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종교개혁 496주년 본지 지령 1500호 - 대속

오늘을 예수로 사는 대속 신앙의 현장, 대속신앙을 삶에서 구현하려는 몸짓들

윤리·도덕적 이해, 기복주의 신앙의 도구로 전락한 ‘대속’
한국교회 회복의 ‘키’, 대속의 삶 구현하는 노력에서

대속(代贖)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사건이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이 되어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이 땅 위의 삶 속에서 그런 영원성을 확보한 사람답게 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사는 생명을 가진 모든 이들이 누릴 수 있는 길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열어놓으셨고, 오늘의 크리스천들은 그 복된 이야기를 함께 사는 이들에게 전해야 할 사명이 있는 것이다. 
이런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사회 속에서는 냉대와 비난, 더 나아가 걱정거리로 전락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120년의 기독교 역사 속에서 열정적으로 복음을 외치며 살아왔는데,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종교개혁 496주년, 본지 지령 1500호를 기념해 다뤄보고자 하는 것이 바로 ‘대속’ 문제다. 종교개혁을 주창하며 오직 믿음을 강조했던 루터, 그 뒤를 이어 한국교회도 ‘믿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대로 열심히 ‘믿음’을 이루었다고 보았는데, 오늘날 사회 속 신자는 왜 이 모습일까. 바로 믿음으로 구원 얻는 그 핵심인 대속의 은총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기복주의 신앙 흐름 속에서 ‘대속’ 마저도 단순히 이 땅에서 복 받고 죽어서는 천국 티켓을 보장받는 출발선쯤으로 여기는 가벼운 이해가 오늘날 이기적인 신앙 양태로 나타나고 결국 교회의 쇠퇴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되고 있다.
교계 지도자 3명, 그리고 다양한 계층의 목회자 및 성도들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 문제인가를 들어보았다. 오늘 우리 기독교의 현주소를 바로 직시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이루신 대속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그리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대속의 예수의 은총을 통해 이 땅 위의 백성들이 확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기를…. <편집자 주>

   
 

# 대속, 다 아는 이야기(?)

모태신앙이거나 신앙연수 20년 이상 된 그리스도인들에게 물었다. ‘대속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하는 질문을 필두로 대속에 대해 명쾌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대속을 경험한 이야기, 대속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 대속의 은혜가 삶에서 어떤 힘을 발휘하는지, 마지막으로 신자들과 교회 공동체가 대속신앙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보는지 등에 대한 질문이었다.

대속에 대한 질문에 “뜬금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일부 신자들은 머뭇거리며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는 반면 아주 쉽게 뜻을 설명하지만 삶의 부분에선 자신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또는 문자적인 이해에 그치지 않고 삶의 구현을 위해 고민하고 몸부림하는 등, ‘대속’을 이해하고 반응하며 살아내는 모습은 저마다 달랐다.

대속이란 말 뜻 그대로 ‘남의 죄를 대신하여 벌을 받거나 속죄함’을 뜻하고,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불순종한 인간의 원죄를 십자가 죽음으로 해결하신 것을 의미한다. 대속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서는 대부분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이라며 쉽게 응답했다. 하지만 기본적인 앎을 넘어서서 더 구체적으로 대속이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녹아지고, 구현되는지 이어지는 질문에는 대답이 나뉘었다.

“처음 믿을 때처럼 그 개념을 지속적으로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거나 “명쾌하게는 알고 있지 못하다”, “조금씩 알아가고 있는 중” 등 과거의 이해에서 희미해지거나 여전히 알아가는 과정에 있다는 대답이 있었다. 한편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만 의지하고 갈 때 우리의 죄가 사함을 얻고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다”, “날마다 대속의 감격 속에서 산다”는 명확한 응답도 있었다.

또 대속의 은혜를 통해 원죄의 깨끗케 된 것은 믿지만 자꾸 죄의 유혹에 넘어지는 자신을 보며 “이 정도밖에 안 되나”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실 거야”하는 절망감에 괴로워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다양한 이해와 반응

왜 대속에 대한 이해와 반응은 이처럼 다르게 나타나는 걸까.

대속자로서의 삶에 대한 응답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나’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죄 앞에 한없이 연약한 존재이기에 의로울 수 없으며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만 깨끗케 된다는 것이다.

김승호 목사(회청교회)는 대속자로서의 삶이 희미해질 때면 “내 믿음이 완전한 믿음인가? 지식적이고 시변적인 믿음에서 멈춰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예수님의 존재를 알고 엎드려 절했던 귀신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하고 자책할 때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목사는 “나 자신을 볼 때 결코 스스로 의로울 수 없다는 절망적인 현실이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한 대속의 믿음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게 한다”고 고백했다.

송재현 목사는 “대속은 재판관인 아버지가 범죄 한 아들에게 엄중한 판결을 내린 후 재판관의 옷을 벗어버리고 아들 옆으로 내려와 판결의 대가를 대신 지불하는 것과 같다”며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라고 정의했다. 하지만 순간순간 찾아오는 유혹(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고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실 거야!”하는 깊은 절망감에 빠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송 목사는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시켰던 사도 바울의 삶을 살려고 노력하지만 문제는 자아가 완전히 죽지 않고 잠시 졸도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온 탕자에게서 허물을 보지 않고 아들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하시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를 자유하게 한다”고 밝혔다.

김남석 목사는 “죄에 넘어지는 스스로를 보며 자책할 때가 많지만 다시 일어서는 것은 여전히 나를 아우르고 계시는 주님의 은총을 때문”이라면서 “대속의 은총은 나를 세워가는, 나를 나답게 하는 본질”이라고 설명했다. 또 “시시때때로 엄습하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 역시 대속의 은혜”라고 덧붙였다.

김종식 장로는 “대속의 은혜가 없을 때는 무거운 짐이 모두 나의 짐이었지만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내려 놓으라 내가 이루겠다’고 하셨다”면서 “청교도들이 풍족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에 감사했듯이 모든 짐을 내려놓고 보니 감사뿐인 삶이 이어지고 있다”며 대속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뿐임을 역설했다.

김영복 전도사는 대속의 삶을 방해하는 것은 “내 생각”이라고 짚었다. 그는 “영의 생각은 대속의 은혜를 입은 자에게 정확히 일한다”면서 “대속의 은혜를 입고도 마음의 위치가 높아지면 자신을 믿게 되고 자신의 생각에 붙잡히면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히 인도받지 못한다”면서 “하나님 앞에 내가 무익한 자의 위치로 돌아오면 하나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정확히 일하게 된다”고 고백했다.

김영배 장로는 “인간이 지음 받은 대로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지 못하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삶의 모범을 보이신 것”이라고 보고 “죽음의 권세 앞에서 비굴하게 피해가지 말고 예수님처럼 죽기로 각오하고 희생을 치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 모호한 ‘대속’, 가벼운 신앙

응답자들은 대부분 교회 공동체와 신자들이 확고한 대속신앙을 가르치거나 체득하려는 노력에 소홀하다고 답했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회자들이 대속의 은혜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삶에서도 본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에 신자들도 그대로 따라간다는 것이다.

김영복 전도사는 “복음 전도자로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성경을 통해 정확히 자신의 대속 신앙을 점검하는 경우는 적은 것 같다”면서 “윤리와 도덕의 개념으로 신앙을 이해하고 선하고 바르게 사는 것에 초점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종식 장로는 “설교 강단에서 대속보다는 희망의 설교를 더 자주 한다”면서 “현대인들은 영혼의 안식을 갈구하는데 교회는 세상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하니 문제”라고 짚었다.

김남석 목사는 “교회마다 대속의 은총에 대한 기쁨의 노래가 어느 순간부터 기복과 심리학, 인간관계, 치유 등으로 변색돼 있는 것을 보게 된다”면서 “돈이면 다 된다는 세상 철학이 교회를 잠식해 가는 것 같다”고 짚고 “회복의 길은 교회가 대속의 은혜를 바르게 정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영배 장로는 “경험적으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처럼 살겠다는 고백과 함께 영접해야 하는데 대개는 일정기간 교회 다니면 학습·세례 받고 세례교인이 되는 쉬운 구조”라고 꼬집었다. 김 장로는 “예수와 같은 희생의 삶은 마다하고 예수 믿고 복 받다가 죽어 천당 가는 이기적인 신앙 양태는 타종교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서 “한국교회가 더 좋은 예배당과 시스템에 집중하기 보다 초대교회와 같이 대속 신앙을 확고히 하기 위해 어떤 희생을 치러야 할지 고민한다면 새로운 부흥이 일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60여 명에게 대속에 관한 질문을 던졌지만 10여 명에게서만 돌아온 ‘답’. 어떤 이들은 그 답을 내놓기기 ‘쉽지 않다’고들 했다. 교회를 다니고 있지만 정말 대속의 은혜를 누리고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확신있게 말하지 못하겠다는 고민도 내놓았다. 대속의 확신은 있으나 삶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해 고민하는 이들도 있었다. 분명한 대속의 신앙자들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면면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그들은 한 목소리로 말한다.

“우리의 연약함과 잘못된 마음살이와 행동을 발견할 때마다 주춤거린다. 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자신을 쳐 복종시켜 삶에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야 하지만, 여전히 함량미달인 상태에서도 굴복당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의로워서가, 잘나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와 함께, 나의 그 모든 것을 아시고 용서하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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