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지역의 옛 성을 복원하는 현장.

알로펜은 안토니의 모친 방에서 밖으로 나왔다. 혼자서 이단자의 소굴(?)이라는 이곳 동네를 기웃거리면서 걸었다. 석양이 어둠에 묻히고 주변은 조용해졌다. 그렇다고 스산한 밤공기는 아니었다. 그는 걸었다. 안토니가 어디선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알로펜은 야산 중턱으로 올라섰다. 골짜기에서 50여㎡쯤 둔덕을 이룬 산언덕이다. 정자가 몇개 지어져 있었다. 절반쯤 가리게로 가려진 정자 두개가 서로 등을 돌리는 쪽으로 가보았다. 한쪽에서는 역시 반라의 사람들이 셋이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여자 둘과 남자는 한 사람이었다. 한 여자가 손짓을 했다. 알로펜은 주춤 발길을 멈추었다.

“청년, 이리와요. 차 한잔 하고 가요.”

나머지 두 사람도 알로펜을 같이 불렀다.

“아까 그 친구잖아. 총명해 보였던 순둥이….”

알로펜이 말하는 사람을 힐끔 살폈다. 교주 야고보 선생 방에서 만났던 중년이었다. 지나쳐 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자기더러 '순둥이'라는 표현을 하는 사내에게 한마디 하고 싶어서였다. 그들이 술판을 벌이고 있는 가까이로 다가갔다.

알로펜은 눈길 외로 돌렸다. 못볼 것을 본 것이다. 여인 둘이 하반신을 벗고 있는 사내를 만지고 있었다. 알로펜이 뒤로 한 발 물러서자 두 여인이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러나 한 여인은 아쉽다는 듯이 사내의 물건을 한번 더 흔들어보고는 알로펜을 향하여 한마디 했다.

“낯설지? 나도 자네 만큼한 또래의 남동생이 있다. 안디옥 신학교 학생이다. 하나님의 사자인지 늑대인지 되겠다고 하더라. 이리로 가까이 오라. 내가 반말하니까 뭐 떫나?”

그녀의 말이 끝나자 그들은 손벽을 치면서 좋아라 했다.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야고보 교주 집에서 나올 때 내가 들은대로 기독교 목자가 될 인물답구나. 내 가까이로 오거라. 내가 이렇게 단정치 못한 옷매무새로 앉았다고 흉보지 말아라. 이런 방식은 여기 수도원 규칙상 예복에 속한다.”

“여기가 수도원인가요?”

“그럼, 자네는 무얼로 보았나?”

“거 저, 이단자 소굴이라고 하더군요.”

알로펜의 이 말을 들은 중년은 껄껄 웃으며 두 손바닥으로 마루장을 치다가, 조금은 과장되게 엉덩이까지 들썩이면서 길게 웃었다.

“이단자 소굴, 참 멋있는 이름이다.”

입을 다물고 있던 한 여인이 알로펜을 흘끔 한번 더 쳐다보면서 말했다.

“자, 자아!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특히 순진한 목자 후보생은 더욱 심각한 마음으로 마음을 여시오.”

“네!”

알로펜은 단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중년이 갑자기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가슴께로 벗어 올렸던 통으로 짜여진 겉옷을 내렸다. 무릎 아래까지 덮었다.

“여기는 수도원이 분명하오. 그러나 이단자들의 소굴, 더 정확하게는 기존의 종교들에서 자유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하늘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예언자 학교도 된다.”

“옳습니다.”

여인들이 가슴께로 두 손을 모으면서 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보기에는 도덕 파기자들의 집합소 같은데, 어찌 생각하시오. 누님들은?”

여인들이 알로펜의 당돌한 말에 움찔 놀라고 있었다.

“내가 답변하지. 그래서 내가 당신을 순둥이나 애숭이로 보는거야. 당신이 목사가 되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목자 지망생의 눈으로 보니까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는 여기는 도덕을 포기한 자들의 집합소랄까….”

“이보게. 내가 알기로는 도덕을 바로 세우려는 수도자들의 거룩한 터전으로 보이는 데….”

“어르신. 그 말씀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겉모양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발가벗고 살면서 남녀가 성(性)의 간격도 포기한 채 인생을 장난처럼 산다고 거룩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까?”

알로펜이 벌떡 일어나서 고함을 지르는 데 돌맹이 하나가 알로펜의 등짝에 정통으로 꽂혔다.

“아이쿠!”

알로펜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모두가 놀라고 있는 데 안토니가 뛰어들었다. 그리고 그의 눈 앞에 고꾸라진 알로펜의 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성난 모습의 안토니가 알로펜을 노려본다.

“내가 뭐라 했나! 싫으면 조용히 떠나는 것이지. 시비는 하지 않는다 했잖아!”

손위 사람의 훈계 같았다. 안토니는 식식 거리면서 눈물을 주루룩 흘렸다. 그런 모습을 모두 지켜보는 데 알로펜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그리고 안토니 미안하다.”

알로펜은 뒷걸음으로 남녀들이 즐기던 술판자리를 물러나왔다. 산언덕에 앉아서 잠시 크데시폰의 집을 떠올렸다.

“알로펜 형, 내가 잘못했어. 돌맹이가 아팠지?”

안토니가 다가와서 그의 등허리를 매만져 주면서 말했다.

“아니야. 내가 깜빡했어. 나는 여행자니까 구경하면서 가면 되는 것인데, 괜히 입을 벌려 잘난채 했구나. 미안하다….”

“형, 나도 미안해. 사과할께.”

안토니는 알로펜을 이끌고 그의 집으로 갔다.

“어디로 가는거야?”

“어딘 어디야 집이지.”

그들은 안토니의 모친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마주 앉았다.

“알로펜 형! 형은 여기를 곧 떠나야 할 것 같아.”

“왜, 내가 싫어졌니?”

“그게 아니라, 체질이 달라서….”

“그게 무슨 소린데.”

“엉, 있지. 형은 기독교에 대하여 자부심에 차 있어요. 그러니 이곳 사람들과 대화는 커녕 사귐이 될 수 없겠지. 지옥의 자식들로 보일터니 말야.”

“그런 점들을 나도 인정해. 그러나 나는 좀 더 인내하면서 이곳 사람들의 분위기를 더 공부해야겠어.”

“뭐, 공부. 공부라고 했어. 형.”

“그럼, 공부지. 인생은 공부야. 겸허하고 더욱 인내하며 배움을 익혀야 하는거야.”

“조오타! 그럼 됐어.”

“안토니! 너는 바벨론의 아들이고 마니의 제자인 점에 자부심을 같는다면서….”

“형, 이제는 마니교 신자에게 시비하려는거야?”

“시비라니…. 그게 아니라 너의 신앙을 말해봐라. 들어보자구나.”

“그럼, 좋아. 우선 마니교는 핍박을 잘 견디어낸 종교야. 그리고 매우 합리적인 철학이랄까. 신학을 가졌어요. 그래서 아마도 기독교 보다는 수명이 길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기독교는 거의 수명이 다 됐어요. 너무 억지가 많아서 말이야.”

“억지라니. 그게 무슨 소리냐?”

알로펜이 벽에 편히 기대고 앉아서 안토니의 말을 듣다가 몸을 바르게 했다.

“형, 긴장할거 없어요. 상식적인 말이잖아. 기독교는 철학이 없어요. 거짓말이나 일삼고 있으니 말이지.”
“…?”

알로펜은 긴장했다. 안토니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독교는 처녀가 애를 낳다고 하지요, 사람인 예수가 신이라고 우기지. 신이 셋인데 그 셋이 하나라니 도무지 그 말들을 믿을 수 없어요. 그건 말이 아니고, 논리도, 상식도 아니잖아.”

“너 잔뜩 오해를 하고 있구나. 기독교를 기독교로서만 이해라려드니까 너처럼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기독교의 출발은 창세기 아담부터, 좀 더 가까이는 아브라함이 그가 100살에 낳은 아들을 모리아 산에 바치려는 그때 부터를 배워야 해. 예수는 말이야. 모리아산 이삭 제사의 순간에 잉태하여 예수의 골고다에서 출산한 역사의 아들이지. 출산 과정이 2천이면 인간역사 그 자체야. 그러니 네가 겨우 열살 나이에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겠느냐.”

“뭐, 애 취급하지마. 나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예수가 누군지를 배운 사람이야.”

“그래 겨우 10년, 아니야 인생 100년을 다 털어넣고도 은총을 기다려야 하는거야. 안토니, 제발 서두르지 마라. 우린 아직 멀었어요.”

“그래, 알로펜 말이 옳다. 아직은 아니다. 일이십년으로는 아닌거야. 더 배워야지.”

안토니의 모친이 차를 끓여 들고 안토니의 방문을 조심스레 열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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