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롭기만 한 터키 소아시아 지역의 한 도시.

잠시 머리를 식혀야 할 듯 했다. 서두르지 말자. 쇠붙이 하나 다룰 때도 불에 굽고 물에 던져 식히고 다시 불에 달구었다가 시뻘건 쇳덩이를 헤머로 두들기고, 또 굽고 식혀 다시 달구어 두들기기를 거듭하여 칼과 낫을 만드는데 하물며 사람 만들기인데 얼마나 더 많은 정성이 필요하겠는가.

저녁 때가 되자, 요나가 알로펜에게 말을 걸어왔다.

“알로펜, 왜 내게 네스톨리수라 하는 주교이야기 안하지?”

“응, 네스톨리스가 아니라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

“그래, 네스토리우스, 이름이 부르기 어렵구먼. 네스톨이라고 줄여서 부르면 좋겠는데….”

“참. 요나 형은 남의 이름 가지고 왜그래. 그분은 훌륭한 분이야. 우리 같은 말단 연습생들이 감히 그분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죄송하다구요.”

“젠장, 까다롭구먼. 귀족놀음 같아서 원….”

“요나 형, 그렇게 말을 하지 마소. 그보다는 어제했던 말을 다시 해보고 싶지않소?”

“그거, 억지 이야기. 억지스럽지만 내 아우가 간절하다면 다시 한 번 공부해 보자.”

“그래요. 공부입니다. 공부하는 정성스러운 자세가 좋아요. 나 역시 형보다 뭘 많이 아는 것은 아니지만 주 예수께서 내 죄를 대속(代讀)하셨다는 말은 좀 더 깊이 배워야해요. 특히 이 부분인데…. 거 성경 갈라디아서를 보면 이런 말씀이 있어요. 성경을 펴 봅시다.”

알로펜은 서랍 속에 넣어둔 성경을 꺼내들었다. 바울 선생이 쓴 갈라디아서 앞 부분에 한줄을 찾았다. 형 같이 읽어요. 그는 크게 읽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말씀을 따라서 읽던 요나가 갑자기 눈이 휘둥그래진다.

“뭐, 이런 말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요나는 알로펜이 읽어준 갈라디아서를 거듭 읽더니 알로펜의 등덜미를 우악스러운 그의 두 손으로 쥐어뜯듯이 붙잡고 흔들었다.

“아이코, 나 죽소. 나 죽어.”

알로펜이 장난섞인 말로 죽는 시늉을 했다. 그가 몸에서 힘을 풀었으나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중심을 잃을 지경이었다.

“알로펜, 이 말씀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요나는 성경 한 구절 읽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있었다. 요나의 우는 모습을 뒤늦게 발견한 알로펜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요나의 손을 잡았다. 그의 손이 떨고 있었다.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요나의 두 손 뿐 아니라 조심해서 상체를 껴안았다.

요나가 알로펜의 품에 안겨서 '어헝'하더니 소리내서 울었다. 그러나 곧바로 울음소리를 죽이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는 것일까. 알로펜도 소리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들 둘이는 함께 울고 있었다. 눈물의 의미는 각기 다를 수도 있지만….

“알로펜, 믿음 안에서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고 가르쳐 주어야 더 정확한 말씀이 될 것 같아. 이제는 알겠어. 주님이 죽은 것이 곧 내가 죽은 것이야. 죽기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내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한 방법이 주 예수의 죽으심이구먼. 그렇지. 내 말이 틀리지 않지?”

둘이 엉켜서 울다가 요나가 알로펜에게 들려주는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다. 이렇게 쉽고, 이렇게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요나는 축복받은 사람이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다.

“형, 형은 크게 축복받았어. 주님이 형을 많이 사랑하셨나봐. 어려운 부분의 말씀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시다니….”

알로펜은 거듭 감탄하면서 요나를 다시 한 번 더 편안하고 따스하게 붙잡아 주었다. 주님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음에 대한 성경말씀을 쉽게 이해하는 요나의 앞날을 마음껏 축복했다. 알로펜은 자기의 주변에서 여러명의 사람들이 예수의 대속(代讀)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반발하고, 등을 돌렸음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요나는 성경 한 구절 읽고 결단을 했다.

“주님이 나를 많이 사랑하시나봐. 갈라디아서를 읽는 순간,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라는 말씀이 가슴에 와닿더라구.”

“그랬어요 형! 그건 기적이야. 그 말씀이 단번에 형의 가슴을 뚫었어요. 그래서 축복이라는 것이죠. 그 말씀을 열번 백번 읽으면서도 형처럼 감격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런가, 그럼 주님이 나를 정말 사랑해주시는 것이 틀림없지, 그렇지?”

“그렇다니까, 형이 조금전에 뭐라고 했더라? 응, 그렇지. 주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다 했지 그렇죠.”

“…….”

“주인공이 바뀐거야. 주님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라는 뜻이야….”

“자칫 건방진 놈이 될수도 있겠네. 그러나 나는 그게 더 쉽게 느껴졌어. 주님의 십자가와 내 죽음이 동반했으니 주님의 생명이 내게 가득이야. 그래, 그러니 내가 복 받은 놈이지.”

요나는 자신감 넘치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많이 행복해 했다. '내 이름이 복을 불러온 것일까, 아니야. 알로펜이 내게 복을 준 것일거야' 하기도 하면서 혼자서 흐뭇한 마음 뽐내고 있었다. 알로펜이 그의 곁에 있는데도 혼자서 웃기도 하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다음날 요나와 알로펜은 예전처럼 멀고 가까운 마을을 돌면서 물건을 팔고, 산골 깊숙히 들어가는 날이면 마을 사랑방에서 잠을 청하는 날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날 요나는 알로펜에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꺼냈다.

“알로펜, 지금 내 가슴 속에 귀신들이 우글거린다. 그들은 내게 속삭이기를 알로펜의 유혹에 빠지지 마라. 너는 네 인생이 있다. 무슨 개뼈다귀 같은 소리로 너를 유혹하는 자는 악귀보다 더한 무서운 놈이라고 속삭이거든….”

알로펜은 요나의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다가 껄껄 웃었다.

“왜 웃어, 내 말이 무섭지 않나?”

요나는 알로펜의 웃음소리에 기가 죽은 듯 그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알로펜은 요나의 오른손을 꼭 쥐고 말했다.

“형, 주님이 형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고 계신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형도 주의 말씀을 붙잡아야 해요. 나는 형을 믿어요. 형이 만약 믿는 마음이 없다면 내가 형에게 귀신들의 장난이 있을 것을 말해주지 않았을거야. 그러나 형이 주님을 믿고, 또 나를 신뢰하기 때문에 귀신들의 유혹에 대해서 말해준거야. 사탄은 늘 우리를 하나님 앞에 고발하는거야. 뱀의 자식들은 늘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책에 자신의 진실을 분명히 밝혀두셨잖아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알로펜이 암송하는 성경 말씀을 요나는 큰 소리로 따라 하고 있었다. 알로펜은 요나의 순수하고 정직한 모습에서 더없는 감동을 받았다.

“형,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의 성경책의 기록으로 이렇게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귀신들은 저희들 기분데로 지껄이는 것이니 잡념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늘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세요.”

“응, 알았어.”

그러나 요나는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비슷한 하소연을 해왔다. 알로펜은 요나의 심약한 마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때로는 같이 허우적거리기도 했다.

“형, 우리 하루쯤 장사를 쉬고 같이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 나 찬성이야. 나는 말씀공부가 너무 부족해. 알로펜은 정말 내 선생이야, 잘 부탁해.”

그들은 산비탈 아늑한 나무 그늘 아래 짐을 풀고 앉았다. 오늘은 장사를 쉬기로 했다. 저녁이 오자 요나는 알로펜의 눈치를 살폈다. 해가 서산으로 완전하게 방향을 잡았는데 알로펜은 점심때부터 해오던 아브라함 이야기를 혼잣말처럼 계속했다.

“…이삭이 말이죠. 아버지 번제로 드릴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하면서 그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뒤처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지요. 그러나 이삭의 등에는 아브라함의 어린 아들 이삭을 제단에 불태워 바칠 나뭇단이 짐지워져 있었죠.”(창세기 22장 이야기다)

“뭐야, 실제로 어린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 했다는거야?”

“그렇죠. 하나님의 명령이잖아요.”

“100살에 낳았다며, 그렇게 귀한 자식을 병들어서 죽게 하는것이 아니라 자기가 죽인다고…?”

“그렇죠. 아브라함이 어린 이삭의 묵줄을 끊어 죽게 하고, 그것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아들을 제물로 나뭇단 위에 놓고 하나님께 제사드린다는 것이죠.”

“아, 잔인해라. 어떻게 그같은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인지.”

“그렇죠. 어느 측면으로 보면 잔인하죠. 그러나 아비가 100살에 얻은 자식을 몸소 목을 잘라서 제단에 바칠 각오를 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죠. 성경은 아브라함의 이 순간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능동적 의지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삭이 예수 역할이고, 모리아가 골고다의 그 현장이라고나 할까….”

“아, 잠깐 내 우둔한 머리통에도 빛이 반짝하는구먼.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해(自害)와 같은 이런 행위는 자기 아들을 희생시켜 오늘 우리 인간의 구원을 이루신다는….”

“그래요, 그거예요. 요나 형은 정말 축복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어찌 이렇게 잘 이해하는지…. 그런데, 형 왜 뭐가 불편해요. 집중력이 떨어진 것 같아서요.”

“응, 밤이 되었는데 우리는 어디서 자는 거야?”

“아하, 형 여기죠. 여기가 우리가 밤새워 기도하며 쉴 수 있는 집이에요.”

“뭐야, 날 놀리는거야!”

알로펜은 요나를 달랬다. 그는 고난이라는 것을 말해줬다. 앞으로 선교현장에서 활동하려면 길 가다가 길이 막히는 곳을 만나고, 길을 걷다가 밤중까지 인가를 찾지 못하여 토굴을 찾아야 할 수도 있고, 때로는 사나운 짐승들의 굴속에 들어갔다가 짐승들과 밤을 세워야 하는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요나에게 해주었다.

“아이고, 무서워라. 짐승들 틈에서 잠을 잔다?”

“그래요, 3세기, 아니지 3세기가 아니라 우리들의 모범 사도인 바울선생 때도 굴속에 들어가서 추위를 피하고, 잠을 자는데 새벽녘에 잠을 깼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더듬어 보았더니 큰 짐승이 바울선생과 등허리를 마주하면서 잠을 자고 있었다더라구요.”

“에이, 거짓말. 그런 말 성경 어디에 있나?”

“성경에는 없으나 사도시대나 그 이후의 시대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오늘밤은 여기서 푹 쉬기로 합시다.”

“아이고, 나 죽었다.”

요나는 알로펜 곁으로 한발 다가서서 지금 자기가 맹수에게 쫓기기나 한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는 어른스럽기도 하고, 대범해 보이는 알로펜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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