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스토리우스 기독교 중국  景敎 (3)

 

   
말을 타고 산길 따라 '주질' 경교탑 탐사하는 필자

 “허어, 주교께서 어인 방문이시오.”

방현령은 석양빛 반짝이는 창가에 앉아서 붓을 들고 시를 짓다가 붓을 놓지도 못하고 벌떡 일어섰다. 저으기 놀란 빛이었다.

“제가 실례를 했군요. 글을 쓰시다가….”

알로펜은 매우 난처했다. 두 손을 마주잡고, 허리를 거푸 굽혀 사죄했다.

“아니옵니다. 한가로워서 졸고 있다가 퍼특 시 한 수가 머리를 스쳐지나갔소. 그걸 되살려보려고 붓을 잡았을 뿐이오.”

“아, 그런가요. 어떤 시상(詩想)이 떠올랐나요?”

“예, 한 2백여 년 전 도연명이라고 술과 시를 좋아했던 천재 시인이 살았죠. 그를 흠모하는 내 친구 한 사람이 있소. 왕적이라 이름하는 이죠. 이 친구 또한 술 좋아하고, 벼슬 따위는 안중에 없지요. 제가 한 수 읊어 볼까요?”

알로펜이 좋다고 하자 방현령이 음률을 얹어서 왕적의 〈야망〉이라 하는 시를 읊는다.
 

동쪽 언덕에서 해질 무렵 바라보며
서성거리기만 하니 어디에 기대야 할까
나무마다 온통 가을 빛이요
산마다 오직 지는 햇빛 뿐
목동들은 송아지 몰며 돌아오고
사냥 말은 잡은 새 두르고 돌아오네
서로 돌아보아도 아는 이 없어
길게 노래하며 고사리 캘 것을 그리워하네.
 

“아, 아름답소이다. 대감의 노랫가락이 시를 돋보이게 했소이다.”

“주교님, 죄송합니다만, 저희 나라말 얼마나 아시나요?”

“네, 대감님. 서툴지만 말 보다 글은 조금 해독이 가능합니다. 이 시가 좋으나 중간 중간 현실에 등대려는 저항의 뜻이 들어있는 것 같구려.”

“와하, 그렇습니까? 주교님. 대단하십니다. 좋습니다. 우리 당나라는 물론 진한의 나라 사람들 대개 시인이요, 문장가들 수준은 되어야 궁정 출입을 합니다.”

“아, 그래요. 그럼 조심해야 겠군요.”

방현령이 웃다가 조심해야겠다고 알로펜이 말하자 멈칫 한다.

“왜 그러시죠?”

“시인과 문장가이며 학자의 수준일 터인데 조심해야죠.”

“그렇기는 합니다. 아마, 그게 바로 중국인들의 저력이기도 하죠. 그러나 알로펜 주교님의 학문과 인격이면 아무런 걱정없습니다. 충분한 대응이고, 그 이상의 덕망이 넘치시는 분이니까….”

“…….”

“아 참, 내 오늘 황제를 잠시 뵈었더니 약간 조심스러워 하시는 표정이셨어요.”

“무슨 일 때문에….”

알로펜은 직감으로 자기가 황제에게 진언한 민간인 학습문제라는 판단을 했다.

“주교님께서 황제께 말씀드린 민간 저변의 하층민들에게 선교의 한 방법으로 교양공부를 시키고 싶다고 하셨지요. 그같은 일쯤은 황제로서는 대환영이지만 대신들이….”

“대신들이라니요?”

알로펜은 깜짝 놀랐다.

“네, 대신들은 하층민들의 사는 방식을 지금 수준이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또 무슨 말씀인가요? 인간의 삶은 자꾸만 개선해 가고, 계층간의 간격을 좁혀야죠.”

알로펜은 약간 언성을 높였다. 그러다가 방현령이 눈을 지긋이 감고 있는 것을 보자, 다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주교님, 저는 주교님의 뜻에 완전히 동의합니다. 그러나 황제는 주교님을 선택하신 후 상당한 부담을 안고 계십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네, 다 말씀 드리죠. 주교님, 고창에 막 오셨을 때인가요, 아닙니다. 알로펜이라는 출중한 주교 한 사람이 중앙아시아를 건너온다는 소식 우리는 20여 년 전부터 알고 있었지요. 그리고, 알로펜이 가슴에 품고 오는 기독교 지도이념이 로마 제국파들에게 인위적으로 거세된 네스토리우스 총대주교의 신앙과 지조라는 것까지 다 알고 있었어요. 이후에 계속되는 페르시아 고위층들이 당왕조가 수립된 후에는 많이 찾아와서 알로펜 주교가 당나라를 위해서 오고 있다고 똑같은 정보를 우리에게 전해줬어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어요?”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당왕조의 포부에 합치된 선교단이라는 말씀이죠.”

“네, 그도 그렇지만 황제께서 그분만의 위엄으로 알로펜 주교 일행을 후대하고, 선교를 지원하되 파격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럼 된거잖아요. 저 불쌍한 하층민들의 생활을 끌어올려주면….”

거기까지 말하는데 방현령이 탁자를 손으로 탁! 소리가 날만큼 크게 쳤다.

“주교님, 하나를 더 아셔야 합니다. 당나라에는 하층민이 많아요. 아직은 그래요. 그리고, 모든 정치인들은 백성이란 조금은 무식해야 통치가 쉽다고 믿고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알로펜은 할 말을 잃었다. 어둡구나. 여기는 로마가 아니구나…, 하면서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울음이 솓구쳐 오르려 했다.

“주교님, 내가 심했나요. 주교님의 종교는 앞으로 1천년 쯤 후에 중국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세월이 필요합니다. 너무 서두르시면 안됩니다. 제 생각에는 황제가 주문하신 역경사업을 위해서도 10년, 장안에 기념사찰을 지으시려면 또 10년, 황실과 장안의 명문대가들 가정과 당나라 안녕을 위한 기도기간이 또 10년쯤 필요하실 것입니다. 아마, 지금 주교님이 계획하신 하층민 선교는 그 이후에나 손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봅니다.”

알로펜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방현령이라는 인물이 무섭기까지 했다. 그는 뛰다시피해서 제자들이 기다리는 그의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늘 저녁 식사 후 전체 회의입니다. 준비하세요.”

저녁시간이다. 전체 인원이 다 모였다.

“내가 오늘 방현령 대감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우리가 너무 앞서간다는 판단을 했소. 일단 하층민 관리는 당나라가 하도록 놔두고, 우리는 공부부터 해야 하겠소. 여러분 가운데 절반은 중국말과 글을 열심히 공부하세요. 나머지는 성경과 주기도문 등 각종 기도문과 교리학 책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이 되겠죠. 마리아 교수님은 성경을 중국어로 번역하는 일을 5명의 인원으로 해주시오. 인원 선별은 임의로 해주시오. 다음 중국어 공부반 유승 외 9명, 9명은 유승이 직접 선별하시오. 그리고 저까지 6명이 남죠? 나머지 6명은 우선 당나라 조정 인맥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들과 사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부터 연구합시다. 잠시 휴식시간에 인원 선별을 해서 보고해 주시오.”

휴식시간이 아니라 부서를 다시 정돈하는 것이다. 시간이 30분쯤 후에 마리아 교수가 번역자 명단을 먼저 제출했다.

“번역위원입니다. 요수아, 기드온, 다비드, 레위, 그리고 마리아 입니다.”

마리아가 알로펜에게 명단을 제출했다.

“사샤, 트리온, 삼손, 암몬, 야베스, 사울, 샴마이, 에즈겔, 에루하, 그리고 유승입니다.”

유승이 명단을 내놓았다.

“그럼 나머지는 쿰바홀, 요담, 아비후, 안토니, 드보라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안토니의 대답이었다.

   
'주질'에 위치한 경교탑 내부관찰이 하고 싶다.

“좋습니다. 성경번역 문제는 내일 황제와 사이에 어떤 방침이 세워질 것이니다. 그리고 유승 형제는 함께 공부할 형제들과 1년 쯤 목표로 낮밤을 가리지 말고 학문과 언어를 충분히 익혀보시오. 1년 쯤이면 기초는 잡힐 것이니까.”

“네, 그 이상의 성과를 목표로 하여 열심히 하겠습니다.”

다음날 아침 알로펜 주교는 안토니를 대동하고 궁정으로 나아갔다.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어전회의가 열렸으나 비상회의였다고 한다. 고구려가 당나라의 신하국을 지처하지 않아서 응징해야 한다던 차에 고구려와 당나라 변경, 요하지경에서 군사충돌이 있어서 전략회의를 연 후 당태종이 분기가 치밀어 신하들의 알현도 거부하고 있다는 중간 연락이었다.

알로펜은 대신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방현령과 마주쳤다.

“주교님, 여기 계십니까? 황제께서 주교님을 찾으십니다.”

“아, 지금 변경 문제로 신경을 쓰고 계신다는데요.”

“그래도 어쩝니까? 변경 문제보다 알로펜 주교를 만나는 문제가 더 중요하신걸요.”

방현령이 웃었다. 알로펜도 함께 웃었다. 그 둘이 황제 앞에 나타나자, 황제는 크게 반겼다. 미리 좋은 알로펜의 선교계획 변경을 먼저 꺼냈다.

“황제폐하! 소신 알로펜 아뢰옵니다. 소신이 어제 폐하에게 지언한 주변 선교내용에 대하여 생각을 바꾸고자 합니다. 제가 황상의 큰 은혜를 입은 자로 먼저 폐하로부터 배움이 있어야 하겠고, 둘째는 성경번역을 서둘러야 합니다. 또 하나는 당나라가 시와 문장의 나라이거늘 저희같은 무지한 선교사들이지만 집중공부를 서둘러 무식면음 하는 것이 황제 폐하의 은총에 조금이나마 보은하는 일이라 사료되어 변방선교나 도시외곽 선교는 차후로 미루고자 하오니 가납하여 주소서.”

“어헝, 어헝! 기쁠시고. 어제의 진언도 좋았고, 오늘의 내용은 더욱 좋구려. 역시 탁월한 인물이구려. 알로펜!”

당태종은 크게 알로펜을 칭찬하고 방현령 그 곁에서 싱글벙글이었다.

“알로펜 주교님, 폐하는 알로펜 주교의 선택이나 일의 방향을 다 좋다하시지만 제 생각도 오늘 폐하께 드린 활동의 순서가 더 좋아보입니다. 당나라 조정을 드나드는 사람들 저마다 왕같은 사람들이오. 우리 폐하 같은 영웅 앞에서도 틈새를 노리는 강골들이 많다오.”

“방현령! 무슨 소리야.”

당태종이 방현령을 향해 눈을 부릎 뜬다. 그러나 이내 웃어 넘긴다.

“황상 폐하!”

알로펜이 황제를 부르더니 엎드려 몸을 일으키지 않는다.

“어이, 그러는가? 주교는 얼굴을 들라.”

알로펜이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자, 황제가 묻는다.

“무슨 걱정이라도….”

“아니옵니다. 폐하! 저희 예수교가 당나라에서 정식 호칭으로 ‘예수그리스도교’ 또는 ‘그리스도교’로 호칭하고 싶어서 주청을 드리나이다.”

기습이었다.

“허어, 그런가? 나는 빛나는 동방의 종교, 또는 빛나는 종교(景敎)로 쓰는 것이 좋다고 보고 있소만….”

“폐하, 저희 종교는 로마와 세계에서 단일 이름으로 ‘그리스도교’를 사용하나이다. 중국어 음역을 따르면 기독교(基督敎)가 되기도 합니다. 景敎는 그 뜻이 좋기는 하지만 저희 기독교의 성격과는 거리가 이어보이기도 합니다.”

“허어, 긴히 그러하다면 좀 더 생각해 봅시다. 짐의 생각은 많은 종교들 중 빛나는 종교, 빛을 온 세상에 비추는 종교라해서 깊이 애착을 가진 이름이오만 주교의 뜻 또한 소중하니 좀 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황공하옵니다. 폐하의 뜻을 받겠나이다.”

“그래, 여기는 중국이오. 대 당나라에서 부르는 호칭이 세계의 호칭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알로펜 주교.”

“네, 폐하, 황공무지로소이다.”

알로펜은 방현령과 함께 당태종의 어전을 뒷걸음으로 나왔다.

“주교님, 우리 황제께서 景敎로 이미 낙점을 하신 줄을 모르셨나요.”

“네! 그러나….”

“아닙니다. 문명이라는 것이 그렇잖소. 아마 앞으로 교리서 번역이나 성경 번역에서도 주교께서 상당부분 양보하셔야 될 것입니다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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