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 사도가 사역했던 소아시아교회들이 있는 터키 땅에는 현재 이슬람국가가 되었다. 박해를 피해
동굴에서 살았던 신앙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사진은 한국교회 한 목회자가 그들이 살았던
동굴 깊숙히 순례하고 있는 모습.

압바스로부터 받아든 책은 네스토리우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정죄·추방된 에베소 공의회(AD 431년) 자료집이었다. 사라는 시간을 내서 읽어보겠노라고 말했다.

“아는 내용입니까?”

압바스가 사라의 태도를 조심스레 살피며 말했다.

“네, 조금은요. 그러나 진정한 속내는 로마파 교회의 페르시아파 견제용 희생제사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요. 로마교회의 견제용이라구요…? 거 참 멋있는 말이네요. 희극적이기도 하고요. 헛허…, 허허허….”

압바스는 사라의 한마디에 할말을 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공허한 울림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생각 속에 빠져든 압바스는 눈을 감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던 사라가 또 한마디 더 했다.

“감독님, 제 표현이 무식하기도 하고 건방지기도 하죠.”

“…….”

압바스는 곧바로 반응하지 않았다. 그는 잠시 더 생각을 고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로마파 교구가(우리) 네스토리우스파를 의심하게 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님의 교리적 판단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가요?”

“그건 아니었죠.”

“그런데 감독님은 로마교구의 엄연한 편견을 관대하게 보고 계십니까?”

사라는 마치 덤벼들어 물어뜯을 기세로 성깔을 부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압바스는 걱정스런 모습으로 지켜본다.

“사라 자매님, 진정하세요. 나도 젊었을 때는 로마교구를 의심했고, 또 그들의 행동이 지역적 텃세라고 보았답니다. 그러나 지금 제 생각은 우리들 네스토리우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거나 페르시아권 교회가 먼저 자기들의 신학적 반성부터 해야 한다고 보고 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사라는 점차 안정을 되찾고 압바스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죠. 본디 페르시아 지역이라고 한 아시아권 교회는 신학의 배경이 단성론이죠. 이에 비해 로마교구는 양성론 신학의 철저한 입장을 취하고 있어요.”

“두 신학의 차이를 쉽게 말씀해 주세요.”

“그래요. 단성론은 예수에게는 신성과 인성 둘 중에 하나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교구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하시다(사 7:14)에 기초한 임마누엘 사상을 발전시켜 신성과 인성이 예수님에게는 동시에 있으며, 신성과 인성은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곧, 본성의 일치를 주장하지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도 같은 입장이셨잖아요?”

“그랬지요. 그런데 네스토리우스는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호칭에서 '하나님의 어머니'에 대한 동의를 하지 않았지, 겨우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호칭하는 그의 기독론을 로마파 교회가 의심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느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설교내용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신성과 인성은 상황에 따라서 나타나는데 어떤 때는 신성이, 또 어떤 때는 인성이 더 강하게 나타난다 하여 신성과 인성이 동일존재가 아닌 것처럼 표현했지요.”

사라는 압바스가 준 책을 뒤적이면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로마교구의 주장에 억지가 있다고 보았다. 신성과 인성을 인정했고, 두 성품이 한 분 예수께 있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차등이 없는 한분이기에 하나님의 어머니를, 그리스도 어머니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은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굳이 그리스도의 어머니로 표현했던 것은 신의 어머니라 했을 때 성모 마리아가 또 다른 신(神)이 된다는 오해를 피하자는 것이었다면 시비대상이 아니다. 또 신성과 인성이 예수의 중심에 함께 있으면 그게 곧 일치가 되는 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사라는 압바스 감독의 태도를 물었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로마교구의 요구에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봅니다.”

“뭐예요. 그럼 감독님은 왜 네스토리우스파를 지지하고 계시나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신학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네스토리우스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좌의 수장으로 있을 때 교리적 차이는 크지 않았어요. 다만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처세랄까. 그가 세계 기독교의 최고 지도자로서 덕목(德目)에 부족함이 있었다는 느낌을 주지요.”

“그것 뿐인가요?”

“또 있지요. 이는 더욱 치명적인데 네스토리우스가 지역적으로 로마와 페르시아의 국경지도인 에뎃사 출신이라는 점도 주목의 대상이었겠죠.”

“에뎃사가 왜요?”

“네, 에뎃사는 물론 갑바도기아, 그리고 고대 앗수리와 함께 정통 기독교의 대적자요 원수들의 땅이죠.”

“그건 왠가요?”

사라는 차츰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바뀌었다. 자기가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요. 에뎃사 출신 바다이산, 갑바도기아의 마르시온, 메소포타미아의 타티안… 저들 세 사람은 무서운 이단자들이요, 기독교의 원수로 작정된 인물들입니다. 저들의 출신지역이 모두 지금의 페르시아권으로 묶을 수 있어요. 아마, 로마교회는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를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사라는 녹초가 되었다. '왜냐'고 물을 용기도 없고, 의욕도 바닥이 났다. 어찌하면 좋은가? 동방의 해 뜨는 나라 선교를 위해서 길을 나선 나그네 사라는 자기 자신은 물론 알로펜도 안타까운 처지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펑펑 솟았다. 그녀는 울었다.

압바스가 보고 있는 자리에서지만 몸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마치 당신이 나를 울게 하고, 절망으로 몰아냈다는 듯이.

“왜, 그렇게 약해요? 어제는 그토록 당당해서 여장부라는 생각을 했는데….”

“네, 그래요. 그러나 나는 사라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열 거예요. 저 동방의 나라로 가서, 로마교회의 편견과 오만이 없는 곳에서 복음의 승리를 반드시 일구어내겠어요.”

“그래요. 그러나 이건 알고 계셔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의 걸림돌이 로마교회만은 아닙니다. 더 무서운 대적이 있어요.”

사라는 압바스의 얼굴만 멀뚱히 쳐다보았다.

“아시죠. 조로아스터교와…”

“아, 마니교죠.”

“그래요, 저들은 이미 우리 기독교의 장애물이죠.”

“그뿐인가요, 함정이죠. 그러나 우리 주 예수께서 저들은 넉넉하게 이겨주십니다. 모든 악의 세력의 대표인 사탄을 굴복시키신 분이 우리의 구주십니다. 저들 따위가 두려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좋습니다. 울고 계실 때는 걱정되었으나 이제는 안심입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아시아 선교단을 세우려 합니다. 단원들도 모집하고 당장 오늘부터라도 저와 알로펜을 지도해 주세요. 저희에게도 감독님과 같은 지혜와 실력이 필요합니다.”

“좋아요. 제가 오늘 제안하려했던 내용도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실력, 즉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 예수를 배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사라는 새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마당에 나왔다. 하늘이 쾌청하다. 마음껏 고함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는 시내로 나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크데시폰은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고향이니, 옛 정이니로 회상(回想)과 추억 또는 말초적 그리움 따위가 나를 더 이상 감동시킬 수 없어야 한다고 다짐했다.

압바스 감독은 네스토리안 교회의 운명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이름으로 세계의 앞날을 열어간다지만 먼저 기독교의 근본은 더 명확하게 알아야 하고, 지난 600여 년 동안 이어오는 기독교의 체질을 소화해 내고, 기독교의 방해꾼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는 물론, 바다이산, 타티안은 물론 마르시온의 적 그리스도적 이론에 대해서까지 명쾌한 신학적 준비가 있어야 한다. 쉽지 않은 방법이다.

사라는 알로펜이 어디 있는지 궁금했다. 누구에게 묻지를 않았으나 그가 있을만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는 어디에도 없었다. 하루가 지났다. 그녀는 기도하고 있는 알로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자신도 기도처를 찾아서 나섰다. 압바스 감독은 사라가 기도처를 찾아나서는데도 반응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방긋이 웃고만 있었다.

사라는 산 언덕을 향해 걸었다. 비탈진 곳에 자리한 굴 하나를 찾아들어갔다. 기도처였다. 밖으로부터 침입자가 있으랴 싶어서 돌맹이를 굴러 입구를 막고 굴 안에서도 큰 돌로 밖을 막았다.

네스토리우스 교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은폐술이 있었다. AD 431년 스승인 네스토리우스가 파멸의 잔을 마시고 로마제국 교회로부터 추방을 당하면서 그들은 로마교회 보다 더 정확한 교리적 선명성을 가지기로 목표를 정했다. 그리고 로마제국 보다 더 큰 선교지를 원했다.

사라는 네스토리우스파 신자는 아니지만 압바스의 고지식한 신앙을 안다. 그에게서 신앙의 만족을 얻지 못했으나 그의 아들인 알로펜을 만나서 이 굴 속 기도실에 다시 오게 되었다. 네스토리우스파 신자들은 은밀한 자기네들의 목표를 가지고 있음도 안다. 그들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도 알고 있다. 로마제국의 최고 지도자에서 한순간 천길 낭떠러지로 몰락해버린 네스토리우스를 보았고, 그가 요르단, 이집트, 리비아 사막으로 20년 동안 개처럼 끌려다니면서 학대와 멸시를 당하다가 죽어간지가 130년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사라는 3일 동안 기도실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물 한모금 마저 사양한 채 굴속에 엎드려 기도했다.

3일 후, 주일 예배시간이 되었다. 가끔 현기증이 엄습해 오기는 했으나 정신은 말짱했다. 예배시간의 즐거움, 신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면서의 즐거움, 살아있음의 즐거움, 사랑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오는 즐거움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 예배시간에 참여했다.

예배 후 만난 알로펜은 질겁을 했다.

“어머니, 어디에 계셨어요.”

그는 사라의 손목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왜 그러냐? 내가 너를 두고 어디로 가니. 너는 내가 평생 모실 스승이고, 선교의 지도자인데….”

“어머니, 또 그 말씀…. 그나저나 말씀도 없이 어디에 계셨어요?”

“나, 주님 품에서 3일 동안 쉬었다.”

그러나 사라의 얼굴은 창백했고, 금방 쓰러질 것처럼 기력이 없어보였다.

“어서 가요. 방으로….”

알로펜은 사라를 떠밀듯이 자기가 기거하는 방으로 안내했다. 이게 모정(母情)이로구나. 사라는 알로펜의 투정섞인 불만이 마냥 싫지 않았다.

“왜 그래. 내가 뭐 잘못했냐? 왜 그래, 아들아!”

사라는 알로펜의 팔목을 잡고 몸의 중심을 간신히 유지했다. 알로펜은 사라의 얼굴을 눈여겨 보더니

“얼굴이 왜 이렇게 수척해요?”

하면서 그녀의 두 볼을 그의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아이, 간지러워….”

사라는 알로펜의 손목을 잡아 끌어당기며 흐뭇해 했다.

“아들, 나 기도했어. 주님께 도와주시라고 했어. 우리 당장 선교학교를 세워야겠어. 아버지께 내가 건의했거든….”

“알아요. 아버지께 들었어요. 저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혹시 여기 크데시폰이나 니스비시에 있는 네스토리안 대학들과 경쟁관계가 되어 말썽이 나면 어떡하지요.”

“그건 문제 없어. 우리는 대학이 아니야. 교회학교 수준의 시설이면 되고, 특별한 자격도 필요 없어요. 우리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신학, 정통 기독론, 삼위일체론, 앞으로 가야할 선교지인 아시아 대륙의 역사를 배우면 되는거야. 그리고 우리는 시간만 있으면 우리가 시도하는 교회학교 졸업생들이 대학으로 진학하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도 있고 하니 걱정없어….”

사라는 자신감 넘쳐 있었다. 그런데 사라가 푹 고꾸라진다. 으응, 하는 신음소리만 남기고 앉은 자리에 널부러졌다. 알로펜이 깜짝 놀라 방문을 열고 소리쳤다.

“거기 누구 없소! 누구….”

사람들이 달려왔다. 사라를 업고 압바스 감독실로 향했다. 그리고 가는 사이 사라가 정신을 가다듬고, 내려 놓으라고 했다. 청년의 등에서 내려온 사라는 괜찮다고 말하고 몇번이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그 사이 압바스가 알로펜의 말을 듣고 사라 곁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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