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와 함께 당나라로 (1)



                                  중국 돈황, 월아천의 단아한 모습.


알로펜은 곧바로 중국 입성을 준비했다. 페르시아 상인들이 주선한다는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들었으나 그는 크게 신뢰하지 않았다. 쿠얼러와 미란 쪽에서 중국과 크게 사업을 벌이는 전 페르시아 궁정대신이요, 아버지 압바스 대감독의 친구인 크세르 아브 씨가 몇 번 사람을 보내왔으나 요즘은 뜸하다.

무함마드 제자들 중 암몬 형제가 알로펜의 마음을 요동치게 했을까? 그게 아니면 그가 왜 서두를까?

안토니가 급한 전갈을 가지고 왔다. 사마르칸트에서 ‘마리아 교수님 일행이 오고 계신다’고 말했다. 알로펜은 안토니도 모르게 이미 지시를 내렸기 때문에 ‘그러냐’는 식으로 반응을 보였다.

“주교님, 왜 그렇게 무덤덤하세요?”

“안토니, 사실은 내가 오래 전에 인편을 넣었어요. 가급적이면 가르칠 인력을 이곳으로 보내달라고. 그런데 마리아 교수님도 오시는가?”

“아 참, 깜짝 놀랐네요. 주교님의 허락도 없이 각 지역의 선교단들이 임의로 움직이면 어떠나 하고 걱정했습니다.”

안토니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면서도 태연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사마르칸트는 물론 트빌리시나 쉐키의 인력 중에서도 몇 명 보내라고 했지. 지금은 이곳 고창의 인력을 강화해야 하겠어요. 나는 며칠 후 10여 명을 선별하여 돈황으로 가려고 하네.”

“전광석화 같으시네요.”

“아니야. 생각대로이면 10여 년전 당나라 초기에 장안성에 들어가고자 했지. 그런데 중국에 새로 등장한 왕조인 당나라가 정세불안이 심했잖아요. 이제는 얼마간 안정되고 새로운 실력자인 당태종이 대단한 인물이라고해. 그 정도면 대화가 되고 마음을 서로 열 수 있을 것 같아서…, 결심을 앞당겼지.”

“아, 그러시군요.”

안토니는 허망했다. 알로펜의 판단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 없었다. 그는 무엇인가 다른것 하나를 더 가진 인물임을 다시한번 발견하게 되었다.

마리아가 왔다. 알로펜 앞에선 중년 고비를 넘긴 마리아. 절반 이상의 머리가 하얗고, 그의 고운 얼굴은 예뻤으나 곳곳에 주름이 자리잡아 있었다. 단아한 모습, 알로펜이 달려와서 안아주기라도 기다리는 듯 알로펜을 확인하고서는 그 자리에 우뚝선다. 눈 가장자리가 젖어 있으나 약간은 민망스러운 듯이 살짝 웃는다.
알로펜은 그런 마리아의 감정을 이해하는 듯 했다. 잠시 주위를 살피며 머뭇거리는데 제자들이 아우성을 친다.

“주교님, 뭐하세요. 마리아 님이 오셨어요. 몇 년 만인데 달려가서 안아주세요.”

누구랄 것 없는 분위기. 더구나 사마르칸트에서 동행해온 제자들은 발을 동동 구르기도 하였다.

마리아가 더 용기있게 알로펜 앞으로 다가가더니 그 자리에 엎드리어 ‘스승님’ 하는 한마디를 말하고는 크게 절을 한다. 정성스럽다. 알로펜이 엎드린 여인, 열다섯에 만난 연상의 교수님. 교수님! 교수님! 하면서 따르던 날이 언제인가. 50년쯤 지났구나. 그러나 그날들 속에서 마리아는 단 한번도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일어나시죠. 마리아 님.”

알로펜의 마리아의 등을 토닥이다가 양 겨드랑이를 가볍게 부축하여 일으켰다. 마리아의 몸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는 느낌이었다. 알로펜은 마리아를 일으켜 세웠다. 그들은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가빠진 숨소리를 듣는다. 사춘기 아이들처럼 서로의 감정을 속이느라 애를 쓴다. 마리아가 당장 알로펜의 가슴에 얼굴을 묻을 듯 한 표정을 짓다가 씩 웃는다.

“주교님, 우리 둘 이제는 60살을 훨씬 멀리 넘겨버렸네요. 그간 강녕하셨지요.”

“그럼요, 교수님도….”

“교수님이라지 마세요. 나는 바보 알로펜의 제자일 뿐 입니다.”

‘바보’, 바보라는 말에 지켜보는 모든 이들이 으아했다.

“바…보…라, 아 알겠습니다. 나는 바보죠.”

마리아가 바보라고 하는 말의 뜻을 알로펜은 안다. 마리아가 다마스커스에서 트빌리시를 경유하여 쉐키에 왔을 때였다. 그때 마리아는 알로펜을 사랑한다는 구애를 했었다. 알로펜은 아직은 아니라면서 연상의 마리아 교수를 민망케 했던 일이 있었다. 그때 마리아가 알로펜을 항하여 ‘바보’라며 놀려댄 일이 있었다.

며칠 지나자 트빌리시와 쉐키에서도 각각 10여 명의 선교사들이 고창에 모여들었다. 단숨에 130여 명 인력으로 확대되었다. 알로펜은 사마르칸트, 트빌리시, 쉐키에서 온 인물들을 점검하고 있었다.

“안토니 사제, 현황을 보고해 보세요.”

알로펜이 안토니에게 명했다.

“네, 주교님. 금번에 사마르칸트에서는 마리아 교수님과 드보라 수사님과 또 8명의 젊은이들이 왔습니다. 쉐키에서는 다니엘 사제와 9명의 젊은 수사들이 함께 왔습니다. 트빌리시에서는 다비드 사제님이 9명의 제자를 이끌고 오셨습니다.”

알로펜이 쿰바홀을 향해서 말한다.

“당신의 아들 쿰가드는 어찌하여 오지 않을까요?”

“글쎄 옳습니다. 아마 아비와 경쟁하기가 싫었겠지요.”

“그게 무슨 말….”

“주교님을 제게 빼앗겼잖아요. 제가 몸만 바친 것이 아니라 전 재산까지 우리 네스토리우스 아시아 기독교 제단에 바치고 나섰으니 본인이야 별로 신명이 나지 않겠죠.”

“그럴까요?”

알로펜은 마리아 교수와 트빌리시 다비드 사제를 앞으로 나오도록 하였다.

“여러분, 오시느라고 수고하셨어요. 당나라 사정이 호전되고 있습니다. 당태종이 권력을 장악한 후, 그 자신이 영웅적인 풍모를 널리 표현하기 위하여 이방종교들 중 우리 기독교단이 중국에 들어오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준비가 되는대로 가능한한 빨리 당나라 수도로 진출해야 합니다. 우선 여러분은 사마르칸트나 다마스커스 선교부를 통하여 성경번역을 할 수 있는 실력있는 이들은 최소한 10여 명 찾아야 합니다. 다마스커스의 엘리야에게 특히 부탁을 드렸으면 합니다.”

“네, 그렇게 하지요.”

쉐키의 다니엘 사제가 말했다.

“주교님, 트빌리시 요한 주교님께 부탁을 드리면 번역과 통역을 할 수 있는 좋은 인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좋아요. 좀 알아보시죠. 저는 한달쯤 후에 돈황으로 옮겨가서 장안으로 갈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겠습니다.”

고창의 네스토리안 본부는 갑자기 수용인원이 배로 늘어났다. 긴장감이 도는 느낌이 있었다. 알로펜이 조금 서두는 듯 해서 모두가 불안해진다. 주교님이 왜 저러실까요?

저녁시간 안토니와 마리아 교수가 함께 알로펜의 집무실 겸 서재로 들어왔다. 마리아는 꽃다발, 안토니는 선물 보따리를 들었다.

마리아는 싱긍생글 웃었다. 장난기까지 도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꽃송이를 알로펜 앞에 놓고 말했다.

“40여 년 그리움으로만 살아온 나의 님에게 꽃송이 하나 바칩니다.”

“허, 뭐라구요?”

“만나자 또 멀리 떠나려는 님에게 드리는 여행선물을 안토니가 대신 드립니다.”

안토니도 마리아를 따라서 약간은 장난기 섞어서 말했다.

“안토니, 뭐야. 자네가 내게 주는 것도 아니면서 들고 왔나. 이 은밀한 정감을 자네가 다 깨는구먼.”

알로펜도 뒤질세라 농담 섞어서 말했다.

“뭐요. 주교님! 그럼 마리아 교수님이 은밀히 찾아오셔서 속삭여 주기를 기대했었다는 겁니까?”

“뭐, 그럼 안되나?”

“아야, 그럼 난 뭐야.”

안토니가 뒷머리를 긁으면서 밖으로 나가버린다.

“앉으세요. 마리아여! 오랜만에 불러봅니다. 잘 계셨어요?”

“그래요. 잘 있었죠. 오직 당나라에 가시면 성공하셔야 된다면서 기도하는 세월이었지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내가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걱정이군요.”

“걱정하실 것 없어요. 이제 60살이 넘어선 주교님을 때로는 멀고, 또 때로는 가까이 모시면서 내가 봉사할 수 있는 기회만 주세요.”

“그게 무슨 말씀?”

“내 남편이 되어 달라는 것은 아니고 당나라 가시면 궁정이나 대신들과 자주 어울리셔야 합니다. 지금까지처럼 생활하실 수 없지요. 제가 가까운 거리에서 주교님의 생활을 지켜드릴 기회를 달라는 것입니다.”

“거 무슨 말씀, 나를 위해 희생자가 되겠다는 것인가요?”

“주교님, 알로펜을 향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40여 년 세월 흘렀다니까요. 앞으로 얼마나 내 목숨이 남았을지 모르나 모두 다 드리려구요.”

“마리아 교수님, 말씀 듣기가 민망합니다. 그럼 나는 뭡니까?”

“뭐긴요. 그저 인정해 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자칫 주교님 근처에 여인들이 끼어들려할 수도 있거든요. 그때를 위해서도 이 늙은 여인이 주교님께는 꼭 필요합니다.”

“허허, 참….”

“뭐가 허허참 입니까. 감사합니다 하면서 큰절 한 번 하세요.”

언제 들어왔는지 안토니가 들어와서 싱글거리며 좋아했다.

“저 사람은 아무데나 끼어들어 분위기를 깬다니까.”

알로펜이 기분좋게 웃었다.

“안토니 사제님, 우리 교단이 교세가 어느 만큼일까요? 사제나 수사는 또 얼마쯤 되구요?”

마리아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확실한 통계는 못가졌으나 사제나 수사들, 또 여수사들이 3백명은 넘는 것으로 압니다.”

“그럼 그들은 가정을 꾸려서 2세를 생산하기도 하고, 교단의 합법성도 갖춰야 하지 않을까요?”

“물론 저도 마리아 님과 같은 생각이지만 주교님이 독신을 선호하시니 모두들 어정쩡한 입장을 취하기도 합니다.”

“이보시게 안토니. 말 조심하게. 내가 언제 독신을 선호했어?”

“저, 저 말씀보게. 주교님 따라다니는 사람 중 누가 장가를 들었나요? 요나, 세비야 등 오랜 친구들은 여지없이 홀아비 신세죠. 나같은 작자는 별도의 독신자이지만….”

“안토니 사제! 별도의 독신자라니?”

“아닙니다. 그냥 하는 말입니다.”

“제 생각에는 지도자 탓입니다. 그리고 알로펜 님이야 30여 년 간 자기의 앞날을 알 수 없는 나그네 생활이었으니 할 수 없었죠. 앞으로 중국에서의 네스토리안 교회법에 따라서 교회 봉사자들은 결혼, 수도원 생활자들은 본인들이 선택하는 규범을 마련하면 되겠죠.”

알로펜은 듣고만 있었다.

다음날, 급보가 날라왔다. 아라비아의 무함마드가 갑자기 사망을 했다는 소식이다. 투루판에 와있는 그의 제자들이 메카로 떠난다는 소식이다. 암몬이 찾아왔다.

“스승님, 대 예언자 무함마드께서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저는 그 일과 상관없이 주교님의 제자 자격으로 중국에 가겠습니다.”

“…….”

알로펜이 말없이 그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스승님, 제가 따른다 하니 망설이는 것입니까? 제가 믿음직스럽지 않으신 것이죠. 그러나 저는 확신이 있습니다. 무함마드 대예언자는 일찍이 이스라엘이 버린자들, 그러니까 이스라엘에서 모압과 암몬 족을 구원하기 위한 방편의 예언자 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이스마엘 세계의 선교나 복음 전하는 일이 각기 충돌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저는 앞으로 주교님에게 예수 메시아의 길을 더 깊이 배우고, 기독교와 이슬람이 형제로써 불편없이 사는 종교의 지도자가 되고야 말겠습니다. 저희 암몬족이나 모압족 후예들은 편가르기 속에서 많은 억울한 일을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래, 자네의 뜻이 무엇인지 알겠네. 중국을 가거나 어디를 가더라도 진리를 바로 세우는 구도자가 되어야 하네.”

“감사합니다. 주교님. 가르침 명심하겠습니다.”

다음날, 쿰바홀과 안토니가 알로펜 주교의 사무실에 들어섰다. 알로펜이 돈황으로 떠날 때 동행자를 선별하는 문제를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알로펜이 의견을 말했다.

“일단 다마스커스, 사마르칸트, 쉐키 대표들 중에 3명씩 하고, 마리아 교수님과 드보라를 가게 해주시오. 그리고 내가 돈황에 거처를 정하거든 추가로 다섯명 정도를 선별해 주시오. 상대는 당나라 태종이라는 황제입니다. 그분의 사람 보는 눈이 높다더군요. 우선 구도자 답게 당당하고 마음을 텅 비우는 자세를 가진 자가 좋습니다. 일행 속에 그리스어나 수리아어를 하는 이들이 있는가도 알아봐 주시오.”

이어서 조용한 시간. 알로펜은 무함마드를 떠올려보았다. 15살이던가, 18살이던가, 동갑나이인 알로펜과 무함마드가 다마스커스 야고보 장로인 외할아버지 집에서 논쟁을 하고, 함께 거룩한 길을 가자고 다짐했었다. 그는 할 일을 끝냈고 알로펜은 실력발휘를 위해 곧 중국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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