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제르바이잔에서 현지 문화에 대해 나누는 필자(오른쪽)와 현지인 및 선교사.


“감독님,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하나님이시고 사람이라는 차이점은 뭔가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군중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자기 신분을 밝혀야죠.”

알로펜은 빙긋이 웃으며 군중들 사이를 휘둘러 본다. 총명해 보이는 청년이 뒷머리를 긁으면서도 알로펜과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감독님, 제 이름은 쿰보그입니다. 지금 사마르칸트 지역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쿰가그가 저의 형이고, 저는 쌍둥이 아우가 됩니다.”

“어, 생각나는군. 쿰가그. 고창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형제였지요.”

“그래, 맞습니다. 저희는 고창국 출신입니다. 저희들 형제는 진리를 찾아 천축국으로 떠나는 중국인 구도자들을 고향 고창국에서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장안에서 출발하여 고창국 오는 길에 목숨을 잃은자도 많다 하고, 서역을 거쳐서 천추국까지 가다가 생을 마감하는 자들이 많음을 저희 형제들은 어려서부터 보아왔습니다. 저희 형제를 향하여 부모님은 말씀하셨어요. 너희들도 생각을 깊이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아, 좋은 부모님을 두셨구먼. 그래, 부모님이 충고를 받아들여서 주 예수의 제자들이 되셨는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제 형 쿰가그는 몰라도 저는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감독님이 도와주세요.”

“허어, 그런 무례가 어디 있소. 쿰보그 형제는 우비칸 주교님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들인데 스승에 대한 예의가….”

그때, 우비칸이 나서서 알로펜의 말을 받았다. 샤푸르나 쿰보그는 내가 쫓아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우비칸은 빙긋이 웃으며 샤푸르와 쿰보그를 바라본다.

“왜, 내가 너무 아둔해서 버리려고 작정하셨나요.”

쿰보그가 황소 눈을 휘둥그레 가지고 볼멘소리로 말했다.

“아니야. 유학보내는 거다. 알로펜 감독님의 학교로 말이다.”

“왜 그래야 하나요.”

“응, 내가 말씀을 듣고보니 아무래도 교리학 전공은 나보다 알로펜 감독이라는 판단을 했다. 조금 전 말씀하시지 않더냐. 100년은 공부해야 한다고 말이다.”

“맞습니다. 저도 100년 공부라는 말씀을 하실 때 바로 저 분이 전문가로구나 했지요.”

“예끼놈, 내가 그래도 너희 놈들을 지금까지 길러왔는데 내 앞에서 어찌 그런 말을 하느냐. 쿰보그 너 이놈….”

우비칸은 말은 거칠게 느끼도록 하면서도 농을 하듯이 말을 한다.

“감사합니다. 우비칸 주교님. 그러나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가 고창에 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지요. 달마라는 불승이 소림사에서 득도하는 과정이야기가 있어요. 면벽수도 9년이라던가….”

“그래, 이놈아. 그 사람 달마가 이곳 판지겐트에서도 여러해 머물며 면벽수도를 했다더라.”

“아, 그런가요? 저는 달마승의 수도 기간을 신기롭게 들었는데, 오늘 알로펜 감독님의 100년 공부 말씀을 듣고 도(道)를 구하는 것에는 목숨을 바쳐야 하는구나를 떠올렸습니다.”

“쿰보그! ‘9년이다, 10년이다’라는 말은 옳지 않아요. 주 예수께서는 진리와 더불어 만날 때까지라 하셨지요. 진리와 만나기 전에는 앉은 자리에서 그대로 죽어나갈 각오를 하라고 하셨답니다.”

알로펜의 말을 들은 청중들이 웅성거리고, 어떤 이들은 그 말씀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사도행전 1장에 있고, 누가복음 2장에도 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하셨고, 누가복음 2장 말씀에 나온 시므온의 찬미 내용을 보면 주의 구원을 보기 전에 너는 죽을 수도 없다고 하였지요.

하나님의 말씀에는 이토록 혹독한 대목들이 있습니다. 은혜(도)를 받기 전에는 죽은 듯이 엎드려 기다려야 한다는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아이고, 그러면 누가 예수를 따르겠습니까?”

“샤푸르 형제여. 그런 나약한 말 하지 마시오. 조금전 불교 승려 달마의 이야기 듣지 못했소. 달마는 사람과의 대화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벽을 바라보는 묵상을 9년 했더니 드디어 도를 얻었답니다. 여러분은 9년을 주목하지만 그게 아니죠. 9년 되어 도를 얻었지요. 그래 너무나 기뻐서 몸을 일으키려 했더니, 아뿔사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았더랍니다. 그래도 도를 얻은 기쁨에 취하여 몸을 다시 추스렸더니 이미 무릎뼈가 썩어 버렸다더군요. 사람들은 9년에 관심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무릎뼈가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진리를 사모했을 달마가 친구처럼 여겨집니다.”

장내는 숙연해졌다. 그날 밤 모인 제자들 중 몇 사람은 ‘악’ 소리를 지르며 훌쩍이는 이들이 있었다. 알로펜 자신도 그가 한 말에 취하며 잠시 목이 메이는 통증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여러분, 그러나 우리는 감상에 젖어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리의 아들들, 반드시 드넓은 아시아 저 편에 복음을 심어야 합니다. 나는 내일 아침 떠나겠습니다. 카슈가르나 쿠처에 머물가 했는데 쿰보그의 고향 고창에 둥지를 틀고서 나의 형제, 또 나의 제자들과 일단 서역 중심의 선교 터전을 강화하고, 판지겐트 우비칸 주교가 도와준다면 함께 중국으로 달려갈 참입니다.”

알로펜의 말이 잠시 끝나자 샤푸르가 일어섰다.

“감독님, 말씀 중에 ‘예수는 누구냐’에 대한 답변이 충분하지 않습니다. 좀 더 정리해 주시죠.”
“그런가? 사실은 나도 잘 모르지. 다만 그 분은 하나님이시고, 또 사람이신거는 알아요. 그러나 더 이상 구체적인 설명은 못하겠어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사실이야. 아는데 모르는거야. 설명할 수는 없어요. 다만 하나님의 자기 희생, 자기 포기가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음으로 나타났지요. 하나님의 죽음이냐, 예수의 죽음이냐로 망설이면 정말로 모르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죽음을 확인하는 순간, 바로 그 사람은 예수의 몫으로 남은 날 동안을 살게 되어 있지.”

“점점 더 어려워지는군요.”’

쿰보그가 한숨을 내쉬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래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안됩니다. 그래서 100년 공부요, 시적인 표현으로는 달마의 9년 수도라 하죠. 달마 그분, 내 고향 크데시폰 출신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그분이 중원대륙으로 가서 성공했다는 말을 어른들이 하더군요.”

“감독님, 달마와 불교에 대해서 한 말씀 해주시죠.”

쿰보그의 말이다.

“그래요. 달마 불교를 유심히 살펴야 합니다. 천축국에서 출발한 싯타르타 부처가 일으킨 불교는 초기 500년의 소승불교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우리 기독교의 사도시대 후기 무렵 대승화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는 대승적 기반으로 출발한 예수시대가 오늘 우리들의 때에 와서는 소승적 종파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는 참으로 억울합니다. 그래서 기독론이 해석이 안되는 것이죠.”

“야, 정말 명언입니다.”

우비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알로펜의 어깨를 포옹한다. 그는 알로펜의 오른편 왼편 뺨을 거듭거듭 자기 얼굴로 부비면서 놓아주지 않았다. 알로펜이 우비칸의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고도 그 둘은 한동안 더 얼싸안고 있었다. 두 사람 감독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는 제자들은 소승(小乘)과 대승(大乘)의 관계를 미처 모르는 것 같았다.

“샤푸르입니다. 저희는 어르신들이 왜 그렇게 감격해 하시는지를 모르겠습니다. 자세히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요. 대승과 소승의 관계란 하나님이 자기를 버리고 사람 되셨고, 사람 되심은 사람들이 하나님처럼 살아달라는 요구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대승종교의 형식이고, 하나님이 하늘에서 천사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는 수준은 소승종교의 틀이라고 합니다. 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신지 100여 년 후에 나타난 불교의 대승화는 요한복음 사상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이라는 학자들의 의견도 있더군요. 바로 지금 우리 기독교가 대승적 가치를 회복하여야만 아시아에서 자기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그래요.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도 어렵기는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면벽 9년의 달마 이야기 말입니다. 또 다른 표현을 해볼까요. 우리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30년 준비하시고, 3년 공생애 활동을 하신 일에 대해서도 여러분과 나는 생각을 깊이 해야 합니다.”

“감독님, 저도 잠깐 끼어들어도 될까요?”

“무슨 말씀, 마땅히 그러서야죠. 우비칸 주교님이 말씀하시겠습니다.”

우비칸이 단상으로 나선다. 우비칸의 제자들은 자리를 고쳐 앉는 등 더 긴장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귀한 말씀을 해주신 알로펜 감독님께 다같이 박수로 경의를 표합시다.”
알로펜이 나와서 답례로 고개 숙여 청중에게 인사를 하고, 이어서 우비칸에게도 목례를 보낸다.

“자, 여러분. 내가 그동안 알로펜 감독님의 소식을 풍편으로만 듣다가 오늘 직접 모시고 대화를 나누고, 또 이 시간 강의를 들으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정말로 깊은 신앙심과 진리탐구의 몸가짐은 물론 100년 예수공부를 거침없이 선포하시는 용기 앞에 정말로 경의를 표합니다. 이제 우리는 중앙 아시아와 서역 일대에서 큰 스승을 모시게 되었어요. 나를 비롯하여 우리들 모두는 알로펜 감독님의 지도를 받읍시다.”

말을 마친 우비칸이 알로펜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당황한 알로펜이 우비칸을 일으키려 했으나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알로펜도 우비칸을 마주 바라보면서 무릎 꿇고 앉았다. 제자들 모두도 무릎을 꿇고 앉아서 두 사람 감독들을 향하여 박수를 보내며 환호를 했다.

우비칸이 먼저 일어나서 알로펜을 일으키고 함께 일어섰다.

“감독님, 나 오늘 정말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불교는 소승에서 대승으로 발전해 가는데 기독교는 대승에서 소승으로 되돌아갔다는 말씀은 정말 통쾌합니다. 이는 예수에게서 모세로 되돌아간 것이고, 자유하는 종교에서 계율의 노예가 되는 길을 가고 있으니, 바울 선생 말씀에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저주 아래 있다는 경고를 떠올리게 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잘 정리하시는군요.”

“아닙니다. 그리고 대승불교의 길을 가르친 스승이 요한복음 저자일 수 있다는 말씀은 경천동지할 새로운 학설입니다. 알로펜 스승님의 혜안과 통찰력이 제게는 두려움과 함께 외경심을 일으켜 주십니다그려.”

“무슨 과찬의 말씀을….”

강의시간이 예정 보다 조금 지났다. 그들 모두는 자리를 옮겨 저녁 식탁이 준비된 식당으로 옮겼다.

저녁식사 후 알로펜 일행은 귀빈숙소로 안내되었다. 그들은 침실이 3개와 거실이 있고, 욕실 겸 세면실까지 갖춘 시설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비칸의 성격과 선교단 수준을 짐작케 하는 분위기였다.

사마르칸트 선교단 보다 규모와 시설이 우위에 있어 보였다. 제자들 훈련이나 대외활동은 다 알 수 없으나 알로펜은 우비칸의 능력을 인정해야 했다.

다음날 아침, 알로펜은 길을 잡았다. 파미르 계곡을 타고 일단은 카슈가르까지다. 한 달 반은 걸린다는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참고로 여행 준비를 했다. 우비칸의 지시에 따라서 샤푸르와 쿰보그가 일행에 추가되어 모두 9명이 이른바 서역이라 하는 오아시스 도시를 향하여 가고 있었다.

“저 쿰보그가 길 안내를 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파미르 고원지대를 넘어갑니다. 일주일이면 고원지대를 벗어나서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40일 정도 지나면 카슈가르에 도착합니다. 다시 30일을 가면 쿠처왕국, 다시 30일 정도를 더 걸으면 저의 나라인 고창국에 도착을 합니다. 100일을 걸어야 하는 이 길을 걸으면서 모두 건강하셔야 합니다. 건강 유지법은 경거망동을 삼가는데서 출발합니다. 나는 건강하다, 자신 있다, 힘이 넘친다면서 방심하면 사고납니다. 그리고….”

“쿰보그, 그만 하슈. 우리가 누굽니까. 지난 20여 년 나는 알로펜 감독님의 발걸음을 따라서 길에서 살아온 요나입니다. 그러니 여행의 비법을 잘 알고 있소.”

“아이고, 내가 실수했군요. 제가 내 고향에 간다는 생각에 취하여 실수했습니다.”

“실수가 아니라 실언을 하셨지.”

세비야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일행은 모두 즐거웠다. 하늘 맑고, 산세가 높아서 좋았다.

우비칸 주교가 한 주일만 더 쉬어 떠나면 어떠냐고 알로펜에게 요구했으나 일행 모두의 의견이 오늘 떠나면 좋겠다고 했었다.

“알로펜 스승님! 바울 선생의 이 말을 빌어 송별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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