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을 연구하다


    하나님이 이 시대에 요구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사진은 아이들과 함께 평화롭게 거니는 아랍 시민들.


“아이고, 마리아님….”

서재에서 고서를 뒤적이던 야고보 노인이 마리아 교수와 알로펜이 그의 서재로 들어오는 것을 크게 반겼다.

“바쁘신 시간이신가요?”

마리아의 물음에 야고보 노인은 두 손바닥을 툭툭 치면서 도리질을 했다.

“아니오. 설사 바쁘다한들 이 늙은이를 찾아주신 마리아 박사님 앞에서 감히 이 늙은이가….”

“장로님, 그러지 마세요. 앉으세요.”

“그러죠. 알로펜, 너는 왜 멍하니 섰느냐?”

“그럼 제가 어떻게 해요. 저에게는 관심도 없으신데….”

“거 무슨 소리예요. 우리들의 미래 대안이신 도령님이신데….”

마리아가 알로펜의 어깨를 감싸면서 자리에 앉게 했다. 야고보 노인은 마리아가 알로펜을 살갑게 대하는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가 하루 사이에 많이 달라졌음을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장로님, 저 오늘 알로펜에게 푹 빠졌어요. 이를 어찌하죠?”

“어찌 하다니요. 계속 이뻐해 주시고 잘 가르쳐주시면 되지요.”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럴 참이었는데 알로펜이 떠나겠다지 뭡니까.”

“떠나다니요?”

질문은 마리아 교수에게 하면서 야고보 장로는 알로펜을 놀란 눈으로 바라본다. 알로펜이 답변하라는 바램이신 것 같았다.

“네. 할아버지. 제가 마리아 교수님께 말씀드렸죠. 현재 제가 준비하고 있는 수준으로는 할아버지나 마리아님, 더 크게는 하나님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수준임을 금번 여행에서 깨달았어요.”

“그…래. 그럼 너 혹시 아라비아 청년 무함마드를 만나고 얼마간 충격을 받은 것이냐?”

“전혀 아니라고는 안하겠어요. 그러나 그보다 오늘 마리아 교수님이 바울 선생에 대해 말씀하신 내용이 꿈틀거리던 내 마음에 결정타였나봐요.”

“아, 그래. 역시 알로펜은 내 마음에 들어요.”

마리아 교수가 뛸듯이 기뻐했다. 그러나 그녀는 야고보 장로님을 힐끔 바라보더니 감정을 자제하면서 말했다.

“장로님, 제가 너무 경망스럽죠?”

“아니오. 아니고 말고. 나도 덩달아 뛰고 싶었으나 손주놈이 혹시 기고만장해 질까봐서 참는거라오. 헛허.”
야고보 노인은 알로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한편으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중압감을 가지면 어찌하나 싶은 생각을 함께 했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오늘은 더 깊어 보였다. 알로펜은 할아버지의 심기를 가늠해 보았다. 왜 그러실까?

“할아버지. 무슨 근심이 있으시죠. 제가 모르는….”

“아니다. 아니야. 근심은 무슨 근심이라는거냐. 아참, 너 가서 다과좀 가져오라고 해라.”

알로펜이 문을 차고 나갔다. 영낙없는 어린애였다.

“마리아 교수님. 우리가 저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나봐요. 어린것이 부담을 가지면 어떻게 하지요?”
“장로님, 제가 볼 때는 알로펜은 청년입니다. 그것도 속이 꽉찬, 매우 믿음직해요. 아무 걱정하실 필요없어요.”

“그럴까….”

알로펜이 다시 할아버지 방으로 뛰어온다. 그는 일부러 어린애처럼 행동하려는 듯 야고보 노인의 곁으로 가서 두 손을 벌리고 있었다.

“교수님. 이 애를 좀 보세요. 이래도 아이가 아닐까요. 이거 내게 용돈 달라는 겁니다. 이 녀석이….”

“맞습니다. 할아버지. 오늘은 용돈을 주시되 크게 주세요.”

“크게라니…?”

“제 10년 정도 공부하러 떠나려는데 할아버지께서는 5년분 생활비와 여행비를 주시면 돼요. 나머지는 마리아 교수님께 청구할 겁니다.”

“엉. 뭐야. 이런 놈을 보았나. 그리고 나야 할아버지니까 내겐 그렇다 치고 마리아 교수님께 5년분이라니….”

마리아 교수는 말없이 웃고만 있고, 야고보 노인이 펄쩍 뛰고 있었다.

“그럼요. 마리아 교수님이 저의 보호자가 되어주시기로 하셨거든요.”

알로펜은 할아버지 앞에서 손을 내밀다가 이번에는 마리아 교수 앞으로 다가와서 두 손바닥을 벌이고 있었다. 마리아 교수가 그의 넙죽한 두 손을 마주 붙잡았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어서 그들은 곧바로 식당으로 안내되었다. 마치 오늘 알로펜이 먼 여행, 곧 순례의 길을 떠나기나 한 것처럼 그들은 대화를 하다가도 가끔씩 숙연해지기도 했다.


“할아버지, 그리고 교수님. 저는 곧 바로 떠납니다. 저에게 주어진 주 하나님의 명령과 할아버지는 물론 저의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주실 마리아 교수님 두 분 어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도 저는 본격 탐구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야고보 노인은 알로펜의 말에 놀라면서 마리아 교수를 바라본다. 어찌된거냐. 이 아이가 하루 사이에 변한 것이 분명한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고 싶었다.

“할아버지. 오늘 저는 다마스커스 성내를 마리아 교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놀라운 내용의 말씀을 들었어요.”

“그게 뭐냐?”

“네. 바울 선생이 부르심 받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직성입니다. 자칫 놓쳐버릴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을 저는 오늘 배웠어요.”

“그게 뭐냐니까?”

“장로님, 제가 말씀드리죠.”

마리아가 나섰다. 그녀는 바울의 다마스커스 도로 한 복판에서 부활하신 주 예수를 만난 이야기, 아나니아를 통해서 잠겨버린 눈을 뜬 이야기, 곧바로 성내에 다니면서 전도하다가 쫓겼던 이야기, 광주리에 몸을 숨기고 성을 빠져나가서는 곧바로 예루살렘의 사도들을 만나서 자기가 주 예수의 은혜를 받은 자초지종을 말하고 예루살렘에서도 다마스커스와 같은 방법으로 전도하다가 쫓기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그가 수리아 안디옥 교회 선교사로 파송되기까지 '특별수련' 기간이 10여년 이상이 있었음을 알로펜에게 말해준 전후 과정을 야고보 장로에게 말했다.

“그거 참, 잘 가르치셨소. 나도 언젠가 기회가 오면 알로펜에게 반드시 일러줄 계획이었거든요.”

“아, 알았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내게 바울의 고향집 근처에 가보라 하셨군요.”

“이거 보세요. 내 손주의 영특함이 이렇다니까요. 내가 엇그제 여행을 하겠다고 해서 바울의 고향에도 가보라 했더니, 벌써 녀석이 내 마음을 다 읽고 있네요.”

“그래요. 저도 오늘 우연찮게 바울 선생의 구도(求道)의 깊은 단계를 말하게 되었지요.”

“잘 하셨어요. 알로펜.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너의 빈자리가 어디인줄을 알아들었단 말이지?”

“네. 할아버지!”

“그렇단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 우리들 기독교 수도자들이나 전문가들도 미처 모르고 바울선생을 함부로 평가하는 이들이 많으나 그건 모두 함정이니라….”

“함정이라뇨?”

“그래. 함정이고 말고. 마치 공상 임신한 산부처럼. 아이를 배어야 아이를 낳지. 아무리 기다려도 공상임신자는 스스로에게 속고마는거야. 알로펜. 신앙이란 마치 산모가 아이를 임신하면 열달 후에 출산해야 하듯이, 신자 생활이란 예수를 낳는 생활과 같다고 할 수 있는거야. 그냥 주여, 주여, 하면서 입으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산부가 출산일이 되면 옥동자를 낳듯이 신자의 열매는 때가 되면 '예수라는 옥동자'를 낳아야 하는거야.”

“할아버지, 말씀의 뜻은 알겠는데 무서워요.”

알로펜이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래, 그거다. 너는 지금 내가 한 말을 알아듣고 있는거야. 성령님께서 내 마음에 있는 비밀을 너에게 전수시켜 주시는 것이기도 하지. 그럼, 그렇고 말고. 요즘 세상을 보거라. 로마 제국 하늘 아래 저 많은 기독교 신자들, 황제를 비롯하여 귀족들은 물론 귀족들보다 더 큰 위세를 부리는 교회 귀족들(성직자)의 모습을 보아라. 너는 어떤 경우에도 저런 모습을 흉내내는 일이 없어야 한다. 네가 전도자의 수업을 위해서 나서겠다고 했으니, 나는 너를 말리지 않는다. 그리고 아까 너 여행비 달라했는데 나는 단 한푼돈 주지 않겠다. 마리아 교수님도 주시지 않을거야. 맨 몸으로 떠나거라. 두 벌 옷도 필요없다. 주머니에 돈, 짐보따리 속에 빵 조각도 담지 말고 지팡이 하나에 의지하고 가능하면 맨발로 나서거라.”

알로펜이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장로님, 너무 그러지 마세요. 주님이 알로펜의 필요를 다 채워주실거예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알로펜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할아버지, 그리고 교수님. 저는 할아버지께서 지금 하신 말씀을 따라서 정직한 구도행을 떠나겠습니다. 마리아 교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바울 선생이 십여년간 행하셨던 진리 찾기의 모범이 무엇인가를 좀 더 공부하면서 하겠어요.”

“할아버지, 내가 잘하면 예수를 출산하는 산모가 될 것이고, 그러면 저는 영적으로는 성모 마리아의 품성을 갖게 되는군요.”

“옳지, 그럼.”

“맞아요. 알로펜!”

할아버지와 마리아 교수가 알로펜의 장도를 축하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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