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의 사도바울 유적지를 찾은 한국 기독교인이 현지인이 장식품을 살피고 있다.

크데시폰 선교학교 수업시간이다. 오늘도 지난번에 이어서 세르기아 목사의 특강시간이다. 세르기아는 학생들을 향하여 목소리르 한껏 높여서 말했다.

“여러분, 선교사라는 직무는 정착선교를 하는 목사나 감독들과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부르는 곳이면 가야 하고, 떠나야 할 시간에 떠날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마치 인류 성장사에서 정착민과 이동집단이 따로 있듯이 말입니다. 이같은 두 인간 집단이 각기 특징이 있고, 장단점을 나누어 가지게 되는데 특히 이동집단은 신속한 이동, 속도빠르게 새 둥지를 찾으려면 소유의 최소화가 필요하겠지. 지금 여러분이 선교지로 선택한 아시아 지역은 페르시아는 물론 인도, 중앙아시아, 그리고 중국이라는 대륙까지가 1차 목표가 되겠으니 여러분이 뛰고 달려도 앞으로 1천년 정도의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매우 큼지막한 설계를 해야 합니다.”

여기까지 강의를 하던 세르기아 목사는 학생들을 한 사람씩 주의깊은 눈으로 살피고 있었다. 침묵이 흐른다. 어찌보면 질문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그의 강의법 같기도 했다. 사라가 질문을 하겠노라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목사님, 말씀에 1천년이라는 대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라가 자리에 앉은 후, 세르기아는 빙긋이 웃으면 말했다.

“사람은 영원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1천년 정도는 자고 일어나는 하루 시간과 같습니다. 말씀이 있잖아요. 하나님께는 천년이 하루 같기도 하고, 하루가 천년 같기도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 인간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몇 년 정도를 산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수천년, 수만년 전부터 하나님의 품 속에 있었으며, 세상구경을 마치고 다시 하나님의 세계로 돌아가서 수만년 그 이상을 하나님의 나라 경영에 참여하는 하늘나라의 상속자 신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사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말씀은 인간의 존재에 관한 말씀이고, 우리 인간이 몇십년이면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데 어떻게 천년 경영, 천년 선교를 계획합니까?”

“허허, 사라 씨는 내 말을 못알아 들으시는가. 답답하구먼.”

그때, 훗세르가 손을 들고 일어섰다.

“그래, 훗세르! 메소포타미아의 지혜를 가진 형제는 무슨 질문인가?”

그가 머뭇거리자 세르기아는 어서 말하라고 요청했다.

“네, 목사님. 저는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깜짝 깜짝 놀라곤 합니다. 목사님의 천년계획에 대해서도 저는 천년 후에도 후회하지 않을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이해를 했습니다.”

세르기아가 '옳커니' 하더니 학생들 모두에게 훗세르를 격려하는 박수를 치자고 분위기를 이끌었다.

“맞습니다. 훗세르는 세르기아 목사님과 같은 지혜를 가진 듯 합니다.”

“아닙니다. 사라씨. 훗세르는 하나님의 지혜로 내 강의에 화답을 해준 것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사라씨가 내 말 뜻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같은 분위기를 마음에 두고 계산된 답변을 했다고 보는데 내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시죠.”

세르기아가 이렇게 나오자 사라는 순순히 인정하면서, 학생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지혜를 꺼내고자 함이라고 실토했다.

“좋습니다. 하나 더 보충하겠습니다. 천년의 포부를 가진다는 것은 천년 후에도 오늘의 나의 신앙과 인격이 쓸모없는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합니다. 그럼, 어떻게 천년을 땅 속에 묻어두어도 자기 값을 지니고 있는 금덩어리처럼 될 수 있을까, 이 부분은 다시 말하지만 예수님 앞에 나서는 정직과 정당성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하셨죠. 이 말씀은 여러분 모두가 잘 알고 있지요.

“네!”

“그럼, 누가 한 번 설명해 보실까? 우리가 안다는 것이 때로는 단순한 이해수준에 머물 수 있거든 어디 누가 말해 볼까요?”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세르기아가 잇스기아를 지명했다. 잇스기아가 얼굴이 빨개지고,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당황해 하고 있었다. 사라가 대신 일어나려 했으나 세르기아가 그녀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끝내 잇스기아를 일으켜 세웠다.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난 잇스기아는 성경책을 펴서 마가복음서 8장 34절을 한 번 읽고는 자리에 앉아버린다.

“허어, 심약하면 선교사 자격에 문제가 되는데….”

“아닙니다. 저는 히브리 사람입니다. 심약하거나 겁쟁이가 아니라 이 말씀은 해석하거나 보탤 필요가 없는 '바로 그 말씀'입니다.”

“뭐, 바로 그 말씀이라니….”

“보태고 뺄 것이 없는 순수 그 자체입니다. 저는 주님의 이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세르기아가 기습을 당했다. 그가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사라가 난처한 세르기아를 구할 명목으로 잇스기아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잇스기아, 내가 하나 질문해도 될까?”

“좋습니다. 사라 선생님.”

잇스기아는 처음 지명받을 때와는 달리 여유있는 표정으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잇스기아 형제가 읽은 그 말씀 안에 '자기 십자가'라는 대목이 있는 데, 그 십자가는 누구의 십자가일까? 잇스기아의 십자가인가? 아니면….”

“당연히 예수님의 십자가죠.”

사라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잇스기아가 예수의 십자가라고 하자, 세르기아 목사가 환호를 하면서 잇스기아 앞으로 가서 그를 껴안아주었다.

“역시, 잇스기아로구먼. 히브리의 피가, 아니야 아니지. 세계로 향하여 나아가고 있는 여러분에게 혈통을 앞세울 수는 없지. 그래, 그래. 자네에게 예수의 십자가를 주신 분은 바로 성령님이네. 그렇고 말고….”

세르기아는 잇스기아를 그의 가슴으로 다시 껴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여러분, 성령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크게 기뻐하신가 봐. 여러분이 압바스 감독님과 사라 선생을 통해서 많이 배우기도 했으나 '자기 십자가'를 '예수의 십자가'로 해석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큰 가르침이야. 얼마나 많은 신자들이나 심지어 감독이나 목사들이 자기 십자가를 모르고 허공을 치고 있는데 여러분은 예수 십자가를 이미 지고 있으니 복받은 사람들이야. 여러분의 앞날은 탄탄대로일세.”

세르기아는 주섬주섬 웃옷을 챙기고 성경책과 메모노트를 가방에 집어넣고 떠날 준비를 하는 듯 했다. 사라가 일어나서 '목사님, 뭘 하세요. 지금 수업시간인데요'라고 하자,

“아참, 그런가? 그러나 여러분은 더 배울 것 없어요. 그리고 이제 나는 더 가르칠 것도 없어. 내 밑천이 이젠 바닥이 났거든.”

“목사님, 왜 그러세요. 저희들은 목사님의 가르침을 더 받아야 해요. 그리고 앞으로 우리들 앞길의 방해꾼들에 대해서도 공부해야죠. 조로아스터교나 마니교의 술수를 잘 알아야 저희 선교단이 승리하죠.”

“그것들은 압바스 감독님이 잘 알고 계시니 그분께 배우면 되지 뭐.”

“그래도 저희는 세르기아식 복음선교 전략이 또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허허, 이 무슨 억지야. 세르기아식까지 알고 있으면 내 가슴 속에 있는 것이 정말로 다 거덜났구먼.”

“목사님, 자꾸만 그러실 거예요. 사라가 정 그러시면 화를 냅니다.”

사라가 짐짓 성깔을 부리고 나서자 세르기아가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비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아이쿠, 알로펜 모친님. 왜 그러세요.”

세르기아의 익살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던 학생들이 배꼽을 잡고 깔깔대고 있었다. 세르기아 목사가 다시 단상에 근엄한 표정을 하고 나섰다.

“자, 그럼 이렇게 하죠. 다음날부터는 크데시폰 일대의 전도활동을 통해서 현장 훈련을 겸하세요.”

“좋습니다. 단, 저희가 현장훈련을 할 때 세르기아 목사님을 모시고 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사라가 세르기아의 동행을 제안하자 학생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라 했다. 세르기아는 사라를 향해 소리쳤다.

“사라씨, 아니 알로펜 모친이여. 왜 나를 자꾸만 못살게 하는가요.”

“아이고, 선생님. 저를 모함하지 마세요. 제가 감히 세르기아 목사님을 못살게 군다고 그러세요.”

학생들이 사라의 요구대로 세르기아 목사님이 현장 훈련을 지도해 달라고 정중하게 요청했다. 세르기아는 싫지 않은 표정으로 학생들에게 말했다.

“나 말야. 늙은이야. 이 늙은이를 끌고 다니면 안되는거야.”

“아닙니다. 저희는 세르기아 목사님 강의를 들으면서 느끼는 바가 있어요. 저희들의 아시아 선교의 성패는 세르기아 목사님의 가르침을 얼마나 잘 받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입니다.”

“아, 이 사람들아! 억지 좀 부리지 말아라.”

세르기아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학생들의 요구를 따르기로 작심을 했다.

“좋다. 그럼 먼저 준비하는 기도가 많아야 한다. 또, 성경을 바르게 읽어야 해. 여러분은 조금 전 잇스기아가 내 십자가와 예수의 십자가가 하나임을 발견한 것을 보고 무엇을 느꼈는가?”

“…….”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말해 주지. 성경을 바르게 읽었음의 증거야. 대개의 사람들은 자기를 기준하여 판단하고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는데 대다수가 잘못된 자세에서 온 탓이야.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기준하여 하나님 나라의 건설을 하기 위함인 것이야. 그래서 내 십자가는 예수의 십자가로 해석되어야만 바로 그 신자가 대속의 십자가를 알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거야.

대속의 십자가는 내 죄의 속량이고, 무한 용서의 출발점이고, 내가 예수의 몸에 접붙여졌음을 말하는 것이야. 예수의 성격과 동일한 성품으로 다시 태어남이기도 하고, 죽고 부활하신 은혜의 나눔이고, 영생의 출발점이기도 한 거야.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 교회와 따로 놀고, 예수와 따로 사는 자들은 예수 죽이는 원수들과 같은 자들이라고 할 수 있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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