보여주신 말씀이다.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배운 후 30년 또는 40년, 그리고 60여년이 지나서 말씀과 마주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역사는 무엇을 발견해야 할까?

사도들은 성령강림과 함께 성령님의 적극적인 가르침을 따라서 예수께 배운 가르침들이 새롭게 해석됨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미처 신학적인 정리는 미흡했으나 성령의 가르침 속에서 예수의 교훈을 재정리 할 수 있었다.

성령과 함께 하는 말씀의 위력, 비록 사도들이라 해도 성령 하나님의 인도를 받고서야 사도권이 빛을 발하는 것 또한 우리가 여기서 발견한다.

그러나 복음서는 역사의 무대 위에 등장했으나 이 복음서가 독생자의 십자가 사건과 이를 증거하시는 성부와 성령 하나님의 동반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세상에 보내시는 만큼의 위력으로 복음서가 출현하게 되었음을 깊은 의미로 살펴야 한다.


3. 영지주의(Gnosticism)의 해방


영지주의는 사탄이 에덴시대 이후 하나님과 이 세상에 사는 인류를 괴롭히는 천적이요, 대적이다. 영지주의가 사탄의 두뇌로써 활동하는 데 그는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시는 길을 원천 봉쇄 했다고 할까? 아니면 불가하게 하는 철학을 인류의 가슴에 심어 적 그리스도의 선봉에 섰다고 할 수 있다.

영지주의는 물질세계 창조의 신은 하급신으로 하나님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면서 영의 세계는 하나님께 드리고, 물질(만물) 세계는 자신이 총괄하겠다는 사탄의 음흉한 계산이 영지주의 수법이다.

물질세계는 하급신의 몫이고, 지고무한 하신 하나님은 높고도 거룩한 곳에 계시면서 경배만 받으시라는 사탄의 요구는,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에 올 수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

예수는 누구냐? 나의 제자들아, 너희는 나(예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묻는 예수의 음성이 귀에 들리거든 준비된 답변을 하라.

이 답변을 못해서 초대교회 말기에 제자들은 멀리 흩어지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사시지만 이 분이 곧 하나님 자신이라는 신앙고백을 완성하기에 힘이 부쳤던 것이다.

예루살렘과 페르시아나 로마제국 영토 안에서 안정적인 기반을 가진 유대교의 도움을 입다보니 기독교 초기의 기반이 쉽지 않았다.

앞서, 복음서 출현과정에서 보았듯이 성령 하나님의 도움을 힘 입어야만 사탄의 세력을 물리칠 수 있다. 복음서를 기록하는 지혜가 집중되면 사단의 흉계를 물리칠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신학적 훈련'이 되지 않았다. 요한복음이 등장하면서 드디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조화로운 신학사상이 마련되었으나 환란기에 돌입한 초대교회는 요한복음을 통한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네로의 박해기(AD 66∼) 도미시안의 박해기(AD 92∼)에 휘말리고, AD 70년대부터 시작된 영주주의, 유대교의 영향을 받았음직한 에비오니즘(Abionism)에 타격을 받는다.

그리고, 드디어 초대교회의 실체를 완전히 파악했다고 자신하는 유대교는 옴니아 대회(AD 90∼)를 통하여 유대교 회당 주변에서 초대교회 신자들을 몰아내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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