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슈가르(타클라마칸 지역)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주후 9세기 설립한 이슬람 모스크.


움막을 걷어내고, 출발준비를 했다. 쿰보그는 언제 일어났는지 모르겠으나 웃통을 벗고 온몸 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알로펜은 어제 일이 생각나서 빙그레 웃었다. 북방계 장골이 한팔접이도 안될 것 같았던 안토니에게 당했으니 아직도 그에게는 울분이 남아 있는 듯했다.

찬바람이 부는 고산지대 여명을 갓 벗어난 시간에 웃통을 벗은 쿰보그 등허리에서는 약간의 땀이 송글거렸다. “이보게, 너무 무리는 하지 말게. 감기 몸살 들까 두렵네 그려.”

“아이고, 스승님. 언제 나오셨어요. 부끄럽습니다.”

쿰보그는 무엇이 부끄러운지는 말하지 않은 채 자기 움막으로 들어가 버린다. 알로펜은 드넓은 파미르 지대를 멀리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경탄한다. 해발 4천미터 산지가 지평선 현상을 일으키는 듯 하다니. 이 산지 곳곳에 티베트인들의 수십 개 나라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 나라들이 대륙 아시아로 가는 여행길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그는 은근히 바라고 있었다.

일행은 은빛 빙하지대를 지나고 높은 산, 절벽을 어슬렁거리면서 비껴가는 길들을 따라서 열흘쯤 더 걸었다. 모두들 지쳐있었다. 안토니나 크데시폰의 앗스기아는 발을 절룩거리면서 고통을 호소하였다.

“여기가 연흥보인가? 조금 더 가면 적불당 지대가 나오지. 많은 불교 승려들이 사원을 짓고 진리를 얻기 위하여 노력을 한다는 곳이야.”

알로펜은 마치 이곳을 다녀본 경험자처럼 말했다.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감독님, 언제 여기 다녀가셨나요?”

요나가 물었다.

“여보시게들, 꼭 다녀봤어야 아는가. 책임자는 미리서 공부를 해야 한다네.”

“…….”

모두들 더는 묻지 않았다.

“우리 조금만 더 힘을 내서 걸어보세. 적불당 지대에 가면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

알로펜의 기대에 찬 말을 들은 일행은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힘이 났다. 며칠 후 적불당, 불교도들의 사원과 여행자 집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요나와 세비야가 단숨에 달려가서 사원들 중에 큰 곳을 찾아갔다. 그들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여행자들인데 환자도 있고 해서 도움을 요청한다고 말했다.

“저기 모퉁이를 돌아가면 객사가 있으니 그곳으로 가보시오.”

싸늘한 반응이다. 생각과는 달랐다. 요나가 뒤돌아서는데 세비야가 중년 승려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잠깐만요.”

승려가 귀찮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마지 못해서 되돌아서려 한다.

“저희는 승려 여러분의 동반자들이요. 같이 진리를 탐구하는 도반입니다.”

세비야의 이 말에 승려는 잠시 긴장하면서 그의 위아래를 빠르게 훑었다. 세비야 일행의 행색을 죽 둘러보더니 당신이 말해보라는 듯이 알로펜에게 시선을 모은다. 알로펜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공손하게 인사를 했다.

“저희는 페르시아에서 중국의 장안을 목표로 길을 나선 일행들입니다. 각기 고향을 떠난지 길게는 20여 년에서 10여 년의 장기 여행을 하다보니 지친 몸이 되어 자비무한 하신 부처님의 은혜를 힘입어 잠시 쉬면서 배움도 얻고자 합니다. 스님께서 너그러이 받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로펜의 공손한 말을 듣고 있던 승려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그렇군요. 부처님의 자비와 도를 구하시는데 제가 뭐라 더 말씀드리겠소이까. 일단 드시죠.”

알로펜이 안내를 받으며 몇 발 옮기다가 머뭇거리자 중년 승려가 뒤돌아보며 따라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의 표정은 온화한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법당 안으로 안내되었다. 사막에 인접한 고산지대인데도 법당 내부는 매우 단정하고 웅장했다. 부처상을 향해 가부좌를 튼 승려보다 한 줄 뒤로 알로펜 감독이 무릎을 꿇고 부처상을 향하여 눈을 감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제자들도 알로펜보다 한 줄 더 뒤로 줄을 이어 무릎을 꿇었다.

한참 후에 승려가 안내한 곳은 노승이 머무는 방이었다. 노승이 환하게 웃으며 일행을 안내하여 자리 잡게 한다.

“먼 길 오셨습니다. 저희를 이렇게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무학이옵니다. 배움이 없다는 뜻이죠.”

그리고는 일행을 박대하려 했던 승려를 흘깃 바라보면서 노승은 거듭 말했다.

“혹시 저놈이 결례는 저지르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놈이’라는 말을 듣자 중년 스님이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그러자, 알로펜이 손사래를 치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저희를 극진히 살피셨지요. 제 이름은 알로펜입니다.”

제자들도 암요, 암요 하면서 알로펜을 거들었다.

“그래요, 참 신통하네. 저 놈이 내 아들입니다. 성깔이 나빠요. 또 인색하고….”

“아닙니다. 전혀….”

“그렇담 다행이네요. 내 아이 눈에 귀빈으로 보였나 봅니다 그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사찰이 언제부터 여기에 자리를 잡았을까요?”

“글쎄, 역사를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5백년은 넘었다더군요. 우리 불교가 천축국(인도)을 떠나 이 길을 거쳐서 타클라마칸 지대와 중국 땅을 넘나든지는 아마 9백년 전부터였을 겁니다. 알렉산더가 천축국 인더스 강 지역까지 정복해 오면서 아시아에 큰 변화가 시작된 걸로 압니다. 서양 사상이 인도, 아프카니스탄, 페르시아는 물론 여기 파미르를 넘어 중국대륙까지 세계 종교와 세계인의 공생공존의 기초를 마련하였겠지요.”

“맞습니다. 참, 저희는 기독교 구도자들입니다. 불교를 배우고 중국 사상도 배워서 공생공존의 세계인의 시대를 앞당기기 위하여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하, 반갑구려. 관상을 보니 학덕과 넉넉한 인망이 철철 넘친다 했더니 이 무식한 종놈을 좀 깨우쳐 주십시오.”

“어인 말씀, 말씀을 거두어 주십시오. 저는 지금 배움을 찾아서 먼 길을 떠난지가 30여 년, 세월만 까먹은 중늙은이랍니다.”

“아니오, 아닙니다. 그나저나 모두들 피곤해 보입니다. 좀 쉬시고 이야기는 나중에 하십시다. 아, 유승아! 어서 와서 알로펜 선생님 모셔라.”

유승이 달려들어 왔다. 뛰쳐나갈 때와 달리 싱글거리며 매우 공손한 몸짓으로 알로펜 앞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저 선생님, 앞으로 저를 지도해 주실 스승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좀 전에는 미처 몰라 결례를 했으니 용서를 빕니다.”

그는 알로펜에게 넙죽 큰 절을 올린다. 머리통을 바닥에 꽂아둔 채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와 하핫! 저놈이 이제야 제대로 스승이 누구인지 알아보는구나. 너 알로펜 선생님 따라서 떠날 준비를 하거라.”

“네, 아버님. 아니 스님의 명을 받들겠습니다.”

유승이 엎드린 자세에서 순간 동작으로 부친인 스승 쪽을 향하여 앉더니 따르겠노라 하였다.

“무슨 말씀을…, 저는 아직 부족합니다. 큰 스님 말씀을 거두어 주세요.”

“아니 그럽니다. 나는 나를 좀 압니다. 그리고 관상학이 오히려 내 전공이죠. 알로펜 선생님은 아시아의 예수님이 될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내 아들이 아직은 철이 들지 않았으나 잘 다듬으면 자기 몫은 해낼 것으로 압니다. 어서 가셔서 일단 편안히 쉬세요.”

알로펜은 더는 말하지 않기로 했다. 유승이 안내한 곳은 객사가 아니라 본존불상 뒤켠에 자리한 별실이었다. 9명 일행이 머물기에는 넉넉한 장소였다. 침실이 6개나 있고 중앙에 거실이 있고, 실내와 야외로 복합공간인 목욕실은 물론 주방시설도 있었다.

일행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쿰보그와 샤프르를 제외하고는 사마르칸트를 떠난 후 모처럼 만나게 된 휴식처였다.

“유승 스님, 감사합니다. 제 이름은 세비야입니다. 그리고 제가 모두 소개드리죠. 내 옆에 있는 이가 요나, 그 옆으로 다마스커스의 사울, 안토니, 트빌리시 스데반, 크데시폰의 앗스기아입니다. 저희는 최소한 20여 년 동안 여기 계신 알로펜 주교님의 개인지도를 받으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반갑습니다. 주교이면 그 신분이….”

“네, 한 나라의 왕이나 다름없지요. 기독교에서는 교왕으로 모시는 신분입니다.”

“와아, 왕이라…. 아이쿠!”

유승은 또 한 번 알로펜 앞에 엎드렸다. 이번에는 두 손과 두 발을 뻗고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는 오체투지였다.

“아니오, 그러지 마시오. 우리는 다 형제들입니다. 세비야! 앞으로 어디서든지 그런 과장된 표현은 삼가야 합니다. 이분들 보세요. 유승 스승님이나 조금 전의 무학 스님이 우리를 형제로 대하는데 어찌 그런 표현을 하셔서 거리감을 두게 하는가.”

알로펜은 유승을 붙잡아 일으키더니 가슴으로 따뜻하게 껴안아 주었다.

“감독님,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그래, 이제 됐네.”

세비야의 등허리를 토닥여 주면서 알로펜이 그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타종교 앞이라 해서 한 번 우쭐거려 본 것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알로펜은 세비야 앞으로 다가가서 너의 말뜻을 내가 알았노라는 듯이 미소지으며 머리를 의미있게 끄덕였다. 세비야 역시 알로펜의 미소를 미소로 받아들였다.

“유승이옵니다. 주교님, 왕 같은 주교님. 제가 감히 제자 되기를 청하옵니다. 아직은 주교님의 잔심부름이나 하면서 도움이 되고 싶습니다.”

“아, 유승님. 좀 더 두고 생각해 봅시다. 너무나 뜻밖이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받아주시니 감사합니다. 장차 저도 주교님의 제자되기에 부끄럽지 않도록 분골쇄신 하겠습니다.”

일행 모두가 박수로 유승의 간곡한 소청을 받아들인다는 화답을 했다. 요나가 한 말을 보탠다.

“유승, 저희 제자들은 유승님을 동행자요, 도반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스승님의 최종 판단은 주교님의 몫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여러분 그동안 노독에 많이 시달리셨으니 여기서 며칠 푹 쉬시면서 내게 예비로 공부 좀 시켜주세요. 헤헤.”

유승은 나이답지 않게 애교를 떨었다. 그리고 그는 시설을 두루 살핀다. 혹시나 부족한 것이 있나를 살피는 듯했다. 일행은 각기 몸을 씻고 둘씩 지정된 방으로 가서 곯아떨어져 잠들었다.

저녁상을 준비한 유승이 방을 돌면서 식사시간을 알렸다. 식당으로 나가자 양고기 냄새가 코를 찔렀다. 혀에서는 군침이 돌고 모두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여기가 어딘가? 절간이다. 웬 고기인가? 모두들 어안이 벙벙이다.

“왜들 그러세요. 아, 양고기 때문인가요? 제가 한 마리 잡았죠.”

“그래도 됩니까?”

알로펜이 근심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주교님, 걱정마세요. 저희도 짐승을 잡는 일을 평생 한 번쯤은 관대하게 받아들인답니다. 이미 제 부친께서 제가 주교님 제자됨을 명하셨고, 또 제가 기쁘게 제자됨을 청하고 있으니 이는 결코 불상사가 아닙니다.”

“뭐, 불상사가 아니라고…? 그 친구 농이 그럴싸 하네 그려.”

트빌리시의 스데반이 낄낄낄 웃으면서 밥상 앞으로 나섰다.

“감독님, 오세요.”

스데반이 권했다. 모두 모처럼 융숭한 식탁 앞에서 포식을 하였다.

“여보게들. 조금 전에도 스데반이 날더러 감독이라 했어요. 그런데 어떤 때는 감독이다 주교다 하는데 오늘 이 시간부터는 ‘주교’로 통일해 주시오. 어감도 그렇고, 자칫 두 이름을 각기 부르면 상대방이 누구든지 이상하게 느낄 것입니다.”

“맞습니다. 앞으로는 제자들이 많이 늘어날 것이고 타종교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자 하는 이들이 많겠으니 호칭도 가다듬고, 조직도 강화해야죠.”

앗스기아의 말이다.

“앗스기아여. 자네 그런 표현은 내가 금하네. 원칙적으로 타종교와의 사귐을 장려하지만 종교간의 경쟁이나 개종 같은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는 자세를 가져야 해. 여기 적불당을 떠나면 머지 않아서 우리는 허탄에 도착하지. 그곳은 불교의 성지나 다름없어요. 그곳에 가서는 우리가 어떻게 처신할까에 대해서 무학 스님께 배워 두어야 할꺼야. 그리고 여기 우리 일행이 되고자 하는 유승 스님도 나와 한동안 지내면서 기독교와 불교, 또 불교와 기독교가 어느 만큼 친하게 지낼 수 있는가의 실험기간이 될거야. 만약에 유승 스님의 기독교 공부가 제대로 되었을 경우, 유승은 불교집으로 돌아와서 부친 무학 스님을 받들어 훌륭한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고, 또 나 또한 제자를 제자답게 가르친 선생의 자격을 감히 가졌다 할 수 있을거야.”

알로펜의 말이 매섭다. 그리고 너무나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쳤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때 유승이 엉엉 울면서 알로펜의 무릎 앞에 엎드린다. 한동안 그는 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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