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불당로를 지나 타직스탄에서 허탄 또는 우기국 쪽으로 방향을 잡는 길이다.


누구도 유승을 달래지 못했다. 결국은 무학스님이 달려오는 사태로까지 번지고 말았다. 그는 잠을 자다가 뛰어나온 것이다.

알로펜이 일어나서 인사를 올리고는 유승을 달랬다. 유승이 일어나서 알로펜 앞에서 말했다.

“나의 참된 스승이 되십니다. 저를 받아주신 것으로 알고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주교님이 저를 다시 불교 쪽으로 쫓아낼 수 없을 만큼 주교님 마음을 사로잡는 제자가 되고야 말겠습니다.”

무학은 일의 자초지종을 다는 알지는 못했으나 나쁜 일 같지 않다고 느꼈다.

“나 참, 고 녀석. 애비의 단잠을 깨울 만큼 울고 불고 하기는… 허허, 이거 샘나서 어디 살겠나….”

무학은 알로펜 주교를 바라보면서 한 눈을 찔금 하더니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유승, 걱정 말아요. 앞으로 더 많은 시간 동안 우리는 사귈 것이오. 불교다, 기독교다, 개종이다, 개가다 하는 것, 다 부질없어요. 태어나기를 각기 다른 종교집을 통해서 나왔으나 우리 모든 종교는 인류애를 차별 없이 행사하며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지.”

“네, 주교님. 명심하겠습니다. 참, 향이 매우 좋은 차가 있습니다. 제가 준비하겠습니다.”

유승은 모두에게 차 대접을 하면서 알로펜에게 말했다.

“스승님, 이로써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습니다.”

알로펜은 유승의 두 눈을 마주 바라보면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좋다고 말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예 지금 저의 이름도 새로 지어주세요.”

“이름은 왜?”

“새 사람 되었잖아요.”

“아니야. 아마 유자는 있을 유(有)일 것이고, 승자는 태울 승(乘)일거야.”

“네.”

“거, 이름 한 번 좋아요. 유승은 모든 태우고 모셔야 할 사람들을 내 등에 업고, 내 품에 안아 준다는 뜻이야. 그 이름 얼마나 좋은가?”

“그런가요?”

유승은 뒷머리를 긁으면서 좋아라 했다. 요나가 유승에게 말했다.

“그 이름 버릴거면 내가 가져가지 뭐. 그렇게 좋은 뜻이 담겨있는데….”

“아니야. 내 이름이 이렇게 좋은지 전에는 몰랐지요.”

모두들 유쾌하게 웃는다. 스데반이 일어나서 말한다.

“귀한 형제를 도반으로 받아들이는 기쁨의 시간, 내가 우리 제자들을 대표해서 환영 인사를 하겠소이다.”

그들 일행은 몸을 씻고 한숨 잠까지 잤으니 여유있는 시간을 가지고 환영사, 경험담을 나누면서 밤 가는 줄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제자들은 곯아떨어져 잠 속에 빠져 있고, 유승이까지 함께 잠들어 있었다. 무학이 와서 아침 준비를 하려는데 알로펜이 먼저 주방에서 반찬을 만들고 있었다.

“아이고, 가만. 가만. 빈객이 이러시면 안되죠. 내가 유승이를 깨우리다.”

유승은 부친의 큰 소리에 잠에서 이미 깨어있었다. 그는 헐레벌떡 주방으로 달려가서 알로펜을 그가 머무는 방으로 모셔갔다.

유승은 물론 다른 제자들도 모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서 몸 운동을 하거나 찬송가를 부르는 등 모두들 유쾌했다. 알로펜이 요나를 불러 찬송 부르는 일을 삼가 달라고 전했다.

“여기는 불교집이야. 흔쾌히 대한다고 해서 기본 예의를 비껴나면 안 돼.”
알로펜의 의견이 전달되었는지 찬송가 소리가 잠잠해졌다. 일행은 아침식사 후 적불당을 떠나 우기국 방향으로 길을 제촉했다.

“서둘러야 합니다. 앞으로 보름은 더 걸려야 우기국에 당도합니다. 말을 타면 2~3일이면 가는 것인데….”

유승은 스승이신 알로펜이 터벅터벅 걸어서 길을 잡는 모습을 바라보며 안타까워 했다.

“스승님, 우기국에 가면 이동수단으로 말을 준비하면 속도를 낼 수 있습니다.”

“속도는 뭐하러 내려나. 인생이 곧 종교야. 걷다가 쉬어가는 재미,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인생의 멋이려니 하게.”

“네, 네! 알겠습니다.”

유승은 알로펜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도 ‘네, 네’로 받아넘겼다.

“우기국이다!”

큰 도시다. 먼저 울창한 수목들이 삼림을 이루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고간다. 타클라마칸 사막지대에는 50여 개의 성곽 국가들이 곳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크게는 2만, 작게는 1만 명 정도의 인구를 가진 각 개의 종족들이다. 그러나 우기국이나 구자 등 몇 나라는 훨씬 더 많은 인구였고, 알로펜이 당도한 때는 1차 전성기라고 할 만큼이었다.

나라 전체가 불교의 지배세력화 되어 있었다. BC 3세기부터 우기국의 적강 백강 바닥에 쌓여있는 옥이 무한 생산되어 월지인 중개로 중국이나 천축국, 더 나아가서 페르시아와 로마로 흘러갔다.

우기국은 티베트 어로 ‘옥이 나는 곳’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더하여 뽕나무와 비단 또한 무제한으로 생산되어 중국과 페르시아, 로마로 오고가는 무역로를 기름지게 하였다. 도시 가까이로 들어서면서 알로펜의 제자들은 두리번거리며, 어떤 기세에 눌려 있는 듯했다. 유승이 입을 열었다.

“동지들, 왜 그리 겁먹은 얼굴들입니까? 겨우 이 조그마한 도시에 얼이 빠진 사람들처럼 그러다가는 장안에라도 입성할라 치면 기절하겠소이다.”

“이보게 내가 놀라는 것은 불교 사원들을 보고 그러는거야. 사람과 건물이야 페르시아나 로마의 크기를 당해낼 수 있겠어. 그러나 우기국의 사람들을 보게. 돌아다니는 사람들 절반은 불승들 아닌가요.”

“그러지만 않아요. 우기국에 불교는 천축국의 집중적인 장려 때문에 조금 더 많아 보이지만 도시로 들어가서 살피면 불교는 물론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도교, 기독교 신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압니다.”

“뭐, 기독교 신자?”

스데반이 깜짝 놀라는 시늉을 한다.

“정통파를 자처하는 로마교회들이겠죠.”

크데시폰의 앗스기아가 내뱉듯이 한마디 거들었다. 그는 로마교회의 우월감에 불만이 많다. 언젠가 그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를 정치적으로 함정에 몰아넣은 그 죄로 로마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버림받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앗스기아, 다 지나간 일이야. 우리는 어느 누구, 어느 특정 종교나 종파에 대한 별도의 선입견을 가지면 안됩니다.”

“왜, 왜 안된다는 것인가요?”

앗스기아가 눈꼬리를 세우면서 스데반에게 덤벼들듯이 말했다.

“우리 스승님의 방침이야. 큰 교훈이시기도 하고 말이지.”

“그래, 그건 스데반 님의 말씀이 옳아요.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을 그들이 가로막고 있다니 불쾌합니다.”

“그러지 마. 각기 타국 멀리에서 만나는데 또 다른 감회가 있을 수도 있잖아.”

요나가 끼어들었다.

“일단, 저는 그들을 무시하겠습니다.”

앗스기아는 단호했다. 유승이 우기국에 올때마다 들리는 객관을 찾았다. 방을 3개 구하여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나갔다. 우기국은 온대성 건조기후대로서 추위나 더위가 크게 불편을 주지 않을 만하고, 곤륜산맥에서 발원하는 수량이 풍부하여 기름진 땅이다. 기원전 3세기부터 불교가 유입되고, 간다라 불교의 영향은 유럽의 냄새도 풍겼다.

옥의 고장이요, 비단의 고장, 동서무역의 왕성한 시장형성은 풍요까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바쁘게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도심에 10㎞쯤 떨어진 곳에 대상들의 숙소와 말과 낙타들 수백마리가 휴식하고 있는 드넓은 터전이 있었다. 니야와 민펑사이의 북과 남으로 이어지는 거리는 니야강줄기가 사막을 이겨내는 힘을 보태는 것 같다.

저녁시간, 알로펜은 제자들에게 이곳은 사실상 우리의 목적지나 다름 없으니 서두르지 말고 초조하지도 말라고 하였다. 제자들은 서로의 눈길을 마주치며 스승이 지금 하시는 말 뜻을 잘 모르겠다는 표현을 해본다. 요나가 당돌하게 나섰다.

“스승님, 하신 말씀의 뜻을 잘 모르겠나이다.”

“그래요. 그럼 내가 말해주지. 여기 타클라마칸 지대가 우리의 아시아 선교의 후방기지가 된다. 중국이라는 나라 역시 인간들의 정치판이니 영고성쇠가 있을거야. 우리가 늘 삼가야 할 것은 정치놀음에 휩쓸리는 것입니다. 정치세계와는 너무 멀리도 가까이도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건 너무 소극적인 자세가 아닐까요?”

세비야가 조심스럽게 말꼬리를 잡았다.

“어정쩡한 태도는 독이야. 독!”

“그렇습니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희가 존경하는 스승으로 모시는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가 정치싸움에 휘말렸다가 당한 것이었죠. 솔직히 말하면 그 어른은 서투른 정치기술자였어요. 오로지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의 신임만 믿고 덤벼들었다가 당한 것이었죠.”

스데반이었다.

“그래, 말 잘했어요. 지적이 좋아요. 바로 그 정신으로 우리는 중국인들을 상대해야 합니다. 중국인은 정치인도 같고 사상가 같은 신분이기가 쉽습니다. 로마인과 달라요. 고단수 정치인들이 많다는 것이지. 그러니 앞으로 우리가 중국인 사회에서 복음을 전할 때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때가 왔다 하면 로마제국이 기독교 왕국이 되듯이, 중국에서도 기독교 왕국을 이루어내야죠.”

“스데반, 서두르지 마세요. 천년 쯤 공을 들이고 수고를 하고서 기다려도 늦지 않을 겁니다.”

“스승님, 알겠습니다.”

스데반이 뒷머리를 긁적거리면서 유승에게 한마디 하라고 눈짓을 한다.

“스승님, 저 유승입니다. 조금은 아둔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불교는 서역 각지에 뿌리내렸습니다. 중국의 법현이라는 고승이 2백년 쯤 전에 이곳 우기국을 거쳐서 천축국에 다녀서 중국에 돌아왔는데 천축국 갈때의 나이가 자그마치 65살이었죠. 그는 그 나이에 천축국 각지를 돌아서 15년 만에 중국에 돌아왔답니다. 그가 사막을 걸어서 다닐때는 길가에 뿌려진 해골들이 길잡이가 되었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음 여행지로 갈곳이 구자국인데 그곳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구마라쉽이라는 이가 천축국 아버지와 구자국 공주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학문에 대한 명성은 중국지성과 불교를 한없이 부끄럽게 했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지요.”

유승이 하던 말을 중단했다.

“왜, 그러는가 유승….”

알로펜이 물었다.

“네, 스승님. 제가 너무 당치않은 말을 지껄이는 것 같아서요.”

“아닐세. 유승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많은 깨우침이 되고 있어요.”

“네, 감사합니다.”

유승은 기분이 좋았다. 알로펜은 일행 모두에게 말했다.

“우리는 하루이틀쯤 지나면 여기를 떠나야 합니다. 지금 내 생각에는 여기 우기국에 두 명 쯤 남아서 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누구 누구가 자원하겠소?”

제자들 모두의 입이 딱 벌어졌다. ‘아니, 아니’라고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왜들, 그래요. 우리가 뭐 영원히 결별이라도 할 건가? 여기 우기국에 2명, 다음 구자국에도 2명쯤 각각 선발대 형식으로 남아서 활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

“그럼, 내가 지명하죠. 우기국에는 스데반과 유승이 남았으면 좋겠소.”

“전 아직 안됩니다. 주교님께 좀 공부하고, 배울 기회를 주셔야 합니다.”

“응, 그런가? 그럼 유승 대신 세비야가 남게.”

“네, 저희 둘은 스승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스데반과 세비야가 동시에 말했다.

“그래요. 그럼, 구자국에 머물 사람 지망자 있어요?”

“…….”

“없으면 내가 또 지명하지 뭐. 구자국에는 요나와 앗스기아가 남았으면 좋겠어.”

“하는 수 없죠, 뭐.”

요나가 투덜거리고, 앗스기아는 눈만 껌벅이고 있었다.

“좋아요. 우리는 타클라마칸 성읍국가들 모두에게 복음을 맹렬히 전할 것이요. 모두들 온 힘을 다해서 일합시다.”

“네, 아멘입니다.”

그때, 밖에서 객관의 지배인이 알로펜을 찾았다.

“들어오시오. 무슨 일로….”

“네, 로마교구 어거스틴 주교가 여기 책임자를 찾습니다.”

“뭐요. 찾아오겠다가 아니라 자기에게로 오라는 것인가요.”

요나가 벌떡 일어나 큰 소리로 말했다.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