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를 여러 각도에서 설명할 수 있다. 그 가운데 중요한 것이 군부 세력의 자리와 입장이다. 법치 민주주의에서 문민이 군부를 다스린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군사쿠데타가 후진국의 일반적인 특징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후진국을 벗어나는 중요한 기준이 군사쿠데타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사회 구조인 것이 그래서다. 군부통치가 끝나면서 들어선 우리나라 정부들이 ‘문민정부’, ‘국민의정부’로 명명한 게 괜한 일이 아니다.

오늘자 모든 언론의 인터넷 기사 입력의 중심은 단연 ‘전두환 일가’의 추징금 완납 의사 발표였다. 전씨의 장남 재국씨가 일가를 대표해서 오후 3시 서울 서초동 중앙지검 현관에서 완납 의사와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1997년 대법원에서 전두환 전직 대통령에 대하여 무기징역형을 확정하고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한지 16년만이다. 그런데 사실 자체를 따지면 우리나라 역사의 그 단단한 옹이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12월 12일에 입력된 온라인 중앙일보 보도가 이렇다. “12·12사태는 1997년 대법원 판결에 따라 군사반란으로 확정됐으며, 1998년 교과서에 이러한 내용이 명확히 추가됐다.” 이 보도의 꼭지 제목이 “전두환 세력이 쿠데타 일으킨 1212사태 어느덧 33년”이다. 올해를 기준하면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34년이 되었다. 그러니까 34년 만에 법치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집행은 지금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미납추징금 1672억원 납부가 완료될 때까지 법적인 집행과 사회적 감시가 지속돼야 한다.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고서도 추징금을 완납하지 않고 16년이나 버틸 정도로 현재의 법적 장치와 사회 구조는 취약하다. ‘결국은 다 내지 않은 채 유야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을 것이다. 지금 이후의 집행 과정이 다시 어려워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까닭이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다. 미납 추징금 완납 의사 발표와 그에 따른 완납은 법의 집행에서 최소한이지 그 이상이 결코 아니란 것이다. 불법적인 자금으로 지금까지 불린 재산이나 현행법상 과태료가 없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납 추징금 납부는 ‘남는 장사’라는 많은 언론의 지적도 그런 상황을 말하고 있다. 법적 책임은 모든 국민에게 당연한 것인데, 사회적 책임까지 생각하면 추징금 납부는 그야말로 최소치다.

가장 중요한 점은 따로 있다. 16년 또는 34년 만에 대한민국 법 집행이 제 궤도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어느 개인이나 일가의 연관성이 중요하지 않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권력 구조의 변동이나 중심 이동도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나라가 참으로 민주주의를 해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미납 추징금에 대한 이번 사건은 시야를 조금 크게 해보면 이 나라 민주주의의 존망과 미래가 걸린 문제다. 그 어느 누구도 다시는 이 나라에서 군사쿠데타를 일으킬 엄두를 내지 못하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 사안은 과정이 어떠했음을 따지기 이전에 어찌 되었든 우리 사회가 34년 전의 사건을 잊지 않고 계속 추적해 왔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약점 중 하나로 흔히 지적되는 게 역사 청산에 약한 것이다. 일본 아베정부의 최근 행보의 문제점은 역시 역사의식 부재에 있다. 역사 흐름에서는 어느 민족이나 나라도 늘 잘 할 수는 없다. 실패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며, 배운 것을 잊지 않고 적용하는 것이다.

전씨 일가의 미납 추징금 완납은 이런 점에서 역사 청산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완납까지 앞으로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사회 전체가 민주적 법치를 집행하는 올바른 감시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보수든 진보든 상관없이 우리나라를 부강한 나라로 세우는 데 필요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에 터를 두고 있는데, 여기에서 기독교 사회윤리의 핵심 가치를 끌어낼 수 있다. 인도적 인륜도덕, 상생의 시장경제, 법치적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오늘 뉴스의 핵심인 이 사안은 기독교의 시각으로도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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