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두란노서원으로 가는 길. 찬란했던 문화는 이렇게 흔적만 남았다.

아시아 선교학원은 곧바로 세워졌다. 어려울 것이 없었다. 압바스 감독이 지키는 크데시폰 중앙교회는 교육시설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다. 교회당은 신학교 건물을 개조한 것이며, 다만 본당만 별도로 지었다. 페르시아 신학대학 시설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페르시아 신학대학은 압바스의 신학을 문제 삼았다가 분할해 나갔다.

압바스는 단성론적 요소가 있다거나 예수의 양성론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를 취하는 사람을 용납지 않았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신성과 인성의 복합체로서 조화로운 생명이시고, 신이며 인간이지만 불편함이 없으신 그리스도 예수를 거역하지 않는다.

압바스는 알로펜과 사라에게 운영권은 넘기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만 도움을 주기로 했다. 3명이 지망했다. 사라와 알로펜을 합하면 5명이다.

일단 1년 동안 공부하기로 했다. 압바스는 아시아 지역기반을 경계했다. 기독교를 담기에는 결정적인 취약점이 아시아적인 정신기반이라고 단단히 강조했다. 아시아에는 종교와 철학이 오래 전부터 발전해 왔고, 그것들의 사상적 기초는 기독교 신학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이다.

압바스는 학생들이 자기의 발언에 대하여 이해를 못하고 있음을 그들의 반응에서 확인했다. 왜 그러냐는 질문이 없음에서 알 수 있었다. 언젠가는 깨닫겠지.

저녁때가 되었다. 사라가 압바스의 서재 겸 사무실로 찾아왔다. 압바스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사라는 머뭇거리더니

“감독님,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셨으니 말입니다.”

“글쎄요. 내 실력에도 한계가 있으니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오늘 강의 중에 아시아적인 기반이 기독교신학 기초를 쌓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은 쉽게 배우지 못할 명 강의였습니다.”

“아, 그런가요.”

“그럼요.”

“아마 다른 학생들은 잘 모르고 있을 거예요. 알로펜도….”

“괜찮습니다. 좀 더 배우면 알게 되겠지요.”

“앞으로 아시아 지역의 선교에서 기독론 문제로 기독교는 자기 충돌을 하게 될 것이 걱정됩니다. 이미 페르시아 일대는 종교적인 폐습이 가득해요.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시죠?”

“그래요. 좋은 지적을 하셨어요. 그런데 신성과 인성 양성의 지나친 구분이 기독교 신학의 취약점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무슨 말이죠?”

압바스는 잔뜩 경계심을 표하며 사라를 노려본다.

“왜, 그러세요. 왜 그런 눈으로 보세요. 무서워요.”

사라는 압바스가 오히려 너무 긴장하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제 생각에는 신성과 인성은 둘이면서 하나요, 또는 하나이면서 둘이라는 신비성을 가지고 있다는 때도 있어요.”

“무슨 소리. 그게 바로 사탄의 발상이라는 겁니다. 말장난이기도 하고….”

“그래요. 말장난이라는 표현이 가능할 것 같아요. 말로 표현하기에는 참된 신학은 너무 섬세하고 치열한 내면성을 가졌다 해야 하겠더군요.”

“그래, 거기까지 알고 있으면 됐어요.”

“감독님, 저는 아직 미숙해요. 가르쳐 주세요.”

“뭐 나는 아니랍니까. 사실 나는 네스토리우스의 신학을 따르고는 있으나 그 분 자신의 신학에는 동의하면서도 그분의 덕망 또는 도덕성에 의문이 있지요.”

“무얼 말씀하시려는 거예요.”

이번에는 사라가 압바스 감독을 노려보듯 시비를 하고 나섰다.

“글쎄, 교리적 완성도가 신앙의 모든 것일 수 있느냐는 의문입니다.”

“아닙니다. 먼저는 교리적 정확성이 있어야지요. 그 다음으로 신앙적 완성이 뒤따르는 법이죠.”

“그러니까 교리적 완성이 선(善)이 아니라는 것이지.”

“그래요. 그래도 교리적 정확성을 가져야지요. 그래야만 덕을 갖춘 신앙의 단계에 오를 수 있지요.”

“역시 사라 씨는 신앙이 틀이 잡혔어요. 내 생각도 같아요. 알로펜은 좋겠어요. 좋은 어머니를 모셨으니….”

“감독님도 참 짖궂으시네요.”

사라가 눈을 흘기면서 가볍게 넘어가려 했다. 예를 들면 압바스의 느닷없는 일격을 사쁜히 방어한 셈이다. 압바스가 왜 신학적 토론을 하다가 알로펜 어머니…를 말하면서 기습전을 시도했을지를 사라는 알 수 있었다.

알로펜 어머니가 사라 자신일 경우 알로펜의 아버지인 압바스와 사라는 어떤 관계일까. 사라가 알로펜과 함께 나타났을 때 충분한 해명을 들었는데 갑자기 신학을 말하다가 짖궂은 말을 꺼낼까.

“네스토리우스는 자기의 교리적인 부분이나 도덕성에 있어서 모두 2% 정도씩 모자랐던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도덕성은 모르지만 교리는 정확한 성취를 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교리적 미완성이 도덕적 미완성과 일치하는 점에서 그분은 모자랐어요.”

“단정을 하시는 겁니까?”

“내 느낌이죠. 궂이 표현해 본다면 네스토리우스가 신성과 인성이 상항에 따라서 강약으로 나타난다 했어요. 어떤 때는 신성이, 또 어떤 때는 인성이 강하게 나타난다는 식으로 말이죠. 이런 표현은 논리전개상 취약점이 되지요. 그가 한 말의 뜻은 알겠어요. 그리고 인간의 눈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가 있지요. 또 네스토리우스 시대의 기독론은 사실상 완성도가 일반화되지 않았거든요.”

사라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고개를 갸웃둥거린다.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정리를 해보려고 애쓰다가

“아이고, 말씀이 참 어렵네요.”

“왜, 갑자기 그래요?”

압바스가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나 묻지요. 그 시대는 기독론의 완성도가 일반화 되지 않았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이죠?”

“기독론은 물론이고 성령론까지, 그러니까 삼위일체의 정론이 아직 나오기 전의 시대였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단 규정을 그렇게 쉽게 하였지요?”

“그래서 2% 부족을 말해 본 것이죠.”

“2% 부족은 교리적 완성도가 일반화 되지 않았는데 그 책임을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집니까?”

“그래서 2% 부족이라잖아요.”

“그러니까 그 부족부분 2%는 특정 개인이 감당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기독교 최고의 지도자였어요. 그런 신분을 감안할 때 2% 부족부분이 없어야 옳지 않겠어요?”

“그건 희망사항이죠. 그렇게까지 야박하게….”

“그래요. 야박했죠. 그러나 참고로 하나 더 말해 줄께요.”

“뭐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는 적이 너무 많았답니다.”

“적이 많다니….”

“네. 일화 하나 소개하죠. AD 428년 당시 황제가 안디옥 교구 순방에 나섰지요. 주일날 안디옥교회에서 예배드리는데 당시 안디옥교회 감독인 네스토리우스가 황제 앞에서 설교를 했다더군. 그분의 설교가 아주 뛰어났답니다. 콘스탄티노플 황궁에 들어간 황제는 네스토리우스 감독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 승차시켰지. 그러자, 네스토리우스의 답례사가 뭔줄 알아요?”

“…….”

사라는 눈만 깜빡이고 침묵 중이었다.

“황제여, 제가 이단자라는 이단자들은 모조리 잡아서 황제 앞에 바치겠소이다 했다는군.”

사라는 말없이 신음소리를 냈다.

압바스 또한 자기가 한 말을 만족하는 듯 했다. 둘이가 말 없이 무거운 침묵에 눌려 있었다. 이어서 사라가 입을 열었다.

“아, 맞다. 이단몰이를 하다보면 나는 잘났고 너는 못났다의 논리가 앞설 수 있을 터이니 겸손한 자세의 부족부분이 나타나겠군요. 여기에 2% 부족이 있네요.”

“그래 맞아요. 자기 부족을 알아야만 사람은 겸손해지는 법이죠. 부족한 것이 인생이죠. 인간이라는 말이 부족한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하면 도움이 될 겁니다. 도덕성이 부족하여 오만을 떨다보면 교리적인 부분에도 나타날 부족부분 처리에 실패할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학과 덕망에서 모두 부족했어요. 덕망의 부족을 알았으면 교리학의 부족도 용서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아, 대단한 가르침이군요. 감독님, 감독님! 정말 멋있으세요. 어쩜 그렇게도 저에게 큰 가르침을 주시나요.”

“허허 과찬입니다. 기회 되거든 아드님 알로펜에게 이 교훈을 알로펜 어머니가 잘 가르쳐 주시오.”

“감독님, 왜 그러세요. 짖궂으기도 하네요.”

“괜찮아요. 농담이오. 그리고 나는 견딜만 합니다.”

압바스와의 대화 시간이 정말로 소중했다. 사라는 춤을 추듯이 기뻤다. 그렇구나. 인생과 신앙이 별개가 아니야. 겸허함으로 낮추고, 교리적 가르침에 접근할 때는 두렵고 떨림을 원칙으로 해야지.

다음날 점심시간 알로펜의 요구에 따라서 학생들 다섯이 다 한 자리에 모였다. 모두 자기 소개를 하기로 했다. 알로펜이 먼저 자기 소개를 했다.

“저는 열다섯살입니다. 이름은 알로펜, 여기 크데시폰 중앙교회 감독님의 아들입니다. 부족합니다.”

알로펜이 청년 셋을 소개하려 했다. 그러자 청년 하나가 일어나서 말했다.

“저는 아즈라입니다. 크데시폰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고 있으며, 복음을 받아들인 지는 3년 밖에 되지 않았어요. 압바스 감독님의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아즈라 님을 제 형으로 모시고 있어요. 제 이름은 훗세르입니다. 저도 아즈라 님과 같이 압바스 감독님의 지도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잇스기아입니다. 저의 조상은 예루살렘의 유다지파 유대인입니다. 예수님을 저희 조상들이 죽였다고 해서 저는 늘 죄인의 심정으로 삽니다. 제 고향은 니스비시입니다. 신앙은 초보자인데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있는 선교사가 되려고 합니다.”

잇스기아의 자기소개가 끝나자 사라가 박수를 선창했다. 모두 사라를 따라서 박수를 치면서 서로를 격려했다. 끝으로 사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 이름은 사라입니다. 저도 잇스기아 처럼 유다지파의 자손으로 저 옛날 천년쯤 전 바벨론 포로로 끌려와서 여기서 살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 보다 나이가 많고 여자이지만 여러분에게 지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우리 함께 아시아 선교에서 성공해야 합니다.”

알로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오늘 선교동맹을 결의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우리는 페르시아 전역과 중앙아시아,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선교의 개척자를 자청하면서 모였습니다. 제가 양해는 구하지 않았으나 사라 님을 우리의 대표로 모셨으면 합니다.”

모두 박수를 치며 사라 곁으로 와서 머리 숙여 인사를 했다. 사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아녀자입니다. 부족한 사람이지만 연장자로서 여러분의 반장을 겸허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제 오늘도 공부하셨으나 우리에게 압바스 감독님이 선교사의 길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특히 우리들이 잘 배워야 할 기독교의 기본 교리학에 대해서 충성스럽게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1년 정도를 목표하면서 1차 수업기를 가지고, 그 다음으로는 제가 예상할 때 선교현장 실기를 하면서 공부에 더욱 매진하게 될 것입니다. 공부는 세상에 사는 날 동안 계속 하는 것이지만 앞으로 10년 정도는 '나는 학생이다'라는 자세를 가지고 배움에 임해야 할 줄 압니다. 아셨지요?”

학생들은 초등학생들 처럼 목청을 돋우서 크게 외쳤다.

“네!”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비록 큰 포부를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선교를 떠나겠으나 당장 여기 페르시아 땅에서 먼저 승부를 해야 할 종교들이 있지요. 그게 어느 종교입니까?”

“조로아스터교와 마니교입니다.”

“그렇지요. 그들을 먼저 분별하고 그들 종교들이 어떤 장점과 단점을 가졌는지를 공부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 종교인 기독교를 바르게 배워야 합니다. 나를 먼저 알면 상대의 단점이 보이는 법입니다.”

모두들 즐거운 낯으로 인사를 나눴다. 사라와 알로펜은 압바스 감독에게 보고 하기 위해서 강의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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