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는 정치적으로 추방됐지만 소아시아를 거쳐 중국까지 선교사역을 멈추지 않았다.
사진은 신앙의 박해를 피해 동굴에서 살았던 성도들이 그린 성화.
터키가 이슬람국가가 되면서 성화는 곳곳이 훼손됐다.

사라와 알로펜의 방문을 받은 압바스는 느닷없이 제자선언을 했다.

“여러분, 5명의 제자들은 단순한 학생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제자도를 따라서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가르침을 따라야 합니다.”

사라와 알로펜은 서로 마주 보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들의 얼굴이 동시에 무거워 보였다. 압바스가 그들의 분위기를 읽었는지 그는 왜 반응이 없느냐고 다그치듯이 말했다. 사라가 입을 열었다.

“저희는 아직 어립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지 네스토리우스의 제자가 아닙니다.”

“어허, 뭘 오해하는군. 예수의 제자이면 네스토리우스의 제자도 되는 것이지.”

“전혀 아니라고는 못하겠죠.”

알로펜이 어정쩡한 표현을 했다.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존경하기는 하지만….”

압바스가 사라의 말 허리를 잘랐다.

“내 말을 좀 더 들어주시오. 나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이단이 되어 사막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의 과정을 알고 있어요. 그는 로마교회의 정치적인 흐름에서 하나님이 자기에게 아시아 선교를 부탁하신 음성을 들었다고 전해옵니다. 그래서 나와 여러분의 아시아 선교는 네스토리우스의 뜻과 일치한다고 보았기에 한 말이니 달리는 생각 마시오.”

압바스는 말을 해놓고도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왜 사라와 알로펜이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을 따르자는 말 한마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표정관리를 했기에 망정이지 그의 마음 속에는 섭섭함을 뛰어넘어 분개의 기운까지 일어나고 있었다.

“아, 그런 배경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좀 더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사라가 압바스의 심기를 헤아렸는지 정중하게 요청했다. 압바스는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을 골똘히 하더니,

“우리들의 옛 어른들이 겪은 수난을 여러분은 잘 모릅니다. 네스토리우스가 세계 기독교의 최고 어른 자리에 있었는데, 비록 그가 정치적 패배를 했다고는 하지만 추방 이후 AD 451년 사막의 모래더미에 쓰러져 세상을 떠나기까지 20년 동안 짐승도 그렇게 다룰 수 없을 만큼 수치와 수모를 안겨준 로마파 교회에 저주로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거든요. 그러나 다 생략하고,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정리한 세계 선교의 포부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가 가끔씩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전해준 필담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선교를 부탁하신 것이다' 또는 '로마교구는 기독론에 지나친 몰두를 하고 있다. 우리는 아시아의 드넓은 대지 위에서 기독론의 균형을 잡기 위한 삼위일체론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씀을 특별히 당부하셨다더군….”

“아, 그러셨군요. 그렇듯 깊은 포부를 가슴에 담으셨군요.”

사라는 한숨을 쉬었다. 그녀도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사막에 버려진 이후 철저하게 격리되어 사막의 들개나 늑대, 황충과 독사들만이 그의 친구 될 수 있는 삶을 살면서도 그의 제자들을 돌보면서 위로했으니, '지옥보다 더 고약한 곳에서 살면서 아시아 선교의 포부와 함께 기독교 교리의 약점을 걱정하셨구나'까지 생각하다가 압바스에게 말했다.

“감독님, 네스토리우스는 분명히 우리들의 지도자입니다. 저희도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님의 포부를 따라서 아시아 선교를 반드시 성공할 것이며, 삼위일체 신학을 로마교구보다 더 균형잡힌 단계까지 끌어올리도록 하겠으니 저희를 가르쳐 주세요.”

“같이 노력합시다. 그러나 내 경험까지 포함해서 한마디 하겠는데 우리는 학자들이 아닙니다. 기초 신학의 터 위에서 영적인 단련을 위해 많은 기도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사라와 부친 압바스를 번갈아 살피던 알로펜이 입을 열었다.

“저희는 네스토리우스 같은 지도자의 포부도 닮아야겠지만 지금 우리가 머물고 있는 페르시아 기독교가 예수께서 하나님 자신임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의 사상에게 밀리지 않을 실력부터 길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 그렇다. 세계 교회 전체에게 무서운 악행을 저지른 마르시온의 구약 무용론과 영지주의 사상, 바다이산이나 타티안의 잘못된 사상, 그리고 마니교의 혼합사상, 아리우스의 단성론은 물론 고대 페르시아 제국부터 이 땅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조로아스터교 등 우리의 앞길에 절벽보다 무서운 장애물들을 헤쳐나가야 한다. 그들 모두 하나 같이 무서운 대적들이다. 아마, 너희의 아시아 선교길을 가로막는 최대의 적들이 될 것이다.”

“지금 말씀하신 적그리스도 사상들을 논리적으로 대적할 수 있는 실력을 길러주세요.”

알로펜은 축 가라앉은 듯한 감정으로 말했다.

“알로펜, 벌써 기가 죽었냐? 두려울 것은 없느니라. 적그리스도의 실체는 간단하단다. 그들은 예수님께는 신과 인간의 두 본성이 함께 하고 계시다는 이 가르침 하나를 두려워하는 자들이야. 이 가르침은 말야 머리에 그 뜻을 담으려고만 욕심을 내서는 안된다. 그 보다는 행동이 생각과 함께 할 수 있어야 하느니라.”

“어떻게 가능합니까?”

“믿음과 용기니라!”

압바스 감독은 크게 말했다. 그의 말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믿음이라는 말이 무엇인데요?”

“믿음이란 말이다. 나와 너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께서 지금 이 시간도, 앞으로도 계속 영원히 너와 나의 신앙을 지켜주시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말해도 알로펜과 사라는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나와 함께라는 말을 소홀히 듣지 말거라. 나와 함께라는 말은 내 마음 또 몸속에서 나와 함께 움직여주신다는 말이니라. 더 쉽게 말하면 믿는 자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함께 계신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할 때 나를 보았으면 하나님을 본 것이라고 하셨듯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합일(合一) 또는 동일(同一)체로서 내게 계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나와 함께 세상을 향하여 싸우시고 계신 이를 믿고 따르는 것이 믿음이요, 용기니라.”

사라와 함께 압바스의 서재에서 나온 알로펜은 생각을 정리하고 기도를 하겠노라고 밖으로 나갔다. 사라 역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꼈다.

다음날 수업시간이다. 알로펜이 보이지 않았다.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기다렸으나 알로펜은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알로펜 소식을 모르고 있는 압바스와 사라는 서로 대화는 하지 않았으나 걱정의 분량은 같았으리라.

부친의 서재를 나오던 날 밤, 알로펜은 혼자 있고 싶었다. 기도가 아니라 자기 생각 정리가 먼저였다. 지난 1년 정도의 생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아라비아의 무함마드를 만났던 날들, 그에게 은근히 열등감을 느꼈던 생각, 그러나 그의 생각을 다잡아준 사람은 외할아버지 야고보 노인과 마리아 교수다. 외할아버지가 그립다. 마리아 교수님이 보고 싶다. 특히 마리아 교수가 시리아의 박물관에서 네스토리우스의 일화를 들려주고, 또 비단천 위에 쓴 네스토리우스의 글을 읽어주던 그때, 마리아 교수의 눈가가 사르르 떨리며 가장자리부터 젖어오던 눈물 머금은 그 얼굴을 계속 바라볼 수 없었던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이제는 가해자인 키릴루스 알렉산드리아 주교를 용서할 수 있다는 네스토리우스의 진심이 담겼을 내용도 기억이 난다. 에뎃사에서 아시아행 선교를 출발해 달라는 간곡한 내용도 떠오른다.

알로펜은 시내를 벗어나서 어느 산비탈에 오르고 있었다. 내가 걸으면 모두 길이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길이 아니어도 좋다. 길이 아니어도 가야 한다. 아시아의 길로….

알로펜은 나무 숲 깊은 곳으로 갔다. 밤 추위를 피해야 했다. 울창한 숲 한가운데로 가서 엎드렸다. 내게는 믿음과 용기가 필요하다. 주 예수께서 나와 함께 이 길을 동행해 주신다. 원수가 앞을 가로막으면 나와 함께 싸워서 물리쳐 주실 것이다. 주가 함께 하시면 평소 내가 가진 힘의 1천배 정도를 더해 주신다고 여호수아의 책에 기록되어 있다. 두려워 말자. 어머니 품 안에 안기듯 자기 두 팔로 자기 가슴을 감싸 않았다.

내게 위로를 더하소서 어머니. 알로펜은 어머니를 속삭이듯이 불러보았다. 돌이켜보면 어머니와 사별한지 2년이 넘었으나 어머니를 그리워해 볼 겨룰이 없었다. 어머니가 그리워서 찾아간 외갓집, 외할아버지는 내가 어머니 생각에 사로잡힐 틈새를 주지 않았다. 외할아버지 야고보 장로는 내가 네스토리우스 만큼은 되어서 기독교 역사에 큰 일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녀석아, 내가 가진 재산 하나도 나는 따로 챙기지 않을 거야. 모두 네가 가져다가 아시아 기독교의 길을 여는데 사용하거라.'

내 귓가에 속삭이실 때는 농담처럼 들릴 때도 있었다. 할아버지 재산은 할아버지 것만은 아니잖은가. 외숙부들, 숙모들, 조카와 형제들, 할아버지의 형제들…. 그런 말을 알로펜이 상기시켜 드리면 '이놈아, 그런 걱정 말거라. 모두 다 자기 먹을 만큼은 가졌느니라. 그리고 내가 이 재산을 모은 것은 아시아 선교용이라고 하나님과 약속한 것이니라.'

알로펜은 자기가 매우 행복한 놈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가 어머니 이야기를 꺼낼 때면 할아버지는 애써 외면하시면서, '년석아, 내가 있잖으냐. 너는 어머니의 작은 사랑보다 주 예수의 큰 사랑을 생각하거라. 그리고 사랑을 받을 생각보다 사랑을 나누어줄 상대를 찾아서 애써야 하느니….'

알로펜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몸이 차가워서 눈을 떴더니 옷이 젖어 있었다. 간밤에 가랑비가 내렸었나보다. 그러나 그는 잠시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들었다. 눈 앞에 쏟아지는 강렬한 햇빛에 벌떡 일어났다.

새 아침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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