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헤아리는 눈, 또 그 눈이 보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요즘 ‘대왕의 꿈’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고구려의 연개소문과 신라의 김유신이 북한산성 근처에서 만난다.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백제를 패망시키기는 했으나 당나라 군과 묘한 갈등에 빠지고, 삼한일통을 맹세코 다짐하며 동지가 되었던 김춘추와 김유신의 갈등은 신라의 조정에 친당과 반당세력 갈등으로 김유신을 업은 태자의 반란이 일어나서 친당파가 꺾이고 있다.

드라마를 비껴두더라도 한반도에 터를 둔 우리 대한민국의 비극적 현실은 고구려, 신라, 백제에 큰 인물이 없어서 빚어진 결과이며, 더 나아가서 오늘의 일본의 오만은 그 삼각갈등의 틈새를 노려서 오늘의 일본이라는 세력때문에 빚어진 갈등이기도 하다.

한반도에 기초를 둔 옛 사람들은 더 큰 안목이 없었다. 어찌 한반도 뿐이랴. 세계사의 눈으로 보아도 기독교가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기회는 여러번 있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태생과정에서 예수께서 주신 떡을 제대로 먹지 못하여 영양실조와 운동부족 현상을 초래하였다.

제 구실을 못했던 로마제국 기독교는 아라비아 무지렁이 무함마드 세력에게 기독교 기반 절반을 내주었고(AD 610~711년까지), 더구나 기독론과 삼위일체론 등 핵심교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여 동서로마 교회가 결별(AD 1054년)했다. 그리고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으나 200여 년 끌려다니가 이슬람에게 사실상 패배했다(AD 1096~1291년).

르네상스를 지나, 종교개혁기를 맞이했으나 뒷심 부족한 마르틴 루터는 만인제사, 즉 천하 인간 모두는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선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지켜내지 못했고, 농민반란과 귀족들간의 중간자 역할을 못하고 말았다. 루터를 비롯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종교개혁기를 좌절로 이끌어 기독교를 반쪽짜리 종교로 만들어버렸다.

기독교가 반쪽짜리 종교라 함은 ‘만인제사’의 복음이 설자리가 없어진 현실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보시라,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심의 뜻은 성(聖)과 속(俗)의 이원적 관계를 청산하기 위하여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이신 분이 사람으로 오신 뜻을 예수는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던지고 지켜냈는데, 종교라는 관행에서 과감히 뛰쳐나와서 하나님이신 주 예수를 생활 속에서 모시고 사는 ‘생활종교’로서의 기독교를 바르게 세워야 할 16세기 종교개혁은 개혁자들의 소명부족으로 다시는 기독교가 개혁시대를 맞이할 수 없도록 폐쇄시켜 버렸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16세기 개혁으로 만족하고 더 이상의 개혁을 소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기독교, 특히 한국 기독교는 개혁은 꿈꾸지 않는다. 가까운 시일 안에 이 세상은 불바다될 터이니 천국 티켓 한장씩 얻어서 달나라보다 좋다는 천국으로 갈 소원 뿐이다.

교회여, 더이상 예수를 슬프게 하지 마라. 더이상 구원사를 왜곡하여 망하지 말고, 역사의 눈을 바로 뜨고 길을 찾아내라.

〈無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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