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고원 탄구령 지대의 빙하가 아름답다.


“감사합니다. 우리들의 모범이신 바울사도의 생애와 사상을 함축할 만한 말씀이군요. 저희도 뒤지지 않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유럽이라면 반드시 저희는 아시아에 복음의 영원한 터를 잡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저희는 여기 파미르 높은 곳에서 동쪽과 서쪽을 지켜보겠습니다.”

우비칸은 알로펜을 통하여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헤어질 때 알로펜의 두 손을 마주 잡고, “나 앞으로는 기독론이나 삼위일체론에서 더는 아는 척하지 않겠소이다. 나 분명히 약속하죠. 당신은 언제나 나의 스승이 되어주세요.”

“아니오, 그럴 수 없습니다. 나는 나이고, 우비칸 주교님은 우비칸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거북스럽게 스승이 뭡니까. 우리는 동지요, 친구”라고 했지만 우비칸은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마치 착한 아이처럼."

알로펜은 우비칸의 솔직한 마음자세가 마음에 들었다. 앞으로 판지겐트의 우비칸, 사마르칸트의 시므온과의 긴밀한 협조, 그리고 고창에 자리잡을 나의 행보를 떠올려 보았다. 아, 산세가 만만치 않구나. 고소공포증까지는 아니지만 머리가 어지럽다. 판지겐트를 떠난지 보름이 지나고나니 체력이 달렸다. 몸이 흔들리고 구토증세가 밀려왔다. 알로펜은 주춤거리며 몸의 안정을 찾아야 했다. 그때 쿰보그와 샤프르가 달려와서 그의 양 어깨를 붙잡았다.

“여기가 탄구령 근처 고개인데 지금 우리가 걸어다닐 수 있는 길에는 빙하지대가 포함되어 가장 고약한 험로를 지나가고 있습니다(약 해발 4천7백미터). 우리는 해 지기 전에 몸을 위탁할 장소를 찾아야 합니다. 자칫 산적들에게 붙잡히면 고생하게 됩니다.”

쿰보그가 뭐라하는데 그 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내가 왜 이러지. 내가 우비칸에게 쓸데없는 소리를 너무 많이 한 징벌로 이러는가. 그렇지. 예수를 어떻게 말로 설명하는가. 부질없는 짓이지. 지긋이 눈을 감고 하늘 쪽으로 머리를 들었다. 주황빛 빛살이 희미하게 느껴진다.

“요나입니다. 선생님. 어디 아프셔요?”

“아니야. 걱정들 마시오.”

알로펜이 몸을 일으키며 빙긋이 웃는다. 미안하구먼,미안하구먼을 연거푸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발을 옮겼다. 아이쿠, 급경사 길이다. 천길 낭떠러지 사이사이로 검붉은 황토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이 길이 언제부터 열렸을까. 천년도 더 오래전부터 이 길을 걸었겠지. 동서대륙의 사이를 이어주는 길이겠지. 문명과 문화가 오고가면서 길들여진 길이겠지.

깎아지른 벼랑 사이사이로 등짐을 진 사람들. 노새인가 말인가 하는 짐승이 보인다. 방물장사 일행일까? 작은 규모의 사람들이다. 이 길을 고삿길 누비듯이 다니면서 돈벌이에 열중하는 소그드 상인들인가. 벼랑길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다시 현기증이다.
알로펜은 다시 주저 앉아버렸다. 일행 모두 알로펜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감독님, 오늘은 어디에서 좀 일찍 쉴까요?”

세비야가 걱정스러워 한다.

“그래도 좋지.”

알로펜은 높은 산 멀미를 하고 있었다. 일행은 가까운 곳보다 좀 더 산아래를 생각했다. 알로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조심조심 산길을 걷는다. 길이 매우 좁았다. 한 줄로 서서 걷는다.

한 발 헛디디면 천길 낭떨어지다. 사추리가 간질거린다. 모두가 숨죽여 걷는다. 잠시 후 길 옆으로 펀펀한 빈터가 열려있는 곳에서 숨을 돌렸다.

내리막길이 훨씬 힘드는 법, 조심이 지나치다할 만큼 부들부들 떨면서 발을 옮겼다. 이마에 진땀이 송글거린다. 산 계곡이 넓고 깊게 펼쳐진 지점에 도달했다. 앞서 온 여행객들이 수십 명이 있었다. 각기 그룹간의 간격을 가장 고약한 험로를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둥그랗게 둘러앉아서 웃는 사람, 웃통을 벗고 기지개를 켜는 사람, 물을 마시는 사람,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알로펜 일행은 굽이굽이 산세가 그들이 있는 곳보다 갑절은 더 되어보이는 산들이 눈에 들어오는 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들 일행도 알로펜을 중심하여 원형의 모습으로 자리를 잡았다.

“모두들 괜찮은가요?”

알로펜이 일행 모두를 둘러보며 빙긋이 웃었다.

“탄구령 고갯마루가 맵군요. 내가 혼쭐이 났어요. 자연은 역시 강해요. 앞으로도 한 달 이상을 산 속을 헤메야 한다니 단단히 각오를 하세요.”

“아닙니다. 그렇게 많이 걸리지 않아요. 아기자기한 골짜기도 나오고, 공중에 돌더미들이 매달려 있는 계곡도 만날 것이지만 견딜만 할 것입니다. 가다보면 산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조그마한 마을도 있고, 드넓은 평원을 만나게 되죠. 하늘과 땅이 마주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과 땅 외에는 아무것도 없어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구먼. 가슴이 하늘만큼 열리네그려. 아주 상쾌해요. 여러분 모두도 그렇죠.”

일행들도 ‘와아’ 하고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친다.

“저런, 아이들처럼 들뜨기는…. 조금 전 거꾸로 내려꽂히는 둔한 낭떨어지를 내려올 때는 숨소리도 들리지 않더구먼.”

“아닙니다. 감독님이 가장 무서워 하시던데요.”

안토니가 싱글거리며 말했다.

“엣기, 이 사람!”

알로펜이 킬킬 웃어넘긴다.

“하긴 그래요. 난 너무 무서웠어요. 아무래도 바지에 오줌을 좀 싼 것 같아요. 이런 낭패라니….”

알로펜은 진짜 오줌이라도 싼듯이 한 손으로 바지춤을 만져보면서 한번 더 크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 힘이 찼던지 산이 우렁우렁 하는가 하며, 다른 여행객들이 알로펜 일행쪽을 바라본다.

“그래, 우리 인생공부의 중대고비가 여기 파미르 고원이구나. 높은 산 오르기도 했지만 이제는 내려가는 정성과 지혜가 있어야겠구나. 여러분 오늘은 여기 고원의 넓다란 분지에서 쉬면서 하산 후 일정을 좀 논해봅시다.”

“그렇습니다. 내 고향 고창에 자리잡고 여기 판지겐트와 사미르칸트, 그리고 돈황을 관리하는 본부로 삼으면 됩니다.”

“그래 돈황은 장안 가는 길목이나 다름 없지요.”

알로펜이 동의했다.

“돈황이 어떤 곳인가요?”

크데시폰의 앗스기아가 입을 열었다.

“아, 돈황. 내가 말해 줄께요. 돈황은 중국의 황제가 있는 장안과 서역으로 가는 길에서 중국이 관할하는 국경선 지대의 도시야. 중국의 국력에 따라서 강할 때는 중국이 다스리고, 아닐 경우는 독립지대라고 할 수 있어요. 서역의 크고 작은 도시 국가들이 많게는 수백 개의 나라가 있어요. 돈황은 물론 양관, 하미, 누란, 투르판, 고창, 쿠처, 캬수가르, 야르칸트, 허탄 등은 그들 중 큰 나라에 속하거나 양관과 같은 곳은 중국으로 함부로 들어갈 수도 없고, 함부로 중국의 허락이 없이 타국으로 나갈 수가 없지요.”

쿰보그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트빌리시의 스데반의 불평어린 말에 쿰보그는 미안하다면서 다시 설명하려 들었다.

“그래, 돈황에 대해서만 우선 알아두면 어떨까? 돈황은 말야 중국 한나라가 월지라는 세력을 몰아내고 중국이 서역지대를 도모하는 요충지로 삼았어요. 그러나 앞서 말한대로 중국세력이 약해지면 북방 몽골세력과 남방의 티베트 세력이 만나서 무역을 하는 등 넉넉한 도시를 형성하지요. 타클라마칸 사막과 고비사막의 중간 지점인 돈황은 특히 불교, 기독교, 마니교, 조로아스터교. 우리는 그곳에 가서 중국 장안을 최종 목적지로 삼아 공을 들여야 합니다.”

“야, 쿰보그. 자네의 지식이 만만치 않네그려.”

알로펜의 칭찬에 쿰보그의 입이 귀 밑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중국이 목적지가 아니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대륙은 중국보다 큽니다. 중국의 북방으로는 몽골을 비롯한 이동 종족들이 중국보다 크고, 해뜨는 쪽으로도 나라들이 있을 뿐 아니라 중국의 남방에도 수많은 나라가 있어요. 나는 일단 고창에 장기 체류하면서 중국과 페르시아 로마제국으로 이어지는 타클라마칸 도시국가들과 사미르칸트를 중심한 중앙아시아에 우리의 선교역량 중심지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중국이 우리를 받아들일 때까지 그곳에 또 하나의 선교의 터전을 삼아 아시아 세계에 우리의 포부를 여는 것입니다.”

알로펜이 모처럼 그 가슴의 품고 있던 선교전략을 제자들에게 말했다. 그렇다. 이제까지는 함께하는 동지들을 향해 제자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으나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제자훈련을 시킬 계획이었다.

“오늘 나는 여러분에게 대강의 선교전략을 밝히면서 조심스러우나 각별한 부탁이 하나 있어요.”

“그게 무엇인지, 말씀 하세요. 저희는 감독님의 명령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다마스커스 사울과 앗스기아가 동시에 합창을 했다.

“그래, 고마워요.”

알로펜이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감독님의 말씀에 복종할 뿐 아니라 죽기까지 감독님과 운명을 함께 하겠습니다. 맹세합니다.”

안토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말했다. 초등학교 2학년생이 선생님 앞에서 꾸중듣고 답변할 때처럼 매우 긴장된 얼굴을 하면서 큰소리로 말했다.

“뭐, 죽기까지라고. 그리고 맹세한다…. 이 둘 중에 죽기까지 함께 한다는 것만 받아들이겠네.”

알로펜은 환하게 웃는다.

“왜 그러세요?”

“주께서 맹세 함부로 하지 말라 하셨지 않나.”

“함부로가 아니예요.”

“아니야. 자네가 죽기까지만 해주어도 나는 만족이야.”

“주님께서도 만족하실만큼 하고 싶어요.”

“허허, 사람 욕심이 지나치네.”

“…….”

안토니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알로펜은 파미르고원 드넓은 평원 한쪽 기슭에서 저 멀리 검붉은 사막 타클라마칸 쪽을 바라보면서 이전 같지 않은 단호한 언행을 보여주고 있었다. 요나와 세비야는 서로 마주 바라보면서 고개를 갸웃둥 했다. 그러나 웃는 여유를 보여주고 있으나 끼어들기가 조심스러운 알로펜의 모습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전투부대로서의 본색을 드러내야 합니다. 언제 끝날지 모를 전쟁의 날들 속에서 서로를 위하여, 주 예수를 위하여 우리는 죽을 각오가 되어있어야 합니다. 저기 서역 땅 본거지를 품에 안고 있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이름이 뭔지 아세요. 위그르어인 ‘타클라마칸’이라는 말 자체가 돌아나올 수 없는 땅이라는 뜻입니다. 저 사막에 뛰어들면 사방 어디를 봐도 모래언덕으로 가득하고, 검붉은 모래바람이 불어 담숨에 그 사람을 모래무덤 속에 묻어버린답니다. 마치 드넓은 바다 한 복판에 알몸으로 던져진 처지를 각오해야만 합니다.”

알로펜의 말에 일행은 움찔 놀란 토끼들처럼 저마다 허공을 응시하거나 땅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뭘 그리 심각해요. 이미 우리는 목숨을 내던진 사람이잖소. 죽어서 다시 살자는 정도가 아니라 이미 예수와 함께 죽은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오직 예수 안에서, 예수 이름으로 사는 것이죠.”

“그렇긴 합니다만 갑자기 전투라고 하시고 살아돌아올 수 없는 사막을 곧바로 건너야 한다니까 기가 죽네요.”

샤푸르가 울상이 되어 있다가 입을 열었다.

“오, 샤푸르. 자네는 아직 익숙하지 않겠지. 자네와 쿰보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내 말에 부담을 느끼지 않아요. 그럼 어찌할까? 판지겐트로 돌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아니예요. 싫어요. 저는 죽기로 각오할께요. 알로펜 감독님이 말하는 죽어서 사는 법을 찾고야 말겠습니다.”

“좋아요. 그럼 됐어요. 달마승이 면벽수도 9년에 도는 터득했으나 무릎뼈가 썩었다는 말을 우리가 서역에 정착하면 그 진의를 알 수 있을거야. 승려가 할 수 있는 일 은 우리 예수 사람들도 가능하죠. 종교간의 비교가 아니라 격려를 받자는 뜻입니다. 우리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는 길이 모든 기독교 신자들이 걸을 수 있도록 큰 길을 만들어 봅시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일행의 자리에서 일어나서 몸 운동을 했다. 저마다 각각, 어떤 이는 목을 좌우로 돌리고, 허리 굽혔다 펴기를 하고, 어떤 이는 껑충껑충 뛰기도 한다. 긴장을 풀고 크게 소리도 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둘이서 서로 등을 두들겨 주기도 하면서 즐거운 휴식시간이다.

쿰보그는 누구 나와 씨름 한판 하지 않겠느냐고 그의 넓다란 가슴팍을 펴고 오른손으로 툭툭 치면서 두리번 거린다. 모두 웃으면서 뒷걸음질을 하자 안토니 앞으로 가서 그를 노려본다.

안토니가 그를 피할 생각을 하지 않자 그가 안토니의 어깨죽지를 양팔로 우악스럽게 잡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거야. 한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안토니가 쿰보그를 되치기로 주저앉혀 버렸다.

쿰보그가 방심하는 틈을 노려 안토니가 기습을 해버린 것이다.

“쿰보그, 세상은 이런 겁니다. 힘과 능력은 깊이 감출줄도 알아야해요. 미안, 내가 정식으로 겨루면 당해내지 못해요.”

쿰보그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안토니를 잡으려 하자, 안토니가 사과를 하면서도 빈틈을 주지 않고 요리조리 잘도 피한다.

“자, 승부 끝.”

알로펜이 가로 막았다.

“둘 다 잘했어요. 그런 여유들이 있어야죠.”

알로펜이 쿰보그와 안토니를 양어깨로 감싸고 토닥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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