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지역의 한 교회 내부. 성화가 많이 훼손돼 있다.

알로펜 추격대장 세비야는 그를 따라온 사람 모두를 돌려보냈다. 한 사람은 남아야 한다고 고집했으나 세비야가 필요 없다면서 모두 가도록 명령했다.

“나 세비야다. 나는 말이야. 사제의 길을 선택한 교회의 아들이다. 선대 어른들께서 네스토리우스는 하나님 나라의 원수라고 내게 가르쳐 주셨다. 당신 알로펜이라고 했지. 생각보다는 인상이 착해서 내가 당신을 신사적으로 대하는 거다.”

알로펜이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

“생색내지 마라. 그리고 너 임마, 내게 함부로 건방지게 굴지마!”

알로펜이 갑자기 분노하는 이유는 뭘까? 요나마저도 갑자기 터져나온 알로펜의 행동에 의아스러워 하고 있었다. 세비야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

알로펜이 웃통을 벗어 던졌다.

“세비야! 너 내 맛 좀 보거라. 그따위 가벼운 행동거지를 하는 놈이 뭐, 사제가 되겠다고. 사제가 되겠다는 놈이 폭력배를 이끌고 다니면서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는 거야.”

알로펜의 진의를 몰라서 망설이던 세비야도 웃옷을 벗어 던졌다.

“요나 형, 내가 저놈에게 맞아 죽더라도 끼어들면 안돼. 우리 둘이 사나이로서 승부할 거야!”

알로펜은 말을 하면서도 세비야의 동작을 지켜본다. 둘이는 어느 사이 한번씩 쨉을 날리면서 치고 받기를 했다. 알로펜의 코에서 피가 흘렀다. 세비야가 요나에게 말했다.

“지혈시켜 주시오.”

이렇게 말하고 그는 한 발 물러서서 공격을 멈췄다. 간단한 처치를 해주자 알로펜이 말했다.

“덤벼!”

그둘 둘은 치고 받기를 거듭하고, 서로 붙잡고 뒹굴기도 하고, 싸움은 질기고 끈질기게 시간을 끌었다. 두 사람 얼굴에 피가 흘렀다. 어느 누가 우세하다는 낌새를 발견할 수 없었다. 알로펜이 드디어 세비야의 가슴팍 위로 올라 앉아서 씩씩거리면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분명히 기선을 제압한 듯이 보였으나 공격을 하지 않았다.

알로펜은 알고 있었다. 세비야는 완력이 알로펜보다 한 수 위였다. 무술운동을 했음이 분명하다. 그가 어려서 잠깐 무술지도를 받은 일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세비야는 알로펜이 왜 한판 붙자는 심리전술을 구사했는지도 알았고, 또 그가 자기보다 한 수 아래인 사실도 생각 속에서 정리했을 것이다.

“왜 그러는 거야! 알로펜. 왜 기회가 왔는데 공격을 안 해?”

세비야가 알로펜을 치켜보면서 궁금하다는 듯이 말했다. 알로펜은 짐짓 화나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때릴 데가 없어서다. 왜, 어디가 근질거려!”

그때, 요나가 세비야의 배 위에 앉아서 으르렁거리는 알로펜을 뜯어 말리면서 투덜거렸다.

“싸움을 하는 거요, 서로 투정을 하는 거요!…”

세비야가 벌떡 일어나더니 느닷없이 요나를 업어치기로 집어던져 버렸다.

“앗!”

알로펜이 비명을 지르면서 요나 쪽으로 향했다. 요나가 땅바닥에 굴러떨어져서 두개골이 깨지든지 팔다라기 부러지는줄 알았다. 그러나 요나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절반쯤 회전하더니 사뿐히 내려왔다. 나뭇가지에 나비가 앉듯이라고 해도 될만큼 그는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 행동했다.

“첫 인사치고는 고약합니다 그려.”

“가만, 가만. 우리가 지금 처음 만났잖소. 더구나 쫓고 쫓기는 경쟁관계 상태였는데 지금 뭐하고 있는 겁니까?”

이렇게 말하는 알로펜이 세비야 앞으로 가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러나 세비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알로펜과 요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알로펜, 정말로 때릴 곳이 없었던가?”

알로펜이 다시 세비야 곁으로 가서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선배님, 제가 선배님으로 부르겠습니다. 세비야 님은 저를 간단히 제압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나도 그것쯤은 알죠. 사실 내가 먼저 도발을 했던 것은 더 쉬운 방법으로 사귀고 싶었고, 또 하나는 실컷 두둘겨 맞고 싶은 본능적인 충동 때문이었죠.”

“두들겨 맞고 싶었다고? 왜 그랬어.”

“물론 세비야 선배님 쪽에서 폭력을 먼저 행사했지만 내가 도망자의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 나를 슬프게 했소. 나는 결코 비겁하게 살고 싶지 않거든요.”

“좋아, 알로펜! 나는 당신의 마음을 다 읽었어.”

“그럼, 나의 선배님이 되어 주는 거죠?”

“아니야. 착각하지 마시오. 내가 분명히 말했잖소. 내게 네스토리우스가 무죄이며, 어떻게 성인 축에 드는가를 설득해야 하오. 만약….”

“만약….”

요나가 끼어들자,

“형씨는 가만 계십시오. 무술 고수이시던데, 그건 나중 이야기요. 나는 알로펜을 붙잡아서 내게 무릎 꿇리려고 뛰어든 사람일 뿐이오.”

그리고 그는 다시 알로펜을 노려보면서 잘라 말했다.

“만약, 나를 설득 못시키면….”

“못시키면 무릎 꿇지요.”

“좋다. 말해보시오.”

그들 둘이서 대화를 시작하자 요나는 뒷짐을 지고 선선한 석양의 시간을 즐기기로 했다. 둘이서 말 씨름을 하든지 토론을 하든지 내버려 두기로 했다. 산 언덕에 오르니 얼굴이 익은 청년 둘이 눈에 들어왔다. 세비야의 수하들 같았다.

“세비야가 가라고 하던데 왜 여기에 남아 있나요?”

그들은 요나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고 뒷걸음질로 몸을 피해 버린다.

알로펜과 세비야는 대화가 잘 진행되는 것 같았다. 서로 웃기도 하고, 특히 세비야는 알로펜 앞에서 조금은 정중한 태도로 바뀌어 있었다.

“알로펜, 이제 승부가 끝난듯 하오. 호칭을 말할 때 내가 당신에게 선배로 부르겠소.”

“아닙니다. 그럴 수 없어요. 그러나 정히 그러시면 나이 순으로 합시다. 제가 형님으로 모시겠소.”

“모시고 자시고가 무에 소용있나. 우린 곧 헤어질 텐데….”

“아닙니다. 세비야 형님은 내가 평생 모시고 싶소. 저와 함께 이 길로 떠납시다.”

“허허, 이 사람. 나 아직 네스토리우스 문제 결심 굳히지 않았어요.”

“아닙니다. 그 정도이면 된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 입니다. 네스토리우스에 관한 최종 평가는 하늘의 주님께서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아시아 선교를 위해서 떠나야 합니다. 사실,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실각을 하고 이단자가 된 것은 로마 기독교가 아시아를 무시하고, 자기 우월감에 취해서 저지른 속단의 결과였고, 하나의 객기였습니다. 나는 그렇다고 해서 교리싸움을 하거나 역사상 홀대를 받은 아시아인의 분노를 말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아시아는 땅, 인구, 신자가 로마보다 훨씬 많으면서도 복음이 구체적으로 뿌리내린 곳이 부족하여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세비야 형님이 알로펜의 복음전파 열정에 동의하셔야 합니다.”

알로펜은 불을 뿜듯이 복음의 열정에 타올라 있었다. 세비야는 그의 열정 앞에 입을 다물고 멀리 하늘 가를 바라보면서 알로펜을 만난 기쁨을 감추고 있었다. 그는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참다 못한 알로펜이 무릎꿇는 자세의 세비야를 덥석 들어 일으켜 세웠다.

“아이쿠, 이자가 사람 잡네.”

세비야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흐뭇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세비야 형님, 신학을 공부하실 기회가 곧 열립니다. 물론 크데시폰으로 가면 신학교가 있고, 학생들도 있어요. 우리가 활동할 교회들도 준비되어 있지요. 그러나 이 길로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사마르칸트로 가는 것입니다.”

“이봐, 알로펜. 숨 좀 쉬자. 당신 내가 밥으로 보이나….”

“그래요. 밥 중에서도 맛있는 밥인지라 이미 내가 형님을 먹어치웠소이다.”

“뭐야. 나를 먹다니. 이 사람 큰 일 낼 사람이로구먼.”

“안됩니까. 그럼 형님이 나를 잡수시구려.”

“응, 무슨 소리라구. 그래, 그래. 알로펜이 나를 자기 자신만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이구먼.”

알로펜과 세비야가 수작을 떨고 있다고 판단을 한 요나가 끼어들었다.

“둘이 죽이 척척 들어맞는구먼. 서로 죽일듯이 으르렁 거리더니. 시기심이 나서 못봐주겠네. 참 아니꼬와서….”

요나가 그들 사이에 다가와 웃으면서 알로펜과 세비야의 손을 잡고 불끈 힘을 주었다.

“요나 님, 아까 내가 집어던질 때 현기증 나지 않았었소?”

“아니, 그렇다고 무지막지하게 집어던지다니….”

“미안했소. 그러나 응수가 만만치 않으시던데요.”

그렇게 말하는 세비야는 요나의 눈빛을 잠시 훑어본다. 본능적 동작인듯 했다.

“자, 그건 그렇고. 내 아우 알로펜과의 토론은 잘 마쳤나요.”

“그래요. 우리는 충분한 대화를 했어요.”

알로펜이 이렇게 말하자,

“충분하지는 않았으나 네스토리우스 문제는 앞으로 차근차근 공부하기로 했지요.”

세비야가 답변했다. 그리고 그는 알로펜에게 말했다.

“알로펜 님, 나는 오늘부터 당신을 나의 선생님으로 모시고 싶소. 받아주시오.”

“세비야 님, 우리 사이에 선생이 따로 있을 수 있나요. 굳이 말하자면 서로가 서로에게 배움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면 되는 것이죠.”

알로펜의 이 말에 요나가 무릎을 치면서 크게 말했다.

“역시 알로펜은 알로펜이야!”

“사실 나는 알로펜의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에 놀랐어요. 내 주변에 사제들이나 학자들도 많이 있지만 알로펜처럼 균형잡힌 이론, 편견을 피하려 애쓰는 모습 참으로 마음에 들었어요. 무엇보다도 사막에서 죽어가는 그 시간, 네스토리우스의 기도는 감동적이었고, 또 칼케돈회의(AD 451년)가 그의 사면복권을 시도했다는 부분에도 내게는 매우 신선한 감동이었어요.”

“알로펜 선생, 한 말씀 하셔야죠?”

요나가 알로펜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오늘 이렇게 든든한 세비야 형님을 주셨고, 이제는 두 분 형님을 모시고 사마르칸트로 향해 갑니다.”

“이 사람, 알로펜. 아니 알로펜 선생님, 내가 지금 사마르칸트 가는 길 동행한다고 했다는 것인가?”

“그럼, 하셨잖아요.”

“언제?”

“꼭 내가 말을 해야 시인하실 건가요?”

“그래 말해봐. 내가 언제 동행한다 했느냐 말이야.”

“외람됩니다. 정 그러시면 제가 말씀드리죠. 저를 선생으로 모시고 싶다는 말씀….”

“아아! 맞다 맞아! 맞습니다. 그럼 내의 사마르칸트 동행과 함께 알로펜 선생님은 저를 제자로 받으시는 겁니다.”

“…….”

알로펜은 세비야를 굳게 껴안고 놓아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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