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투루판 지역의 흙집.

판지겐트에 이르렀다. 판지겐트는 소그드인의 주 활동지로 사마르칸트와 60㎞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있는 도시이다. 그러나 사마르칸트가 소그디아나의 수도였지만 판지겐트는 독립왕조의 명예를 지켜가고 있었다.

알로펜 일행이 판지겐트 시내 거리로 들어섰다. 네거리에 바자르가 열리고 있었다. 안토니가 일행을 앞질러 가면서 누구에겐가 손짓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 누구에게 저러죠?”

요나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모처럼 외갓집 찾아가다가 동구 밖에서 막내 이모를 만난 촌놈처럼 저렇게 뛸까? 다른 일행도 같은 생각이었을까. 모두 안토니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거리 모퉁이를 꺾는다 싶었는데 또래의 청년과 마주치며 서로 얼싸안는다.

“저렇게들 좋을까?”

알로펜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안토니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행이 안토니와 판지겐트 청년 곁으로 다가갔다.

“스승님, 여기 이 친구가 장차 크게 쓰임받을 거예요. 매우 총명해요. 이름은 샤푸르입니다.”

“네, 저는 샤푸르입니다. 판지겐트 네스토리우스 교단 막일꾼입니다. 알로펜 주교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고맙구려. 판지겐트에 우리 교단 형제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주교님. 약 3백여 명은 됩니다.”

“와아, 그렇게 많습니까? 나는 세비아입니다. 알로펜 감독님의 제자입니다. 아, 그리고 여기 이 친구는 요나, 그 옆에는 다마스커스 출신 사울, 그 옆으로 트빌리시의 스데반, 크데시폰의 앗스기아 등입니다.”

세비아가 일행을 인사시키자 샤푸르는 두 손을 가슴께로 모아 쥐고 허리 굽혀 인사를 한다.

“감독님, 이곳에 처음 오신 건가요. 저희는 시리아 출신들로 1백여 년 전부터 사마리아, 페르가나 부하라, 호래즘(히바), 박트리아, 두산베 등지에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저는 이곳 가까이 두산베 태생입니다. 저희는 판지겐트 네스토리우스 선교단으로 호칭하면서 타 종교들과도 가까이 지내고 있습니다.”

“허허, 그런가요.”

알로펜은 타 종교와 가까이 지낸다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이들은 다마스커스 출신들과 같은 단성론 파들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네, 저희는 저희 우비칸 주교님만 다마스커스에서 오셨고, 그 밖의 선교단 3백여 명 모두가 이곳에서 예수를 구주로 믿기로 하고 우비칸 주교님의 제자로 서원을 한 사람들입니다. 참, 주교님 천천히 걸으시면서 도시 구경을 하실까요.”

일행은 샤푸르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도시 구획이 되어있는 깔끔한 마을이었다. 사방에 직선으로 펼쳐있는 가옥들이 마치 미로처럼 이어져 있고, 중간마다 규모가 큰 집들이 끼어있다.

한참을 더 가다가 큰 집을 만났다. 마치 궁궐처럼 위엄이 깃들어 있었고, 대문간에는 지키는 사람이 있었다. 샤푸르가 앞장서서 가는 대로 따라갔다. 큰 대문을 하나 더 열고 들어서니 커다랗고 둥근 동산이 있었다. 성인 가슴께를 웃돌까 말까 한 둔덕이었다. 샤푸르가 이 동산은 제물을 드리는 제단이라고 설명했다.

둔덕 좌우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좌우 합하면 각각 다섯 채 씩이었다. 대문 하나를 더 열었다. 이곳은 정말 궁궐 만한 규모였다. 다섯 명 정도의 여인들이 저마다 자기 일을 하는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일에 몰두했다. 샤푸르가 큰 소리로 말했다.

“이 분은 페르시아에서 서역으로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러 가시는 알로펜 주교이십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일행들입니다. 인사올리세요.”

여인들은 그제서야 웃음 가득 머금고는 ‘반갑습니다. 하늘의 복이 많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샤푸르가 건물 중앙의 문을 열었다. 접견실일까 싶은 큰 홀이었다. 알로펜과 일행 모두가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여기는 제 집이나 다름없어요. 제가 우비칸 주교의 비서입니다. 저는 주교님을 아버지처럼 모시고 있지요. 주교님은 지금 출타 중입니다. 곧 오실 거예요. 모두들 편안한 자세로 잠시 쉬세요.”

말을 마친 샤푸르는 밖으로 나갔다. 알로펜과 일행은 계속되는 여행의 피로를 풀지 못했다. 사마르칸트에서 페르가나, 그리고 판지겐트까지 한 달 가까이 주로 여행자 숙소에서 머물렀고, 페르가나에서 판지겐트까지는 동굴 등에서 밤이슬과 추위를 피하려고 애쓰는 밤이었다. 여행자 숙소라 해도, 쉽게 말해서 양이나 염소들이 뒹구는 마구간 수준이었다.

알로펜은 접견실 벽면에 그려진 화려한 벽화를 바라보았다.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의 벽화와 비슷했다. 왕의 행차가 보이고, 고관들이 좌우에 서서  뒤를 따르는 그림이었다. 왕의 풍모는 당당해 보였다.

“감독님, 왕의 행차 중인데 저 왕은 누굴까요?”

“글쎄, 내가 어찌 알겠노.”

“저의 직감은 우비칸 주교 자신이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세비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요나가 뛰어들었다.

“그냥 내 느낌일 뿐이라오.”

“그따위 느낌을 감독님께 함부로 말하면 되는가. 조심스러워야지.”

“그건 그렇군. 내가 실수했어. 감독님 용서해 주세요.”

“용서는 무슨…. 세비아 형제의 감각은 상당히 빠를 때가 있지요. 가끔은….”

“그렇습니까. 감사합니다.”

세비아가 요나를 향해서 오른쪽 엄지를 치켜들었다. 요나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을 때 샤푸르가 들어왔다.

“우비칸 주교님이 오십니다.”

모두 일어나서 우비칸을 맞이했다. 알로펜이 앞으로 나서서 우비칸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렸다.

“먼 길 오셨군요. 알로펜 주교님.”

“네, 감사합니다. 번잡하실 터인데 저희가 혹 방해가 되지 않는지….”

알로펜은 조심스러웠다. 우비칸이 결코 쉬운 상대는 아니다 싶었다. 마치 군의 장수를 연상하리 만큼 우뚝한 코 양 옆으로 광대뼈가 튀어나와 있으며, 눈알이 부리부리한 독수리 형상이었다.

“앉으시죠. 선교단 여러분들도 편히 자리하세요. 여기는 내 집이니까 여러분 형제들의 집도 되잖아요. 그리고 한 며칠 푹 쉬세요. 사마르칸트에서 강행군으로 여기까지 오셨으니 아마 체력이 바닥났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알로펜 감독님. 참 감독님은 주교 호칭을 잘 쓰지 않으시죠?”

“아니, 어찌 그것까지….”

알로펜은 깜짝 놀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세요. 앉으세요. 어서요. 저는 알로펜 님의 가정사는 물론 신앙의 기초까지도 잘 압니다.”

“왜 그러세요. 주교님. 지금 저를 겁박하시는 겁니까?”

알로펜은 긴장했다.

“아니, 뭘 그리 놀라세요. 여기가 어딥니까? 우리들에게는 아무런 기반이 되어줄 것이 없는 타 지역입니다. 이방 지역이에요. 저 밖의 사람들 중에는 느닷없이 가끔씩 맹수가 되어 우리를 잡아먹으려 하는 자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방 안에 편히 앉아서 쉰다는 게 어디 그리 쉬운줄 아세요. 내가 생색내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이 시간을 즐기고, 우리들의 내일을 의논하자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도 먹으면서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일단 마음을 편히 가지겠습니다.”

“그러나 알로펜 감독은 편치 않으실 수 있습니다.”

“왜 그런가요?”

알로펜이 조심스럽게 우비칸을 바라본다.

“간단하죠. 감독이 주교 집에 왔으니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감독이 주교이고, 주교 또한 감독 아닌가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저는 알로펜 감독의 성격을 잘 안다니까요. 저와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죠.”

“나 참, 알다가도 모르겠군요.”

우비칸이 자기 속내를 들여다 보려고 애를 쓴다고 알로펜은 생각했다. 생각보다 순진한 데가 있었다.

“모르기는 뭘요. 저는 다마스커스에서 야고보 장로님이 어떤 분이었는지를 잘 알고 있어요. 세상 떠나실 때 전 재산을 아시아 선교를 위해서 알로펜 감독이 쓰도록 따로 재단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사실도 압니다. 또 알로펜 감독의 부친이 크데시폰 네스토리아 교회 대감독이시고, 페르시아 황궁을 움직일 만한 힘이 있음도 알고 있습니다.”

“저는 전혀 모르는 내용들이군요.”

알로펜은 놀랐다. 외할아버지의 재산이 알로펜 선교 재단으로 재산이 확보되어 있다거나 부친이 황제와 친분이 있다는 등의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그리고 저는 그 재산이 나의 선교 앞날에 보탬이 될지, 그리고 페르시아 황제를 내 부친이 설사 움직일 수 있다고 해도 그것들의 도움을 받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돈과 권세로 선교하는 것이 아님을 우비칸 주교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아닙니다. 나는 돈은 많을수록 좋고, 권세자와 선이 닿는다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선교하는 사람들도 세상의 상식 범주 안에서 사는 것이니까요.”

“우비칸 주교님 저뿐 아니라 여기 있는 저의 일행들도 다 저와 같은 생각입니다.”
우비칸이 빙긋이 웃었다. 너는 아직도 모르는 철부지구나. 순진한 도련님 수준이구나. 그러다가 갑자기 우비칸이 크게 웃는다.

“핫하! 저, 알로펜 감독님.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기독론에 대한 입장은 지금 어떤가요?”

“무슨 뜻이신지요?”

“총대주교의 기독론에 대한 가르침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받았고, 이로 말미암아서 로마교회로부터 정죄 파문 당하셨잖소. 나는 솔직하게 말해서 기독론이 그렇게 복잡한 줄 몰랐소. 내가 이곳에 와서 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교회만 복잡해요. 길거리 나가면 만나게 되는 마니교나 조로아스터, 또는 불교 등은 교리가 복잡하지 않거든요. 알로펜 감독은 이를 어찌 생각하시나요.”

“각 종교들마다 자기의 고유한 교리나 가르침이 있지요. 우리 기독교 또한 정확한 교리가 딱 하나 있지요. 그것만 바로 깨달으면 복잡한 일이 있겠습니까.”

“복잡하지 않다니요. 그걸 몰라서 그러시는 건가요?”

“물론 여러가지 주장들이 있지요. 그러나 주 예수께서 말씀하신 가르침은 딱 하나 뿐이죠. 그러니까 쉽다는 겁니다.”

우비칸은 한동안 천장을 쳐다보면서 무언가 깊이 생각하는 듯도 하고, 화가 나서 그걸 삭이고 있는 것 도 같았다. 그는 그런 채로 한동안 더 지체했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는 유대인들처럼 유일하신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무조건 복종하고 순종하는 자의 사명을 분명히 믿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해서 성부·성자·성령의 관계 또한 상호보완의 관계요,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 인간을 향한 사랑의 표현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통 논리가 아니죠. 어떻게 삼위일체가 하나님의 자기 보완이며, 예수의 십자가가 인간을 향한 단순한 사랑의 표현으로 끝나겠습니까?”

“아이고, 골치야. 자, 우리 이만하고 조금 쉬는 것이 어떨까요?”

“그럼, 그렇게 하시죠.”

알로펜 일행들은 판지겐트로 방향을 잡은 걸 잠시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느 길을 선택한들 우비칸 식 기독교를 피할 수 있을까.

“난 아직 예수가 누구인 줄 모르고 있소. 하나님인지, 사람인지, 하나님이면서 사람인지를 잘 모르오. 그러나 나는 예수복음을 위하여 죽을 수 있는 준비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는 변함이 없어요. 이건 나의 진실입니다.”

우비칸은 독백처럼 말했다. 그는 허공을 응시한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알로펜은 가슴 속에서 슬픔과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저렇게 편하게 예수를 믿을 수 있다는 것인가. 고뇌가 없는 사람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이 말 속에 담긴 하나님의 고뇌를 모르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니.

하나님이 나 예수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그토록 많이 가르쳐 주셨는데도 이를 믿지 않는 사람이 어찌 신자인가? 그들이 어찌 타국까지 찾아가서 아차하면 목숨도 걸어야 하는 선교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인가? 알 수 없는 사람, 우비칸 저 사람은 도대체 누구인가? 알로펜이 자기 가슴을 치면서 밖으로 나가버린 뒤 우비칸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알로펜의 제자들과 대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저녁 때가 되자 우비칸의 제자들이 각기 자기들의 처소에서 회당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비칸은 그들 중 한 젊은이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알로펜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동산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알로펜을 경계하지는 않았으나 그는 표정이 어두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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