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돈황의 사막이 저 멀리 펼쳐져 있는 것이 보인다.


사흘 후 알로펜은 사마르칸트를 떠났다. 역시 마리아 교수를 사마르칸트에 남겨두는 데 애를 먹었다. 마리아는 알로펜이 자기를 또 버리려 한다고 울었다. 또 버리다니? ‘언제 내가 버렸느냐’고 묻자 마리아 교수는 다마스커스 할아버지 집에서 함께 가겠다는 약속을 했으면서도 그걸 모르느냐고 우겼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당신과 동행하려는 것은 보호하려는 성의라고 마리아는 말했다.

“그럼요. 나는 교수님 앞에서 아직도 어린애나 같아요. 왜 내가 그걸 모르겠어요.”

“정말?”

“그럼 정말이죠.”

알로펜은 마리아 교수가 나이만 더 많았지 자기보다 손아래 여동생 같이 느껴졌다.

‘정말이냐’면서 자기와 눈을 맞추며 환
하게 웃다가 알로펜이 그녀의 등허리를 가볍게 어루만지자 핑그르르 눈 가장자리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그녀는 감추지 않았다.

“교수님!”

알로펜이 조용히 부르자, 마리아는 강하게 도리질을 친다.

“내가 뭐 교수야. 내가 언제 감독님을 가르쳤어. 오히려 난 알로펜 감독의 제자야. 날 부를 때 앞으로 교수라고 하지 마!”

마리아 교수는, ‘앞으로 교수라고 하지 마!’라며 말꼬리를 댕강 잘라버린다. 그리고는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는데 마리아가 알로펜을 끌어당겨 껴안았다. 조심스러운 몸짓이었으나 단호한 힘이 그녀의 두 손에서 느껴졌다.

알로펜은 마리아 교수가 자기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음을 안다. 다마스커스에서도, 그녀가 쉐키 왕국으로 뒤늦게 달려왔을 때도 그녀의 감정을 알고 있었다. 처음 만난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알로펜의 가슴에는 마리아 교수의 자리가 있었다.
그 빈 가슴자리에 지금쯤은 들어앉아도 될 법하지만 알로펜으로서는 그럴 수 없다.

중국의 본토에 도착하여 선교 기반을 닦기 전까지는 전쟁터의 장수처럼 긴장감의 연속이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스스로 고자 된 자도 있다’(마 19:12)라고 하셨다. 이는 주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으로 마음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잖은가. 모든 일에 우선하여 몸가짐을 가벼이 해야 한다.

알로펜은 마리아 교수의 동행을 뒤로 미루도록 강하게 요구했다. 사마르칸트 선교단에서 마리아가 할 일이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길어도 1년 안에 합류할 수 있도록 약속하겠다고 사정을 했다.

알로펜 일행은 7명이었다. 마리아와 함께 트빌리시의 드보라가 사마르칸트에 남고 나머지는 쉐키공국을 떠날 때 동행자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요나와 세비야, 다마스커스의 사울, 마니교 개종자 안토니, 트빌리시의 스데반, 그리고 크데시폰의 앗스기아와 알로펜이었다.

페르가나(대완국)를 지나 판지겐트 방향으로 길을 잡으니 험산 험로가 그들을 기다렸다. 말을 타거나 나귀에게 짐을 싣기도 쉽지 않았다. 낙타의 도움도 불가했다. 가끔씩 휘몰아쳐 오는 모래바람도 무섭다 했으나 험한 산자락으로 접어드니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돌덩이는 참으로 무시무시했다. 돌뿌리를 잡고 걸음을 옮기던 요나가 마리아 교수가 동행했으면 큰일 날 뻔 했다고 말하자 세비야가 말했다.

“마리아 교수님은 천산북로를 선택하면 됩니다. 수많은 낙타들이 오고가는 길이 있습니다.”

“그렇다지요. 그러나 이 길이 훨씬 빠르죠. 카슈가르까지 아마 한 달이면 넉넉할 거예요.”

알로펜은 험산을 오르면서 한 달 거리를 아무렇지도 않은듯이 말했다.

“우리 감독님은 저렇게 태평하시다니까.”

요나가 끼어들었다.

“요나 형님!”

“왜, 또 그러세요?”

요나가 알로펜의 형님 소리에 펄쩍 뛰는 시늉을 했다.

“듣기 싫으면 귀를 막구려.”

세비야가 요나를 살짝 밀쳤는데 요나가 몇바퀴 굴러 떨어졌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여러분, 지루하세요? 조금 더 가면 쉴만한 동굴이 있어요. 걱정들 마세요. 저는 이 길을 여러번 다녔어요. 오고가는 상인들, 자기 종교를 가지고 중원 대륙을 향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안토니의 넉살이었다. 알로펜은 안토니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려 보았다.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방문했을 때였다. 총명한 소년이었던 안토니와 그의 어머니와 생활하는 수도원 골짜기에서 얼마동안 지냈던 기억이 있다. 그때 안토니 모친은 마니교의 유혹을 뿌리치고 예수님에 대한 순결을 지키려고 애썼던 기억이다.

그러면서도 무함마드라는 아라비아 청년이야기 중, 그 사람이 종교를 하나쯤 만들 인물 같이 보였다고 말했을 때, ‘그깟 짝퉁 일 천개 만들면 뭐하냐’면서 받아치는 안토니의 모친은 보통 수준은 뛰어넘는 여인의 기질을 가졌다는 생각을 했었다.

알로펜은 생각을 하다가 혼자서 피식 웃었다. 안토니와 자기의 관계가 갑자기 떠올랐다. 안토니의 어머니가 크데시폰 부친과 부부관계를 맺었으니 안토니와 자신이 형제간이라는 사실의 발견이었다. 안토니가 자기를 찾아왔을 때만 해도 사라가 홀로 되어 사시는 부친을 돕고 있는 정도의 관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나 며칠 전 부친의 편지에 ‘사라’이야기가 있었다. 안토니의 모친 이름은 ‘사라’였다.

“사라가 내 곁에서 나를 돕게 된 것은 다 네 덕분이다…(후략)”라는 부친 압바스 감독의 글에서 풍기는 느낌은 그들 둘이 부부로서의 삶을 사는 것으로 판단이 되었다.

“안토니, 자네는 이 길을 자주 다녀보았다는 것인가?”

“몇 번 다녀갔습니다. 파미르고원을 넘나드는 것은 길따라 가는 길이 아니죠. 필요가 있어서 돌밭을 길들여 길을 만들고 태산을 비틀어서 억지로 길이라 하고 있는 것이죠.”

“그래, 자네 말이 재미있군. 그 말 속에 사려 깊은 철학이 담겨있네 그려.”

“감독님, 이 길을 며칠 오르면 판지겐트입니다. 그곳에 가면 우리보다 먼저 네스토리안들이 자리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래, 그걸 어떻게 알았나? 아니 왜 이제 말하는 거야?”

알로펜은 판지겐트에 네스토리우스파 선교팀이 있다는 안토니의 말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

“미리 말하면 뭐하나요. 그들이 있으면 어떻고, 없으면 또 어떤가요.”

안토니는 심드렁한 투로 말했다.

“왜, 그래?”

“꼭 알고 싶으세요. 감독님?”

“허허, 이 사람 보게. 그들은 우리의 형제요, 동지일세. 어서 아는 대로 말해보게.”

“그러죠.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들은 감독님과 성향이 다르더군요. 뭐, 수리아 파라고 할까요.”

“수리아 파라…. 그게 뭐 새로운 발견은 아니지. 수리아 파 네스토리안들은 페르시아나 그 주변에 많이 있지요.”

“그들은 편하게 예수를 말하더군요. 예수는 인간일 뿐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일이 없고 예수 대신 가룟 유다가 죽었다던데요.”

“그들은 그런 식이지.”

“감독님도 알고 계세요?”

“그럼요. 내가 나그네 생활 몇십 년인가. 주변에서 저마다 자기가 경험하고 있는 수준의 신앙을 가지고 있겠지. 그래서 예수는 또 십자가에 달려야 할지 몰라.”

“감독님, 그 말씀은 잘못된 표현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골고다에서 죽으셨으니 이제는 우리의 죽음으로 십자가 예수를 바르게 세워야죠. 그 일을 위해서 우리가 이 험산을 오르고 있잖아요.”

“이 사람 안토니. 자네가 많이 성숙했구먼. 자네는 역시 내 친구야, 친구.”

“아니죠. 친구가 아니라 형님이시죠.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사시는데 아들과 아들의 간격이면 충분히 형제죠. 감독님은 제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형님이십니다.”

알로펜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멋쩍기도 하고, 안토니의 분명한 신앙표현이 자랑스럽다. 또 형제지간이라는 말 속에 흐르는 뜨거운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생각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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