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20) - 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AD 110년 경 북메소포타미아 고대 앗수리아 영토에서 태어난 타티안(Tatian, AD 110∼180년경)은 뛰어난 성경학자이며 언어학자였다. 그러나 그는 금욕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는 로마 유학을 떠나 정통주의 변증학자인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의 제자가 되었다.

그는 스승 저스틴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hus Aurelius) 황제 박해 때 채찍에 맞고 목잘려 죽임을 당하자, 그 자신이 학교를 열었다(AD 165년경).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AD 172년 그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일설에 의하면 그는 로마를 떠날 때 그의 발밑의 먼지를 털었다고 한다.

타티안의 글 '헬라인들에게 고함'에는 그가 헬라인들의 종교적인 자긍심에 대한 분노를 일찍부터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헬라인들의 근원은 거슬러 올라가면 야만인들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헬라인들이 오만스럽게 행동하더라도 그들은 야만인의 자손들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그가 헬라인들의 방종과 오만에 대하여 경계하는 부분이 있다. 그들은 방종과 음란의 신이 낳은 자식들이라는 것이다.

학문적 배경으로 볼 때 헬라인은 유대인의 사상체계를 뛰어넘지 못한다고 보았다. 헬라인들이 숭상하는 호머 보다는 모세가 시대의 선구자이며 헬라사상은 구약의 산물이라고 단정해다. 헬라인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우량한 사상은 구약에서 빌려온 것으로 보았다. 그러면서 그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의 지혜는 로고스 사상에서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타티안 사상은 그의 스승 순교자 저스틴 사상과 만난다. 저스틴이 로고스 사상을 근거로 자기 사상을 전개했었다. 타티안의 로고스 사상은 그의 스승 저스틴 보다 완성도가 덜하다는 평도 있다. 그는 '헬라인들에게 고함' 이외에도 '사복음서 대조'가 있는데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사복음서 대조'는 '간추린 복음서'가 되겠는데 전체적 구성일치를 위해서 복음서 부분 일부를 다듬어서 표현하기도 했다.

1. 로마에서의 타티안 사상


그는 서양기독교의 기둥인 순교자 저스틴의 제자임이 분명하지만 사상적 흔들림을 볼 수 있다. 그가 헬라사상은 구약의 산물이며 구약은 로고스 신학으로 정리한다지만 이 부분에서 빈틈을 보이고 있다. 구약사상이 로고스 신학 범주 안에 들어간다면 이는 그리스 사상의 틀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상과 정신을 말할 때 스스로 삼가해야 할 것은 오만함이다. 그가 헬라인들을 오만하고 방종하는 계층으로 보았으나 그 자신 또한 그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알아야 한다.

2. 이레니우스가 본 타티안


속사도 시대의 유능한 지도자요 사상가인 이레니우스는 한마디로 타티안을 마르시온과 함께 이단자로 규정했다. 타티안은 사투르니누스와 마르시온을 따라 나타난 이단자로 취급했다. 그의 사상에는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뜻을 배반했다. 그는 저스틴에게 배울 때는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를 시비하지 않았으나 저스틴 순교 후 생각의 변화가 왔으리라고 보았다.

그가 사탄의 유혹에 무너지게된  것은 스스로를 교사라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군림하고자 했음이다. 그는 사투르니누스나 마르시온처럼 결혼은 타락이며 일종의 간음이라고 주장하고 아담의 구원을 반대하는 이론을 펴기도 했었다.

타티안은 마르시온과 더불어 범 영지주의의 틀 안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로마를 버리고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기독교가 사상적 틀을 가지고 있는 로마를 떠나 앗수리아로 떠난 것은 그의 무대를 별도로 만들기 위한 계산에서였을 수 있다.


3. 동기독교 또는 아시아 기독교 최초의 신학자 타티안


타티안은 에뎃사의 바다이산과 함께 로마 변경이 된 동방지역의 지도자가 되었다. 바다이산이 철학자라면 타티안은 성경학자로 분류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영향력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로마의 동편 또는 동방, 현대에 와서는 아시아로 표기해 주기를 원하는 지대가 앗수리아, 아르마니아, 수리아, 서남아시아, 인도, 장차는 중앙아시아와 대륙(중국)아시아, 동남 아시아, 극동아시아인 한국과 일본까지 로마제국 밖의 기독교 지대가 될 것이다.

타티안의 등장으로 로마제국의 영향권 저 너머에 기독교 영토가 마련된다. 그러나 '로마의 변경'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들은 초기 기독교, 즉 '유대파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지역 특성을 가지고 있다.

오순절 성령 강림시 다락방 주변에 모인 사람들(행 2:9∼)을 보자. 바데인, 메데인, 엘림인, 메소포타미아인, 유대인, 갑바도기아인, 본도 아시아인, 브루기아인, 밤빌리아인, 에굽인, 구레네인, 리비아인들이다. 이들 중 구레네, 리비아, 그리고 에굽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로마의 변경인 데 페르시아의 오늘의 터키 지역으로 이들 모두를 로마의 변경 또는 동방 또는 범아시아로 분류된다.

오순절 성령강림 그 시간 성령과 더불어 만났던 사람들이 누군가? 그들은 '경건한 유대인들'(행 2:5)로써 천하 각국에서 절기방문차 예루살렘에 온 순수한 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거의 받은 바 없는 시간에 성령강림을 경험했다. 그래서 사도시대 유대교와 신흥 기독교의 혼성시대로써,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들의 사상(신앙 또는 신학)의 기초가 유대인들이 이해하는 구약의 테두리 안에 있었다.

타티안의 기독교가 동방 또는 로마의 변경이고 아시아 지대를 향하여 나아가는 '태생적 한계'를 우리는 좀 더 탐구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타티안의 개인적 사상이나 에뎃사의 바다이산 개인과는 달리 저들 오순절 출신들 중 디아스포라 유대 사상의 한계를 이어받은 오늘의 아시아 기독교에 미친 숙명은 세계 기독교 앞날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타티안은 마르시온과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성경을 가지고 있었다. '사복음서 대조'라는 이름이 '통합 복음서'였다. 마르시온은 바울서신 13권과 누가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을 성경으로 인정했으며, 수리아인들의 구약성경이나 복음서 기록 또한 로마제국판 성경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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