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기고한 다음 해 (1957년) 천안 씨알농장에서 농사 지으실 때 모습.


함석헌 ‘글판’ 사상계


1955년 12월 송년호 13,000부를 발행한 사상계는 이제 한국 민주언론의 교두보(橋頭堡)로 타의 시비를 불허할 만큼의 자(自) 보다는 오히려 타(他)가 더욱 환호하는 부동의 자리에 섰다. 김준엽, 안병욱을 비롯한 편집위원 8인, 각 부문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정기 월례회의는 오히려 한 국정을 논하는 내각회의(?)를 방불케 했다.

그 인물들의 지명도나 면면에서만이 아니었다. 자신들의 전문분야에 축적된 놀라운 내공(內功)들, 불꽃을 방불케 하는 날선 논리들, 더 나아가 기어히 새 역사를 이루어내야 한다는 결연한 의지들이 이합집산, 집산이합 하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1955년 12월호 정기편집회의에서 안병욱이 입을 열었다. 사상계의 편집에서 교양부분을 맡게된 아직 30대를 넘지 못한 숭실대학의 철학교수였다.

“제가 새해 첫 호에 새로운 필자 한 분을 등장시키려 합니다. 아무런 관직도 교직도 없는, 크게 유명하지도 않은 자유인이라 할까, 사상가라 할까, 종교인이라 할까 그런 분입니다. 아직 60은 채 되지 않은 분인데 필자 소개는 새해 신년호에 그분 글이 실리고 난 후 해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사상계의 편집위원회에서 상임편집위원인 안병욱이 말한 그, 아직 익명의 새로운 필자란, 이후 두고두고 그를 발굴(?)해 낸 것은 사상계의 자랑이었고, 행복이었다고 말하게 되는 함석헌이었다. 안병욱은 이전에도 수차례 함석헌을 방문해 그의 글을 부탁했지만 ‘내가 무슨 글을 쓰느냐’며 불응해 뜻을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제는 안병욱도 거의 결사적인 태도로 ‘선생님의 글’을 간청해, 새해 1956년 신년호에 실을 그의 글을 받아낸 것이다.

그 글이 이제(2013) 읽어도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하는 저 유명한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이다. 함석헌 자신은 그 글을 ‘정말은 자기 반성의 하나’라고 했지만 당시 사상계의 편집실무자였던 계창호는 “당시 기독교의 신구교(新口敎)를 싸잡아 팽댕이친 글이었다”고  단언했다.

후에 이 사상계의 계창호는 1958년 10월호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글로 해서 묘한 관계가 이루어지게 되고 함석헌의 가슴에 ‘고마운 사람’으로 남게 된다.


비판의 수용


함석헌은 자신의 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한국 기독교의 신성불가침론을 꾸짖었다. “비판을 초월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생각이 교회를 역사적인, 사회적인 산 생활에서 떨어져 화석화 하게 한다”는 것이다.

종교도 자라는 것인 만큼 끊임없이 비판을 수혈하여 ‘참’의 자리를 지향해야 한다. 역사의 위대한 부름이 있어 시작된 종교들이 조직적인 것들로 굳어지면서, 그 위대했던 역사의 명(命)들을 조직의 교리들로 조작, 악용하므로 오히려 역사의 진행(기독교적인 말로하면 하나님의 역사)을 가로막고 있다.

한국 기독교, 특히 한국교회를 향한 함석헌의 우선적인 요구가 ‘비판의 수용’이라는 것이다.

“종교는 비판을 요구한다. 어느 종교나 신성 불가침을 요구한다. 비판이라 하면 교회는 본능적으로 수염을 꼬들리는 봉건귀족의 기분 같은 생각을 가진다. 사실 교회는 봉건제도의 뱃속에서 나온 것이고, 아직도 그 젖냄새를 못버린 점이 많다. 비판을 초월하기 때문에 종교이기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성불가침은 비판받아야 한다. 이제 인간은 비판 없는 신뢰만이 신앙이 될 수 없음을 안다. 어떤 경전도 비판 없이 읽으려 하지 않는다. 비판,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기 때문에 어떤 계시, 환상을 본 사람도 영구적으로 자아의식을 초월해 버린 일은 없다. ‘나를 본 자가 아버지를 본 것이다’ 하는 사람은 분명한 자아의식을 가진 사람이지, 결코 탈혼상태에 있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까지는 엎디어 두 손으로 받아야 하는 절대이지만 일단 뱃속에 들어가면 원형을 남기지 않도록 소화를 해야 한다. 교회는 사람의 양심 위에 임하는 하나님의 절대권을 대표하느니만큼 도리어 끊임없는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함석헌은 자기 반성을 할 줄 모르는, 비판을 불허하는 소위 신성불가침의 종교는 종교가 아니라 했다. 따라서 유일신 종교, 유일신 신앙이라는 것이야 말로 함석헌에겐 용납될 수 없는 가짜 종교다. 이슬람도, 유대교도, 김일성의 주체사상도, 기독교까지도 예외가 없이 가짜다.

참 진리란 오늘도 내일도 찾아가야 하는 궁극이다. 때문에 내가 진리를 찾았다, 잡았다 할 때 곧 놓아버리지 않으면 않된다. 그러므로 참 종교를 찾는 자의 자리에 서면 절대의 진리를 붙잡았다, 이루었다 하는 자야말로 종교적인 고아가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잘한다 해도 내가 믿는 신이야말로 유일신이라 주장하는 종교는 없어질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종교와 역사

함석헌이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지적하는 또 하나 한국교회의 문제로 시대적·역사적·사회적 소명의 무지를 들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교회를 비판하게 되는 것은  그러한 일반적인 데부터만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현 단계의 필요에서부터이다. 자각증상은 고사하고 보는 남의 눈에 병색이 보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사사(私事·종교를 믿는 사람의 일, 필자주)가 아니다. 믿는 자의 취미에만 그치는 일이 아니다. 종교는 물론 인생에 초연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 초연은 인생 위에 지도적 권위를 가지기 위해 하는 초연이지, 결코 관계 아니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 관계를 예수께서는 등불과 산성으로 비유했다. 종교는 그 종교를 믿는 자만의 것이 아니다. 시대 전체, 사회 전체의 종교다. 종교로서 구원 얻는 것은 신자가 아니요 그 전체요, 종교로서 망하는 것도 교회가 아니요, 그 전체다.”

함석헌은 시대적·사회적·역사적 종교를 제창한다. 기독교가 참 종교가 아니요, 이 시대, 이 사회, 이 역사 속에 산 정신, 산 도덕을 심고 기르고 펴가는 종교가 참 종교라면서, 기독교가 이같은 종교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역사로부터 쓸어버림을 당해야 할 것이라고 갈파한다.

“인류는 앞으로 근본적으로 생각을 새로이 할 것이지만, 아무래도 역사적 존재인 이상 기존하는 어느 것을 기본으로 하고 나오는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렇다면 여러가지 점으로 보아 아무래도 ‘기독교적인데서’ 나올 수밖에 없을 것 아닌가? 그런데 그런 지위에 있으면서 우리나라의 기독교가 왜 아무 열심도 보여주지 못할까?

우리는 이제 그 뿌리를 들춰보고 그 미지근한 속에 손을 넣어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하여 살았으면 더 북돋우고 아주 병이 들었으면 뽑아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어야 할 것이며, 아직 불꽃이 있으면 살려 일으켜야겠고, 아주 꺼져있으면 어서 쓸어버려 새로 심는 나무의 거름으로라도 해야 할 것이다.”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에서 탈역사화(脫歷史化) 한 기독교를 고발한다. 함석헌은 물론 교조적인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기독교적인 입장에 있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인류는 앞으로 근본적으로 생각을 새로이 할 것이지만… 그렇다면 여러가지 점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것은 기독교적인 데서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 식자들의 의견이다”(전집 3, P.37) 한 것이나, 이조(李朝 말에 이르러는 선도(仙道)도, 유교도, 불교도 ‘아주 썩어버려’ 새로운 역사적 종교가 요구된 때 때맞춰 준비된 것이 ‘기독교적인 것’이었다는 주장, “국민의 일대사(一大事)가 있을 때 민심 위에 결정적 판단을 내린 것은 종래의 불교적인 사상도 유교적인 윤리도 아니요, 기독교적인 것이었다”는 것, 3·1운동 이후 조직적으로 확장되어 온 공산주의 세력과 기독교 세력 간의 해방 이후 한반도 장악을 위한 투쟁을 두고, “그러나 그 당시의 분위기를 말한다면 국민은 대체로 기독교의 편을 들 형편이었지, 결코 공산주의가 이기리라고 생각한 이는 없었다”고 한 주장들을 보아서 말이다.

그러나 함석헌이 이해하는 기독교는 철저하게 역사, 그것도 현재사(現在史)와 공존하는 종교다. 함석헌의 이 역사의 종교라는 기독교 이해가 그를 기독교적이게 한다. 때문에 기독교가 아무리 예수의 구원을 말하고 영원한 생명을 말해도, 부활을 말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말해도 현존하는 역사에 무책임할 때 함석헌은 지체없이 안티크리스천(Anti Christian, Anti churchman)이 된다. 역사에의 책임감, 관심을 잃었다면, 그리고 현상에서의 소위 축복이니 은혜니 응답이니 하는 따위가 문제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이미 종교가 아니요, 역사에서 퇴장되어야 하는 것이다. 썩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37).


비이성적 퇴행의 한국 기독교


함석헌은 유교거나 불교거나 선도거나 간에 ‘썩어버린 종교’를 이렇게 풀어 밝힌다.

“썩어버렸다는 것은 다른 것 아니요, 언제나 종교 도덕이 일부 지배 계급에 독점되어 그 물질적 이익을 옹호하는 수단으로 되었다는 것이다”(전집 3, p.38).

종교가 종교의 밑자리인 역사의 현장을 잃을 때 예외 없이 비이성적인 퇴행을 한다. 소위 예언이니, 입신이니, 투시니, 신유니, 성공이니, 성장이니 구하면 주신다, 하면 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함이 없다 등등의. 해방의 흥분이 가라앉으면서 한국교회는 참으로 이상스러워졌다. 해방이 됐다지만 미소 양군이 주둔해 그들의 군정을 실시하고 있는 터에 어떻게 그것을 참 해방이라 할 수 있을까? 함석헌의 말로 하면 일제시에는 시아비가 하나였지만 이제는(해방 이후에는) 두 시어미를 섬기게 된 것이다.

더욱 이상스러운 것은 일본제국엔 그렇듯 저항하던 기독교가 미국의 군정에는 오히려 협조, 순종적이었다는 사실이다. 바야흐로 한국 기독교의 비이성적(비종교적)인 퇴행이 드러난다. 갑자기 통일 예언파가 생겨난다.

그저 저마다 예언이었다. 3년 후에 통일이 된다. 5년 후에 통일이 된다. 몇년 몇월에는 예수가 재림하고, 소련이 망한다…. 구약의 예언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근본이 윤리적인 것이었다. 민중의 갈 길을 제시해 힘쓰게 하자는 것이지 요행을 바라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언이 들어맞을리가 없다. 역사를 통해 하나님이 기적으로 게으름뱅이에게 복을 줄리가 없었으니 그 예언이 하나님의 계시일리가 없었다. 해보다 아니 되니 그런 따위 예언은 제 마음이 스스로 다시 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일어난 것이 교파싸움이다. 장로회가 이분(二分)되고, 감리교가 이분되고, 한 교회당 안에서 두 파가 대립해서 예배를 드리고 경찰관을 출동시키고, 교회당을 차압하고, 천주교는 ‘우리는 그런 싸움 아니한다’고 자랑할는지 모르나 그것은 마치 국민의 불평을 식민지전으로 전가시켜 겨우 통일을 유지해가는 제국주의 국가의 일과 마찬가지로 다른 교파는 다 열교(裂敎)라는 것을 밤낮 선전해서만 유지해가는 통일이다.”

함석헌은 이같은 교파 싸움의 원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


대적을 잃어버린 교회


“…저희끼리 싸우는 것은 외적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근본으로 하면 일체 현세적인 것을 상대로 싸우잔 것인데 그 근본정신이 살아있는 한 그 싸움은 그칠 수 없다. 그런데 외적이 없다는 것은 싸워야 할 그 적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밖의 적을(안의 적도 마찬가지지만, 필자주) 잃어버린 기독교는 성신운동, 기적운동, 부흥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를 버린 자에게 주는 벌이요, 재앙이었지만 기독교는 그것을 투시할 수 있는 힘을 이미 잃고 있었다. 사람이 모이고, 돈이 모이니 그 다음 할 일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교회당이 급속히 늘어가는 것이었다. 그것도 이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대형교회당이었다. 아예 교회성장은 하나님의 뜻이라 했다. 그 교회성장이란 크기와 많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함석헌은 말한다.

“예수가 오늘 오신다면 그 성당, 그 예배당을 보고 ‘이 성전을 헐라!’ 하지 않으실까? 본래 어느 종교나 전당을 짓는 것은 그 종교의 마지막 단계이다. 전당을 굉장하게 짓는 것은 종교가 죽을 것을 다 먹고, 죽는 누에모양으로 제 감옥을 쌓음이요, 제 묘현을 파는 것이다” 함석헌의 대교회에 규탄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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