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겉 사람은 후패하다     고린도후서 4:16

바울 사도는 “겉 사람은 후패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누구도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숙명입니다. 진시황은 이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쳐 보았지만 그 조차 결국은 한줌의 흙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겉 사람에게 소망을 두고 사는 것은 참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다시 말씀합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그런 까닭에 바울에게 있어서는, 아니 우리에게 있어서는 사는 날 동안의 환난은 결코 무거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경한 것, 가벼운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의 속(영혼)은 날로 새롭게 되어집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은 결코 죽어 흙이 육체와는 다르게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보존되어 그 때에 주와 함께 영광에 참여됩니다. 그러나 영혼에는 관심이 없고 날마다 후패해져가는 육체를 위하여, 육신을 구하고 살다 보면 결국 그리스도의 날에 영광의 중한 것을 얻을 수 없게 될 겁니다. 우리의 삶은 날마다의 선택입니다. 후패해질 겉 사람을 바라보고 살아갈지 영원한 것을 바라보면 살아갈지에 대한 선택입니다. 죽고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 : 영원한 것을 바라보는 축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화    믿음     로마서 1:17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과 명철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삶의 태도를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은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내 지식과 명철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가나안 진입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수 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을 가질 때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불평하면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와 함께 하십니다. 이 사실을 굳게 믿고 나아갈 때 삶 속에서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기도 : 믿음을 지켜 하늘의 신령한 은혜를 누릴 수 있도록 역사 하옵소서!  아멘.



수    다시 부르시는 하나님     요한복음 21:15~17 

절대로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장담하였던 베드로.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였습니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75).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때때로 예수님을 배반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진실이 아닌 거짓을 택하는 경우가 바로 예수님을 배반하는 때입니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예수님을 떠나 고기 잡던 옛날 어부의 모습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다시 고기를 잡으려고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요 21:3). 예수님을 떠난 인생, 예수님 없는 인생은 무엇인가 해보려고 발버둥 쳐봐도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빈 그물이자 빈 배의 인생입니다. 그 절망의 끝자리에 주님이 오셔야 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오셔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연약한 모습의 자리를 벗어버리고 강한 복음의 일군으로 초대교회를 대표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다시 부르시고 사명을 주셔서 실패자요 연약한 우리를 통하여 더 큰 기적을 나타내십니다.
▶기도 : 일꾼 삼으신 그 은혜에 감사하며 주신 사명 잘 감당하게 하옵소서! 아멘.  



목    하나님의 뜻     에베소서 5:17~18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사는 겁니다. 본문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삶에 대해서 두 가지 조건을 말합니다. 1) 세월을 아끼라 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고 말합니다. 우리는 악한 이 세대를 분별해야 합니다. 분별이란 말은 판단하라는 말이 아니라 나타내 증명해 보이라는 뜻입니다. 악한 이 세대에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삶 가운데 나타내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의 사울 왕이 어리석은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뜻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아말렉과 전쟁에서 사람도, 짐승도, 다 진멸하려고 했는데, 살찐 짐승을 보고 욕심이 생겨서 그것을 가져오게 됩니다. 결국 본인 뿐 아니라 아들들까지 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기도 :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아니하고 믿음의 경주를 다할 수 있게 하소서! 아멘.



금    믿음의 기도     마태복음 15:28 

예수님께서 두로 지경으로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자신의 딸을 고쳐 주기를 간청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들이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간청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낙망치 않고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다시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다시 거절하셨습니다. 이 얼마나 모욕적인 말입니까?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이런 말을 듣고 분개하고 온갖 욕을 다하고 가버렸을 겁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물러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말하며 긍휼을 베풀어 주기를 간구했습니다.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 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셨고 그 즉시 여인의 딸은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 여인은 몇번씩 부딪히는 시련에도 불구하고 결코 낙망치 않고 믿음으로 간구를 함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할 정도로 믿음으로 간구하는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기도 : 믿음으로 기도하며 응답을 받고 승리할 수 있도록 역사하여 주옵소서.! 아멘.



토    내가 여기 있다     욥기 42:1~17

오늘 분문은 욥기서의 결론입니다. 욥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미천한 한계를 깨닫고 참회합니다. 급기야 욥은 친구들의 허물을 용서하며 중보기도를 드리고, 욥은 이전보다 갑절의 복을 받고 늙어 나이가 차서 죽을 때까지 그 복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욥이 그 형용하기 힘겨운 고난의 인생을 걸어오면서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욥 42:5). 결국은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보이시더라는 겁니다. 지금 고난에 허덕이고 신음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께서 “내가 여기 있다!” 하시는 겁니다. 욥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눈으로 뵈옵는 겁니다. 분명히 알 것은, 내가 잘 한만큼, 내가 수고하고 땀을 흘린 만큼, 내가 기도한 만큼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여전히 의심과 불평, 불안과 두려움, 신음과 애통만 가득한 못난 내게 느닷없이, 갑작스레 어느 날 하나님께서 당신 자신을 내보이시더라는 겁니다. 지금 칠 흙 같이 어둡고 힘겨운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신음하며 애통해하는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될 중요한 사실은 우리의 소망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섭리 안에서 당신을 우리에게 반드시 내보이신다라는 겁니다. “내가 여기 있다!”
▶기도 : 하나님 오늘 ‘내가 여기 있다’ 말씀하시는 음성을 듣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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