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의 한 지방에서 만난 중년의 남자가 먼 산을 바라보고 있다.

알로펜은 세르기아 목사를 통해서 또 하나의 세계를 배웠다. 자유하는 신앙이다. 그의 어린나이로 볼때는 조금 건방지다고 지적할 수도 있으나, 어제밤 잠들기 전까지 세르기아 목사는 마치 숫처녀의 순결을 탐하듯이 또는 신혼 첫날밤 초야권을 행사하듯이, 할례를 베풀듯이라는 표현으로 말할 수 있을 만큼 알로펜을 다루었다.

한단계 상승하자는 것일까. 세르기아 목사와 하룻밤 지내는 동안 알로펜은 또 다른 눈을 떴다. 자기 몸을 내던질 수 있었다. 특별히 그를 감동시킨 세르기아의 발언은 '그렇다네. 예수는 우리 인생의 먹기라가 되기 위해서 오셨지. 거 있잖아. 베들레헴 마굿간 말밥통 속에 첫번째 세상경험을 한 예수는 그거잖아. 짐승들의 먹이통에 왔으니 먹거리지, 그럼 그게 뭐겠어”라고 말할 때의 세르기아 목사의 자유로운 생각 이동이나 그의 상상력은 초월적 자유를 소유한 자요, 고승대덕이 노리는 선경(仙境)을 상상하게 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의 마음도 그렇게 느껴졌다.

이는 알로펜이 느끼는 세르기아 목사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것이지만 알로펜 자신도 묘한 흥분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세르기아가 소개한 상단(商團)을 따라 니스비스로 간다. 거기에 가면 우스만 장로를 만나고, 또 우스만이 그가 가야할 에뎃사 길 상단을 소개하게 되어있다. 그리고 에뎃사에 가면 또 거기서 알로펜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에비온 목사가 기다리고 있다.

알로펜은 하나님께서 세르기아 목사를 준비해 두셨다가 그의 활동폭을 넓혀주셨다는 생각을 하니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의 부친이나 사라에게도 자기 소식을 세르기아가 전해주기로 했으니 마음에 캥기는 짐을 대강 털어냈다고 판단했다.

“이 사람아, 니스비시 가는 길에 주는 떡만 얻어 먹으며, 빈둥거리지 말고 자네가 해야할 일은 스스로 찾아보게.”

“아유, 할아버지 목사님, 제가 어린앱니까. 저는 하나님이 준비한 배고픈 자를 위한 한덩이 떡이고 늑대나 여우를 쫓아낼 목동의 손에 있다면 작대기가 되어 열심히 나의 이웃을 도울 것입니다.”

“뿐인가, 복음에 무지한 야만인들을 만나면 뛰어난 교사가 되기 위하여 기도를 깊이 하고 경의 말씀을 충분하게 준비해야지.”

“당연하지요. 제가 세르기아 할아버지 제자인데요 뭘….”

“맹랑하구먼. 내게 슬슬 농담이나 하려드는 주제로 제자는 무슨, 나 네놈 같은 제자 둔 일 없어!”

세르기아 목사는 짐짓 화난 얼굴을 하다가 알로펜의 눈이 동그레지자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자네, 니스비시의 우스만 장로를 만나거든 장사하는 기술은 배워두게. 자네가 선교사로 아시아 저 멀리 중국까지 가려면 특별한 공부는 필요치 않고, 가서 머무는 지역마다에서 자네가 준비한 선교지 사람을 돕는 일을 찾아서 적절한 행동을 해야 할거야.”

“네, 알겠습니다. 저는 이미 기술도 터득했고, 신학적 방법론은 물론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이 넘치거든요.”

“이 사람, 건방지기는…. 내가 보면 자네는 애송이야. 아직 멀었어요.”

“목사님, 어린놈 기죽이지 마세요. 제가 애송이니까 뜯어먹기 좋지 않겠어요. 육식을 즐기는 징슴들이 먹기 좋도록 저는 날마다 날 잡어 잡수라면서 내 육신을 내던져버릴 것입니다. 사실은 이미 던져버렸어요. 내가 별도로 챙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애이 참, 이렇게 쉬운 진리 놀음을 두고 전 고생 많이 했거든요.”

“이놈의 애송이야. 재롱떨지 마라. 네놈이 너무 쉽게 건방을 떨다가는 어느 귀신이 잡아갈지도 모르지.”

“네, 명심할께요.”

알로펜은 말은 그렇게 했으나 그의 모습이 전에 비해서 변한 것 같았다. 얼굴이 상기되어 있고, 마치 술에 약간 취한듯 편안한 듯 그는 늘 미소짓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우스만 장로의 상단과 같이 행동하면서 꽤부리지 않고, 잔 일을 도맡아 했으며, 니스비시로 가는 한달동안 늘 유쾌한 모습으로 일했다. 중간 지점에서 소매상으로 나가기도 하는 일행과 함께 곳곳을 누볐다. 방물장사 노릇이다. 때로는 산골마을 깊은 곳으로 둘씩  짝을 지어간다. 길이 멀어서 중간에 하룻밤을 자고, 상단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었다.

니스비시 도착 후 우스만 장로에게 세르기아 목사의 서찰을 전했다.

“응, 알았네. 청년의 소식은 이미 들어 알고 있지. 그래 부친이 압바스 목사님이시라고…?”

“네, 장로님. 언제 누가 제 소개를 했나요?”

“응, 그게 뭐가 중요해. 자네가 여기 머무는 동안 불편없이 지내면 되겠지.”

“장로님, 불편해도 상관이 없어요. 세르기아 목사님으로부터 선교사는 배고픈 자에게 주기 위하여 따끈히 준비된 한덩이 떡이라고 배웠구먼요.”

“그런가? 대견하구먼.”

“아닙니다. 더 많이 배워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장사수단을 배워야겠어요. 여기까지 오면서 시골 마을들에 다니면서 물건을 파는데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면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사는 방식으로 의식주를 같이 하는 시간들이 좋았어요.”

“그래, 자네는 천생 선교사로 준비되었네 그려. 자네 부친도 젊었을때는 자네처럼 그랬지.”

“아, 장로님께서 저희 아버지를 아시나요?”

“그래 알지, 알고 말고. 우리는 친구사이지. 그러나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원하지 않네.”

우스만 장로는 아버지 친구라면서도 현재의 처지는 서로가 용납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교리적인 갈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약간 두려움이 스쳐갔다. 혹시 내쫓기지 않을까 해서다. 그러나 한순간 세르기아의 말밥통 먹거리가 떠올랐다. 빙긋이 웃으면서 우스만 장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 사람이 왜 나를 그렇게 보는가?”

“네, 내 아버지와 섭섭한 일이 있으시다는데 혹시 저를 내쫓으시면 어떻게 할까를 잠시 생각했습니다.”

“뭘 겁을 내나. 금방 내게 했던 말을 어찌하려고….”

“아, 예. 그건 그렇죠. 또 제가 배고픈 사람의 떡이 되려는 소망은 흔들림이 없지요. 그러나 아버지 친구신데 지금은 친구 아닌 것처럼 지내신다니 그게 걱정이 되는군요. 장로님, 혹시 교리선택이 서로 다르신가요.”

“그렇다네. 나는 자네 아버지처럼 네스토리우스만 정통이라고 보지 않지. 그리고 우리 기독교의 지금 상태가 못마땅하다네. 그래서 자네를 내게 소개한 세르기아 목사님을 존경하지.”

“세르기아 목사님은 어떠신가요?”

“그 어른은 모두 초월하셨지. 그분은 예수께서 나와 우리 인류를 대신하여 죽으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계시지만 우리같은 시리아파 단성론자들을 죄인시 하지 않거든. 그러나 자네 아버지는 다르지. 용납치 않는다네.”

“어떻게 하면 기독교가 가진 힘을 다시 하나로 뭉칠 수 있을까요?”

“글쎄, 그걸 내가 알겠는가? 자네는 아직 젊으니 앞으로 더 너그러운 기독교를 이루어가야 하네. 내가 볼 때는 단성론과 양성론 싸움은 페르시아와 로마의 헤게모니 싸움이 아닐까? 아니면 로마 중심자리를 차지한 로마교구의 횡포일지도 모르고 말이지.”

“저도 그런 생각을 가끔 합니다만….”

“그런가. 자네는 생각보다 총면하구먼.”

“과찬의 말씀입니다. 장로님, 저는 몇년 전에 다마스쿠스에서 메카에서 온 낙타몰이꾼과 몇일 대화를 해본 일이 있는데 그 친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는 생각을 지금도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래요, 그 친구가 뭐라던가?”

“자기들은 로마의 기독교에게 버림을 받았노라고 하더군요. 특히 그리스 사람들은 아라비아인들을 시궁창의 쥐새끼 만큼도 생각해주지 않는다고 심한 불만을 하더군요. 그러나 페르시아의 호의로 말미암아 자기들의 앞날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고 했어요.”

“그러던가. 그래, 그 젊은이의 이름은?”

“네, 메가의 10개 부족 중 최고 귀족 집안의 자손인데 이름은 무함마드라 했습니다. 저는 그 친구가 언젠가는 큰 사고를 저지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무슨 사고…?”

“그는 기독교를 잘 알고 있었죠. 기독교 약점이랄까? 그 친구는 기독교가 성부·성자·서령을 말하는 것은 다신교(多神敎”)나 다름없다면서 시비를 하고, 또 예수께서 어떻게 세상 사람 모두의 죄를 대신하여 없게 하느냐면서 증거를 대라는 식이었어요. 저는 그 친구를 만났을 때가지만 해도 기독교의 깊은 사정을 몰랐지요. 그 뒤 저도 어느 만큼 기독교가 탄생한 이후 지금까지 6백여년 살아오면서 어떤 과오가 있었나를 살펴보았죠.”

“그래,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기독교가 로마의 핍박기를 살아오면서 힘든 외부환경 때문에 충분한 성장기를 갖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 결과 2세기 중반 마르시온 같은 이단자가 나오고, 에뎃사의 바다이산, 앗수리아의 타티안 등 분명한 실수를, 그 결과 니케아회의(AD 325년∼)때와, 특히 에베소회 회의(AD 431년)때 네스토리우스를 정죄 추방했던 일이 기독교 역사에 중대한 과오가 되고, 치료하기 힘든 상처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고, 알로펜! 대단한 청년이네 그려. 자네 같은 인물이 성장하고 있는데 우리 같은 늙은이는 걱정을 놓을 수 있겠네.”

우스만 장로는 뛸듯이 기뻐했다. 그리고 알로펜의 두 손을 맞잡고 크게 격려했다.

“됐어. 자네는 믿을 수 있네. 나는 말야. 단성론과 양성론의 관계를 크게 우려하지 않아요. 어떤 세계든지 즉, 철학이나 과학에서 마저도 이론이 다를 수 있어요. 심지어 전쟁터에서 전술과 작전을 계획하면서 장수들끼리 충돌도 있지. 서로 다른 이론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양성론과 단성론으로 크게 둘로 나뉘어 있지요. 그러나 이 두 성향의 신학이 서로가 자신감이 있는 쪽이 역사의 평가를 받고, 세계가 그들에게 대표성을 주겠지. 예를 들어 양성론과 단성론을 배경으로 교회들이 성장을 하지. 그러나 그 열매의 시간은 냉혹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야. 앞으로 백년, 이백년, 삼백년을 지켜보자구. 어느 밭에 곡식이 더 잘되는가를 말이야.

주님께서도 그 열매로 승부를 내야 한다고 하셨지. 나는 지금 단성론에 기초하여 성경을 해석하고, 전도하고, 교회를 지도하지만 양성론 신학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들이 더 예수다운 신자를 길러내고, 주님의 영광을 드높이면 그때 나는 단성론을 버리고 양성론을 선택할거야.”

“장로님 말씀이 너무나 합리적이군요. 그렇습니다. 교리만 앞세우고 상대를 무시하거나 형제된 교회와 교회들이 서로 미워하고, 등을 돌리는 일을 한다면 신학적 시비 이전에 주님의 심판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우스만 장로는 말없이 알로펜을 껴안고 그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알로펜 역시 아버지 친구인 장로님과 아버지가 화해 가능함을 느끼면서 그의 품에 편히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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