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② - 주일의 신자 모습, 평일로 확대한다

`기독교' 고등학교를 다니게 된 시절 내내 별 의문 없이 교회를 다니던 39살의 P 씨는 그 학교를 졸업하면서 교회와도 발걸음을 끊었다. 아주 어린시절 선물 때문에 교회를 몇 번 다닌 것과 합하면 최소한 4~5년 이상은 교회를 다녔던 그가 왜 더 이상 교회를 다니지 않는 것일까.
대학을 졸업하고 들어간 직장에서 그는 업무상 한 달에 한 번 해외출장을 다녀야 했다. 15년이 넘는 세월동안 그런 일이 잦다보니 조금 여유가 생겨 그 나라의 문화의 특성, 각 국 나라의 사람들, 종교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의 종교시설인 힌두사원, 교회당, 불교 사원, 모스크, 회당, 성당 등을 꼭 가 본다고 했다.

# 왜 교회는 그렇게 협소합니까

그렇게 다니면서 더더욱 P 씨는 신교(Protestant)가 아직도 폭이 좁고 깊이가 낮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무슬림들은 얼마나 선한지 모릅니다. 우리 회사에도 이란이나 터키 쪽에서 일하러 온 외국인근로자 무슬림들이 있어요. 그들은 하루에 다섯 번 메카를 향해 기도를 하는데, 그런 그들을 위해 장소를 마련해 주고 싶었어요. 만약 제가 교회에서 가르쳐 준대로 사는 기독교인이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그들을 어떻게든지 형식적으로라도 교회에 가게 하는 데 목적을 두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기 전에 말입니다.”
P 씨는 교회의 모습 중 다른 사람이나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이고 속단을 내리는 것이 눈에 가장 거슬린다고 했다. 가톨릭도 그렇지 않은데, 기독교는 자기들 종교 외에는 모두가 지옥에 간다는 ‘엄포’를 공공연하게 하는 것을 영 못마땅해 했다. 그런 말은 자기 종교에 대해 자신 있을 때 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 속에도 확신이 없으면서 교회에서 그렇게 말하니까 그냥 그대로 앵무새처럼 흉내를 내려다 보니 ‘감동’을 주는 게 아니라 억지처럼 비춰진다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한 번 보십시오. 교회를 다닌다는 신자들을 말입니다. 저는 성경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이 하나님께로 이끌리게 될 때까지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들을 보는 게 다는 아니지만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게 되지요. 그런데 어떻습니까. 신자들이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고 가르치면서 정작 자신은 사랑에 대해 얼만큼 신뢰하고 있으며 그대로 살아내고 있습니까.”
계속되는 P 씨의 말은 대부분 기독교의 잘못된 부분을 지적하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상당부분 관심이 없으면 할 수 없는 말들이었다.
“왜 교회 바로 옆에 교회가 생겨야 합니까. 또 한 건물에 두 개의 교회를 세우면서 도대체 뭘 보라는 것입니까. 그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맞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저런 건 주식회사라구요. 교회끼리 서로 경쟁해서 얻을 수 있는 게 뭡니까. 신자 아닙니까. 남의 신자를 빼앗아 자기의 것으로 만들려는 그 탐욕을 보면서 교회에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까요? 제 정신이 아니면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P 씨는 그런 기독교 모습이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진정으로 신앙을 하는 이들이 있을 터인데 본인이 한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니냐며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의아해 하는 말을 한다.
“부모와 자식 사이를 보더라도 자식이 부모를 믿고 신뢰하면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이것을 해도 될까 안될까 하며 조바심 속에서 사는 게 아니라 당당히 부모의 뜻이 어디인지를 알고 자기의 길을 확신을 갖고 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독교 신자들을 보면 하나님 눈치를 보면서, 어떤 때는 눈속임을 하면서 사는 것 같습니다. 자신감도 없고, 자존감도 없어 보입니다.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는 부분을 많이 보이는데 어떻게 그 사람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싶겠습니까.”
그는 진리와 만나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고 있는 신자들을 볼 때는 사실 부럽다고 했다. 육체적으로 포근하고 따뜻한 부모의 품을 아는 사람이 행복하듯이 인간을 창조하고 사람과 늘 함께 하면서 호흡하는 신을 모시고 사는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에도 역사성을 무시할 수 없듯이 신교는 아직도 푹 익어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에는 너무 약한 모습 같다며, “당신도 그런 밭에서만 살지 말고, 더 폭넓게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다른 종교가 없는지 한 번 돌아보라”고 충고(?)한다.

# 모든 날의 주인

어떤 목회자들은 교회 밖에서 교회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비판의 소리가 들려올 때 교회가 시정해 나가야 할 부분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문제다.
주5일 근무라는 시대적 환경에 따라 교회도 신자들의 삶의 행태 변화에 따라 금요일 혹은 토요일 예배를 주일예배 외에 추가로 드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주일에는 꼭 교회에 나와야 한다는 주일성수의 개념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교회들이 교회 예배의 개념만으로 신자들을 붙잡으려 한다면 낭패를 보게 될 것이다. 교회 내적으로는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교회 모임에 참여하도록 하는 것(예배, 성경공부 모임, 기도회, 각 파트별 모임 등)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신자들이 어떻게 `sunday(주일)크리스찬'의 모습이에서 `everyday(모든 날)크리스찬'으로 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과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함께 소명받음을 의미한다. 교회 안에서 행위한다는 것은 이 소명에 대한 복종에서 행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한 이 복종이 바로 신앙이다. 신앙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승인되고 그의 은혜가 찬양된다. 신앙에서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을 지는 자체검토가 필요하다.”(칼 바르트)
과연 이 시대의 크리스찬들은 그리스도의 소명에 대해 날마다 복종하는 신앙을 살고 있을까. 자신할 수 없다면 이 부분을 위해서 부단히 진력할 수 있도록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신앙을 위해 기도하고 진정한 신앙인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예배를 드리고, 함께 신자와 나누는(대화, 음식 등) 부분도 중요하지만, 교회(신자) 내에만 머물게 하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비신자들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부분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것을 통해 신자(교회)도 더 건강해지고, 그 주위도 더 밝아지게 될 것이라는 것에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
“만약 교회가 교회 장벽을 허무는 일에 실패할 경우에는 양편 모두 버림받게 될 것이다. 희망의 복음 메시지와 사랑의 실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고립된 교회는 그 동일한 사람들의 복음화를 위하여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나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즐겁게 하는 데에 그치고 말 것이다.”
리챠드 닉슨 대통령의 특별보좌관(1960~1973)을 지냈고, 워터게이트 사건과 관련돼 7개월간 옥살이를 하기도 했던 챨스 콜슨이 지적하고 있는 말(〈하나님을 사랑하는 길〉 참조)이다.
콜슨은 예수님께서 성전 내에 사무실을 여시고 사람들이 당신께 상담하러 오기를 기다리신 적이 없다는 사실은 흥미롭지 않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예수님은 기다리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로 나아가셨으며, 악명 높은 죄인들의 집, 불구자, 병자, 곤궁한 자, 사회에서 소외된 자 등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나아가셨음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교회가 하룻밤 사이에 문화적인 간격을 메울 수 있다는 식의 천진난만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안전한 성전으로부터 나와서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고 관심어린 사랑을 바야흐로 나타내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곤궁한 장소에 가는 것이 일천 번의 설교보다 훨씬 강력하다. 거기에 가서 함께 하는 것이 우리의 증거이다. 거기에 가서 함께 하기 이전까지는 우리의 교리와 교훈은 단순한 말에 불과하게 되고 우리의 의식과 복음의 합창은 공허한 소리에 불과하게 된다.”
콜슨의 이런 지적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소화해 내야 할 숙제이며, 신자 개개인이 자기의 서 있는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양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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