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이 선교로 교회의 꽃을 피웠던 터키의 비시디아안디옥교회에는 현재 터만 남았다.

“오! 평화로우신 야훼여!”

사라가 감격어린 목소리로 크게 외쳤다. 뜻밖의 찬가를 부르자 모두가 어리둥절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평화를 외친 사라는 정색을 하고 하늘을 우러르고 있었다. 주변을 의식하지도 않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가볍게 흐느꼈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알로펜이 사라의 앞을 가로막고 사라의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거들었다. 사라가 알로펜의 두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아들아, 이 어미의 감격을 너마저 모른단 말이냐. 지금 우리 앞에는 유대교 랍비와 기독교의 장로가 친구처럼 서 계시잖아. 나는 이를 감격하고, 야훼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고, 평화의 출발점으로 본단다.”

스테판 장로가 사라 앞으로 다가와서 방긋이 웃으며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어서들 안으로 드세요. 나는 유대교 랍비이기는 하지만 사울 교법사, 아니지 바울사도를 크게 존경하는 터라 다른 지역 유대교들과는 달라야죠. 오늘은 우리 다소회당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 환영하고, 그 뜻을 담아서 잠시후 오찬장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우선 차 한잔 드시고 담소를 나누세요.”

“랍비님, 감사합니다.”

알로펜도 흥분하고 있었다.

“무엇이 감사합니까? 감사는 내게가 아니라 스테판 장로님께 하시오.”

“장로님, 저희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랍비께로부터 들으셨겠으나 저희는 바울사도의 선교생애 중 그분이 다마스커스에서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또 이방 사도의 직분까지 명령받았는 데 왜 그가 최소한 10년 이상을 지체하다가 뒤늦게 선교활동을 시작했는지가 궁금케 하고 있습니다.”

“그래, 우선 찾아주어서 반갑소. 그리고, 내 평생 당신들과 같은 궁금증 때문에 내게 묻거나 우리 다소지방에 누군가가 왔다는 소문도 듣지 못했소이다. 내가 볼 때 그대들은 분명히 크게 성공할 인물들 같소이다.”

“과찬이십니다.”

“그래, 그러면 먼저 내가 질문을 하나 하리다. 두 분은 바울선생이 선교활동 시작 전에 10여 년 지체했다고 말했는 데그 기간은 놔두고, 왜 지체했다는 생각을 하십니까?”

알로펜이 나섰다.

“네, 장로님. 저는 크데시폰에 있는 네스토리안 중앙교회 압바스 감독을 부친으로 모시고 있지요. 저의 부친은 저에게 늘 말씀하시기를 바울선생은 다마스커스에서 안디옥까지의 10여 년의 기간에는 무엇인지 모르나 비밀이 있다 하셨어요. 그런 말씀하실 때의 부친 표정을 보면 그에 대하여 뭔가를 아시는 것 같기도 했었지요.”

“그래요. 압바스 감독이라면 나도 그 어른 존함을 알지요. 그래, 청년이 압바스 감독의 아들이라고, 또 한번 반갑구려. 귀한 아드님을 두셨군요.”

스테판 장로는 랍비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랍비님이 말씀 좀 하시죠.”

랍비 요한이 스테판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말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갔다. 사라와 알로펜은 조바심에 침을 꿀꺽 삼키고 밖으로 나가는 랍비의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갈등이었죠!”

'갈등'이라고 스테판이 말했다. 두 사람은 갈등이라는 말에 하마터면 헛웃음을 뱉을 뻔 했다.

“갈등이라니요!?”

알로펜이 믿을 수 없다는 투로 말했다.

“청년, 평범하게 생각하세요. 바울선생이라고 예외의 인물이 아닙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죠. 그에게도 환경속에서 오는 갈등, 그분이 늘 말했던 속사람과 겉사람 간의 갈등, 다시 말하면 영과 육의 갈등이 왜 없었겠소.”

“아닙니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바울선생은 주 예수와 만남의 충격으로 잠시 눈이 멀었다가 아니니아의 도움으로 눈을 뜬 즉시….”

“그래요. 즉시 다마스커스 거리에서 나가서 전도하려다 유대인들에게 쫓겨 야밤에 성벽을 타고 도망쳐서 예루살렘에 가서 사도들을 만났고, 예루살렘 거리에서 전도하다가 또 유대인들에게 쫓겨서 사도들께로 오니 사도들이 그 사람, 그의 고향 다소로 보내라 했지요. 이것이 사도행전에 나타난 기록이죠.”

“그래요, 그게 제가 하려던 말입니다.”

“그렇지, 청년. 그러나 그 열매까지 보아야죠. 전도하다가 도망질 치고, 또 쫓겨만 다닌다면 그거 모양새가 좋지 않죠.”

“…….”

알로펜은 물론 사라도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성경 기록대로 신뢰하세요. 예루살렘에서 다소에 돌아온 바울은 이곳 저곳에서 쫓기던 자기 모습에 불만이 많았겠죠.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장애물이 바울을 기다렸지요.”

“그건 또 무엇인가요?”

이번에는 사라가 스테판 장로에게 물었다.

“이 지방 유대인들의 기대죠. 바울은 아시다시피 다소 일대에서는 인심좋기로 소문난 아버지 밑에서 귀족처럼 자랐지요. 가말리엘 대법사 문하생으로 예루살렘 유학을 일찍이 떠났으며, 바울의 친구들까지 학비를 대줄만큼 큰 부자요, 인심좋고 신심(信心)도 좋은 아버지였으니 바울은 다소는 물론 길리기아성 시민들의 명예까지 한 몸에 지고 있었죠. 더구나 그 부모의 예견대로 예루살렘에서 무시못할 교법사가 되어 다소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명예까지 한 몸에 간직한 인물이었거든요. 그런 그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 돌아왔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가? 내가 더 말을 해야 알아듣겠소?”

알로펜이 나섰다.

“장로님은 너무 인간의 소시민적인 부분만을 생각하시는군요. 바울선생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볼 때 하늘의 별 같은 존재였고, 시쳇말로 하면 영웅이었잖아요.”

“청년, 그건 나중 일이고 청년 모자가 내게 질문한 분은 바울이 사도의 길에 나서기 전 이야기를 듣고자 하였잖아요.”

“그렇지요. 맞습니다.”

사라가 댓구했다.

“우리는 가끔 착각을 합니다. 바울은 물론 다른 사도나 우리들의 믿음의 선진들의 뛰어난 신앙인생을 마치 태어날때부터 거나 아니면, '아무개야' 하고 부르면 '네' 하면서 대답하고 나서는 것처럼 인생을 단순하게 생각하는 데 그게 아니잖아요.”

“그렇구 말구요.”

“그러면 내가 말하는 바울이 다메섹에서 예수님 만나 지시를 받은 바를 곧바로 이행치 못하고, 그의 영적 성장과정을 거쳤음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울은 말이죠. 예루살렘 길에서 돌아온 이후 한동안 정신병을 앓은 사람처럼 지냈어요. 차츰 마음을 가다듬어 여행을 떠났죠. 그게 바울이 직접 쓴 아라비아 여행 3년이죠. 그는 집에 돌아왔으나 무엇인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허둥대기도 하였고, 심지어 다메섹에서 페트라 지경까지를 오고가면서 베두인들의 친구로, 또는 탈루스 산 속의 산적들의 친구노릇도 했었다는 기록이 있지요..”

“도무지 이해가 되지를 않는군요.”

알로펜이 투덜거렸다.

“이거 하나만 더 말해드리죠.”

“그건 내가 말씀 드리겠습니다.”

랍비 요한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장로님, 고문이야기 하시려던 거였죠?”

“네.”

“제가 말씀드리죠. 여러분, 고린도후서에 40이 하나 감한 매를 맞았다 했으니 39개의 매를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그 한번은 전도여행지에서 맞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동네에서 맞았어요. 바로 이 자리에서인지도 모르죠. 바울시대의 회당도 지금이 자리였을 터이니까.”

“뭐라구요?”

알로펜이 벌떡 일어섰다. 불만이 있다는 태도였다.

“청년, 자리에 앉아요. 당신들 기독교에는 없는 기록이 우리에게는 있지요. 사울 교법사의 일생 모두가 기록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여러분이 바울선생 같이 훌륭한 기독교의 인물이 되거든 오시오. 그때,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를 드리죠. 그리고 하나 더 알아야 할 것이 있어요. 우리 유대교는 사울 교법사 연구 많이 합니다. 기독교로 갔다고 외면하지 않거든요. 여러분의 바울선생은 언젠가는 그분의 기독교를 유대교로 인도해 줄 것으로 믿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죠.”

“뭐라구요?”

이번에는 사라와 알로펜이 화난 모습으로 랍비의 멱살을 잡기라도 할듯이 눈을 부릅뜨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분들, 아직은 순진하시네. 바울선생이 기독교를 유대교로 이끌어준다는 말은 유대인인 내가 하는 말이고, 이 말을 뒤집으면 그분이 유대교를 기독교로 이끌어가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여러분은 아직도 여러분의 예수님을 죽인 유대인들을 저주하고, 기회만 주어지면 복수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소?”

랍비의 말에 드디어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동안 많이 저주하고 죽였지.”

이 말은 스테판 장로의 입에서 나왔다.

“두 분이 처음 오셨을 때 내가 말하지 않더이까. 예수 자신이 유대인이라고. 그 부모, 형제, 제자들, 믿고 따르는 초기 신자들 대다수가 유대인이었고, 당신들은 유대교 회당을 예배처로 사용했고, 여러분이 하는 만큼 존경하는 바울, 우리가 말하는 사울 교법사는 그의 선교여행지 대다수 지역에서 유대인들의 도움을 직간접으로 받으면서 선교했잖아요.”

랍비 요한의 말끝을 받아서 스테판이 나섰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어가면서 하나님께 호소했던 말을 아시죠.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자기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행하는 죄를 용서해 주시오라고 하셨지요. 성경 누가복음 끝부분을 한번 읽어보시오.”

“흑, 흑, 흐흑….”

갑자기 알로펜이 흐느끼고 있었다.

“그만, 그만하면 됐어요.”

사라가 말했다.

“혹시 랍비인 내가 기독교를 공격한다는 생각은 말아주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이 궁금해 하는 바울 선생이 때로는 정신병자 소리를 듣고, 더 견디기 힘들었을지도 모를 위선자 소리까지 들으면서도 선교현장으로 떠날수 없었던 부분을 가르쳐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진정하고, 일단 점심부터 하러가시죠.”

“랍비여! 바울선생이 선교사로 떠날 수 없었던 참된 이유를 랍비께서 알 수 있다구요. 그렇다면 한마디 한꼭 마디 힌트만 여기서 말씀해 주시죠.”

알로펜의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매우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랍비가 사라와 알로펜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스테판 장로에게까지 시선을 주고 있었다.

“말씀해 주세요. 그건 저도 잘 모르는데….”

스테판이 말했다.

“그럼, 말씀드리죠. 바울선생은 아직 신학(적) 정립을 못했기에 다소를 떠날 수 없었소.”

랍비는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

“신학정립!”

사라와 알로펜이 동시에 소리쳤다.

알로펜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을 감싼 것은 부끄러움 때문이요,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랍비여, 저는 어린 아이입니다. 오늘 큰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제가 스승에 대한 예로 큰절을 올리겠습니다.”

알로펜은 바닥에 넙죽 엎드려 머리를 숙였다. 예로써가 아니라 복종의 뜻까지 담았다고 그는 생각하면서 땅바닥에 머리를 가볍게 몇번 찧고 있었다.

“젊은이, 알았어요. 어서 일어나시오.”

랍비가 알로펜의 몸을 조심스럽게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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