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누스 모친 헬레나교회와 실레마을.

알로펜은 찌를듯이 작렬해 오는 늦은 아침의 햇빛에 눈을 바로 뜨지를 못했다. 너무 늦었다. 부친은 물론 안토니의 모친 사라께서 많이 걱정할 것 같았다. 금방 달려가야 한다는 마음이 드는가 했는데 사라의 얼굴이 떠오르자, 주춤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알로펜은 자기 마음 속에 도사린 갈등을 발견했다. 사라에 대한 부담스러운 생각이 자기 안에 자리잡고 있음을 발견했다. 의외였다. 안디옥 일명 이단자들의 촌에서 만나 배움을 얻었고, 친구 안토니의 어머니지만 친어머니처럼 의지하고 따르던 그의 마음에 어찌하여 사라가 불편으로 작용하게 된 것일까.

궁금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을 바꾸었다. 시가지를 멀리 벗어나 어딘가로 가고 싶었다. 여행을 떠나버릴까? 충동이 일어났다. 에뎃사로 가고 싶었다. 에뎃사 가는 길은 니스비시를 통해서다. 네스토리우스파가 아시아선교를 본격화했던 곳이고, 지금도 많은 네스토리우스의 제자들이 니스비시는 물론 에뎃사에 남아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알로펜은 얼마 더 걷지 못하고 그자리에 주저 앉았다. 갑자기 눈앞에 뿌옇게 흐려지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는 나뭇 그늘 아래로 자리를 옮겼다. 한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얼굴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오를 비껴 지난 태양이 서쪽으로 방향을 접고 있었다. 푸르른 하늘 빛을 보니 시원하고 가슴이 뻥 뚫린듯 몸이 다시 가벼워졌다. 내가 너무 유약하구나. 이런 자신감으로 무슨 일을 해내겠는가. 배가 고프면 밥을 마련해 먹을 용기도 없이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가. 자신의 꼬락서니가 한심해 보였다.

서두르지 말자. 한번 더 주께 기도하고 떠나도 늦지않다. 생각을 정돈하기 위하여 하룻밤 더 기도하기로 했다. 어제밤 쉬었던 동굴을 찾아가려다가 주변을 향해 두리번 거리던 그의 눈에 교회당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큰길을 벗어나서 들길을 따라 걸었다. 마을 뒤 산언덕에 있는 교회당은 아주 작았다. 멀리서는 종탑이 우뚝 솟아 교회당인가 했으나 아니었다. 종탑만 우뚝하고 예배당은 창고나 다름없는 오두막이었다. 그러나 그는 조심스럽게 예배당 문을 열려다 말고 기침을 한번하고 인기척이 있는가 잠시 기다렸다. 반응이 없었다.

알로펜이 인기척에 뒤로 돌아서는데 웬 늙은이가 마당 가에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구신가?”

늙은이가 알로펜에게 말을 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행색은 초라했으나 그의 얼굴은 평온해 보이고 특히 안광이 번뜩였다.

“네, 지나다가 교회당을 보고 들렀습니다. 기도하고 싶어서요….”

“아, 그래. 그럼 들어가서 기도하지 뭘 망설이고 있었나, 청년.”

“아, 네. 누구에게 양해를 구할까 망설였습니다.”

알로펜의 이 말이 끝나자, 노인은 크게 한바탕 웃으며 말했다.

“예배당에 가서 기도하는데 누구에게 양해를 구해. 예배당에는 따로 주인이 없음도 모르는 형편에 기도는 무슨 기도야.”

“…….”

알로펜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고, 노인의 신분마저 분간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르신은 누구신지요?”

알로펜은 용기를 내서 노인의 신분을 물었다.

“나는 이 교회 목사야. 아랫마을에 놀러가 있는데 주님이 내게 급히 말씀하시는거야. 내 집에 큰 도둑이 하나 들어갔으니 가서 잡으라고 말야.”

이렇게 말하고는 노인이 어느새 알로펜에게 다가와서 그이 솥뚜껑 같은 손으로 그의 어깨를 툭 친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럼 내가 도둑인가요?”

“그거야 내가 아는가. 예수께서 그리 말씀하셨으니 도둑이겠지.”

낭패로구나. 이 늙은이가 정신이 나간 사람이구나. 그러나 밀리면 안된다. 내가 도둑이라니. 알로펜은 단호하게 변명했다.

“목사라면서 그런 식으로 생사람 잡으려 하지 마시오. 나도 신자이고, 내 아버지는 목사님이시오. 이렇게 신분이 분명한 내게 도둑 누명을 씌우시다니 너무 하지 않습니까.”

“그래, 그럼. 주님이 내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노인은 알로펜의 거센 항의에 주춤하는듯 하더니,

“맞다. 목사 아들이라 했지. 그래, 목사나 목사 아들들 중에 도둑이 많지. 암, 많고 말고…. 그러나 목사 아들 도둑은 고급에 속할수도 있으니 일단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세나.”

이 사람이 보통이 아니라는 느낌이 머리에 스쳐갔다. 기인이거나 하나님의 어떤 비밀을 가진 인물일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다. 자기 신분을 목사라고 밝히면서 목사나 목사 아들은 도둑으로 단정하는 솜씨를 보면 특별한 인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노인 목사를 따라서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다. 밖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내부는 단정하게 정돈되어 있는 아담한 예배처가 분명했다.

“목사님, 죄를 지었습니다. 몰라뵈서 죄송합니다. 제 이름은 알로펜입니다. 인사받으세요.”

알로펜은 넙죽 엎드려 정성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노인은 손사레를 치면서 반쯤 몸을 돌려 앉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하이. 내가 사실은 도둑일세. 목사라는 신분으로 제 노릇을 못하니 도둑이지. 도둑 눈에는 도둑이 잘 보이는 법이야.”

“아닙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말씀의 의미를 못알아들어서 죄송합니다.”

알로펜은 두 손을 모아 쥐고 노인에게 정중하게 말했다. 그의 이마에서 또 등줄기에서 진땀이 흘렀다. 시장기가 지나쳐서 그런것 같았다.

“청년, 어디 아픈가?”

노인은 알로펜의 이마에서 번들거리는 진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 아닙니다.”

“그럼, 어디 보세. 이마 한 번 만져 보겠네. 그리고 손목도 좀….”

노인 목사는 알로펜의 이마에 손을 얹어보고, 팔목을 잡고 맥박을 보는 솜씨가 마치 의사의 손놀림 같았다. 노인은 그의 가슴깨로 손을 옮겨 보기도 했고, 아랫배도 눌러보았다.

“아이쿠!”

알로펜은 그의 손이 아랫배를 누르자 칼로 찌르는듯한 두려움을 느끼고 비명을 질렀다.

“옳지. 병이 단단히 들었구먼. 내가 약을 마련해주지.”

노인은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서서 옆방으로 가서 차를 한 잔 가져오고, 그가 들고 다니는 보따리를 펴더니 주먹만큼씩 큰 빵을 두개나 꺼냈다.

“이걸 먹으시게. 많이 굶었구먼. 어디서 금식기도를 했나, 청년!”

힘 있고 다정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따뜻한 그의 말, 또 편안하게 먹을 것을 마련해주는 솜씨가 다마스커스의 야고보 할아버지를 대하는듯 했다. 알로펜은 기가 팍 죽었다. 어른의 눈썰미나 꿰뚫어보는 안목에 기가 꺾였다. 사물과 인생을 바라보는 노인의 여유에서 나왔을까, 아니면 너그러움에서 일까. 그야말로 개눈 감추듯이 어른 주먹보다 큰 빵 두개를 먹어치우니 세상이 새롭고 아름답게 보였다면 과장일까.

말없이 알로펜을 지켜보던 노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것 같았다.

“이 사람아, 예수도 그렇게 먹어치우게. 넉넉하게 먹고 충분히 소화시키는 것이야. 자네 보아하니 고민이 있는듯해. 고민 따위를 가슴에 담을 나이도 아직은 아니잖아.”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하여 그 뜻을 종잡을 수 없었다.

“무슨 말씀이죠. 예수를 먹다니요.”

알로펜은 눈을 껌뻑거린다. 그는 노인이 한마디 할때마다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도둑, 목사니까 도둑이라는 식의 말이 쉽게 나오는가 했으나 이제는 예수를 먹고, 넉넉하게 먹으라니 무슨 말인가?

“그렇다네. 예수는 우리 인생의 먹거리가 되기 위해서 오셨지. 거 있잖아. 베들레헴 마굿간 말밥통 속에 첫번째 세상 경험을 한 예수는 그거잖아. 짐승들의 먹이통 속에 왔으니 먹거리지 그럼 그게 뭐겠어. 요한복음에도 있잖아. 그리고 내가 하늘에서 온 떡이다. 내 살 먹고 내 피 마셔야 너희에게 생명이 있다면서 고함지르던 예수를 못만난거야?”

“……?”

“이 사람이 떡 한덩이 먹어치우더니 취한거야. 왜 말을 못알아들어….”

알듯 했다. 생각이 맑아진다. 그리고 노인 목사가 하나님처럼 보였다.

“선생님, 가르침을 주소서.”

알로펜은 노인의 허리춤을 붙잡고 매달렸다. 역시 그는 아직 어렸다. 노인의 눈에는 알로펜의 마음이 무척 순수하게만 보였다. 재목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세르기아 목사의 눈에는 알로펜이 싹수가 있어 보이는 인물이었다.

“내가 이미 하대 하여 자네라고 했지. 총명해 보이더군요. 그럼 선생님 노릇해 볼까…”

“네. 선생님!”

“그래. 그런데 자네는 생각이 너무 많아요. 생각들도 짐이야. 짐들을 벗어버리라구. 페르시아 땅에 사는 예수쟁이들은 로마교회가 내다버린 오물 같은 것들을 붙잡고 쌈질이나 하지. 그 오물이 무엇인지 아나?”

“글쎄요?”

“그건 말야. 로마를 이기겠다는 욕망이야. 로마교회와 페르시아 교회가 교리 싸움하느라고 기독교를 다 망치고 있어요. 자네는 휘말려들지 말게.”

“네. 무슨 말씀이신지 조금은 알겠습니다. 더 배우겠습니다.”

“그래 자네, 지금 방황하고 있지. 쉽게 말하면 길을 잃었다고나 할까?”

“네.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이 길 위에서 길을 잠시 잃었으나 이제 길을 찾았습니다.”

“그래, 길을 찾았어?”

노인은 짐짓 심각한 얼굴을 해보며 알로펜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네, 여기 계시잖아요.”

알로펜이 세르기아 목사의 가슴께로 손을 내밀었다.

“엣기, 길은 예수야. 잘 못 맞췄어.”

세르기아 목사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깜짝 놀란다.

“스승님, 왜 그러세요. 저 바보 아니예요. 스승님 이 가슴 속에 예수께서 숨어계시구먼요.”

알로펜은 자신 있다는 듯이 세르기아 노인의 가슴팍을 헤집었다. 땀내나는 그의 겉옷은 맨살 뿐이었다. 구리빛 그의 가슴이 드러나고 가슴팍에 솜털들이 웅성거렸다. 알로펜은 노인의 가슴털을 한주먹 쥐고 흔들었다. 장난기까지 발동했다.

“아이구, 내가 선생인줄 알았더니 그대가 내 선생일세.”

세르기아 목사는 알로펜을 얼싸않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진리와 진리가 공유공간을 확보한 것인가. 의기투합이라 해도 되는 것일까. 세르기아 노인과 알로펜은 일어나서 함께 춤을 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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