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찌 제방에도 들어오시나요?”

안토니는 놀랐다. 안토니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언제부턴가 안토니 모친 사라는 안토니의 방 근처에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안토니의 기억으로는 그가 아저씨로 호칭하는 아버지가 어머니 곁을 떠나버린 때부터였으니 7년 정도는 되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왜, 내가 문을 열면 안되니?”

“아니예요. 어머니!”

알로펜이 씩씩하게 말했다. 알로펜은 사라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육신의 체온이 느껴진다 할까. 어머니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어머니'라고 불렀을 때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렇게 말하고 나니까 눈물샘이 시큰했다.

“아이고, 어머니 소리 한 번 씩씩하네. 그래, 내가 이제는 아들을 둘이나 얻었네 그려. 고맙다. 알로펜.”

“들어오실 거예요, 안들어오실 거예요.”

안토니의 투정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라가 방문 안으로 들어왔다. 아들의 방을 좌우로 힐끗힐끗 두세번 훓어보던 그녀는 알로펜 곁에 앉았다.

“어서들 말해보게. 조금 전에 들으니 알로펜의 한말이 인상적이구먼. 그래 인생이란 100년을 살고서도 은총을 기다려야 한다고…?”

“네, 어머니. 저희는 조금 전에 마니교 창시자 마니와 예수님에 대해서 토론을 시작하려던 참이었지요.”

“또, 마니냐? 안토니 너는 언제까지 마니 마니를 입에 달고 다닐거냐.”

모친 사라의 퉁명스런 말이었다. 냉기가 서려 있었다.

“어머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도망친 아저씨 생각나서 그러세요. 내가 제2의 마니입니다. 제2의 예수가 되었으면 하건만 거기까지는 힘이 미치지 않네요.”

“어, 엉. 저 애가 이제는 머리가 어찌 되었구먼!”

“어머니, 말씀 함부로 하시는거 아닙니다. 내게 하늘이 내려와 계십니다.”

“어 저저저, 저놈이. 어쩜 지 애비를 저렇게 닮았을까? 아이고 아이고….”

안토니의 모친은 두 주먹 불끈 쥐고 자기 가슴을 몇 번 쥐어박더니 밖으로 나가 버렸다. 알로펜 역시 돌발사태 앞에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하늘이 내려와 있다지 않은가. 어린 녀석이 맹랑하고 당돌했다.

“알로펜 형, 형 또한 왜 그리 멍해있습니까? 내 말이 틀렸어요?”

“그래, 틀렸다. 틀렸다기 보다는 너무 성급해….”

“아이쿠 형, 형은 알고 계시는군요? 하늘이 내게 내려오신 뜻을 말입니다.”

“그래 알지. 안토니 뿐 아니라 모든 예수 믿는 자들의 가슴에는 하늘이 내려와서 둥지를 틀었지. 그러나 알로펜은 아닐거야.”

“왜, 왜요?”

“믿는 자들에게만 이라고 하셨지요.”

“그건 예수쟁이들의 독선이죠. 천하 모든 인간의 하나님이 편가르기식으로 어찌 예수쟁이들로 울타리를 칠라구….”

“편가르기가 아니라 창조의 절차 과정이지. 안토니가 마음을 열고 예수를 메시아로 영접하면 해결되는 것이야.”

“창조의 절차라니….”

“그래, 창조야. 예수님이 사람으로 오셨다 하나, 그분은 하나님이시거든….”

“그건 억지요, 거짓이요, 위선이라니까. 어찌 형 마저 꽉 막혀 있어요? 안타깝군요.”

“더 고민해 보게나. 그런데, 어머니께서 화가 많이 나신 것 같던데 괜찮을까?”

“왜, 회피하는거요. 형, 알로펜 형.”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말이 도무지 낯설게 들려서 말이야. 억지니 거짓이니 위선이니 해도 되겠으나, 설사 그렇다 해도 너무 성급하게 서둘지 말아야 한다. 세상은 그렇게 간단치 않아요.”

“형은 왜 그렇게 넉넉합니까? 따로 믿는 구석이 있는가봐.”

“그렇다. 나는 따로 믿는 것이 있다. 성경 말씀을 바로 읽어라. 서두르지 말고 말야. 또 내가 제2의 마니요, 예수라는 말 따위는 함부로 할말이 아니란다.”

“…….”

알로펜의 말에 댓구를 하지 않는 안토니는 자기 생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알로펜은 슬그머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밤 하늘의 별들이 수북히 쌓여 있다. 평화로운 밤이다.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다. 낯익지 않은 곳인데 함부로 밤길을 걷기가 조심스러웠다.

“누구?”

안토니의 모친이었다.

“네, 접니다. 알로펜. 밖에 계셨군요.”

“응, 그래요.”

사라가 자기 곁으로 다가오는 알로펜의 등허리를 토닥이며 자기 가까이로 끌었다.

“알로펜, 나하고 동네 한바퀴 돌아볼까요?”

“괜찮을까요? 저는 조심스럽던데요.”

“조심스럽긴요. 생각보다 평화로운 마을이죠. 그래도 수도자들이 모인 곳인데요.”

그들은 함께 걸었다.

“알로펜! 내가 자네 아버지 교회에 다녔다 했지.”

“네, 그때 이야기 좀 해주세요. 그런데, 제가 어머니를 왜 보지 못했을까요?”

“어떻게 아는가? 수백명 신자들이 예배 때만 몰려드는 데, 더구나 내가 오랜 기간 동안 다니지도 않았으니 잘 몰랐겠지.”

“얼마동안 다녔어요.”

“글쎄, 한 3년. 떠난지도 오래되었네. 크데시폰 떠난 후 2년쯤 지나서 안토니를 낳으니, 아니 그때는 알로펜은 젖먹이였겠는데….”

“핫 하! 그런가요.”

알로펜은 웃다가 안토니 모친의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어머니, 여기 모여 사는 남녀들은 너무 한가해요. 특히 도덕적으로 긴장감이 없어보이구요.”

“한가한거야, 기도하고 묵상하는 일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지요. 먹는 생활은 교주 선생이 충당해 주고, 처자식 없고 옷입는 것도 신경쓰지 않으니 천국생활들이지.”

“그렇겠지요. 옷이야, 더 많이 벗고 싶어서 안달이니 좀 더 있으면 다 벗고 사는 사람이 나오겠지요.”

“아니야. 지금도 벗어. 한 여름엔 옷에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네.”

“그래요. 거 볼만하겠군요.”

“왜 그러나? 알로펜. 나는 여기서 수도생활 하는 이들을 이해한다네. 모두들 대체로 경건한 사람들이야. 더 많이 벗고 싶어서 몸부림 하는거 동정이 가기도 한다네. 얼마나 자기의 위선이나 허형이 못마땅했으면 차라리 나체의 모습을 원할까.”

“아니, 어머님! 정말이세요.”

알로펜은 안토니의 모친의 위아래를 자세히 살피고 있었다.

“이 사람, 내가 그렇게 한다는게 아니야. 뭘 그렇게 뚫어지게 보는거야. 내가 벗고 있으면 좋겠어.”

“아니예요. 어머니. 너무 개방적이시고 너그러우시네요.”

“내가 이곳에서 몇년 산지 아는가? 10년이 넘었어. 여기 사는 사람들 중에 10년 경력자는 많지 않아요. 그리고 10여 년 지켜보았지만 여기 사람들 중에는 부부가 들어왔다가 각기 따로 생활 하는 이들도 있고, 남녀가 짝을 짖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지는 않더구먼. 안토니만 하나 나왔지.”

“뭐,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왔어요.”

안토니가 언제 그들 가까이에 와있었다.

“언제 왔어.”

알로펜이 안토니의 손을 잡아서 자기 곁으로 이끌었다.

“난 어머니의 결심에 따라서 세상에 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예수도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나왔잖아. 처녀가 애 낳고 싶었겠어. 그러다가는 율법의 돌팔매에 죽어갈 것인데 말이야.”

“안토니, 너 말 함부로 계속 할거냐!”

그의 모친의 말에는 노여움이 묻어났다.

“어머니, 나는 곧 떠납니다. 혼자 계시게 하고 떠나니가 쉽지 않으리라 했는 데 어머니의 하나님께서 알로펜 형을 보내주신 거예요. 앞으로는 형이 어머니의 위로가 되어주실 겁니다.”
안토니는 자기가 결정하면 그대로 된다는 식으로 지껄였다.

“너, 정말이니?”

“그럼요. 예수께서도 열두살에 부모 슬하를 떠났더군요. 저는 예수 같은 사람이 되어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 보겠습니다.”

안토니는 껑충껑충 뛰면서 즐거워 했다. 예수처럼 산다는 것이 매우 즐겁다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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