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가 활약했던 터키 지역. 박해를 피해 동굴에 숨어살면서 그렸던 동굴벽의 성화들이 오늘날에는 훼손돼 있다.
바울사도가 선교했던 터키는 현재 이슬람이 장악, 찬란했던 바울 사도 시절의 교회들은 흔적만 남아있다.

이틀 후 알로펜은 사라와 함께 크데시폰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유대교가 보관하고 있다는 바울사도의 자료를 얻지는 못했으나 바울이 무엇 때문에 자기 고향집을 떠나지 못했던가에 대한 궁금증은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다소를 떠나는 사라 역시 유대교를 떠나 기독교로 향하는 바울의 그 심정에 동의한다는 듯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었다.

“알로펜, 걸음걸이가 꽤 힘차네?”

“어머니도 마찬가지 잖아요.”

“그런가?”

“그럼요. 저는 지금 기쁨으로 가슴이 터질듯 합니다.”

“…….”

“제 기쁨의 실체가 무엇인지 명확하지는 않지만 조금만 더 몰두하면 생각이 가다듬어질 것 같군요.”

“그래, 젊기 때문에 기쁘지. 금방 세상을 움켜쥘 것 같기도 하고 말이야.”

사라는 알로펜의 마음을 좀 더 가다듬어줘야 할 필요를 느꼈다. 자기 생각을 굳히기에는 좀 더 고뇌가 있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께서 저에게 실망을 느끼셨군요? 그래요, 제가 생각해도 저는 침착하지 못했어요.”

“뭘, 그게 아니야. 다소에서의 일이라면 나도 마찬가지야. 바울의 고향집이라는 향수같다고나 할까, 딱히 잡히지 않지만 흥분했지. 친정집 같기도 했고 말이야. 그리고 친정 어머니일 수 있는 바울선생은 없어도 그의 생가가 있고 동네 친구들 곁으로 장로님과 랍비까지 있어서 좋았어요. 아 참, 조금 전에 내가 한 말에 신경쓸 필요 없어. 내가 한 말은 알로펜은 장차 우리 기독교의 지도자가 될 인물이니까 너무 쉽게 흥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내 솔직한 희망을 담았지.”

“아, 네. 그렇군요. 어머니께서 내게 너무 과분한 기대를 하시는 것 같군요. 저는 저 자신을 아직은 모르겠어요.”

“그래, 본인은 그럴 수 있지. 난 알로펜을 아들 이상으로 마음에 간직하고 있어요. 내가 평생 따를 수 있는 선생으로 말이지.”

“아이쿠, 어머니 왜 그러세요.”

알로펜은 사라와 나란히 걷다가 잽싸게 사라의 앞으로 나서서 길을 가로막으며 버티고 섰다. 노려보는 듯 하다가 껄껄 웃는다. 사라 역시 지고싶지 않아서 발목에 힘을 주고 알로펜을 치켜보다가 그의 웃음소리에 덩달아 웃으며 알로펜의 넓직한 가슴을 두 손을 벌려 껴안았다. 한참 크는 사내아이라 그런지 만난지 몇달도 되지 않았는데 훌쩍 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길을 잡아 걸으며 사라는 다시 한 번 더 다짐했다. 잘 키워야지. 재목으로 키워야지.

사라와 알로펜이 크데시폰 시 경계를 넘어섰다. 다소를 떠난지 석달이 걸렸다. 긴 여행이었으나 큰 불편이 없었다. 알로펜은 교회로 달려갔다. 교회당 1층 뒤켠에 자리한 아버지 서재로 갔다.

'아버지'를 외치면서 달려간 알로펜은 압바스 감독 앞에 털썩 주저앉아서 울음부터 터뜨렸다.

“어허, 내 아들 왔구나.”

압바스 감독도 아들을 일으켜 세우며 눈 가장자리에 이슬이 맺혔다. 그의 머리는 반백이었다. 중년을 훌쩍 넘긴 노년기의 모습이었다. 압바스 감독이 자리에 앉자, 사라가 압바스 감독에게 인사를 드렸다.

“감독님, 저를 잘 모르시죠. 저는 15년 쯤 전에 감독님에게 신앙지도를 받았던 사라입니다.”

“아아, 그런가요. 내가 몰라봐서….”

“아닙니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죠. 2년 정도 크데시폰에 머물때였어요. 저의 고향은 니스비시입니다. 저의 가문에서도 100여년 전부터 전도자가 나오고 감독들이 나왔지요. '샤프르 2세의 대 박해기'를 지내면서 사방으로 흩어지고 저 역시도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세월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허어, 그 말씀을 들으니 자매님의 기억이 떠오릅니다. 아, 그렇군. 그때 한 청년과 정혼을 했다고 했던가, 아니면 결혼을 한 사이였죠.”

“감독님, 기억력이 좋으시군요. 그래요, 그랬었죠. 그 사람과 결혼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습니다. 아들은 얼마쯤 지나면 이곳으로 오기로 했고, 남편은 더 큰 은혜를 구한다며 구도의 길을 떠났지요.”

“네, 네.”

압바스는 아들 알로펜의 모습을 향해 눈길을 주면서 그의 안부를 듣고 싶어했다. 아들이 헤어진 후 1년 여 기간동안 한뼘은 더 커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알로펜, 그동안 외할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았지. 너 다마스커스를 떠났다며 할아버지께서 걱정하시더구나.”

'걱정하시더라'면서도 압바스는 은근히 알로펜의 의젓한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그는 방긋이 웃으며 아들이 그간 지내온 이야기를 해주기를 기다렸다.

“아버지 감독님!…”

알로펜도 부친의 요구를 알고 있는지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가 '아버지 감독님'이라고 입을 열자 압바스 감독이 크게 웃으며 알로펜의 머리통을 쥐어박을 자세를 취했다. 알로펜이 잽싸게 몸을 피하는 데, “이놈아! 아버지면 아버지지, 아버지 감독님이 무엇이냐”고 눈을 흘겼다. 그러자, 알로펜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감독님과 아버지는 동일한 신분이 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 말이 무슨 말이냐?”

압바스가 긴장하고 묻는 말이다. 곁에서 부자간의 애정어린 대화를 지켜보던 사라도 눈이 둥그레진다.

“별다른 뜻이 아니고요. 두 신분이 양립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왔어요.”

“그으래, 언제부터….”

압바스는 의자를 끌어서 알로펜 앞으로 한걸음 다가앉았다.

“금번에 안디옥을 거쳐서 바울사도의 고향 다소를 들려 그분에 대한 생각을 했습니다. 바울은 독신이었을까? 아니면 부인과 보다 일찍 사별했을까? 그것도 아니면 이혼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것까지요.”
압바스는 고개를 끄덕이는데, 사라가 머리를 흔들면서 말을 꺼냈다.

“감독님, 외람되오나 제가 한마디 거들고 싶네요.”

그러자 압바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알로펜, 뭐 그런 생각을 다 해. 나는 그런 고민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데….”

“왜, 그러세요? 어머니.”

압바스 앞에서 알로펜이 '어머니'를 불러놓고는 세 사람 모두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 표정들은 각기 달랐다. 알로펜은 안토니의 어머니 사라를 어머니로 모셔왔다. 그러나 그의 부친 앞에서 '어머니'라 하고서는 그의 표정이 이그러지며 난감해 했다. 압바스는 젊은 여인에게 어머니로 호칭하는 아들의 억양에 놀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알로펜의 어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잖은가. 사라 역시 압바스의 아들인 알로펜이 자기더러 어머니라고 호칭하니 매우 난처했다. 압바스는 홀아비 아닌가. 사라가 서둘러 해명했다.

“감독님, 알로펜이 절더러 어머니라 한 것은 제 아들이 지금 열두살인데 친구 삼아 지내던 제 아들 안토니의 애미인 제게 마땅한 호칭이 없어서 어머니, 어머님 등으로 불렀는데 지난 몇달 동안 둘이서 여행을 하면서 진짜 모자 같은 분위기에서 지내왔거든요. 먼 길 여행인지라 주변도 조심스럽고 해서 제가 어머니가 되었답니다. 저도 복색이나 표정, 말 하나하나 하는데도 신경을 쓰면서 어머니 행세를 했지요.”

압바스가 너털 웃음을 웃는다. 그리고 말했다.

“뭘 그렇게 변명이 깁니까. 내 아들이 그동안 제 어미가 세상을 떠버려서 모정에 굶주렸을 터인데 잘됐구먼요. 걱정 마시오. 나는 괜찮소.”

압바스가 사라를 은근한 눈으로 바라본다. '어머니'라는 한마디의 파장은 변명을 해도 그들의 분위기를 압도하는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압바스의 마음에서는 묘한 상상력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 같았다.

“말해봐요. 알로펜, 내 말이 못마땅해….”

사라가 조금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사라의 약간은 쌀쌀한 느낌이 드는 말에 알로펜이 주춤한다. 그때 압바스가 도움을 주었다.

“그래, 내가 듣기에도 네가 바울의 고향에서 겨우 바울선생이 장가갔을까, 아닐까 수준의 고민을 했다는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자기를 몰아부치자, 알로펜은 울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마음을 다스렸다. 침착하게 자기 의견을 말하고 싶었다.

“물론, 저는 금번 다마스커스, 안디옥, 다소의 여행을 통해서 선교의 큰 포부를 확인했고, 특히 다소 여행은 바울사도가 다마스커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사명을 받고, 이방사도의 길까지 지명을 받았는 데 사명지로 떠나기 위한 주춤거리는 기간이 왜, 10여년이었을까 해서 갔지요. 이것이 본론이고, 바울선생의 결혼 유무는 그의 고향을 찾아간 길에 덤으로 확인하고 싶었어요. 게다가 저도 바울처럼 아시아 선교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터라 이방지대의 선교를 위하여 저 자신도 결혼 유무를 지금 걱정하고 있거든요.”

압바스와 사라가 알로펜의 진지하고 어른스러운 표현을 하자 서로 마주 보면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해 한다. 그리고 사라가 미소지으며 알로펜의 손을 잡는다.

“알로펜, 어쩌면 그렇게 깊은 생각까지 하고 있지.”

“뭘요, 과찬이십니다.”

“그래, 아들아 그럼 바울의 결혼문제는 알아보았냐?”

압바스가 웃으면서 물었다.

“네, 저희 두 사람이 동시에 알아본 것은 아니고 제가 은밀히 알아봤지요.”

이렇게 말을 하면서 그는 사라를 바라본다. 미안하다는 뜻일까. 미소짓는 그의 모습에서 사라는 '미안해요'라는 알로펜의 마음의 소리를 겸하여 들었다.

“그래 어디, 어떤 답을 들었나?”

사라의 말에 알로펜은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고뇌하는 철학자 같았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아니 압바스 감독님!”

“응, 왜 그러나? 무슨 고민이 있는가, 미래의 바울이여!”

“아이 참 아버지도. 내가 어떻게 감히 바울선생과 같은 줄에 서나요. 혈육이라고 저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시면 안됩니다. 감독님!”

알로펜은 아들로서 응석을 부리고 싶었다. 어머니 살아계실때도 아버지는 늘 생각이 많으셨다. 그래서 외로우셨다. 아버지도 독신의 몸으로 선교현장으로 가고 싶으셨다는 말을 야고보 외할아버지에게 들은 일이 있었다.

“아이쿠, 들켰구나. 내가 아직도 육정(肉情)에서 머물거리지. 네, 사도후보생님! 명심하리다.”

사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아들의 정과 아버지 정이 보기 좋았다. 시샘이 날 정도였다.

“아버지, 저희가 금번 다소에게 유대교 랍비와 기독교 장로님을 통해서 바울사도에 대한 두 가지 의문중 하나는 실마리를 풀었으나 나머지 하나는 아직도 미궁입니다.”

“그래 뭔데?”

압바스의 호기심을 받아서,

“그게 뭔데 알로펜!”

하는 사라의 목소리가 날카로왔다. 라이벌간의 비교의식일까?

“네, 하나는 그가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다짐하고 결심했으나 유대교와의 결별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압바스가 약간은 맥이 풀린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는 그의 고향집에 왔을 때, 이미 유대교의 희망으로 떠오른 그를 향한 기대와 찬사를 잘라내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말을 갈아타야 하는데 유대교나 기독교가 아직은 그에게 엇비슷해서 그로써는 답답하지만 시간이 흐르기만 했던 것입니다.”

“아들아, 좀 더 쉽게 말해라. 어렵구나.”

“네, 단도직입적으로 하죠. 바울은 학자입니다. 학자이기에 그로서는 논리적 대안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서, 그의 부활하신 모습 앞에서 굴복하기는 했으나 그는 유대교와 결별할 만큼의 신학적 확신이 없었지요.”

압바스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아쉽다는 듯이 그의 두 손으로 한쪽 무릎을 문지르며 안타까워했다.

“감독님! 감독님은 알고 계시죠? 저는 알고 있습니다. 잘 아시면서도 저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스스로 깨닫도록 가시밭으로 몰아내셨지요.”

이제는 사라가 알로펜과 압바스를 번갈아 보면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제가 한 말씀 드릴까요. 하면서 답답한지 자리에서 잠시 일어섰다가 앉는다.

“아니요. 어머니 잠깐만. 제게 지금 떠오르는 바울의 약점이 있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이방선교사의 길을 약속받았으나 10여년 동안 선교사로 나설 수 없었던 것은….”

“그게 무슨 말이냐?”

압바스가 숨을 죽이다가 내뱉는 질문이다.

“네, 바울에게는 결정적 약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야?”

이번에는 사라가 꽥 하고 소리쳤다. 알로펜은 잠시 숨을 몰아쉬다가 말했다.

“바울선생은 부활하신 예수는 만났으나 십자가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와!”

“아이쿠!”

사라와 압바스가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압바스가 말해다.

“아이고 내 아들. 아니야,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렇다. 바울은 부활 예수만 알고 있기에 십자가 (구원)신학 정립을 못했다. 이는 바울의 평생 약점이기도 하단다. 그래서 바울은 서유럽 교회를 대표하지 못하고 동유럽 신앙과 신학의 종조(宗祖)가 된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이유로 바울사상이 유럽과 아시아 기독교의 중심이 되기는 벅찬 것이다.”

사라와 알로펜이 동시에 압바스 감독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왜, 왜들이래!”이제는 압바스가 비명을 질렀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