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12)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1세기를 마무리 할 무렵 속사도들(The Apostolic Fathers)로 표기할 인물들이 일어나 많은 활동을 하면서 저술 작업을 하였다. 열두 제자 이후 초기 기독교 지도자들이 2세기까지 사실상 방대한 부분을 다루게 되는데 곳곳에서 일어나는 신생교회들이 그들 가까이에서 기득권을 행사하는 유대교와의 다툼 또는 박해가 컸으며, 교회 내부의 분열, 로마제국에서 기생하는 크고 작은 미신성 이교도들, 특히 영지주의를 상대로 한 힘겨운 투쟁을 해야 했다.

속사도들은 로마의 클레멘트(AD 95∼),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AD 110∼117), 서머나의 폴리갑(AD 117∼118), 로마의 헐머스(AD 100∼), 알렉산드리아의 바나바(AD 130∼),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AD 140)가 있다.

속사도 시대의 정리는 17세기 프랑스의 장 코텔리에르(Jean B. Cotelier)가 1672년 사도들과 동시대를 산 교부들의 작품집을 집필하면서 정립되었다. 코텔리에르는 바나바의 편지, 클레멘트의 두 편지, 헐머스의 목자, 이그나시우스의 일곱 편지, 폴리갑의 순교집 등이 있다.


1. 로마의 클레멘트


1세기 말 로마의 3대 감독인 클레멘트는 유세비우스의 자료에 따르면 사도들을 친히 목격한 인물이다. 클레멘트가 감독으로 있을 때 고린도 교회는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 등으로 나뉘어 크게 분쟁을 했었다. 그 때 로마교회는 서신을 보내 서로 화평하여 사도들로부터 받은 믿음을 지켜주기를 권고했다.

그러나 로마교회 자신들도 핍박에 시달리는 때였기에 더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으나 '클레멘트 이름으로 보낸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서신'(The Letter of the church of Rome to the church of Corinth)가 권위로 받아들여지면서 평정을 찾았다고 AD 170년 경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가 밝히고 있다.

클레멘트의 글에는 AD 64년의 네로황제의 박해와 AD 95년 도미티안 황제의 박해도 언급하고 있다. 그리고 클레멘트 서신에 의하면 그는 교회직분 중 장로와 감독을 구분하지 않았고, 사상적으로는 헬라적 특징인 스토아 철학에 깊이 간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플라톤의 사상 기울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예를 들어 플라톤 사상에서 하나님은 직접 창조자가 아니고 데미우르게(demiurge)를 통해서 창조세계를 이루어 냈다고 한다.

클레멘트는 하나님이 만물의 절대적 지배자라 하면서도 세부적으로는 플라톤 주의에서 등장하는 데미우르게를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 표현에서는 뚜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2.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


수리아 안디옥 교회의 제 3대 감독인 이그나시우스는 베드로, 바울은 물론 유력한 유대인 출신, 더구나 로마제국 제 3의 도시답게 큰 도시에서 이방인 출신들이 세력을 형성했던 교회이다.

이그나시우스는 트라얀 황제(AD 98∼117) 재위 기간에 체포되었다. 그는 로마로 이송되는 도중 에베소인들에게, 마그네시아인들에게, 트로이인들에게 서머나인들에게와 특히 폴리갑에게 주는 서신도 준비했다. 이그나시우스가 기록했다는 당시 일곱 개의 서신은 1세기와 2세기의 매우 중요한 문서들이다. 그는 10명의 로마 군사들에게 묶여서 호송되면서도 서머나 지경을 지나면서 폴리갑을 만났고, 에베소, 마그네시아, 트랄레스 등지에서 온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안을 받기도 했다.

이그나시우스는 신약성경과 교회시대를 잇는 주요인물이다. 바울의 글에 큰 감명을 받은 그는 교회의 공교회성을 '보편교회'(The Catholic Church)로 규정하는 역사적인 인물이다.

특히 이그나시우스의 순교에 대한 예찬이 탁월하다. 로마 그리스도인들이 그의 순교에 대하여 신경을 쓸 때 '나는 그대들의 친절이 나를 오히려 헤치리라고 생각한다. 당신들은 그 계획을 성공시킬지 모르지만 그러나 부디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큰 은혜를 입게 하라.' 그리고 그는 '나로 하여금 맹수들의 밥이 되도록 놓아두라. 맹수들의 도움으로 내가 하나님께로 갈 수 있으리라 나는 하나님의 떡이다. 맹수들의 이빨에 갈려서 그리스도의 순결한 떡으로 나타나리라'고 하였다.

3. 서머나의 폴리갑


젊었을 때 요한 사도의 가르침을 직접 받았던 인물, 직설적이고 정열적인 포부를 가진 폴리갑은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 순교하였다. 폴리갑은 아우렐리우스 황제 때인 AD 165년 경 아시아에서 큰 박해가 일어났을 때 희생되었다.

폴리갑의 순교에 대한 서머나인들의 편지(The letter of the Smyrnears on the Martyrdom of Polycarp)에 의하면 '내가 86년 동안 주님의 종으로 살아왔지만 그분은 결코 나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어찌 나의 왕을 모독하겠는가' 하면서 순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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