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강의(42)-유라시아 기독교 2000년]


1. 어거스틴의 영향력


펠라기우스는 아담은 죽을 운명의 사람으로 지은 바 되었기에 그는 그 자신에게만 해를 끼쳤다. 그러므로 새로 태어난 사람마다 아담과 연결시킬 수 없다. 아담의 죽음과 또 그의 죄가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복음 뿐 아니라 율법도 인간을 하늘나라로 인도한다. 예수가 세상에 오기 전에도 세상에는 죄 없는 인간들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펠라기우스가 아니라 그의 친구이며 제자인 코엘레스티우스의 신학이었다.

AD 415년 어거스틴은 펠라기우스와 코엘레스티우스의 신학을 정죄하였다. 복음의 기초를 부정하는 잘못된 학설로 규정했다. 어거스틴은 팔레스타인 지방에 머물러 있는 제롬에게 사람을 보내어 펠라기우스 파 주장을 제어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제롬은 크게 반응해 주지 않았다. 어거스틴은 그의 입장을 제시했다.

모든 인간이 아담의 죄책에 사로잡혀 있으며, 인간의 본성 그 자체가 타락하였고,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사랑을 향하여 돌이킬 수 없다고 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 은혜의 유일한 효력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예정설이라는 강력한 교리를 발전시켰다. 그 교리에 의하면 사람이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은 하나님의 선택과 은혜이며, 이는 사람의 공로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2. 반(半) 펠라기우스주의


어거스틴의 노년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단성론 사상으로 무장한 게르만족의 한 유파인 반달족이 히포를 점령했다. 어거스틴의 성역을 모두 짓밟았다. 단성론 파는 펠라기우스 파 사상과 유사한 형태를 가졌으니 마치 어거스틴은 사상적으로까지 타격을 받은 셈이 되었다. 어거스틴은 큰 충격 속에 빠졌다. 마르세유 근처의 한 수도원 설립자인 카시아누스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선한 의지의 발동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하여 '의지는 인간 속에서 언제나 자유롭게 남아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할 수도 있고 즐거워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카시아누스는 구원이란 은혜와 동떨어진 채 사람에게 온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 속에는 창조주의 선의에 의해 선한 씨앗들이 심어져 있다고 믿었고,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어떤 좋은 것들보다 하나님을 더욱 좋다 할 수 있게 만드는 씨앗들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활력을 얻을 때 비로소 열매 맺는다고 믿었다.

이와같이 인간의 본성에는 하나님께로 향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이 능력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만 성취된다고 주장했다. 어거스틴 사망 4년 후 갈리아 남부 지역 수도사 빈켄티우스가 일어나서 어거스틴을 직접 비판하지는 않았으나 은혜와 예정에 대한 그의 가르침이 가톨릭 전승에 아무런 뒷받침을 할만한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말하기를 더욱이 가톨릭 교회에서는 모든 곳에서, 모든 시대에, 그리고 모든 인간들이 믿어온 것들을 주장하는 데에 가능한한 모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요구를 했다.

어거스틴과 빈켄티우스 사이에 중간자가 등장했는데 역시 갈리아 남부 헤링의 수도원장 파우스투스는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의지에 관하여〉라는 책에서 신앙의 시작은 인간의 자유의지에 뿌리를 두며, 자유의지는 원죄의 실제에도 불구하고 '구원을 위해 노력하는 가능성'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면 은혜는 약화되었으나 여전히 자유로운 의지로 하여금 옳은 것을 택할 마음을 갖게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자 경고라고 하였다.

어거스틴, 제롬, 펠라기우스로 이어지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는 숨가쁘게 논의되어 왔으나 쉽사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오늘의 시간까지도 기독교 안에서 억압된 현안으로 남아 있다. 이를 좀 더 명백하게 다룰 수 있는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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