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기아의 크데시폰행


                           터키 소아시아지역에 자리한 두란노서원.

세르기아 목사가 알로펜의 부탁을 전달하기 위하여 크데시폰으로 향했다. 압바스 감독 서재로 찾아간 그는 걸출한 목소리로 압바스에게 인사했다.

“아이고, 감독님! 오랜만입니다. 나 세르기아 올시다.”

압바스는 갑자기 나타난 세르기아를 보자 당황스런 표정을 짓는다. 압바스 보다 연장자일 뿐 아니라 그의 사상적 흐름을 당해내기도 벅차거니와 무엇보다도 양성론과 단성론으로 차별되는 기독교의 기본에 대해서도 마치 소꼽놀이처럼 취급하려드는 그가 늘 거북스러웠다. 같은 자리에 마주하기도 조심스러운 존재였다. 그런 그가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으니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다는 것인가.

“아, 어찌 전갈도 없이 누추한 곳에까지 오셨습니까?”

“어허, 그러지 마시오. 누추하다니. 그 말 뜻을 모르겠소. 혹시 뒤집어서 하는 말이 아닐까요? 감독님에 비해 상대도 되지 않은 목사로서의 내 꼴, 더구나 이제는 늙어서 위에서 부르시는 날이나 기다리는 보잘 것 없는 늙은이라고 비꼬는 것은 아닐지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솔직히 말해서 세르기아 목사님의 영적 경지를 부러워하고, 또 존경하는 나머지 한 말인데 거북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세르기아는 압바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신학적 틀을 무시하는 신비주의자라고 쏘아붙이던 그가 지금 하는 말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아닙니다. 고맙소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오늘 찾아온 용건은 아드님의 요청에 의해서입니다.”

“뭐, 뭐라구요. 내 아들 알로펜이 세르기아 목사님과 함께 있습니까?”

“아니오. 니스비시로 가는 길이라며 가다가 나하고 스쳤지요. 하룻밤 나와 함께 지내고는 그 다음날 떠났어요. 아버지와 선교 동지들께 안부를 전해달라 했는데 내가 차일피일 하다가 너무 늦게야 이렇게 왔소이다. 또 아드님이 쉽게 돌아올 뜻이 없는듯 하여서 나도 조금은 느긋했구요.”

“아, 그렇습니까. 그 녀석이 목사님께 피해를 끼쳤군요. 저는 아들이 갑작스럽게 어디론가 가버린 후, 이것이 내 아들의 인생이려니 하고 지냅니다. 아들이 아시아 선교 준비를 한다면서 도와달라해서 몇몇 친구들에게 신앙지도를 해오고 있었는데, 마침 잘 오셨습니다. 이따가 한 시간 강의를 부탁합니다.”

“아니오, 아니고 말고. 내가 저들 순진한 사람들에게 허튼소리나 하게 되면 큰 일이죠.”

“아니오. 상관없습니다. 저 사람들은 머지않아 아시아 선교를 떠납니다. 아시아 가는 길에는 아시는대로 마니교를 비롯하여 페르시아 종교, 힌두교, 불교 등 이제는 우리 기독교 사람들도 보다 전문적인 공부를 한 후 아시아 무대를 겨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세르기아 목사님의 종횡무진으로 열린 가르침이 좋은 약이 될 것입니다.”

“왜 그러시오. 압바스 감독님. 더구나 감독님은 네스토리우스의 제자이시며, 그분의 아시아 선교의 사명을 대신하지 않소. 자칫 나같은 작자가 끼어들어 이단냄새 나는 소리나 지껄였다가 다 만들어놓은 그릇 깰까 두렵소이다.”

“그러지 마시오. 나는 네스토리우스의 제자가 아닙니다. 다만 그분의 억울함에 동의하며, 교리신학적으로 네스토리우스에 동반하는 것일 뿐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로마식 기독교나 페르시아식 기독교를 반드시 극복해야만 아시아 사상과 종교들의 형식을 돌파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아시아 세계로 가서 설교를 하려면 로마 기독교의 단순 수출이 아니라 아시아인들이 감당해낼 보다 수준높은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만….”

“알겠습니다.”

세르기아는 직감으로 압바스가 이전까지 자기가 생각했던 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찌된 일일까. 언제 그에게 사상적 전환점이 있었을까?

그때, 사라가 찾아왔다. 오늘도 선교학교 지원생 2명이 또 찾아왔다는 보고를 위해서였다.

“사라 선생, 인사드리세요. 알로펜의 소식을 가지고 오신 세르기아 목사님이십니다.”

사라는 알로펜 소식이라는 말을 듣자, 깜짝 놀라 펄쩍 뛴다. 경망스럽게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잠시 등을 돌려 감정을 추스르고 세르기아 목사에게 인사를 올렸다.

“목사님, 우리 알로펜 어디 있어요?”

“허어, 걱정이 많으셨나봐요. 하지만 걱정마시오. 알로펜은 지금 니시비스나 에뎃사 쪽에서 선교사 훈련을 하고 있을 겁니다. 내가 저를 도와줄 만한 어른들께 소개장도 써주었지요.”

“아, 왜 그랬을까?”

사라는 자기를 버리고 떠나버린 알로펜이 야속하기도 했다.

“목사님, 저에게는 소개장 써주셨다는 말씀을 안하셨잖아요.”

압바스가 빙긋이 웃으면서 세르기아를 바라본다.

“그냥 묻어두려 했는데 사라 선생이 우는 모습을 보니 걱정을 조금 덜어주고 싶었소. 그런데 사라 선생은 알로펜의 누구시오. 궁금하구려.”

“어머니랍니다.”

압바스가 퉁명스럽게 한마디 던졌다.

“뭐요. 어머니라니? 알로펜의 어머니라면, 그럼….”

“세르기아 목사님, 엉뚱한 상상을 하시나요. 아버지와는 상관없는 어머니가 된답니다.”

“모를 소리로고…. 무슨 말인지 원….”

사라가 나섰다.

“세르기아 목사님. 알로펜은 제 아들의 친구입니다. 알로펜이 안디옥교회 지역을 혼자서 여행하던 중에 저의 동네에서 잠시 생활했는데 아들 친구니 절더러 어머니라 했답니다.”

“응, 그렇구먼. 그럼 이제 어찌하나. 그 몹쓸 아들이 어머니 눈물 깨나 흘리게 하고 있으니….”

“걱정 없습니다. 제 아들 알로펜은 신앙과 사상, 세상 물정에 대해서도 매우 어른스러운 장부입니다. 그가 이 어미를 떠나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저 드넓은 아시아 세계에 주 예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사라가 다부지게 말했다.

“미쳤구먼. 또 미치광이들을 여기서 만났군.”

세르기아의 내뱉는 한마디에 사라의 입이 쩍 벌어지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그녀의 얼굴이 이그러진다. 그녀는 압바스 감독을 슬쩍 바라본다. 그런데 압바스가 빙긋이 웃는다. 사라는 세르기아 목사에게 말했다.

“목사님! 무슨 말씀….”

“뭐, 내가 잘못 말했소. 예수에게 미친 귀한 사람들이라는 뜻인데 왜 그러시오.”

그제서야 사라는 긴장을 풀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 시간, 선교사 훈련학교 강의실에는 학생들이 20명 쯤 모였다. 압바스가 나서서 예배를 인도하고 오늘은 특강시간이 있다고 소개했다. 신약의 예언자이신 세르기아 목사라고 소개했다. 세르기아가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강단 앞으로 나갔다.

“나는 여러분에게 알맞은 내용을 준비하지 못한채 여기에 섰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친구 알로펜 소식을 전하러 왔다가 압바스 감독님의 요구를 뿌리치지 못하고 나왔어요.”


알로펜 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세르기아 목사의 말에 장내는 웅성거리고, 서로들 얼굴을 마주치기도 하는 학생들에게 세르기아는 말했다.

“알로펜은 더 큰 은혜를 사모하여 니스비시와 에뎃사 쪽에서 그의 평생 목표인 아시아 선교훈련을 별도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가 니스비시로 가던 길에 나를 만나 하룻밤 같이 지냈는데, 그 친구는 대단한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소. 나는 첫마디부터 알로펜과 대화를 하면서 아직 앳된 젊은이, 기껏 애송이가 분명하거늘 이렇게 당돌할까 하고 내가 오히려 주춤거릴 만큼 그는 총명하더군요. 그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 대목이 있었소. 알로펜 이 사람아, 예수에게 걸려 넘어지지 말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는 즉시 내게 역공을 했어요. 내가 보니 목사님이야 말고 예수에게 짐이 되어 사시는 사람 같다고 받아치더라구.”

세르기아가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학생들이 우아하, 하고 웃었다. 잠시 기다렸다가 세르기아는 말을 이었다.

“괘씸한 놈, 어른 앞에서 건방지고 당돌하다고 했지, 그랬더니 그 친구 하는 말 들어보게, 내 참 그녀석이 그래 진리를 논하면서 어른 아이를 구분하는 것은 진리탐구의 자세가 아니라는거야.”

이번에는 청중들이 침묵으로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학생들, 여러분이 페르시아를 비롯한 아시아 선교의 선두에 서겠다는 포부를 내가 대충은 들어 알고 있소. 그것이 사실이라면 먼저 우리가 살고 있는 페르시아 땅이 지니고 있는 사상과 종교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는 힌두교와 마치 쌍태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요. 우선 조로아스터교는 유일신 신앙이기는 하지만 내면 깊이 들어가면 이원론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봅니다. 힌두 사람은 표면적으로는 이원론이지만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유일신론적 가치가 담겨 있지. 그래서 나는 이 둘은 쌍태아, 마치 이란성 쌍태아처럼 외형이 다르지만 하나에서 출발했다고 봅니다. 여러분 아시죠. 힌두교에서 불교가 나왔고, 불교와 조로아스터교 그리스 사상, 유대교와 기독교가 뒤섞인 사상체계는 페르시아에 터를 잡은 마니의 마니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앞으로 우리가 아시아 선교에 본격적으로 나서면 마니교가 우리들 곁에서 친구도 되어주지만 우리 기독교의 본질, 기본 성품을 훼손시키는 악역을 담당하겠죠. 힌두교나 불교, 조로아스터교, 헬레니즘이라는 종교성 짙은 철학까지도 우리를 유혹하겠고, 파미르 고원을 넘으면 중앙아시아는 물론 타클라마칸의 오아시스 국가들에 이들 동서양의 종교들이 모여들고, 대륙의 종교인 유교나 도교, 그들을 뒷받침 하는 중국의 철학과 사상들이 무서운 힘을 가지고 덤벼들 것입니다.

과연 로마나 페르시아의 편가르기식에서 나약하게 성장한 기독교가 앞으로 닥칠 거대하고 집요한 인도나 중국의 사상과 종교들과 어느 만큼의 경쟁력으로 마주할지 걱정입니다.”

세르기아 목사의 강의는 억센 강줄기처럼 쉬지 않고 계속되었다. 학생들이 어느 만큼의 이해를 해낼지는 모르겠으나 사라가 생각할 때는 귀한 강의였다. 유익하고 앞으로의 준비를 위한 좋은 가르침이었다. 세르기아 목사는 그날 이후 특별 교수로 초빙되어 한 주일에 한번씩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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