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16)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카타콤'은 기독교 형성사의 꽃 중의 꽃 같은 시대였다. 이 기간은 기독교의 성격이 형성되고, 그들이 지닌 위엄에 찬 신앙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또 흉내내기도 어려운 긴 고난을 승리로 이끌었던 빛나는 시대였다.

앞서 밝힌대로 제국의 힘, 곧 가이사의 이름으로 시작한 박해는 네로와 도미티안 시대(AD 64∼AD 97) 약 30여년 이지만 네로가 실각한 뒤 베스파시안과 그의 큰 아들 티투스의 시대(AD 69∼,AD 79∼81)는 숨고르기라고 할까 조금은 틈새가 주어졌다. 그러나 디투스가 통치 2년으로 병사한 후 그의 동생 도미티안(AD 81∼AD 96) 통치 15년 동안은 기독교의 혹독한 시련기였다.


2) 2차 박해


신사적인 황제 트라얀(AD 98∼117) 시대는 박해의 최소화, 희생사의 선택기회 등을 통해 제국 안에서의 기독교를 바르게 세워 볼 포부를 갖기도 했었다. 그러나 박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전국적인 박해가 아니라 지방에 따라 달라졌다.

트라얀에 의해 하드리안(AD 117∼138)이 발탁되었다. 하드리안도 스페인 출신이었다. 그는 헬레니즘의 유산을 로마화 할 필요를 절실히 깨달은 인물로 문화에 대한 견해가 뚜렷했다. 하드리안 황제도 전임자 트라얀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 처벌에 신중했고, 합법적 절차를 중시했다.

그러나 하드리안 재임 후반에 유대인들의 거대한 반란에 애를 먹었다. AD 132년부터 3년동안 갈릴리 지방 바르 코크바의 저항이었다. 로마제국이 바르 코크바의 저항에 3년 동안이나 시간을 끌었던 것은 유대인들 요구의 정당성, 자치능력, 문화적 차별 요구 앞에서 로마의 반격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르 코크바는 독자 화폐, 사막의 개척을 통한 키부츠 운동을 시도하여 유대인의 자긍심을 높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AD 135년 로마는 반란진압에 성공을 했다. 분개한 하드리안 황제는 ‘예루살렘’의 이름을 ‘케패톨리나’로 바꾸고, 유대인들은 단 한명도 예루살렘에 접근을 못하게 했으며 예루살렘의 지형을 바꾸는 토목공사까지 시도하여 예루살렘이나 유다를 역사 위에서 지워버렸다.

하드리안 통치 21년 후 안토니우스 피우스(AD 138∼ 160)가 통치자가 되었고, 뒤를 이어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AD 161∼180)가 황제가 되어 한동안 잠잠했던 박해가 다시 불붙었다. 그의 박해는 혹독했다. 채찍질을 하며 몸의 절반을 찢어 심지어 창자가 튀어나올 지경이 되어 죽어가면 사나운 짐승 우리에 던져 짐승들의 먹이로 삼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그의 박해에 강심장을 지닌 기독교인들도 벌벌 떨었으며, 배교자가 속출했다.

아우렐리우스 시대에 저 유명한 서머나 감독 폴리갑의 순교도 있었다. 폴리갑은 요한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가 했던 말, '나는 86년 동안 그분을 섬겼으나 그분은 단 한번도 나를 부당하게 대우하신 일이 없었거늘…'이란 고백을 크리스찬이면 알고 있어야 한다.

폴리갑 순교의 뒤를 이어 당대의 변증가 저스틴이 AD 165년 순교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시대에도 극심한 박해가 일어났다. AD 202년과 203년에는 이집트와 칼타고에서 특히 심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많은 순교자가 일어났다. 오리겐의 부친 에레오니데스가 아들 오리겐을 남겨두고 순교자의 대열에 참여 한 것은 어린 오리겐에게 깊은 인상으로 평생 남아 있었다고 전해 온다.

혹독한 세베루스 치세 이후 알렉산더를 거쳐서 막시미누스는 전임 황제인 알렉산더 가문에 기독교인들이 집중되어 있음을 알고 크게 분노한다. 막시미누스는 전임 황제 주변의 크리스찬들을 소탕하고, 본격적인 박해를 시도했다. 제국 전역에서 공개적인 살륙을 행하는데 소위 '희생제'라는 이름으로 각 지역 총독들에게 경쟁을 붙였다.

그러나 막시미누스의 박해기는 특징이 있었다. 각 지역 교회들에서 믿음의 용사들이 반사적으로 일어났다. '맞불전략'이라도 시도하는 것 같은 형국이었다.

막시미누스가 겨우 박해 3년에 말기 증상을 보인 AD 203년에는 교회의 저항이 더더욱 거세게 일어났다. 드디어 100여년 수난의 늪과 계곡을 지나 평원으로 달려나왔다. 아직도 100여년 더 기다려야 했지만 기독교 공동체는 로마제국 한편에서 깊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타협은 거부했지만 교회공동체의 안정을 찾고자 소원했다. 바람이 태풍을 몰고 오기는 하지만 때로는 그 바람도 정지되는 시간이 있다. 이 박해가 잠잠해지는 시간들 속에서 교회는 급속한 성장 속도를 내기도 했다. 카타콤이란 그 지하무덤 생활에서 소멸되어가는 듯 저항의 크리스천들이 연륜을 쌓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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