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로펜의 사마르칸트행 ②


터키 갑바도기아 앞에서의 필자. 신앙을 지켜내기 위해 동굴 속에서의 삶을
감내했던 선진들을 알로펜도 잘 알고 있으리라.

네스토리우스가 재심청원의 기회가 있었다. 이 내용을 에비온 목사로부터 전해들은 알로펜은 세상에 이런 일도 있구나 하면서 교회의 역사에 깊은 회의를 느꼈다. 순간 알로펜은 또 하나의 의문이 눈 앞에 어른거렸다. 사산조 페르시아 샤프르 II세가 그의 제국 안에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무수히 학살했다는 이야기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로마 카타콤 300여년의 희생자 보다 더 많은 신자들이 죽어갔다는 이야기를 꼭 듣고 싶었다.

“에비온 목사님, 또 하나 제가 궁금해서 그냥 넘어가기 힘든 사건 하나만 저에게 말씀해 주세요.”

“그게 뭔가? 자네 내가 사마르칸트로 떠나라고 한 말 벌써 잊었나?”

에비온은 알로펜이 지나칠 만큼 총명하여 자칫 자기 이론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우려도 해보고 있던 참이었다.

“저, 사프르 II세가 페르시아에 있는 기독교를 크게 박해했다는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 제게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 자네는 전도자인가? 장차 학자가 되고 싶은건가?”

“둘 다 되고 싶습니다.”

“엣기, 욕심쟁이 같으니라고….”

“아닙니다. 욕심이 아니라, 목사님 제가 드리는 말씀 좀 들어보세요. 저는 곧바로 아시아 땅 제법 크고 역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무지한 이방인의 나라로 갑니다. 그곳에 가서 선교하자면 어느 만큼의 신학적인 기반이 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허어, 못말릴 사람이구먼. 자네의 생각도 틀린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자네에게 더는 줄 것이 없네.”

“아닙니다. 분명히 알고 계실 것입니다.”

“글쎄, 얼마 정도는 알고 있기도 하지만 불확실해서….”

“목사님, 제가 다마스커스 신학교에서 한 분 교수님께 들은 바로는 샤프르 II세 치세 말기에 로마교회가 제국의 국교로 선포된 것에 크게 자극을 받아서 페르시아 영토 안에 있는 기독교 신자를 모조리 잡아들여 사형에 처했더군요.”

“왜 그같은 짓을 했다던가?”

“그것은 페르시아가 로마와는 항시 전투태세에 있는데 로마가 국교라면 기독교 신자는 첩자로 볼 수 밖에 없었다는거죠.”

“그래서….”

“그래서 국방을 튼튼히 하고, 로마제국으로부터 페르시아를 지키려면 기독교 신자를 추방하거나 죽여야 했던 것이죠.”

“그래. 나도 그 비슷한 정도를 알고 있네만, 그것은 벌써 2백여 년 전 일이고, 지금은 그런 일 없네. 우리는 페르시아 제국은 물론 중앙아시아를 지나서 중국으로, 아프카니스탄을 지나서 인도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욱 전념해야 할거야.”

“그렇군요.”

알로펜은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더는 에비온 목사를 추궁할 수도 없었다.

“후일 역사가들에게 맡기고 자네는 어서 이곳을 떠나게. 하루 하루를 금쪽 같이 생각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만….”

“이 사람, 또 무슨 시비를 하려는거야.”

“아, 아닙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쫓아내시려는 것 같아서 개운치 않습니다.”

“아닐세. 자네는 준비가 되어 있어. 양성론과 단성론 간의 시비를 조정할 수 있고, 또 네스토리우스 같은 훌륭한 어른을 소중히 하는 자네의 모습에서 장차 기독교의 앞날이 자랑스러워질 것 같아서 그러는 것 뿐이야. 자네를 곁에 두면 좋겠지만 말일세.”

“네, 잘 알겠습니다. 마음이 정리되는대로 떠나겠습니다.”

다음날, 알로펜은 요나와 함께 에비온 목사에게 작별을 고했다.

“어디로 가려나?”

“어디긴 어딥니까? 사마르칸트죠.”

“자네, 아직도 내게 만족하지 못하는구먼.”

“아닙니다. 사마르칸트로 단숨에 달려갈 수는 없겠죠. 목표가 그렇다는 것이죠. 저희는 타브리즈를 1차 목표로 정했습니다.”

“그래. 세르기아 영감님이나 자네 부친 압바스 감독님을 뵙지 않고 가겠다는 것인가?”

“네, 목사님! 제 부친이 압바스 감독인줄은 어떻게 아셨죠.”

“이 사람아, 내가 그럼 자네가 누군 줄도 모르고 밥 주고, 잠 재워주고, 친구노릇 해준 줄로 알았던가. 내가 자네 부친 압바스 감독을 잘 아는 사람일세.”

“그렇군요. 목사님, 감사합니다.”

“자네 내가 에뎃사에서 곧바로 보내지만 내가 자네 뒤를 따라 사마르칸트로 곧 갈걸세. 자네의 걷는 길을 늘 지켜본다는 뜻이야.”

“아, 그럼 저의 행선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희는 일단 타브리즈로 갑니다. 다데오파 기념교회도 먼저 들려서요.”

“그래, 그러게. 페르시아 이 거대한 제국 안에 어느 곳이든지 네스토리안 교회들이 다 있다네. 가다가 길이 막히거나 위험에 부딪히거든 교회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하게.”

“네, 저희는 주 예수의 사신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 그래. 알겠네.”

알로펜은 니스비시나 크데스폰을 비켜서 타브리즈로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페르시아 고원시대를 중심으로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인도 국경 지대까지 갔다가 곧바로 북상하면 사마르칸트가 있을 것이라고 대강 짐작을 했다.

“요나 형, 마음 준비 되어 있죠?”

“그럼, 나는 자네가 든든하네.”

“또, 그런 말씀.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 하시거든요. 불 속에서나 물 속에서도 주의 성령님께서 동행하여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아…멘!”

요나는 알로펜의 방식에 점점 익숙해져 갔다. 그들은 에뎃사 변경으로 방향을 잡았다. 서두를 것은 없다. 금번 에뎃사에서 거칠 것이 없는 용기를 얻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에비온 목사로부터 들은 네스토리우스의 만년의 이야기다. 이미 비슷한 이야기는 다마스커스에서도, 그보다 먼저는 부친 압바스와 모친 사이의 대화에서도 들은 바 있다.

모친이 세상 떠나기 1년 전이었던가. 그때 모친은 심상치 않은 병세를 보여주고 있었다. 부친과 모친의 한밤중의 대화를 알로펜이 엿듣게 된 대목이다.

“여보, 당신은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압바스는 아내를 자기 곁으로 바싹 끌어당기며 또 한손으로 아내의 얼굴을 살포시 어루만지고 있었다. 알로펜으로서는 졸지에 난처한 분위기에 휘말렸다. 어머니가 몸이 불편하시니 곁에서 위안을 드린답시고 자기 방으로 건너가지 못한게 난처하게 되었다. 기왕지사 이리 되었으니 잠이 깊이 들은 척 해야 했다.

“저 아이 잘 길러주세요. 저 아이 임신했을 때 내가 꿈을 꾸었어요. 총대주교좌에 성장을 하고 앉아있던 네스토리우스님이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불러 거룩한 단상으로 오르게 하시는거예요. 당신의 자리는 나를 위해 준비한 지라리면서 말입니다.”

“여보, 그 말 벌써 몇번째인 줄 알아요?”

“알아요. 나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자리가 지금 비어있는 것은 내 아들 알로펜이 크기를 기다린다고 봅니다. 그날까지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알로펜은 그 대목까지 떠올리다가 요나가 그의 등을 치자, 무슨 비밀한 일을 하다가 들통난 사람처럼 깜짝놀라 가던 걸음을 멈춘다.

“왜 그래요?”

알로펜이 언성을 높이자 요나는 멋적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는다.

“어떻게 어디로 갈 것인지 궁금해서 그랬다. 나는 걱정이 태산인데 알로펜은 태평스런 태도를 하고 있어서 심술도 나고 말이지.”

“그러면 안되요. 이제 우리는 아무도 의지하지 맙시다. 위로 하나님, 아래로는 사람, 아니지 자연을 의지해도 된다 이겁니다.”

“얼쑤, 얼씨구….”

알로펜이 좌우로 흔들거리며 장난스런 걸음걸이로 걷자 요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알로펜의 팔소매를 붙잡는다.

“알로펜은 괜찮아? 나는 조금 불안하거든.”

“요나 선생, 큰 고기 뱃속에서 3일 동안 견딘 사람이 요나입니다. 이름값 좀 해야죠.”

“응, 그렇지. 미안해요.”

알로펜은 요나가 한대 쥐어 박으면서 윽박지를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을 보이자 오히려 자기가 민만해졌다. 그는 길가 나무 그늘아래 잠시 쉬어가자면서 요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내가 너무 까불었죠. 나는 에비온 목사님이 전해주는 복권이야기를 듣고, 또 사면복권이 틀림없을 법한 시간에 네스토리우스 총주교가 죽으시고, 또 겨우 인간들이 만들어준 사면복권과는 차원이 다른 곳에서 그 어른이 하신 유언의 말씀을 듣는 순간 세상의 참된 이치를 단숨에 깨달았습니다. 바로 그 때문에 내가 약간 흥분했으니 용서하시오. 요나 형님!”

“온갖 저주와 굴욕을 안겨준 자들에게 복수도 하고, 제국교회의 앞날을 위해서 더 큰 일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요나의 의견이었다.

“물론 그 생각도 좋으나 내가 본 관찰은 네스토리우스가 431년부터 451년까지 살아 있다가 그를 사면하고, 복권시켜줄 그런 시간을 만났는데, 그는 복권 따위에는 매력을 느끼지 않고 한차원 높은 더 큰 경지에 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이지, 사막에서 짐승처럼 목숨이나 연명하게 했던 원수들에게 복수 할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왜, 하필 그때 죽느냐 말이다.”

요나는 화가 치미는지 자리를 털고 일어나서 펄쩍 펄쩍 뛴다.

“요나 형, 좀 진정하세요. 더 중요한 것이 있답니다. 잠시 다시 앉아보세요. 세상 일이란 하루 아침에 다 이루어지지 않아요. 보세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는 이미 정상에 오르셨던 분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만든 명예, 굴욕, 고생, 행복들이 별거 아님을 그는 세상을 떠날 무렵에는 다 알아냈습니다. 내 생각에는 네스토리우스가 AD 451년 칼케돈회의 초청장이 아니라 사면장이 그가 지금 엎드려 있는 사막으로 날아왔더라도 그것을 사양했을 것만 같습니다.”

“허허, 이 사람 미쳤나? 어떻게 그걸 알며,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투로 말하는 거야.”

“아봐, 요나 형. 그분의 고별 기도문이 어떻게 써있었다고 들었습니까?”

“…인간 네스토리우스는 파문을 받아야 했다. 하나님은 나를 파문하심으로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것이라고 했다지.”

“맞아요. 정확해요. 그분의 고별사를 보면 지난 20년 동안 사막에 유폐되어 살면서 하나님 공부 다시 하신거야. 정치판의 시비, 그런 따위와 상관없이 예수 십자가의 참된 비밀을 지금은 깨달았다는 뜻이죠. 그런 그분이기에 또 하나의 세속질서에 휘말리고 싶지 않을 만큼 자부심을 가졌을 것으로 나는 믿습니다.”

“그럴까? 꿈 보다 해몽이라더니. 글쎄, 내가 보니 우리 알로펜 도련님이 자꾸만 커보입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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