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판 화염산 골짜기에서 이슬람 여인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 필자(2010년).


쿰보그가 뛰어갔다. 그의 나라, 그의 부모가 기다리는 곳이라고 껑충껑충이었다.
그의 뛰는 뒷모습을 지켜보는 알로펜 일행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저렇게 좋을까. 어린아이가 따로 없군’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쿰보그가 다시금 일행들 앞으로 달려나오고, 곧 이어서 쿰보그보다 키가 한 뼘은 더 커보이는 중년이 뒤따라 나왔다.

중년이 쿰보그와 잠시 눈을 맞추는가 했더니 그는 알로펜 앞에 와서 넙죽 절을 했다.

“주교님, 저의 부친이십니다.”

쿰보그가 알로펜에게 자기 부친을 소개했다.

“네. 저는 못난 자식 쿰보그의 아비입니다. 제 이름은 쿰바홀 입니다. 사마르칸트에 있는 쿰가그가 큰 놈인데 제 자식들을 가르치시느라 수고가 참 많으십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귀한 아드님들입니다. 더구나 저를 이렇게 환대해 주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어서들 집 안으로 들어가시죠.”

쿰보그가 역시 신이 나서 크게 외친다. 쿰보그의 집은 커다란 정원이었다. 집이 여러 채가 있었다. 크고 웅장한 본체가 있고, 좌우로 세 채가 있다. 마당도 앞마당이 학교운동장 만큼이고 안채에서 각각 좌우 건물 너머에도 작은 마당들이 있었다. 집 전체를 뱅둘러서 과실수로 보이는 나무들이 울타리처럼 자리하고 있었다. 쿰바홀은 알로펜에게 집 구조의 대강을 소개했다.

“저는 이 집 전체를 주교님의 선교본부로 사용토록 바치려고 준비를 했습니다. 집사람과도 이미 상의했습니다. 다만 저기 저쪽 대문 옆에 자리한 집은 저희 부부가 살면서 주교님의 비서로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쿰보그가 그의 부친의 말을 듣고는 박수를 치고, ‘할렐루야!’를 거푸 서너번 반복하면서 기뻐했다.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희에게는 천군만마와 같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쿰바홀 어르신께 크게 복을 더하실 것입니다.”

“주교님, 저를 어렵게 하지 마세요. 어르신이 무슨 말씀이세요. 저도 제 아들들과 함께 주교님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말째 제자로 받아주세요. 열심히 공부하면서 저도 젊은이들에게 뒤지지 않겠습니다.”

“어휴, 이렇듯 간절하시다니…. 주께서 크게 사랑해주실 줄 믿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저에게도 제자 됨을 허락하신 줄 믿습니다.”

“저희들도 찬송합니다.”

알로펜은 제자들과 쿰보그 가족 모두의 열성과 호의에 따라서 선교계획을 세운다. 다음날 아침, 안채 거실에 알로펜은 그의 일행 모두를 소집했다. 쿰바홀 씨도 함께 했다.

“여러분, 우리는 쿰바홀 어른께서 헌납한 이곳이 네스토리안 교단 아시아 선교전략과 훈련, 계속적인 인재양성소가 될 것입니다.”

“그럼 30여 년 긴 여행은 일단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까?”

안토니의 질문이다.

“물론 단기적으로는 여기서 머물면서 향후 선교계획을 세웁니다. 우선 사마르칸트에 연락을 하여 사마르칸트와 쉐키의 선교인력 중에서 최소한 10여 명 이상 여기로 오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마르칸트와 판지겐트와 여기 초코국이 삼각축을 형성하여 타클라칸 지역 50여개 국에 선교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사마르칸트를 중앙아시아 지휘부로 삼아야 합니다.”

“그럼 우리는 중국의 왕성으로 언제 갑니까? 중국선교는 뒤로 미루시는 겁니까?”

안토니의 말이다. 유승과 샤프르, 그리고 쿰보그 부자는 듣고만 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는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때가 되면 그들의 궁성을 찾아가겠으나, 그러나 아시아 대륙은 중국이 전부가 아니다. 그래서 후방기지를 사마르칸트와 우리의 본부가 있는 초코국으로 한다.”

“그럼, 초코국이 아시아만 아니라 세계 선교회 본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안토니의 말이다.

“어째서?”

알로펜이 묻는다.

“주교님은 로마가 아니라 아시아에서 기독교의 기본형을 도모하려 하지 않습니까?”

“뭐라고?”

“그러지 마세요. 제가 주교님의 한과 포부를 알고 있습니다. 로마교구의 의도된 기독론이나 콘스탄티노풀의 로마교구와의 차별을 시도하는 그리스 철학적 기도교 교리가 기독교의 앞날에 큰 과오가 될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계시잖아요.”

“…….”

알로펜은 답변을 피한 채 안토니를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나의 속마음을 어떻게 알아냈느냐고 묻고 싶으신거죠?”

안토니는 당돌하면서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로 알로펜의 속마음을 듣고 싶어했다.

“그래, 그렇구나.”

“제가 맞춰볼께요. 언젠가 주교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죠. 불교는 소승(小乘)에서 시작했으나 500여 년 좌절 끝에 1세기 이후 대승(大乘)화 하면서 날개를 달았는데, 기독교는 ‘대승’에서 출발해서 ‘소승’으로 끝날 것 같다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주교님이 아시아 기독교 현장에서 ‘대승기독교’를 이루어 보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계시다고 굳게 믿습니다.”

“역시 자네는 큰일 저지를 사람이로구먼.”

알로펜은 긍정인지 부정인지를 모를 말을 하고 있었다.

“주교님, 저 쿰바홀입니다. 두 분의 말씀이 저에게는 어렵습니다. 머지않아 다시 배움을 요청하겠습니다. 제가 우선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소그드 상인들을 아시죠? 소그드 아시아 본부가 사마라큰트이고, 부 본부가 우리나라인 초코국입니다. 제가 소그드인 조직을 통해서 주교님의 기독교가 아시아 전역을 지배한다고 할까, 할 수 있는 비책이 있고, 그들의 핵심조직들과 사귀고 있지요. 또 저의 휘하에 20여 명의 젊은이가 있는데 먼저 저들을 주교님이 책임지고 신앙으로 교육시켜 주시면 큰 힘이 될 수 있어서 청을 드립니다.”

“좋아요. 쿰바홀 님. 집과 재산을 다 내놓고 그것이 모자라서 사업조직도 내놓는다는 것이군요.”

“맞습니다. 내 부하들 20여 명은 소그드 상법(商法)을 잘 알고 있는 수준급들 입니다.”

“고맙습니다.”

알로펜은 흡족했다.

“자, 오늘부터 당장 신앙교육을 시키겠습니다. 그러나 소그드 상법은 쿰바홀 님이 가르쳐 주세요.”

“네, 그러나 저보다 소그드 상법뿐 아니라 비법을 잘 아는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좋습니다. 청년들을 모아주세요.”

“네, 별채에 이미 모여 있습니다.”

알로펜이 쿰바홀과 함께 별채로 갔더니 건장한 장정들이 기립박수로 알로펜 주교를 영접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가르쳐 주실 알로펜 주교님이십니다. 여러분도 장사꾼에서 복음 사업가로 신분을 상승시킬 기회를 잡으셔야 합니다.”
알로펜은 말했다.

“신분 차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우리와 똑같은 신분이 되셨는데, 우리에게 장사나 복음전파가 신분 차별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사업가적 수완으로 장차 최고의 신분으로 대접받는 날이 곧 올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소그드의 상법을 잘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장사기술이 복음전도사의 사명과 결합하면 대단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지요. 전도자들이 사람 사는 곳곳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활동을 뒷받침 할 때 필요한 자금은 장사 수입으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내가 페르시아를 출발하여 복음운동을 하던 30여 년 전 현재 구자왕국에서 활동하는 요나 선교사와 함께 물건을 팔면서 산골 깊숙한 동네까지 찾아다녔던 경험이 있습니다만, 지금 나와 함께 계시는 여러분의 가슴에 복음전파의 불길을 붙이기만 하면 우리의 복음운동은 크게 성공할 수 있습니다.”

“네, 주교님. 저희는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희 마음 간절합니다.”

알로펜의 기독교 강좌는 청년들의 마음에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저녁시간 전 쿰보그는 안토니, 샤프르, 유승을 젊은이들에게 소개를 하였다. 초코국  젊은이 중 스무살이나 될까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서서 말을 했다.

“제 이름은 이태수 입니다. 중원에서 왔습니다. 당나라가 막 개국을  하는 중 부처님을 좀 더 깊이 배우려고 천국행을 계획했다가 쿰바홀 님을 만나서 기독교를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독교와 마니교가 구분이 되지 않아서 고민 중입니다. 알로펜 주교님을 보좌하시는 어른들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안토니가 이태수를 향하여 “그건 잘못된 지식이다, 마니교는 기독교의 일부 모습을 닮았을 뿐 더 많이 닮은 부분은 불교와 조로아스터교다”라고 말했다.
이태수는 말했다.

“그럼, 안토니 선생의 말씀이 맞는거죠. 저는 불교에 대한 기초지식 외에는 아는 바도 없고 분별력도 없습니다. 가르침을 구하옵니다.”

유승이 한마디 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불교신자요, 그런데도 주교님의 제자가 되었소. 하지만 나도 주교님의 기독교를 잘 모릅니다. 단 한가지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려고 사람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고, 내가 예수를 믿고 따르면 하나님 같은 품위와 인격으로 변한다는 말씀 한마디는 굳게 믿고 있소. 이태수 씨도 곧 배움을 얻게 될거요.”

유승은 10여 년은 아래로 보이는 이태수에게 반말 비슷하게 했다.

“두 분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태수 형제는 매우 영특해 보이군요. 예수는 내가 가르쳐줄 터이니 형제는 우리에게 중국말을 가르쳐 주시오. 우리는 머지않아 중국 본토에 들어갈 계획입니다.”

안토니의 이 말에 이태수는 반색을 한다.

“좋습니다. 이곳 초코에는 저보다 중국어는 몰라도 중국인의 사상을 깊이 아는 학자들이 많을 것이오. 그러나 말과 같이 글의 기초는 내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알로펜이 언제인가 그들 곁으로 와서 대화 내용을 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좋은 의견들입니다. 중국어 학습문제는 안토니가 이태수 형제와 상의하여 준비해 보시오. 그리고 오늘밤 모임시간이 중요하오.”

저녁시간에 알로펜은 중대발표를 했다. 쿰바홀의 부하상인 청년들 20명을 두 명씩 조를 짰다. 이들 2명 씩 한 조가 된 젊은이들은 신학수업과 배운 지식을 서로 보충하며 훈련하는 일에도 함께 동무해 달라고 강조했다. 바로 이 사건부터 6개월 동안 성경공부를 하고, 6개월은 20명 전체가 함께 공동토론 등을 할 것이며, 배운 내용을 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 알로펜 자신이 직접 교육과 훈련을 지휘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1년 동안을 각각 3개월 단위로 수업평가를 하겠다고 했다. 3개월에 앞뒤 시간을 7일씩 잘라서 가까운 주변 도시로 가서 실습을 한다. 다시 모여서 평가를 하고 토론을 하겠다고 했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알로펜이 물었다. 잔뜩 긴장하고 듣고 있던 젊은이들이 ‘좋다, 주교님의 지도를 전폭적으로 따르겠다’고 하였다.

“주교님, 송구하지만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이태수였다.

“그래, 말하시오.”

알로펜이 이태수의 표정을 주목한다.

“꼭 주교님의 교육법이 소림사의 달마대사의 방법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답니다.”

“뭐, 달마….”

안토니가 벌떡 일어나서 이태수를 향한다.

“허허, 그래요. 이태수 형제가 소림사와 달마승을 아시오?”

“네, 저는 직접 만나지 못했으나 내 친구들 중 달마의 제자들이 몇 명 있고, 또 저도 달마의 진리수련법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요.”

알로펜이 이태수 곁으로 가서 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나도 달마승을 알고 있소. 그도 나와 같은 페르시아 출신 구도자입니다. 아마 지금 그분은 떠나고 제자들 시대로 압니다. 혜능이라는 훌륭한 제자가 그들의 교단을 이끈다고 들었습니다.”

“주교님, 그렇게까지 알고 계셨군요. 송구합니다. 주제 넘게 아는 체 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아니오. 적절한 시기에 달마교단 이야기 잘 꺼내주었어요. 그렇소. 나는 우리 기독교단이 달마의 소림사에게 뒤지지 않고, 로마제국의 교황권 기독교에도 뒤지고 싶지 않소.”

<복음인in 들소리>는 하나님의 교회다움을 위해 진력하는 여러분의 후원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반자로서 여러분과 동역하며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함께 하겠습니다. 샬롬!

후원계좌 : 국민은행 010-9656-3375 (예금주 복음인)

저작권자 © 복음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