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11)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기독교 초기의 기반을 어떻게 평가할까? 이에 대한 평가는 간단하다. 성자와 성령이 일정한 간격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이로 말미암아 기독교는 성부·성자·성령의 활동과 그 성격을 조화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그 이름은 삼위일체(三位一體)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초기 기독교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적 조화과 균형을 강화하는 데 전심전력을 다하지 못했다.

이는 외부 환경에 쫓기면서 성급하게 서두르다가 맞본 좌절이기도 했다. 그것은 영지주의와 유대주의의 협공에 시달린 나머지 기독교는 신학적으로도 쫓기기 시작했다.

영지주의는 헬라파 사상을 배경으로 기독교를 압박했고, 유대주의는 예수가 성취한 기반 모두를 유대교의 몫으로 가로채려는 유대인들의 욕망 때문이었다.

AD 62년 돌에 맞아 죽은 예루살렘교회 야고보 감독의 순교는 초기 기독교의 큰 충격이었다. 예수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속만 썩이던 예수님의 친동생이기도한 야고보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 예수 제자가 되었다.

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260∼340) 자료에 의하면 야고보의 순교는 장엄했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와 초대교회의 틈바구니에서 유대교적 사상에서 자유롭지 못하여 교회사 출발기에 좌절을 안겨준 인물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유대교와 초기 교회들 사이에서 '의인의 칭호'를 받았다. 그는 종종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대신 참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그의 많은 기도시간의 상징으로 '낙타무릎 야고보 감독'이었다.

야고보 감독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 혼성기에 양측으로부터 일방적 사랑을 요구받았으나 신학적으로는 미성숙 했고, 신앙에 있어서는 예수는 하나님 우편에 서신 자요, 장차 하늘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실 메시아로 고백하면서 유대교의 돌세례를 받고 희생되었다.

다시 정리한다면 초기(1세기) 기독교는 성자 예수와 오순절 성령의 직접 지도를 받으면서 성공적인 책무를 다했다.

이는 무엇보다도 '4복음서의 완성'에서 그 가치를 찾아야 한다. 4복음서는 예수님과 성령님의 행복한 합작품이요, 신학적 표현으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위엄과 위용의 승리라 할 수 있다.

성부와 성자와의 조화로운 균형 속에서 성령께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역사 위에 등장시킨 일이야말로 마치 지구덩이 하나를 더 만들어낸 것 만큼의 위대한 승부였음을 기독교는 뒤늦게나마 자각해야 할 것이다.

초기 기독교는 예루살렘 감독 야고보나 도마, 심지어 가룟 유대까지도 예수가 하나님이기를 꿈꾸었던 인물들이고, 육신을 업고 오신 하나님으로서의 예수를 맞이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바울과 같은 큰 인물을 얻어서 지나온 2천년 동안 절반 이상의 승리를 해오고 있다. 야고보나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하게 해석하는 데 서툴렀다.

그러나 바울은 부활 예수를 만난 이후에도 그가 신학적인 완성도를 이루기까지 각오를 거듭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해석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바울의 고뇌와 함께 요한복음의 신학은 초림 예수의 성공과 함께 예수 재림시대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소위 영지주의의 마력으로부터기독교를 보호할 수 있었다.

물론 바울 선생의 아시아 일부와 유럽 선교의 승리과정에서도 영지주의의 견제와 훼방을 받았으나 승리했다.

하지만 기독교 역사가 21세기 현재까지 이어져 오면서 영지주의와 유대주의의 벽을 다 깨뜨리지 못해서 좌절의 기간이 많았으나 '금세기 승부' 과정에서 기독교는 미래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1세기 기독교의 결산은 ① 4복음서 탄생 ② 유대교와의 차별 ③ 순교시대의 출발 ④ 영지주의와 유대주의와의 대결 구도를 유지하면서 제 21세기에 돌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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