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가 활동했던 소아지아 지역(현 터키)에는 박해를 피해서 기독인들이 동굴에서 살았던 흔적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사진은 한국의 성지순례자들). 그러나 찬란했던 복음의 터 위에는 현재 이슬람 종교가 자리하고 있다.

사라는 압바스가 그의 어깻죽지를 잡아 일으킬 때 마치 끌어안기는 듯한 힘을 느꼈다. 가슴이 쿠당탕 소리를 낸다. 그는 알로펜을 바라보았다. 미묘했다. 자신의 가슴이 뛰는 순간의 감정이 혹시 불손한 것은 아닐까, 그런데 왜 그녀가 남의 밭에서 무 캐다 들킨 사람처럼 알로펜 눈치를 보나. 사라는 마음을 다부지게 가다듬었다. 압바스의 선언적 발언이 주는 충격은 한동안 정리해도 여전히 못다 이해할 부분이 많았다.

바울이 십자가 신학을 정립못했다는 말은 지나친 폄하가 아닐까? 그래서 그는 유럽 교회의 대표 신학자라거나 동서 유럽 신학의 대표성을 못가진다는 말은 또 무엇일까?

“아버지, 저는 페르시아의 교회를 생각해 봅니다. 동유럽이다 서유럽이다를 말해도 그것은 유럽이잖아요. 이미 사도시대부터 로마 보다 우위에 있던 페르시아 교회를 위해 고민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로펜은 깊은 생각으로 빠져들었다. 또한 지금 하는 말에 대해서도 사라는 깜짝 놀랬다. 알로펜은 이미 어린아이가 아니구나.

“감독님, 알로펜이 참으로 영특하지 않아요. 저는 알로펜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장차 저의 스승으로 모시려고 작정을 했습니다.”

“아니 또, 그 말씀….”

알로펜은 얼굴이 빨개져 가지고 밖으로 뛰쳐 나가버렸다.

“자매님, 제 아들을 그토록 어여삐 보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도 제 아이가 영감에 찬 포부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지요.”

“그렇지요. 감독님은 어렸을 때 부터 알로펜의 장래성을 이미 알아보셨지요?”

사라의 말에 압바스 감독은 빙긋이 웃기만 했다. 그러다가 알로펜 어렸을때를 회상해 보았다.

“그래요. 저 애가 4살때 이던가.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에 대해서 꼬치꼬치 묻곤 했지요.”

“어떻게요?”

사라는 궁금했다.

“글쎄요. 지금 우리가 사는 페르시아 남단 수메르에서 팔레스타인 지경으로 여행을 떠났던 아브라함처럼 자기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길을 가겠다더군요.”

“그래서요?”

“어린 것의 말이 맹랑해서 하나님은 아무나 부르시는 것이 아니란다. 그분의 마음에 드는 자를 부르시고 부름받은 자가 길을 찾아가는 것이라 했더니, 글쎄 알로펜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어떻게요?”

사라가 숨가쁘게 묻는 데 압바스 감독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 글쎄. 저 녀석 하는 말이 말이죠.”

압바스가 말을 멈추자, 사라 또한 입안에 고인 침을 꿀꺽 삼키며 목이 타는지 입술을 꼭 깨물면서 압바스를 주목했다.

“말씀해 보세요.”

“네, 네. 글쎄 뭐라더라. 저 녀석이 뭐라는줄 아세요. 부르시기 전에 갈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그 소리가 무슨 소리냐니까, 알로펜 하는 말, 자기가 떠나면 그게 길이고 그 길에 서 있는 자기를 하나님은 선택하실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와, 그 어린아이가요?”

사라는 알로펜이 무섭기까지 했다. 저 아이가 누굴까? 천사인가, 아니면 나를 가르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인지도 모르겠다는 엉뚱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이 그 길이고, 이미 그 길에 합류한 자를 하나님은 선택하실 수밖에 없다니…. 사라는 압바스에게 물었다.

“감독님, 그때 알로펜이 한 말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신학적으로 정리를 할 수 있겠는데요.”

“그렇습니다. 내가 떠나면 그것이 곧 길이고, 그 길 위에 내가 걷고 있다면 이미 부르심의 결과라는 논리가 성립되지요. 다시 말하면 길 떠난 자는 이미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 되겠지요?”

“그럼 알로펜은 신동이네요.”

“글쎄요, 그럴까요?”

“그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다섯살 무렵의 아이가 신동이 아니면 신(神)일 수도 있겠네요.”

압바스는 깜짝 놀라면서 자리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사라의 얼굴을 스치듯이 한번 더 살펴보았다. 사라가 알로펜에 대한 기대가 지나칠 만큼 과분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럴 때는 고맙다고 해야할지 망설여졌다. 그러나 신(神)일수도 있겠다는 표현은 마음에 거슬렸다.

“자매님, 알로펜을 칭찬하시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잘못하면 크는 아이 버리게 됩니다.”

압바스는 신중한 표정으로 다짐하듯이 말했다. 사라는 압바스를 마주보면서 자신있다는 듯이 말했다.

“감독님, 저나 알로펜은 이미 경계해야 할 위험한 단계가 아닙니다. 제가 알로펜과 몇달을 지내보았으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속이 꽉 찬 청년입니다. 믿어도 될 것입니다.”

압바스는 껄껄 웃으며, 사라의 말 솜씨에서 세상 떠나버린 아내를 잠시 떠올려보았다. 아내도 사라 못지 않게 알로펜을 애늙은이 또는 다 성장한 인물을 대하듯이 했었다. 그러나 압바스는 아직 멀었다는 자기 판단을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사라님, 앞으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나요?”

압바스는 갑자기 화제를 바꾸었다.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졌느냐고 묻는 것은 언제 여기서 떠나려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사라는 잠시 생각을 고르고 있었다.

“저는 알로펜이 감독님의 마음에 드실때까지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알로펜의 선교인생을 돕는자가 되려고 합니다. 저는 그때까지 감독님께 배우면서 제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면 밥벌이를 하겠는가를 궁리해 보겠습니다. 혹시 저를 여기에서 떠나게 하시지는 않으시겠죠?”

이렇게 말하는 사라는 마치 자기가 오갈데 없는 가련한 여인이나 되는 듯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압바스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조금은 과장된 것처럼 느껴졌다.

사라는 눈을 지긋이 감고 생각했다. 그녀가 말하는 '밥벌이'는 자기 목에 풀칠하자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장차 알로펜이 이끄는 선교모임의 비용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도 보면 예수께서 공생애 활동 중 따르는 여인들이 마련해낸 활동비를 기쁘게 받으셨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한동안 압바스 감독 역시 말 없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자매님, 걱정마세요. 여기서 떠나라 하지 않겠어요. 평생 여기 계셔도 밥벌이는 하실 필요없습니다. 제가 잘 모시겠습니다.”

압바스는 넌즈시 말했다. 평생 먹여주다니….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듣기에 따라서는 사라를 붙들어 두겠다는 말로 들리기도 했다. 사라가 곧바로 말을 받았다.

“감독님, 저는 여기에 평생 머물 생각은 없습니다. 저는 이미 말씀드린대로 알로펜을 지도자로 모시고, 아시아 저 멀리 해뜨는 동방의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 합니다. 그리고 저는 내 목구멍 걱정으로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이미 로마제국의 차별과 사산조 페르시아 이 늙은 왕조의 무자비한 폭력을 지켜본 어른들에게 잘 배웠습니다. 저는 내 목구멍 하나가 아니라 장차 알로펜 선교단이 백명, 천명, 만명이 될 터인데 그들의 먹거리를 준비하는 섬기는 일에 이 생명을 다하려 합니다.”

사라가 말을 하는 동안 압바스의 표정은 두 세번 바뀌었다. 웃다가, 얼굴을 찌부리다가, 이마에 손을 대고 자기 표정을 감추는 등 심경변화를 보였다. 사라가 자신감 넘치는 포부를 밝히자 압바스가 조금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

“부럽군요. 내 생각이 짧았군요. 그토록 큰 계획을 갖다니, 그럼 나도 알로펜 선교단의 단원이 되도록 해주세요.”

압바스가 엉뚱한 말을 내뱉고야 말았다. 사라 앞에서 자기는 다 늙은 퇴물이구나 싶은 서글픈 생각까지를 포함해서 그의 감정이 뒤죽박죽이었다. 사라가 압바스를 도왔다.

“감독님, 무슨 말씀을 그리하세요. 제가 천방지축으로 까불었나요. 그러지 마세요. 알로펜이 제 선생님이면 감독님은 선생님의 선생님이고, 알로펜이 저의 지도자이면 감독님은 제 지도자의 지도자입니다. 저희는 이미 아시아 저 동방의 끝까지 가는 땅끝까지 가는 선교의 길을 출발했습니다. 저희 둘은 감독님의 가르침을 받고, 저희가 먼 길을 떠나도 되겠다는 압바스 감독님의 허락이 떨어지면 동쪽으로 가겠습니다. 이미 아시아의 길은 열렸습니다.”

압바스가 사라의 말을 듣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사라를 또 일으켰다. 그가 사라의 눈을 찾고 있었다. 사라는 느닷없는 압바스의 돌발 행동에 주춤거렸고, 그 눈이 너무 강력하여서 감히 마주 쳐다 볼 수 없었다.

“사라여, 내 아들의 어머니여! 저 아이를 잘 돌보아주세요. 덩치만 컸지 아직은 어린애잖아요. 이건 부탁이 아니오. 감사요, 감사의 뜻으로 자매님을 한번 안아주겠소.”

압바스는 대담했다. 사라를 그의 넓직한 가슴에 품고 지긋이 끌어않았다. 그리고 그의 손으로 사라의 양 어깨를 붙잡고 몇번이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리에 다시 앉을 때 압바스의 눈 가장자리가 젖어 있음을 사라는 놓치지 않았다. 외로운 사나이, 어찌 사나이만 외롭답니까….

사라는 옆걸음으로 압바스의 서재에서 나왔다. 알로펜은 보이지 않았다. 웅장한 교회당의 땅거미 시간은 잿빛 그림 속에서 그 몸체 크기의 윤곽만 보였다. 그녀는 예배당 좌우를 살펴 보았다. 예배당 뒤로 가서 출입문을 찾았다. 십여 년 지났지만 익숙한 예배당이다. 문을 조심스럽게 열었다. 강당 전면을 표시하는 불빛이 반짝였다.

사라는 예배실 뒤 한구석에 앉았다. 압바스 감독이 떠올랐다. 그는 지쳐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도와줄까. 압바스는 나이가 50살 정도로 짐작되는 데 어딘가에 빈틈이 있어보이기도 하고, 피곤해 보였다. 자기의 당돌한 발언에 표정이 흔들리기도 해보였던 그의 모습은 아쉬움에 젖은 중늙은이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사라의 기대는 달랐다. 크데시폰 네스토리안교회 대감독 압바스는 페르시아의 기독교를 통해서 아시아의 길을 열어야 할 책임이 있었다. 복음의 진보에 대한 책임은 개인 사정이라 해서 개개인이 결단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편에 기준해야 한다. 하나님의 기준은 하나님의 사람 모두의 공동 책임이다. 나는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나는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해야 해요. 나는 몸이 아프니 쉬어야 합니다 등의 이유로 개인사정을 내세울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압바스 감독 생명은 이미 하나님이 주사위를 떠나 복음의 목적지로 날아가는 화살이다. 그것은 중도에 멈출 수 없다. 사라 자신이 복음 제단에 던져진 제물이기에 비록 그녀 자신의 목숨이라 해도 그것이 제단 위에 올려진 제물이기에 그녀가 더이상 별도의 자기 주장을 할 수 없는 것처럼 압바스는 복음의 현재 요구를 따라야 할 것이다.

생각을 여기까지 정리한 사라는 다음날 아침 압바스에게 면담을 요청을 한 후, 압바스 감독실 앞에 서서 신호흡을 한번 했다. 간밤 기도실에서 정리한 생각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주춤거리는 데 인기척을 느꼈는지 압바스가 '누구시오, 들어오시죠' 하면서 출입문 쪽으로 걸어왔다. 사라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압바스가 환하게 웃으며 자리를 권했다.

“감독님, 저는 어제밤 주께 기도하면서 받은 깨달음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말씀하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감독님, 저나 감독님은 하나님 앞에 이미 드린 희생물입니다. 하나님의 것들이기에 서로에 대한 견해를 사심없이 말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일 경우….”

“네, 그렇지요. 말을 계속하세요. 내가 엄숙한 자세로 듣고 있습니다.”

“감독님께 어제 말씀드린 저나 알로펜의 아시아 선교계획에 감독님도 동참해 주세요.”

압바스는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후덕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가 한 다음의 말은 날카로왔다.

“부탁인가요? 강요인가요?”

사라는 압바스 감독의 말에 주눅이 들었다. 그러나 주먹을 불끈 쥐고 “강요성이 있는 명령입니다. 정확하게는 주의 명령입니다.”

“뭐, 강요이고 주님의 명령이라고…”

압바스는 자리를 고쳐 앉으며 옷깃을 단정히 여민다.

“네, 감독님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님의 사명을 대신 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저나 알로펜은 감독님의 무거운 짐을 함께 지는 동반자입니다. 저희도 주님의 명령 앞에 있습니다.”

“좀 더 상세히 말할 수 있나요?”

“네, 제가 알기에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께서 에베소 종교회의 때 억울하게 희생되었다고 봅니다. 감독님의 생각은 어떤가요?”

압바스는 잠시 천정을 바라보다가 머리를 숙였다. 잠시 후 그는 몸을 일으켜 서재 우측 끝에 있는 책 한권을 꺼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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