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안 기독교의 수도굴을 바라보면서(저 앞에 보이는 동산이 수도원 입구).


“뭐야, 누구!”

알로펜은 무함마드의 제자들이라는 말을 분명하게 들었으면서도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저들이 벌써 밀고 당기는 법을 알까? 노회함을 알기에는 아직 젊은데…, 아닐 거야.

“주교님, 사전 허락도 없이 찾아뵙습니다. 저희에게도 가르침을 주십시오.”

“허어, 여보슈들. 당신들은 무함마드의 제자들이잖소. 어떻게 감히….”

안토니가 성깔을 부리면서 그들을 가로막았다.

“왜, 그러세요? 배움에 무슨 차등이 있습니까. 주교님이 저희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친구도 되시고, 또한 우리는 형제 종교 아닙니까?”

“허허, 그놈의 예언자, 예언자 소리 좀 집어치우시오.”

안토니를 가로막고 선 사람은 쿰바홀이었다.

“안토니 사제. 너무 심하십니다. 진리를 배우자는데 무슨 차별이 있습니까? 저는 지금 새로 태어난 아라비아 종교가 장차 우리의 형제 종교일지 아닐지는 모르지만 이 사람들이 우리들과 함께 주교님의 가르침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봅니다.”

“뭐이 어째요. 당신이 뭘 안다고….”

“어허, 말 조심하슈. 나도 안토니 사제 못지 않게 주님을 사랑하오. 다만 주교님의 가르침을 받은 년수가 모자라서 사제께 예를 다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나는 믿고 있어요. 주교님은 여기 우리 앞에 서있는 마흐무드와 그의 친구들을 내치지 않으실 것을 확신합니다.”
알로펜이 쿰바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말했다.

“쿰바홀 형제여. 그래 나도 확신합니다. 걱정 마시오. 형제들 어서 자리하고 앉으세요. 우리는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안토니만 씁쓸한 기분이 되었다.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가버린다.

“여러분, 우리 네스토리안 성도들의 특징이 뭔지 아십니까?”

“…….”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 모를 거야. 우리의 특징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를 잡아먹고 싶어서 애를 쓰는 로마교회(가톨릭)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우리 네스토리안 교회는 철학, 수사학, 과학, 의학, 천문, 지리, 수학, 생물학, 식물학 등 우리 인간사회에 필요한 학문은 물론이고, 신학, 교의학, 교회학, 실천신학에는 더욱 전문성을 가지고 있죠. 더불어 성경을 깊이 연구 하여, 수사학, 언어학의 힘을 빌려서 달통할 때까지 공부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장소, 이 자리에서 10년은 몰두할 준비를 하시오. 10년을 채우지 않으면 주 예수는 물론이고, 나 알로펜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청천벽력이었다. 저 어른이 왜 저렇듯 단호해 졌을까? 안토니의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렇다고 안토니가 곧바로 항변을 하거나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유승이 나섰다.

“스승님, 옳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중국에 정착한 달마의 불교가 혹독한 훈련을 시키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10년이 아니라 주 예수의 현현(나타나심)을 경험할 때까지 공부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주교님, 저도 동의합니다. 저를 따라서 주교님의 제자가 된 우리 모두를 가르치심에 무조건 복종합니다.”
“가만 있자, 우리는 지금 예수는 누구냐에 대한 특별 강습기간입니다. 주교님의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안토니의 말이었다.

“그래요. 아마, 머지않아 내가 당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여러분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우리의 구세주 예수께서는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사람일 뿐인가, 아니면 하나님이신 이가 필요에 따라 사람으로 나타나심인가? 또 나타나시되 꿈같은 어느 현실에 나타나심, 곧 가상이 현실에 잠시 나타나심인가, 완전한 사람이시고 또 완전한 신이신가에 대한 공부가 오늘의 주제입니다.”

이렇게 말한 알로펜은 무함마드의 제자들을 슬쩍 보고, 이어서 청중 모두를 눈여겨 살펴보고 있다. 마흐무드가 나섰다.

“주교님, 저희를 신경쓰지 마세요. 저희들도 주교님이 말씀하신 메시아 예수의 근본에 대하여 사심없이 새로운 자세로 공부해 보겠습니다.”

“그런가요. 매우 기쁘군요. 바로 그게 구도자의 자세입니다.”

“네, 계속 가르침을 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누구라 하셨나요?”

안토니가 나섰다.

“요한복음 기록을 보면 제자 빌립이 하나님 얼굴 한번만 보여달라 할 때에 예수께서는 나를 보았으면 아버지를 보았노라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 자신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동의에 의해서라 하셨고, 심지어 나는 나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 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같은 말씀이 성경의 기록인데 우리가 예수를 더이상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고 또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신 사람의 자격도 가지셨다 하나, 저희 아라비아의 요구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어떻게 내 죄를 대신함이 되느냐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희의 이같은 무지를 어찌해야 할까요 주교님?”

예언자 무함마드의 제자가 던지는 이 질문을 받은 알로펜은 30여 년 전 다마스커스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때, 알로펜과 동갑나이인 낙타몰이꾼 무함마드가 자기에게 속삭이던 고민을 지금은 그의 제자로부터 들으면서 그때나 지금이나 말로써 쉽게 답변해 주지 못한 자기 자신이 야속했다. 그러나 지금은 안다. 말로써 명쾌한 설명은 쉽지 않으나 알고 있다.

“마흐무드여, 내가 당신의 요구를 알고는 있으나 지금 여기서 말로 해줄 수는 없구려. 역시 말이나 글은 진리를 다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는가봐. 말이나 글로가 아닌 표현법이 있지요. 그것은 예수가 보여주신 삶의 속도야. 예수는 3년 정도의 공생애 기간동안 제자 가르치기를 2년을 채우지 못하시고는 십자가의 죽음 앞에 섰지. 그는 더는 가르치는 자의 자리에 서지 않고, 그 스스로가 하나님의 명령인 십자가 죽음을 온 몸으로 이루어 내셨지요. 그리고 그의 죽으심에 동행하는 자, 그의 죽으심에 동의하는 자들과 함께 하셨지. 우리는 이를 대속의 죽음이요, 또 대속의 삶이라고 하지. 그러나 나의 이 표현 자체도 무모한 궤변이야. 어리석은 야만이지. 내가 이를 잘 알면서 지금 여러분 앞에서 헛 욕심 내는구먼.”

“선생님, 너무 어렵습니다.”

마흐무드가 알로펜 앞으로 한발 다가서면서도 가르침이 어렵다고 말했다.

“아니야.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가 어리석은 표현을 했어. 건방을 떨었지.”

“아닙니다. 주교님!”

모두가 한 목소리로 알로펜의 가르침을 받아들인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주교님. 오늘의 물음을 십년 향후의 과제 속에 두고 날마다 배움 가까이 나아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마흐무드와 그의 친구들이 알로펜 앞으로 다가와서 사례를 했다. 다른 제자들도 알로펜 앞으로 한걸음 다가서면서 머리 숙여 존경의 표시를 했다.

그런데, 마흐무드의 친구 암몬이 알로펜 앞으로 마치 시비하려는 듯이 덤벼들었다.

“주교님,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주교님의 50여년 간의 구도행을 신뢰할 수도 없습니다. 주교님은 저희의 대예언자님과 함께 15살에 대속론(代贖論)에 대한 고민을 하셨다면서요. 그럼 이제는 결론을 내리시죠. 예수의 대속신앙은 실패입니다. 대속신앙이 성공하려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위치를 철저하게 지켜내야 했습니다. 어떤 환경의 위협에도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철저하게 유대인의 역사와 율법의 가치에 치우쳤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버림받아 죽으면서도 유대인의 법칙을 떠날 수 없었지요.

저의 판단으로는 예수께서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의 자격으로 세상에 오심이 분명하거든 지나온 역사의 재평가 또는 심판을 했어야지요. 그리고 조상들의 편견과 무지로 말미암아 버림받아서 수천 년 동안 버림받은 땅 아라비아에서 벌레처럼 살아온 당신들의 후손인 이쉬마엘, 에서, 그리고 저같이 불쌍한 자식들을 더 불쌍히 여기셨어야죠. 저는 아브라함 할아버지 조카인 롯과 롯의 딸이 만나서 낳은 자식의 후손입니다. 이것이 누구의 죄입니까? 성경의 기록대로 저희가 버림받은 자식들이라고 합시다. 그러나 저희는 버림받을 만한 이유가 없습니다. 설사 당사자들이 우리들이 알 수 없는 어떤 잘못이 있었다해도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지 수천년 후에 태어난 자손들인 우리가 함께 묶여서야 될 일인가요?

그러므로 이렇듯 잘못된 역사를 재심판 하시고, 자비와 구원을 내리셨다면 그것이 바로 대속의 은혜요, 재창조의 은혜가 될 수 있겠으나 지금 기독교가 유대인이 전승해 내려온 성경과 예수의 제자들, 또 그들의 제자들 시대에 유대교식 가치를 뛰어넘지 못하는 수준으로는 선민 이스라엘 이외의 이방인 모두는 대속의 은혜에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암몬의 폭풍 같은 도발의 언행 앞에서 어느 누구도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알로펜 주교마저도 두 눈을 지긋이 감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 암몬의 도발적 발언이 이미 끝났는데도 알로펜 주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저…, 제가 생각할 때도 암몬 청년의 말씀에는 타당한 논리가 있다고 봅니다.”

쿰바홀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의외로 다혈질 안토니가 이마에 한 손을 짚고 연속 침묵이었다.
“송구합니다. 저는 암몬 형제의 항변을 이해는 하겠으나 정통 기독교가 지난 6백여 년 동안 많은 희생을 무릎쓰고 지켜온 대속론 신앙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의 합일적 세계이니만큼 저희가 더욱 겸손하게 공부하고 기도하여 끝까지 지켜내야 할 성경의 가르침으로 봅니다. 저는 새 종교를 표방하는 아라비아 종교도 신뢰하지만 저 자신은 네스토리안 기독교인으로서 주교님의 가르침에 비중을 더 두고 있습니다.”

마흐무드의 말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암몬 형제의 말이 옳아요. 그러나 기독교가 주장하는 기독론, 곧 예수는 하나님이시니라. 사람으로 오사 재창조의 세계를 만드심 또한 옳습니다. 암몬 형제의 요구와 지적을 나는 적극적으로 찬동하고 받아들여서 우리가 앞으로 세워나갈 ‘아시아기독교’에서는 우주적이고 창조적인 기독교를 이루어내야 합니다. 내 일찌기 15살에 다짐을 했고, 결국 부친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30여 년 동안 나그네의 삶을 살고 있는 의미도 바로 암몬 형제와 같은 요구를 가슴 속에 담고 있기 때문이오. 온 생명을 다하여 여기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타클라마칸, 그리고 머지않아서 뛰어들게 될 중국은 물론 저북방 몽골, 투르크 등의 초원의 세계까지도 우리의 아시아교회의 기반이 될 거야. 중국에서 예루살렘까지 기독교의 새날을 네스토리안 신자들이 이루어가는 겁니다.”

알로펜의 말을 듣고는 암몬이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경거망동을 용서해달라고 그의 옷자락을 붙잡고 놓치 않는다.

“아니오, 암몬 형제가 나를 깨우치도록 도왔어요. 나 또한 젊었을 때는 형제와 같은 기백이 있었지요. 용기를 잃지 말고 그럴수록 주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해야 합니다.”
“네, 네. 명심하겠습니다.”

저녁시간까지 제자들은 서로 자리를 바꾸어 앉아서 토론을 하기도 하고, 별도로 몇명씩 둘러 앉아서 자기 생각들을 내놓고 견주기도 했다. 저녁식사 후 마흐무드 일행이 그들의 처소로 떠났으나 암몬은 알로펜 곁에서 좀 더 배우겠노라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함께 어울리면서 가끔씩 들려주는 알로펜 주교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였다.

“여러분, 우리는 네스토리우스 총주교님의 사상과 생애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의 정의로운 신학적 자세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저희는 ‘네스토리우스파’로 분류가 되지만 거기에 갇혀서 파당적 행동을 해서는 안됩니다. 네스토리우스파나 로마파나 모두 큰(한) 바다로 나아가는 샛강 줄기에 지나지 않아요. 그리고 바다가 크다 하나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는 창조의 원리에 순응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독교 안에서 자기 자랑을 하면서 큰소리 쳤으나 중국에 가면 수천 년 기반을 가진 중국사상, 그 사상에서 생겨난 도교, 기독교보다 먼저 중국에 들어와서 포교의 기반을 닦은 불교, 조로아스터교, 마니교, 그밖의 종교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타종교와 더불어 만날 때 지극한 예의와 존경심을 가져야 합니다. 타종교 간 서로 싸움질 하는 것처럼 볼썽사나운 것은 또 없지요.”

“그러나 우리가 마음먹은 대로 될까요? 먼저 자리잡은 종교라고 텃세나 하는 그들과 어느 만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요?”

쿰바홀의 말이다.

“보시오. 우리는 종교가 아니오. 하나님의 자녀로서 품위를 지키면서 서로 경쟁하는 종교들을 돕고, 어디에 기울지 않는 지혜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알로펜은 종교이기를 포기한 중국 사상과 기독교의 포부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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