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출발


           천진난만한 이스라엘 시골지역의 어린이들과 필자.

새로운 출발이다. 새 세계를 향한 모험이고 도발이다. 도발이 되는 것은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법한 환경에서 태어난 알로펜의 영과 혼이 그의 내부에서 반란을 일으킨 결과가 무작정 탈출이기에 도발이라 해야 한다.

외할아버지 야고보 장로님이 팔미라에 연락을 해두었다고 말했다. 그는 팔미라까지 여행을 하면 또 그를 보호해 주는 둥지가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팔미리아서 안디옥으로 이어지는 보호망은 알로펜의 목표 여행지인 길리기아 성 타르소 바울 선생의 고향까지는 크게 어려울 것이 없을 것 같다.

팔미라까지 오는 길은 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서 마차를 타고 왔다. 다마스커스에서 꼬박 열흘이 걸려서 팔미라 성 입구에 당도하였다. 역시 사막의 아름다운 정원이라는 말이 옳았다. 아침 나절 내내 도시가 오전 햇살을 받으며 위용을 자랑하는 거대한 오아시스 촌이라 할 수도 있는 팔미라는 로마를 그대로 옮겨다놓은 듯이 웅장한 건축물들이 숲 속에 숨어 있었다.

알로펜은 할아버지가 마련해준 마차를 타고 오는 것을 한사코 거절했으나 피할 수 없었다. 자신의 전용마차가 아니라 짐을 싣고 가는 팔미라 사업부행 마차였다.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무역업체의 도움을 받은 것이다.

“이놈아, 언젠가는 이 할베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못받는 날이 온다. 그리고 내게 있어서 생명이나 다름 없는 너를 무작정 보낼 수 없느니라. 마음 같아서는 길리기아 성까지 너의 여행길을 돕고 싶다만 네가 싫어하니 우선 팔미라까지만 이라도 내 도움에 따르거라.”

알로펜은 언젠가는 내 도움을 받고 싶어도 못받을 날이 온다는 말이 목에 걸렸다. 순간 목에 진짜 가시가 걸린 것처럼 컥컥, 목을 가다듬었다.

알로펜은 오후, 팔미라 궁성 쪽으로 갔다. 궁성 옆에 바울 기념교회가 있고 바로 그 별체에 테클라 수녀원이 있다는 소개를 마리아 교수로부터 들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바울 기념교회는 크지는 않았다. 왕궁 부속 사원쯤으로 보였다. 크다 작다의 기준은 없으나 궁성의 화려함에 비하여 외소했다.

알로펜은 바울의 조각상만 훑어 보고 교회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의 궁금증은 테클라 수녀원이었다. 테클라의 앳된 모습의 초상이 벽에 걸려있다. 눈매가 매섭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테클라는 바울 선생이 제2차 전도여행 차 이고니온(지금의 터키 콘야)에 갔을 때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개종한 처녀였다. 단순한 처녀가 아니라 당시 이고니온의 귀족층 집인의 딸로서 로마 주둔군 총독의 아들에게 출가하기로 정해진 정혼녀였다. 그런데 그녀가 바울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바울에게 빠진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사로잡힌 여인이었다. 바울에게 예수를 배운 테클라는 부모의 요구를 저버리고 파혼을 선언했다.

“아이고, 내 집은 이제 망했구나. 아, 이년아 신앙은 가져도 좋으니 시집가서 부모의 걱정을 덜어다오.”

모친이 보여준 눈물 작전도 소용이 없었다. 부모는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테클라를 앞마당 큰 나무 중턱에 묶어두고 바닥에 불을 피웠다. 불태워 죽이겠다는 결심이었다. 불을 질렀다. 테클라의 몸에 불길이 닿을 무렵,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소나기가 쏟아져서 테클라를 구원했다. 그의 부모는 물론 마을 사람들도 놀라 겁을 먹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부모는 더욱 분이 나서 맹수들이 우굴거리는 맹수 사육장에 그녀를 묶어서 집어던졌다.

이게 웬일인가. 표범이나 호랑이들이 그녀를 거들떠 보지도 않고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드디어, 테클라 부모는 두 손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집에서 내쫓아버렸다. 테클라는 자유인이 되었다. 이고니온에서 지중해변 해변 도시를 오고 가면서 전도했고, 곳곳마다 기도처를 마련했다. 그의 전도의 힘은 모든 것을 초월했다고 한다.

수도원 안내인으로부터 테클라의 전도 여행의 힘이나 지도력을 들은 알로펜은 슬그머니 부끄러운 생각에 몸둘바를 몰랐다. 그녀가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고 불태워 죽이거나 짐승의 밥이 되게 하려는 보복의 감정을 생각해 보았다.

부모의 마음 속에 이글거리는 분노를 생각해 보면 테클라가 규수감으로도 나무랄때가 없었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안내자의 소개를 들으니 부모의 학대를 받을 때 테클라의 나이가 알로펜의 나이와 비슷한 17살이었다는 말에 그는 또한번 부끄러웠다.

나는 온실의 꽃이다. 내가 지금 여행하려는 지역들이 모두 로마제국의 주요 영토들인데 무엇을 두려워하랴. 알로펜은 이틀 후, 새벽 시간에 팔미라를 떠나 사막길에 올랐다. 사막길이라지만 변경이다. 한나절이면 도로가 나온다. 다마스커스에서 바그다드로 열린 문명의 대로가 가까이에 준비되어 있었다.

알로펜은 걸었다. 두벌 옷, 돈 주머니도 가지지 말라는 예수의 말씀대로 빈손이었다. 지팡이 하나에 부댓자루 하나가 전 재산이었다. 부댓자루는 아침 저녁의 날씨 간격 때문에 몸에 두르는 망토 역할을 하고, 먹다 남은 빵 조각과 마음을 가다듬을 때 도움을 받자는 뜻으로 가지고 다니는 '마가의 기도문' 한 권 뿐이었다.

바울 선생은 그렇다 치고 테클라 같은 여성의 몸으로 주변 환경을 초탈하는 용기가 그의 마음을 뜨겁게 달구었다. 특히 테클라 일화 중에 박해시대를 이겨내는 일화를 들었을 때, 알로펜은 분명히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복음의 용사가 될 수 있다는 확신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신출내기 여행가 알로펜은 큰 탈없이 팔미라 떠난지 석달이 넘도록 도시의 길을 따라서 걸었다. 그러나 그가 편히 여행을 한다는 것이 그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지를 생각해 보아야 했다.

오론테스 강 하구다. 강줄기가 바닷길을 찾아가는 육지의 마지막 부분일까. 그는 강 하구로 갔다. 주막집 툇마루에 걸터 앉아서 강줄기를 바라보았다. 모처럼 한가로운 시간이었다.

여행길에 그는 늘 해가 있을 때 걸었고, 해가 지면 은신처를 찾아들어 부댓자루를 뒤집어 쓰고 잠을 청하곤 했었다. 마치 마라톤 선수가 일정한 규칙을 따라서 달리듯이 무심코 자기가 정한 목적지를 향해서 달렸다.
그러나 오론테스 강이면 안디옥이 30㎞ 정도의 거리에 있지 않을까. 그 정도의 거리는 안디옥까지 이틀이면 간다. 그러나 안디옥에 가면 누가 그를 맞이해주는가.

사실, 그는 이제 걷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사귀면서 가고 싶었다. 안디옥 가는 길은 이틀이 아니라 2년이 걸린다 해도 사람들과 사귀고 싶었다.

저녁밥을 주문했다. 밥을 먹으려 하는 데 한 소년이 그의 밥 그릇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데 어디서 본듯한 얼굴이기도 했고, 또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친구야. 밥 같이 먹을까?”

그는 알로펜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가까이 오며 말했다.

“그래도 되요?”

알로펜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닥아와서 사발을 통째로 붙들고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는 알로펜을 바라본다. 알로펜이 방긋이 웃자, 그도 웃어 넘기며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알로펜이야.”

“알로펜이라. 그럼 집은…?”

“집을 찾는 중이야.”

소년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

“난, 안토니. 수도자야….”

“뭐, 수도자?”

알로펜은 자기 자신을 수도자라고 당돌하게 말하는 안토니에게 호기심을 보였다.

“알로펜, 집 찾는 중이면 우리 교단에 와서 머물어라. 참, 우리는 가고 오는 사람 잡지도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도 강재성은 없어. 어, 교주님…, 아니야. 선생님의 가르침의 기본이거든….”

알로펜은 안토니오에게 사전 지식을 좀 더 얻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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