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넓은 중국 실크로드길에서 만난 투루판 청년들의 집짓는 모습.


샤푸르가 달려오고 있다.

“이놈아, 뭐가 급해서 사내가 뛰느냐?”

우비칸이 가볍게 나무랬다.

“주교님, 시간을 아껴야겠어요. 오늘 저녁은 알로펜 감독님이 특강을 위해서 시간을 모아야 하거든요.”

“거, 무슨 소리. 내 허락 없이 누가 무슨 특강을 한다고?”

우비칸은 알로펜을 흘깃거리면서 농을 하고 있었다. 샤푸르는 우비칸 주교의 말뜻을 알아듣고는 머리를 두어번 숙여 알로펜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알로펜은 성문 밖으로 발길을 옮겨다. 바윗돌 언덕에 앉는다. 우비칸도 그의 곁에 앉았다. 산세가 좋다. 아름답다. 석양의 태양빛이 파미르 고원 남쪽 벽면을 향해 금빛을 뿌리기라도 했을까. 아름다웠다. 산들은 겹겹이었다. 가까운 산, 먼산 둘, 수천, 수만 개의 봉우리들을 본다.

“저걸 보시오. 저 산들의 얽히고 설킨 몸부림을 보시오. 나는 저걸 산의 형세로 보지 않습니다.”

“그럼, 뭘로 보는 건가요?”

우비칸의 말이다. 그의 말이 약간은 빈정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 그의 말투가 늘 그런지도 모른다는 느낌도 들었다.

“자기 표현의 몸부림이죠?”

“뭐요, 자기 표현…. 그게 무슨 말인가요?”

우비칸이 긴장된 눈으로 알로펜을 쏘아본다.

“그래요. 자기 표현을 했어요.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를 태산의 반열에 올리신 하나님의 심정 표현도 배려한 것일 겁니다.”

“허어, 그게 뭐요? 우문현답? 아니면 날 놀리는 겁니까?”

“아니오, 아닙니다. 나 농담이나 지껄일만큼 한가하지도 않고, 주교님과 오래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아요.”

“……?”

우비칸이 알로펜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알로펜은 잠시 멈칫,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다시 앉으며 말했다.

“우비칸 주교님. 우리 기독교 교리나 성경해석을 함부로 하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내용은 교리의 틀에 묶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도시대부터 성령의 도우심으로 확립한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나 기독론은 이제 거의 정착되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주교님은 조금전 말씀하실 때 보니까 함부로 내뱉더군요. 삼위일체를 성부·성자·성령의 상호보완이라 하시고, 십자가는 인간을 향한(하나님의) 사랑표현이라 하셨지요. 그 말씀 속에는 고뇌가 없어 보였어요. 제가 저 산 파미르의 절경들을 향해 말할 때 창조주를 향한 저 산들의 자기표현이라 했습니다. 이는 고뇌가 동반된 표현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알로펜, 알겠소. 그럼 하나 묻지요. 네스토리우스의 기독론은 어찌 생각하시오. 그는 학자였으며,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로서 로마제국 기독교 수장이었소. 그런데 그는 정죄받았어요.”

“그래요. 정죄받았죠. 그러나 그분의 기독론은 틀리지 않았아요. 바로 그걸 판단함에 있어서도 교리적 표현, 성경 해석상의 긴장감과 조심성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래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기독론 해석을 완벽하게, 이성적 뒷받침까지 해내려는 욕심을 부렸다가 상대편의 함정에 빠졌지요. 그러나 그의 표현법을 손쉽게 평가하는 것도 긴장감 부족이라고 봅니다.”

“그건 또 무슨 궤변?”

“궤변이 아닙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오묘를 모두, 그것도 단시간에 다 해석하거나 입증하려 든다면 그건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고, 경솔함이기도 합니다.”

“그래요. 그건 실수잖아요.”

“물론 실수라고 할 수 있죠. 그러나 그건 교리 표현의 실수가 아니라 상대방 관찰에서의 실수입니다.”

“그 무슨 말인가요?”

“상대방이 내 말을 경청하여 그 뜻을 헤아려 보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말꼬리를 잡아서 나를 구렁텅이로 빠뜨리려는 사람인가의 분별력에서의 실수입니다.”

“거 재밌네. 더 솔직하게 말하시죠.”

“네. 그래요. 네스토리우스가 하나님의 신성과 인성이 사람 안에서 활동하는데 어떤 때는 신성이 인성 보다 강하게, 또 어떤 때는 인성이 신성 보다 강하게 활동하신다고 했더니 이 말을 들은 후, 네스토리우스의 정적인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가 거기서 빈틈을 노렸어요. 신성과 인성이 하나요, 한 분의 속성인데 신성과 인성의 역할을 분리했으니 ‘한 존재’가 아닌 ‘두 존재’로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네스토리우스는 구체적인 증거보다는 일종의 상황표현이었거든요. 바로 이겁니다. 어느 미세한 상황을 설명하려는 욕구가 네스토리우스에게 무리한 표현을 하도록 유혹했다고 할 수는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이 두 분이 아니라, 두 성격, 곧 신성과 인성 표현에 있어서의 약간 무리한 표현을 했다고 해서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따로 가지신 분으로 알고 있는 것인양 네스토리우스를 궁지로 몰아붙인 사람이 키릴루스였어요.”

“그렇군요. 난 거기까지는 몰랐지요.”

“더군다나 키릴루스는 안디옥파에 대한 뿌리깊은 원한이 있던 인물입니다. 그의 숙부가 안디옥파에게 당했던 일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안디옥파로 분류되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함정에 몰아넣었던 것이죠.”

“거 생각할수록 골치 아프네. 알로펜 감독의 신학풀이를 듣고 보니 그 시대의 비밀을 이해할 수도 있으나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요. 그래서 나는 조로아스터교나 불교 등처럼 좀 더 쉽게 교리 해석을 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고 있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인간이 신을 표현하고, 또 신이 인간과 대화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겠어요. 제가 볼 때는 신과 인간의 대화는 한마디 주고받는 그 시간을 셈법으로 계산하면 천년에 한마디 건네고 또 답변을 듣는데 천년이 소요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허허! 알겠소. 알로펜 감독이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느낌이  내게 왔소!”

우비칸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알로펜의 말 많은 교리 해석의 끈질김이나 우문현답식 대화법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가 지금 매우 진실하고, 또 간절하게, 무엇인가를 상대방인 내게 전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서 진실성을 발견했다.

“그러시겠어요.”

알로펜은 말을 하다가 멈칫거렸다. 언제부터인가 안토니와 샤푸르가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웬일인가?”

“네, 죄송해요. 어르신들 대화에 방해가 될까 싶어서 잠시 뒤에 있었어요.”

“샤푸르, 잘왔다. 너 이번 알로펜 주교님을 따라서 서역으로 가거라.”

깜짝놀란 표정으로 샤푸르가 왜냐고 우비칸에게 되묻는다.

“너는 내게 더는 배울게 없다. 알로펜 주교 같은 해박하고 깊이 있는 스승에게 좀 더 배워야 인물 되는 법이니라.”

“……?”

샤푸르는 말없이 하늘 저 멀리 파미르산 언덕의 파미르 족들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왜, 말이 없나?”

“네, 주교님. 저 산들이 가진 비밀을 더 깊이 알 수 없어서 잠시  걱정했어요.”

“이 놈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해.”

“왜 갑자기 저를 버리려고 하세요?”

“버리는게 아니라 좀 더 가르쳐서 인물 만들고 싶어서 그렇다.”

“네, 알겠습니다. 참, 저녁 준비 다 되었어요. 그리고 저녁은 알로펜 감독님의 특강입니다.”

“오냐. 자 어서들 갑시다.”

우비칸은 앞장서서 걸었다. 저녁 공부시간에 알로펜 감독은 예수의 하나님 되심과 하나님이 사람되심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판지겐트는 주로 고지대로서 생활하기에 불편도 있지요. 더구나 고산족(파미르족)들 사이에서 복음을 전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알로펜이 청중들을 향하여 말문을 열자 모인 사람들이 박수를 치기도 하고, 두 손을 들어 가볍게 흔들면서 친절을 표현하기도 했다.

“여러분, 여러분은 우비칸 주교님의 지도력과 복음전파의 열심에 힘 입어 이제는 훌륭한 사도적 실력을 갖춘 것으로 압니다. 그런 여러분에게 내가 무슨 말을 더 하여 여러분의 귀를 어지럽히고 생각에 혼란을 줄 생각이 있겠습니다. 그런데 주교님의 간곡한 부탁을 마냥 모른 체 할 수도 없어서 나서기는 했으나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혹시, 여러분이 나의 이렇듯 난처한 처지를 도와줄 수 없겠습니까? 무슨 말인고하니 궁금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해주시면 내가 아는 데까지 성심껏 답변을 할 수 있겠습니다만….”

알로펜은 그답지 않게 오늘따라 무척이나 장황하게 인사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요나가 볼 때, 알로펜과 동행한지가 20여 년인데 오늘처럼 알 수 없는 화법을 사용하는 것은 처음 대하는 느낌이었다. 잠시 장내는 조용해졌다. 샤푸르가 일어났다.

“감독님, 겸양의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감독님의 뜻을 정중하게 받아모시는 뜻으로 제가 질문을 하나 올리겠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언젠가는 끝끝내 해결해야 할 예수의 성격 구분이 있지요. 역사 속에서 학자들마다 고심한 결과이기는 하겠으나, 첫째, 예수는 하나님이시다. 둘째, 예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러므로 피조물 중에 하나이다. 셋째, 아니다. 사람이시기는 하나 일반 피조물들과는 달리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유일한 분이시며, 하나님 보다 약간 부족하나 다른 인간들 보다는 월등하다. 넷째, 예수는 하나님이시며 또 사람이시다. 사람이시지만 이 분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여 믿는 자들에게 혼선을 일으키게 합니다. 이에 대하여 알로펜 감독님은 정확하게 말씀해 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샤푸르의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할 알로펜은 앉은자리에서 머리를 숙이고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간이 계속 지체되고 있었다. 청중들은 기다리다가 지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고, 옆사람에게 소근거리기도 하고, 심지어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비칸 주교는 처음에는 잠시 머리를 갸우뚱 하더니 곧 이어서  알로펜과 같은 자세로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시간이 무려 10분 쯤이나 지났을까, 알로펜이 그제서야 일어나서 처음 보다는 약간 큰 음성으로 말을 시작했다.

“여러분, 여러분은 샤푸르 님이 내게 주문한 질문이 어떤 것임을 아시죠? 마땅히 그 질문이 엄위하고 무서울만큼 우리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간절한 질문이고, 더 나아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사람은 다음 동작을 중지해야 할 만큼이죠. 성경 사도행전에 이런 말씀이 있지요.

‘위로부터 능력을 힘 입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말입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은 성령 하나님이 내게 강림하시는 사건을 말합니다. 능력을 힘 입을 때까지를 기다리지 못하고 딴짓 하는 사람들은 떠돌이들입니다. 정처가 없는 나그네요, 무책임한 잡배들일 수도 있습니다.

샤푸르님, 형제가 내게 던진 질문은 너무 장황합니다. 그럼 형제에게 묻지요. 샤푸르님은 첫째, 둘째 등에서 몇번째 예수를 믿고 따르십니까?”

모인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조심스런 눈으로 알로펜을 주목하거나 일부는 방의 천정을 우두커니 바라보고 있었다.

“네, 감독님. 저는 솔직하게 넷째번을 신뢰하고는 있으나, 가끔씩 세번째와 네번째 사이를 오고갑니다.”

“그래, 그럼. 아직 정처가 없구먼요.”

“네, 그런 셈입니다. 많이 부럽습니다.”

“아니오. 그대는 머지않아서 주님께서 또 한 번의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자, 여러분, 저는 오늘 저녁에 여러분에게서 주 예수를 향한 지극한 소원을 가지고 있음도 보았고, 또 몇몇 사람은 간절한 마음자세를 놓치고 허둥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나는 오늘 샤푸르가 내게 던진 질문이 평생 또는 100년 수업용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도(道)의 첩경입니다. 그렇다면 늘 겸허하여 그 은혜를 받을 때까지 목마른 사슴처럼 허기진 나그네처럼 간절한 마음자세를 겸허함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성경 복음서 부분을 보면 제자들은 그들이 모시는 예수가 누구인지를 모르고 주님께 고통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마태복음 끝부분, 겟세마네 기도에 들어가실 때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말씀도 하셨지요. 이는 배반이요, 반역입니다.

3년 동안 길러낸 제자들인데 겟세마네 기도의 그 밤에 제자들이 주님을 다 버렸다면 주님의 살림살이가 파산한 것이나 다름이 없잖아요. 잠시후면 잡혀가서 죽으실 예수의 그 시간에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렸다고 기록한 성경을 똑바로 읽어야 합니다. 그같은 실수나 실패는 주 예수가 누구신지를 모르는 어리석은 제자들의 몫이 됩니다.

여러분, 아직은 잘 몰라도 좋습니다. 100년 공부라 했습니다. 100년을 하루처럼 주 예수를 바로 배우기 위한 겸손한 자세만이 여러분과 내가 각기 사명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방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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