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소설 속에서 알로펜이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타클라마칸 사막지대의 도시 분포도.


알로펜은 키질석굴 쪽으로 여행차비를 했다. 구마라습 사원이 거기에 있다고 알고 있었다. 이 사람 구마라습은 천축국 고관자리를 마다하고 구도자가 되어 구자국을 찾아온 구마라하의 아들이다. 구마라하가 순례차 구자에 와있다는 정보를 들은 구자왕이 그를 왕궁에 초청했다.

왕은 구마라하와 몇 마디 지혜의 말을 나누면서 역시 비범한 인물임을 직감했다. 어떻게 할까, 왕은 몇 가지 생각을 머리 속에 굴려보았다. 관직을 주마 했을때 구자보다 더 문명의 나라에서 온 구마라하가 받아들일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왕사(王師)의 지위를 부탁키로 했다.

그러나 구마라하는 자기는 그런 재목이 되지 못한다 하여 사양했다. 왕은 시한부 왕사의 신분을 부탁했다. 2~3년 만을 요구했다. 구마라하가 구자국 왕의 스승이 되어 지내던 어느 날 왕은 왕사의 생활을 돌보기 위하여 자기의 여동생인 공주와 결혼해 줄 것을 요구했다. 구마라하나 공주 모두 결혼하는 것을 사양했다.

그런데 공주가 구마라하의 인품과 특히 불교의 높은 가르침에 매료되었다. 그래서 결혼이 아니라 제자로 받아줄 것을 구마라하에게 간청하였다. 구마라하는 공주를 제자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들은 언제부턴가 스승과 제자를 뛰어넘어 부부가 되었다. 그들 부부는 아들 구마라습을 낳았다. 구마라습이 다섯 살 되던 어느 날 공주는 출가를 결심했다.

한 남편의 아내로만 살기에는 그녀에게 불제자의 꿈이 자꾸만 마음에 충동을 일으켰다. 떠난다. 그녀는 어린 구마라습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구마라습은 놀라지 않고 자기도 구도의 길에 나서겠다고 했다. 모자는 왕이나 왕사 구마라하에게 하직인사를 하고 천축국으로 떠났다.

20여 년 후, 구마라습이 서역으로 돌아왔다. 그는 키질(키지리)지역 험산 골짜기에 터를 잡고 제자를 기르면서 그의 명성을 사방에 알렸다.

알로펜은 키질 사원을 향하여 곧바로 가고자 했다. 그러나 자신은 물론 우기국을 떠나 타클라마칸 사막 중심부를 돌파하여 구자까지 오는 길에 제자들은 지쳐있었다. 중병자들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사막의 행군이었다. 가없이 뜨겁고 불덩이처럼 이글거리는 모래바람, 바람에 춤추는 모래성들이 큰 짐승들처럼 살아서 꿈틀대고 있었다. 곳곳에 한 그루씩 심어져 있는 대추나무들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해골들이 뒹구는 모습에서 사람들이 언젠가 지나갔음을 증거로 보여준다. 대추나무는 구도승들이 이 길을 지나다가 마실 물이 떨어지고 길을 잃으면 목숨을 버려야 했다.

구도승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의 목과 팔둑에 매달려 있던 묵주에서 대추나무가 살아나서 구도자의 길이 여기였다고 말해준다는 설이 있다.

타림 강줄기가 길을 잡아주었고, 구자와 우기국 사이의 도로망인지라 길을 잃지는 않았으나 금번 여행은 죽음의 사막이라는 타클라마칸의 맛을 톡톡히 보여주었다. 알로펜 일행이 우기국을 지나 민핑을 떠난지 사흘쯤 되었을 때 만난 돌개바람에 휘말려 일행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뒹굴기도 하였다.

더 큰 고통은 우기국을 떠나 보름쯤 지났을때 검붉은 모래바람을 만났을 때였다. 모래가 아니라 작게는 주먹만큼이고, 큰 돌덩이는 바윗덩어리 같은 것들이 하늘 높이 날았다. 까마귀 떼라고 해도 될 돌덩이들이 하늘을 떠도는데, 그들 모두는 무서움에 떨었다. 미리 준비한 이불이나 두터운 옷들을 꺼내서 머리를 감싸고 일행은 모두 멀리 몸을 피했다. 희생을 줄이기 위하여 각각 흩어진 것이다. 눈물겨웠다.

어느 만큼 지났을 때 누구도 비명을 지르지 않았음을 확인한 알로펜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온 몸을 휘감고 있던 이불을 걷어내면서 혼자서 웃었다. 사람이란 참으로 약한 생물이로구나.

“스승님, 괜찮으세요?”

유승이 달려왔다.

“그래, 괜찮아. 그러나 내 꼴이 우습지?”

이부자리를 뒤집어쓰고 엎드리어 공중에 떠다니는 바윗돌 만큼한 돌맹이들을 피하려 했던 자기 행동이 야속해서 하는 말이었다.

“아닙니다. 저도 오늘 모처럼 하늘에서 쏟아지는 돌벼락을 보았어요. 제가 듣기는 오늘 같은 수준이면 돌개바람이 동반하여 모래 위를 걷는 사람들을 돌발적으로 땅속에 묻어버린답니다. 저희 손에 쥐고 있는 이 대나무 막대기가 바로 모래바람에 묻힐 경우 우리들의 숨구멍 역할을 해줍니다.”

“아, 그런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막대기는 간수하지도 못했네. 참, 인생은 모를 일이야. 위난이 닥쳐오면 체통을 잃어버리는 수준이니….”

“아닙니다. 그건 본능 아니겠어요.”

“그렇다네. 본능에 걸려서 넘어지는 꼴이 부끄럽구먼.”

제자들 모두 달려와서 알로펜을 위로하였다.

“여보게들, 자네들이 나를 위로하면 내가 더 참담해 진다네.”

“아닙니다. 불시에 당한 재난이지만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으니 감사한 일입니다.”

“그래, 그래. 이게 또 하나의 경험이 되어 우리들의 관록으로 쌓이겠지.”

그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죽음의 사막을 돌파해 나갔다. 구자국이 멀리 보이는 듯 하였다.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초속 30미터 쯤일까? 보행에 불편을 주었으나 걸었다. 안전한 곳으로 가야할 일만 남았다. 다시 바람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큰일이다. 일행 모두가 두려움을 느끼는지 말들이 없었다.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었다. 몸이 공중에 붕 뜬다. 짐 보따리가 여기저기로 흩어진다. 사람들도 떼굴떼굴 구르기도 하였다. 강풍이었다. 초속 70~80미터는 될까. 천산산맥 높은 곳에서 일어난 서북풍이 사막 한 복판에 이르러서는 무시무시한 바람으로 변한 것이다. 안정된 도시가 가까이 있으니 죽음의 사막이 시샘을 하는 것일까. 사람을 녹초를 만들어버린다. 자존심은 모두 거두어 가버렸다.

드디어 구자국이다. 우기국을 떠난지 한달이 더 걸렸다. 객관을 찾았다. 시설을 둘러볼 겨룰이 없이 첫번째 만난 객관에 짐을 풀었다.

“스승님, 이젠 안심입니다. 여기서 저희 나라 코초국까지는 가는 길이 힘들지 않습니다. 드디어 저희는 주의 인도하심을 받았습니다.”

쿰보그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그런가? 우리가 지금 건너온 사막은 죽음의 사막이 틀림없군.”

“그렇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겼습니다.”

안토니의 자신감 넘치는 말이었다.

“자네는 무섭지 않던가?”

알로펜이 안토니에게 물었다.

“네, 저는 이미 경험한 길이거든요. 한 번 경험한 죽음의 세례가 생명의 영원을 보장해 주듯이, 주 예수께서 골고다에서 길이 막혀 목숨을 내놓아야 할 때까지 당당했듯이 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안토니는 역시 그의 성품대로 늘 자신감이 넘쳤다.

“그래, 자네는 내게 큰 힘이야.”

“그럼요, 형님. 그리고 주교님. 처음 안디옥 계곡 공동체 촌 입구에서 뵈올 때부터 스승님은 나의 형님이요, 나의 주이십니다.”

“뭐, 내가 자네의 주라고?”

“네, 나의 진리의 길잡이시요, 주인이십니다. 세월 속에서 처음 뵈었을 때의 그 느낌이 차츰 확신으로 변했습니다.”

“그래, 그래. 이 사람아….”

알로펜은 잠시 부친 압바스 대주교를 떠올리고 사라를 떠올렸다. 사라는 안토니의 생모, 지금은 압바스 대주교의 아내가 되어 알로펜의 중국 선교를 위하여 사산조 페르시아 왕국과 협의를 한다는 전언을 들은바도 있다. 아버지의 건강은 어떠하실까….

주위가 조용했다. 짐을 내동댕이 친 일행들이 자기 몸까지 내던져버렸나 보다. 모두들 죽은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이 사람들아, 이 무슨 추태야!”

알로펜은 짐짓 큰 소리를 질렀다. 유승이 벌떡 일어나 알로펜 앞으로 달려왔다. 꾸중 듣는 초등학생 같았다. 잔뜩 겁을 먹었다.

“아닐쎄.”

알로펜이 유승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거야. 그 몸을 그냥 방치하면 안돼. 모두 우물가로 나가서 몸을 씻고 옷도 털고, 찢어진 곳은 바늘로 꿰매고 운동들을 하도록. 서로서로 어깨도 주물러 주고 다리도 주물러 주면서 온몸 운동을 하게.”

“네, 주교님!”

그들의 답변은 우렁찼다. 그들은 씻고 저녁을 먹었다.

“이리로 모두 모이시오.”

알로펜의 부름이었다.

“여기 있는 우리 중에 유승이나 판지겐트의 샤프르를 제외하고는 나와 함께 20년, 또는 요나 같은 이는 30년을 함께 걸었어요. 우리 인생은 걷는 사람들이죠. 난 말이죠, 열여덟살 때인가, 다마스커스에서 내 동갑내기 무함마드와 만나서 며칠동안 진지한 신앙의 대화를 나눴지요. 바로 그 사람이 우리 기독교를 통째로 뒤흔드는 반역의 종교를 만들었고, 그가 만든 이슬람교가 이미 페르시아나 중앙아시아, 아니 이미 타클라마칸 사막지대는 물론이고, 장안까지 들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카라반들 중에는 이미 무함마드의 제자들이 활동하고 있을거야.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경쟁심이나 적개심을 독려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사명을 위한 긴장감을 촉구하기 위해서 하는 말입니다.”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오늘은 일단 기도회를 마치고 모두 잠자리에 들어 쉬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다음날 아침, 유승과 샤프르가 보이지 않았다.

“주교님, 샤프르와 유승이 몸이 아파요. 그들의 몸이 펄펄 끓어요. 어떻게 하죠.”

쿰보그가 하는 말이었다.

알로펜은 유승과 샤프르가 누워 있는 방으로 가서 그들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견디기 힘드나. 유승, 샤프르도?”

그들은 알로펜의 목소리를 듣고 몸을 일으키려 들었다. 유승은 간신히 일어나는데 샤프르는 몸을 못 이겼다.

“자, 내가 약을 줄 터이니 아침식사를 하고 나서 약을 먹게. 한나절쯤 쉬면 거뜬할거야.”

“아, 네. 죄송합니다. 약한 모습을 보여서요.”

샤프르였다.

“이 사람아 괜찮아. 자신감을 가지라구.”

이틀을 쉬었다. 알로펜은 키질 사원 가는 계획을 뒷날로 미뤘다. 구마라습과 동시대 인물인 동진(AD 317~419) 시대의 법현의 인물됨을 또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가 선교본부로 구상하는 코초(고창)국에 잠시 머무르기도 했던 법현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65살에 부처의 가르침을 얻으려고 천축(인도)국으로 가서 무려 15년 동안 구법의 과정을 거쳤다. 그의 여행과정은 여기에 다 옮길 수 없을 만큼 험하고 고달팠다.
AD 399년, 중국은 5호16국(五胡十六國)시대 흉노에게 쫓기는 북방계 대지주들이 세운 동진(東晉) 사람인 법현은 구법승의 길을 떠나 돈황을 거쳐 양관을 지나 서역 땅 그 유명한 백룡퇴 사막에서 목숨을 잃을 뻔 했다.

법현의 백룡퇴 사막 일기를 보자.

사막에는 뜨거운 바람이 자주 불어 만나는 사람마다 목숨을 잃었다. 누구도 살아서 도망가지 못하니 그곳의 하늘에는 날아다니는 새가 없고, 땅에는 뛰는 짐승이 없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망망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알 수 없었고, 오직 죽은 이들의 유골만이 길을 가리키는 표지노릇을 했다.

법현이 건넜던 사막 백룡퇴는 옛 누란왕국이 성벽국가를 형성하고 살았던 곳이다. 그들 누란 백성들은 법현이 누란의 영토상징인 노프놀 지경을 지날 때 겪었던 죽음의 지대가 백룡퇴였다. 그곳은 누란 백성들이 흉노의 침공을 견디지 못하여 선선으로 이주해간 후 사막의 물길 마저 방향을 바꿈으로 바다만큼이나 컸던 노프놀 호수가 죽음의 땅이 되었다. 바로 그 백룡퇴 지역을 거쳐서 선선국, 오이국을 거쳐서 고창국(코초국)에 와서 여행자금이나 구법행 인력 중 탈락자를 정리하였다.

알로펜은 그가 지금 코초국으로 달려가면 법현이 거기에서 자기를 기다려 줄 것 같은 심정이었다. 코초국에 가면 법현의 일화, 흔적 등이 남아있을 것 같은 조바심에 찬 생각이 꿈틀거렸다.

3일을 더 쉬면서 구자국이 불교왕국임을 확인했다. 우기국에서 밝힌 대로 요나와 앗스기아를 구자국에 남겼다. 인정으로 말하면 마음 아프지만 복음의 터전을 굳세게 하기 위하여 내린 결단이었다.

“스승님, 여기 구자에서 코초국까지는요, 이곳에 있다는 날개달린 말(한혈마)을 타면 하루에 갈 수 있습니다. 제가 곁에서 모시지 못하지만 여기서 앗스기아와 함께 스승님이 자랑스러운 제자 노릇을 톡톡히 하겠습니다.”

“고맙네. 자네들을 위해서 많이 기도할게.”

알로펜 일행은 요나와 앗스기아의 인사를 받고, 그들의 앞날을 축복하면서 코초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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