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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사역 접고 자비량목회 준비하는 오재호 목사(나음과이음 대표)
양승록 기자  |  dsr123@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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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9호] 승인 2013.10.16  11: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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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경 1㎞ 책임지며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를 꿈꾼다”

  부교역자 14년 뒤로 하고 자비량목회 준비 1년 째 - 무슨 일이 있었을까

 

 교회, 목회자, 성도 모두 맘몬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게 되다
 디자인 일과 파트타임 사역 병행하며 한국교회 문제 더 정확히 알아
 힘겨운 이들 돕고 일으켜 세우는 일 ‘목회’ 확인, 연합교회 도모 중


기획/작은(소중한)교회 살리는 이들 ⑦

 
 

올해 서른아홉인 오재호 목사. 그는 1년 전부터 파트타임으로 교회(애일교회) 사역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그랬듯이 그도 전도사시절부터 부목사까지 14년간 부교역자 사역에 충실히 했다. 그러나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담임자나 부교역자들마저 교회 본질적인 사역보다 비본질적인 부분 때문에 휘둘리는 것을 보면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나이 마흔을 바라보면서.

마침내 그는 부교역자 전임 사역자를 그만두었다. 교회마저도 맘몬의 우상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 앞에서 그 길을 극복할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1년 9개월. 지금 그는 디자인 회사를 창업했고, 교회에서는 파트타임으로 사역하고 있다.

자비량사역에 돌입한 것이다. 그는 환하게 웃는다. 행복하다고. 자신이 세상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도 깨달았고, 한국교회 상황을 좀 더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또 다른 달란트, 목회와 디자인 일을 병행하면서, 어려운 이웃의 눈물을 닦아주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교회를 박차고 막 나왔을 때의 불안감은 완전히 씻겨져 있는 듯 보였다.

△자비량 사역이 만 1년 정도 되는 것 같은데, 어떤가.

-“확실히 느낀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하는 것이다. 교회 목회활동만이 목회인 줄 알았다. 반쪽만 배웠구나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그리고 제일 좋았던 것은 한국교회 현실을 제대로 봤다는 것이다. 한국교회 문제는 교회의 본질적인 것을 외면하고, 맘몬에 포위당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까지는 교회 안에서 목회하는 것만이 목회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부교역자시절 농촌교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연세가 높으신 할아버지 목사는 늘 구두가 광이 나고, 넥타이를 늘 메고 정장차림으로 다녔다. 생활이 어렵다보니 할머니 사모님이 생활비를 벌러 다녔다. 교회 옆 공터가 많은데 농사를 지어서 자급자족을 하고, 동네사람들과 어울려서 일을 하시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더니 그 목사님이 그러시더라. ‘목회자는 구별된 존재라서 기도와 말씀에 전념해야 하고, 영적이지 않는 일을 하면 안된다’고. 그때도 생각했다. 무언가 신학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고. 그런 목사님을 동네사람들은 존경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지 않고 악하다고 비난했다.”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나.

-“전통적인 목회 속에서 목회자는 설교와 기도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식이 문제다. 사회 속에서 필요로 하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을 마치 잘못된 것인 양 생각하고 있는 풍토가 여전하지 않은가. 지금은 전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선교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이제까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부분에 대해 책임지려는 자숙하는 마음으로, 선교지에 왔다는 마음으로 어울려 배울 것은 배우고 소통하며 가야 한다.”

△보수적인 합동 교단 산하인 총신대에서 학부와 대학원까지 마치고 그 교단에서 14년간 부교역자 사역을 해왔는데, 다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계기가 있었을 것 같은데.

-“한국교회 전체 모습들을 보면 금권 선거, ‘부동산 목회’(영성목회 아닌 건물에 집착), 상식 이하의 행태 등이 만연한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럴까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문제는 돈이었다. 돈이 아니라면 권력이나 명예, 교회 분열 등이 있을 리 만무였다. 나이가 마흔이 되어가니 목사나 장로 부모를 두지 못한 나같은 ‘진골’ 목사에게는 웬만한 교회 담임목사는 쉽지 않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되고 있다. 돈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소신있는 목회를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어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안락한 삶을 뒤로하고 뛰쳐나온 것이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렇게 그만 둘 정도였으면 갈등이 심했을 것 같은데, 어떤 일부터 했나.

“2011년 12월 전임사역을 그만두고 있는데, 여기저기에서 디자인을 좀 해달라는 의뢰들이 몇 건 들어왔다. 부교역자시절 줄곧 교회 내 인쇄, 출판, 디자인 관련 일을 담당했던 터라 노하우가 쌓였던 것 같다. 그래서 그 일을 해주었더니 그 대가도 받게 되더라. 어떤 달에는 천만 원 단위의 수입까지 생길 정도였다(몇 개월간은 일이 없기도 했다). 그렇게 디자인 일을 하면서 영수증을 끊어줘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자, 떠밀려 사업자등록증까지 내게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자비량 사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됐고, 자신감과 확신도 생겼다.”

△자비량사역 하는 이들 가운데 모델 케이스를 발견했나.

“그렇지는 않았다. 몇 개월 동안은 경남 합천, 남해, 전라도, 수도권 일대 등 자비량 목회를 하시는 분들을 만나러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그런데 그분들을 보면서 쉽지 않음을 확인하게 됐다. 그러나 느낀 것은 많았다.”

△디자인회사 ‘나음과이음’은 어떤 목표로 하고 있나.

-“디자인회사 나음과이음은 2012년 10월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선교적 디자인기업이다. 나음(better)와 이음(network)을 의미하는 이 기업은 더 나은 방법을 찾고,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을 위해서 만들어진 디자인 회사다. 단지 예쁜 디자인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인이라는 도구로 지역사회와 사람들을 더욱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회사다.

한국은 이미 전도가 아닌 선교 관점으로 목회가 필요한 새로운 환경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전통적 선교방식과 목회방식을 보완해 줄 대안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선교방식’이다. 자립형·지역중심의·기능적 선교가 바로 그것이다. 나음과이음은 모든 교회와 더불어서 교회 중심으로 1㎞를 책임지는 지역중심 선교를 꿈꾸고 있다. 최소한 교회 주변 1㎞ 반경에는 예수 안에서 외롭고 힘들고 지쳐있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고, 준비하고 있다. 프로젝트들도 하나씩 이어가고 있다.”

△어떤 프로젝트인가.

-“창립한 다음달에는 함안지역아동센터에서 진행중인 경남지역 저소득층 아이들이 축구를 통해 꿈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 홍보 지원을 맡아 브로셔 디자인과 인쇄 일체를 책임졌다. 지속적으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지하면서 저소득층 아이들의 학습환경 개선에 힘쓰고 있다. 그러는 사이 비신자 담당 선생님은 목회자를 막연히 싫어했던 마음이 조금씩 회복되었다고 한다.

두 번째 나눔은 12월 서울역에서 진행한 ‘나눔대첩’ 프로젝트 소식을 접해듣고, 총신대 동기 교역자 3명과 마음을 합해 SNS 사용자들과 함께 수도원 일대의 청년대학생 약 50명과 서울역 노숙자들에게 약간의 식사와 방한 용품을 나누게 되었다.

세 번째는 오늘까지 3개월간 진행한 사랑이네 가정 채움프로젝트다. 복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추락중인 가정, 조금만 붙잡아주면 충분히 자립이 될 만한 가정들을 돕는 일이다. 사랑이네 가정의 아빠는 수년 전 전도사시절 급성혈액암 판정을 받고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정상적으로 일할 수 없고, 아이는 발당장애 상태. 엄마는 성실하게 일했으나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상황이었다.

이 소식을 듣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취업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돕고, 3개월간 생계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사금융권에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이들 가정에 놀라운 일이 생겼다. 첫 달에 83만원이던 것이 조금씩 늘어 세 번째 달에는 108만원으로 증가한 것이다. 협력업체와 교회, 지인들에게 알리고, 블로그에도 공개해 투명하게 진행했다.”

△그렇게 협조자들이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웠을 것 같다.

-“2만원부터 몇 십만 원까지 형편대로 보내왔다. 그들 중에는 사업이 망해 돈을 아끼기 위해 봉고차에서 자고 있는 사람, 임지가 없어서 1년째 근근히 생활하는 이도 있다. 도저히 낼 수 있는 형편이 아닌 이들이 후원금을 보내오더라. 입금자 중에는 전혀 모르는 사람도 있다. 이런 힘겹게 사는 개미군단 후원금에 담긴 마음이 전해지면서 이것이 목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목회자도, 건물도 없지만 한 가정을 살려내고, 그 영혼들이 피폐해지지 않도록 어떤 역할을 했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했다.”

△목회에 대한 생각이 천지차이로 바뀌었을 것 같다.

“제가 부교역자시절 왜 제대로 소신있게 설교하지 못했나를 생각해 보니, 짤리기가 싫어서였다. 먹거리가 당장 사라지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선배 목회자 중에 교회가 양분돼 한동안 싸웠던 분이 있다.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집에 있을 때 찾아가니 그 선배 목사가 그러더라. ‘내가 왜 싸웠을까 근원적인 것을 생각해 보니 시가 수십억 원이라는 돈 때문이었더라. 그래서 그런 깨달음을 얻고는 포기하고 나왔다’는 고백을 하더라. 세상의 맘몬의 힘은 결코 작지 않다. 성도들 역시 사회 속에서 하나님과 맘몬 사이에 갈등한다. 그런 현상을 사회 속에서 일하니 더 많이 실감한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깨달음 후, 맘몬이즘에 빠지지 않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 있었나.

-“우선 욕심을 버려야 한다. 과소비를 줄이고 빚을 청산해야 한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의 능력과 자유가 제한을 받지 않고 힘이 생긴다. 나는 우선 과소비를 줄이기 위해 카드를 잘라버렸다. 그렇게 하니 단돈 1만원이라도 덜 쓰게 되었다. 자발적 가난이 왜 필요한 줄을 알았다. 그 자발적 가난을 통해 생긴 잉여금으로 내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데 사용하자는 목표까지 생기니 실천이 훨씬 용이했다. 착한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은 갈라디아서 6:10절 말씀에 나오는 ‘기회 있는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에들에게 할지니’라는 원칙대로 먼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주변, 옆에 있는 이들 중 맘몬의 지배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을 도와야 한다.”

△어떤 계획을 갖고 있나.

“동기 4명과 함께 연합교회를 하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 중에 있다. 원칙은 모두 자비량으로 하자는 것, 곧 사례비를 교회에서 가져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했다. 거점이 마련되면 공동의 센터가 될 것이다. 이 센터는 지역주민을 위해 사용될 것이다. 지역에서 교회가 리더십을 회복하고, 지역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지역 주민들에게 인정받고 함께 소통하는 지역교회를 만들어가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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